25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서주여포는 평소와 같이 장료에게 모든 일과를 맡긴 뒤로 농땡이를 치고 있었다. 여포와 장료가 맡는 부대는 중랑장의 군 내에서도 기본적으로 소수 축인 기병 부대였으니 장료 혼자서도 감당은 가능했다.
물론 가능하다고는 해도 손이 많으면 좋을 일.
“어, 이거 이쁘네.”
그녀는 길가에 자란 꽃을 보며 픽 웃는다.
요컨대 그녀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제 주인 곁이나 지키고 싶은데, 근래 들어서 항상 이런저런 일로 떨어져 있을 때가 많아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여포는 손을 뻗어 꽃을 어루만졌다.
따다 주면 좋아할까.
그녀는 여전히 전호에게 꽃 한 송이씩을 선물하고 있었다. 맺어졌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런 비슷한 관계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여포. 그런 면에서는 어린아이와도 다를 게 없었던 여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법이었다.
“이거랑… 이것도 괜찮겠네.”
2월의 중순.
아직 겨울에 가까워 벌써 피어오른 꽃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얀 꽃망울을 환히 피어오른 꽃송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헤실헤실 웃었다.
어떤 걸 더 좋아할까.
왼쪽 꽃이 조금 더 예뻐보였지만, 오른쪽 꽃은 풍성하게 핀 느낌이었다. 그녀는 평소 무언가를 고민하는 일이 없었지만, 이런 사소한 고민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조그마한 시간이 즐거웠다.
그럴 찰나.
“여포.”
“엉?”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순간 사마의를 떠올렸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밝게 빛나는 색상. 무엇보다 키는 작지만 분명 남자였기에 여포는 고개를 까닥였다.
“아, 그거네.”
형양 전투 당시에 보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실력이라면 근래 그녀가 보았던 누구보다 강하다 싶은 사내. 아마 이름이.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했지만, 솔직히 누군가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볼일이냐?”
“한 수.”
장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손에 쥔 장팔사모를 치켜세웠다. 그의 다소 왜소한 체격과 비교하여 과하게 길다 싶을 정도의 사모를 너무 자연스럽게 다루며 여포에게 살짝 겨눈다.
“그때 결판이 안 났으니까.”
“결판은 무슨. 치워.”
그녀는 바빴다.
당장 꽃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평소였다면 받아주었겠지만, 당장 할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사고 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전호의 말을 떠올렸다.
“천하무쌍이 쫄았나?”
“……뭐?”
그녀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지금이야 몸종이라지만, 여포라는 인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있을 미래까지 통틀어 일개 개인에게 겁먹을 일이 있을까 보냐.
“뭐냐? 시비냐? 죽고 싶어?”
순간 머리에 열이 확 뻗쳤다.
그녀는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이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데다가 승부욕의 화신.
하여 그녀가 슬쩍 고개를 들고 장비를 쏘아봤다.
“꺼져. 그때도 죽다 살아난 새끼가 무슨. 쫄았냐고 도발하는 건 말이야, 적어도 비슷한 급이 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알겠냐?”
“난 아직 살아있다.”
장비는 픽 웃으며 장팔사모를 겨눴다.
“꺼져.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여포 입장에서는 마지막 경고였다.
그녀는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몰랐다. 물론 그녀는 힘을 겨루는 행동 자체를 좋아했고, 그런 와중에 강자와 만나는 것을 선호했다.
단지 걸리는 건 제 주인의 명령.
사고 치지 말라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마 장비가 도발하자마자 바로 방천화극을 쥐고 달려들었을 것. 그녀의 안에서 그의 말은 그 정도로 크기를 키운 상황이었다.
“아군? 이라는데 이런 식으로 덤벼도 되나?”
“단순히 대련이다. 만약 이 결과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설령 죽더라고 탓하지 않지. 우리 쪽에서 불평을 터뜨릴 일은 없을 거야.”
“하, 대련이라.”
그녀는 옆에 두었던 방천화극을 쥐었다.
“그렇단 말이지.”
안 그래도 좀이 쑤셨었다.
최근 들어서 진짜 강자라고 부를만한 적과 다툰 건 언제일까. 물론 조운과 전호, 서황이라는 계집도 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적이 아니었다.
다칠 것을 염려하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디 부러져도 불만은 없다, 이거지.”
“그때 못다 한 결판을 내고 싶을 뿐.”
장비에게 있어 거의 유일하다 싶은 패배. 형양의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결국 먼저 쓰러진 건 그였다.
그는 그것을 재차 복기하고 싶었다.
