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제 참칭 “흑산적이라니, 재고하셔야 합니다.”
전풍도 고심했지만 진언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기주와 흑산적의 악연은 꽤 길었다. 게다가 공손찬과 협력하여 원소를 공격한 전과도 있는 도적 떼의 무엇을 믿고 손을 내민단 말인가.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기주 출신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힘이 부족하면 보태면 그만. 마침 그들은 의리 같은 숭고한 정신도 모르는 미천한 것들이니 마땅한 지위와 돈을 약속하면 공손찬 따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겠지.”
“원공의 현 기반은 기주입니다. 병주의 흑산적과는 씻을 수 없는 악연으로 이어졌는데,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건 전풍, 그대도 포함한 말이더냐?”
그 말에 전풍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그가 기주 출신들의 수장 역할을 해왔으나, 이 국면에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원소의 의견을 알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전풍이 생각하기에는 당장 시간만 들이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것을 구태여 구멍 난 나룻배에 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원공의 평판은 또 어찌 되겠습니까.”
“평판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건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힘이 있다면 그런 것을 포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
원소는 픽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대는 모르겠지.”
그가 지금까지 평판 관리에 힘을 쓴 이유.
모든 건 얼자라는 신분적인 한계를 뒤집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홀로 설 수조차 없는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힘이라는 걸 얼마나 간절히 바라였던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황금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말을 전부터 내심 비웃고 있었다.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에 어떤 고고함이 있는가. 지금까지 강자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이 원하는 자신을 연기해야만 했던 심정을 그 누가 알아주는가.
“전풍. 그대가 보는 나는 어떤 인간이더냐.”
“……원공.”
“나는 모른다. 예전부터 연기하고 꾸몄다. 고결한 자신을, 고고한 귀족을. 그러지 않으면 누구 하나 얼자인 내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으며, 그러면 나는 결국 가문의 천덕꾸러기로 남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이제는 그것이 자신의 본모습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찌 잊을까.
원소의 본성은 그 갈망에 있었다.
끓어오르듯 불타는 권력욕과 힘에 대한 갈망. 손끝으로 사람을 부리며 누구 하나 자신을 내려다보지 못할 위치라는 것에 얼마나 동경을 품었던가.
완벽한 자신을 연기하며 여기까지 왔다.
주변의 눈을 신경 쓰며 언제나 올곧게 선 원소의 모습을 공고히 굳혀가며 이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지금.
“조조는 무섭게 힘을 키우고 있지. 연주에 예주까지. 이번에 원술의 도전마저 깨면 중원의 그 누가 내 벗에게 대적하겠는가?”
“하여 힘을 빌리겠단 말씀입니까. 도적 떼의 힘을 빌려 공손찬을 물리친다고 하여 원공에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부다.”
전풍의 질문에 원소는 당당하게 답했다.
“이 드넓은 하북의 힘과 굳건한 권력이 내게 남는다. 내부적인 잡음? 청류파? 그런 것이 압도적인 힘 앞에 무슨 소용이 있지?”
거기까지 간다면 더는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조조 또한 예주와 연주를 손에 넣었다고 하더라도 하북이라는 땅 전체를 쥔 원소와 비교하자면 분명 모자람이 있을 세력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내 벗 조조는 더욱 강성해진다. 지지부진하게 공손찬과 놀아주는 것을 끝내고자 하는데, 그대는 그것이 불만인가?”
“……한 번입니다.”
전풍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단 한 번. 흑산적과 손을 잡고 단 한 번이라도 패한다면 그 모든 과가 원공을 덮칠 겁니다. 승리하는 동안에야 반발도 묵살할 수 있겠으나, 정작 원공이 가장 어려울 때 지탱해주던 정치적인 힘을 잃는 것입니다.”
흑산적의 손을 잡아 승리만 한다면 문제는 없다.
내부의 반발도 승리에 가려져 나오지 않을 터.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패배한다면 도적과 손을 잡은 군주라고 하여 내부적인 장악력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전풍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조의 팽창이 두렵다 하여 썩은 고기를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조와 공손찬은 손을 잡을 수 없는 상대고, 저희는 저희대로 총력을 다한다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원소가 박수를 쳤다.
“한 번도 지지 않으면 된다. 쉬운 일이군.”
전풍이 간과하고 원소가 경계하는 것이 있었다.
조조의 능력.
한 번 탄력 받기 시작한 조조의 움직임이 고작 저 정도에서 끝날 리 없다는 걸 원소는 알고 있었다.
당장 지금 추세로는 수년 걸리더라도 공손찬과의 일전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인데, 그에 비해 현 조조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그 누가 중원에서 조조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었다.
경쟁자 없이 풀려난 포식자의 성장세를 어찌 간과할까. 하여 원소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한 번 힘을 주어 공손찬을 잡아내고자 했다.
“내부에 잡음이 있을 건 알고 있다. 썩은 고기? 전풍, 그대는 비유하는 재주도 능하군. 확실히 썩은 고기겠지.”
그러나 그걸 소화하는 능력은 또 별개였다.
“그대가 잊은 것이 하나 있다.”
원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 가슴팍을 두드렸다.
길게 늘어진 뒷머리가 찰랑거리며 흩날렸다. 선명한 금발의 색채가 빛에 비치어 반사되는 풍경은 마치 금가루를 흩뿌린 것만 같았고,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뚜렷하고 선명한 황금과도 같다 느껴졌다.
“나는 원소다.”
그는 저 자신을 가리키며 가슴을 두드렸다.
“패배하면 끝이라고? 그 정도도 감수하지 않고 무어가 영웅이냐. 설사 패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무마할 정도의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득과 실이 공존합니다.”
“조조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더욱 커지겠지. 그걸 손 놓고 바라본다면, 장담컨대 수년 뒤에는 아군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커질 것이다. 이 원 본초가 그걸 장담하지.”
그는 누구보다 조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원소가 생각하는 조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 행동력이었는데, 원소가 공손찬에게 애를 먹는 사이 경쟁자 없는 중원에서 그녀가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감히 예상할 수도 없었다.
오랜 벗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전풍. 긴말은 하지 않겠다.”
원소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을 부라렸다.
“그 눈으로 보는 내가 영웅이라 느끼면 착수하고, 그게 아니면 가만히 있어라. 아군 참모진 중에 그대가 가장 대국을 읽는 눈이 좋다고 여겨 묻는 것이니, 잘 생각하도록.”
명분과 체면은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원소는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질 준비를 마쳤다. 그간 그 고귀함과 체면을 유지하던 것도 전부 이것을 위한 일이라고 느꼈다.
“숙적을 잡기 위해서라면 나 또한 진심이어야겠지.”
과거의 벗.
현재의 숙적.
조조의 성장세는 황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점차 가속할 예정이었다. 이대로 멈춰있을 수는 없었고, 하여 원소는 무언가를 포기하더라도 확실한 힘을 얻고자 했다.
“……후회는 없으십니까.”
“없다. 모든 건 하나의 길로 규결될 따름이지.”
원소는 당당하게 웃었다.
그간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일이었고, 언제나 본