여포의 무. 그리고 자신의 무.
양자를 비교하여 자신의 안에 새기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뒤집고 싶었고, 그렇기에 다소 무리하더라도 여포를 찾은 것이었다.
반면 여포는 씩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녀 특유의 뾰족하니 날카로운 이가 드러난다. 손에 방천화극까지 쥐니 조금 전까지 꽃송이를 바라보며 헤실거리던 여인은 사라져버렸다.
천하무쌍.
“장비라고 했던가.”
“연인 장비다.”
“연인이고 초인이고, 그건 알 바 없고.”
방천화극을 크게 휘두른다.
순간적으로 불어오는 바람. 단순히 허공을 향해 휘두른 것이 지나지 않았지만, 장비는 그 여파로 느껴지는 바람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덤벼. 한 수, 제대로 알려줄게.”
좀이 쑤셨다.
심장이 근질거리는 감각.
그간의 여포는 지금과는 다소 다른 인간이었다. 그녀의 일생은 투쟁이었고, 언제나 전장의 선두에서 적을 베고 쓰러뜨린다. 어쩌면 그 전쟁과 전투가 그녀 인생의 전부라 할 정도로.
물론 지금은 보금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투쟁심 자체가 사그라질 일은 없었다. 맹수가 잠시 숨을 고르며 발톱을 숨길 일은 있어도, 그 본능 자체를 잃진 않는다.
“무리한 부탁에 호응해주어 고맙다.”
“감사? 그 표정의 어디가?”
어이없다는 듯이 여포가 반문했다.
장비는 자기 자신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하여 했던 말이겠지만, 적어도 여포가 보는 장비의 표정에는 일말의 감사도 담겨있지 않았다.
짐승.
저보다 강한 적을 만나 그 호승심을 주체할 수 없는 야수의 표정. 그저 상대를 또렷이 노려보며 흥분에 몸을 달군 짐승의 그것이었다.
“지금 눈에 핏발 선 게 빤히 보이는구만.”
여포는 그것을 비웃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강자와의 전투는 언제나 고양되는 것. 그녀도 이런 것을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하여 그들은 서로 무기를 겨누며 나란히 마주한다.
선공을 잡는 것은 장비.
그는 자세를 낮춘 상태로 사모의 끝을 살짝 밑으로 내려, 이윽고 튀어 나가듯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창대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소리.
쾅하고 무언가가 충돌하는 듯한, 혹은 폭발하여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주변 모든 사람이 전부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볼 정도의 고음.
“좀 하네?”
“그때 이후로 이 기회만을 기다렸으니까.”
장비는 여포에게 한 번 패한 것이 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패한 것에 분할 것도 없었다.
단지 한 가지.
다시 한 번 그 희열을 느껴보고 싶었다.
장비는 그 자세 그대로 사모를 휘두른다. 제 키에 무려 2배 이상에 달하는 사모는 사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강점을 지녔지만, 그는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달려들며 백병전으로 몰고 갔다.
무기의 강점을 유지하며 간을 잴 필요도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그리고 힘.
사선으로 이어 붙이는 공격이 틀어막히니 살짝 몸을 틀어 그 긴 창대로 노출된 상체를 향해 휘두른다. 모의 날을 거두고 창대로 이어지는 공격에 여포는 슬쩍 고개를 틀어 피하고는 방천화극을 거둔다.
서로의 무기가 충돌할 때마다 공간 전체를 울리는 듯한 파열음이 터졌다.
이미 주변에는 그 소란으로 인하여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저 서로의 빈틈을 향해 무기를 휘둘렸다.
쾅! 쾅!!
무기가 맞닿았다고는 믿기 힘든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공기를 타고 주변에 울린다. 사람들이 그것에 전율을 느낄 틈도 없이 연이어 계속. 먼저 선을 잡은 건 장비였으나, 여포가 한 발 내딛기 시작하며 이어지는 연격에 방어하는 자세로 돌아섰다.
“아까 기세는 어쨌냐? 엉!? 여기! 그리고 여기!!”
“크읏, 이, 여기서……!!”
장비는 분명 강했다.
그의 무는 천하에서도 그를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그의 누이인 관우조차 실제 전투에서는 그에게 한 수 접을 정도. 지금까지 장비와의 전면전에서 그를 이겨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여포였다.
그녀만이 장비를 꺾어내었다.
천하무쌍의 무게. 장비는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고 쳐낼 때마다 그것의 무게를 절절히 실감했다. 그저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그 공격 하나하나에 손과 팔 전체가 저릴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저 힘만이 아니었다.
사선으로 이어지는 공격은 허수. 실제로는 빙글 돌리며 창대로 후려치는 듯한 공격에서, 그것을 막으니 바로 하단 다리를 베고 들어오는 화극의 날을 피한다.
그녀의 공격은 본능적인 기교였다.
자연스럽지만 막기 어려운 힘과 속도를 지녔다. 그것이 자신을 뱀처럼 물고 늘어지는데, 그는 단지 막아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쩡쩡 울리는 철과 철의 충돌.
장비는 몸을 틀어 찔러오는 화극을 피했지만, 재차 그것을 당겨 회수하는 여포의 움직임에 그 화극 끝자락 날에 옆구리를 베였다.
사모의 사거리를 살리려 물러나고자 해도 바로 연이어 달려드는 여포의 공세에 수세로 몰리고 있었다. 이 대련을 빙자한 전투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난 이후로 장비는 그저 수비하며 그녀의 빈틈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천하무쌍의 위용.
단순한 베기 한 번도 간과할 수 없었다.
한 번의 움직임에도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행한다. 창대를 쥐고 내리치는 공격에는 무게를, 상대를 교란하여 비틀 듯이 극을 돌리는 과정에서는 유와 부드러움을.
힘만 있는 장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장비는 침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뭐냐, 벌써 끝이냐? 난 이제 열이 올랐거든?”
“그럴 리가.”
여포는 한 발짝 자연스럽게 내디뎠다. 가벼운 듯한 움직임이었으나 그것에 힘을 느꼈다. 기껏해야 팔을 빙글 돌리며 한 발짝.
그런데도 장비는 그것에 경계했다.
자연스럽게 마른침을 삼켰다.
잠시 이어진 침묵. 벌써 몇 번을 맞붙었을까. 장비는 스무 합부터 숫자를 헤아리는 것을 관뒀으니, 아마 그보다 훨씬 많은 교차와 부딪침이 있었을 터.
떨리는 팔을 애써 힘주어 버텨내고는 웃었다.
“역시 천하무쌍.”
“항복이라고는 말하지 마라. 난 이제 준비 끝났다고. 그쪽이 먼저 제의한 건데, 먼저 내리겠다고까지 하지는 않겠지?”
“물론이지.”
장비는 이 전투의 끝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현 천하 최강의 무장과 다투어 그 끝에 있을 결말을 보고 싶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천하무쌍의 위용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장팔사모가 살짝 흔들렸다.
“죽었다고 복창이나 해라.”
여포는 그 모습에 픽 웃으며 다시 한 발짝 내디디고는 살짝 자세를 낮추었다. 그간 보았던 어떤 적수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무장.
흥미가 동했다.
저것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여기까지 버텼으면, 이다음도 막아낼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니 궁금하여 버틸 수 없었고, 하여 그녀는 숙인 자세 그대로 확 튀어 나가려던 때였다.
“그마아아아아아안!!”
후끈한 열기와 흥분이 지배하던 자리를 잠재우는 소리.
여포는 그 소리에 살짝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 모습을 파악함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주인아….”
“무슨 짓이냐!!”
전호는 막 다투는 둘과 그곳을 둘러싼 병사들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서주군과 예주군 할 것 없이 모두가 모여 여포와 장비 주위를 두르고 구경하는 상황.
이제 막 아군이 된 상황이었다.
불필요한 분쟁은 피하고 싶었기에, 접하고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털어내며 여포를 바라봤다.
“그, 그게….”
“여포. 얘기는 잠시 뒤에 하지.”
평소와 다른 그 싸늘한 눈길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반면 유비는 장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익덕?”
“……누이.”
“왜 이렇게 된 거니?”
장비는 살짝 말을 머뭇거렸다. 유비의 분위기가 평소 온화하던 분위기와 영 거리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게 좋지 않은 징조라는 건 그간 오래 함께했기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잘못이야.”
“묻는 말에 답해주지 않겠니?”
유비는 그 초록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쳐져 있었지만 정작 눈이 웃질 않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대련 신청이었지만, 싸우는 동안 열이 뻗쳐 피를 볼 정도로 과격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여 장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여포를 꼬드겼어…, 아니. 꼬드겼습니다.”
장중은 조금 전까지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싸늘해졌다. 전호가 주변에 모인 병사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유비는 장비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자중하렴. 무슨 말인지는… 알지?”
“예.”
평소 존대하지 않던 장비가 고개를 숙였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잼민이들의 파트는 다음 편...!! 장비는 형양 전투에서 여포에게 한 번 패했었죠... 응애 여포는 아가야... 아가는 지켜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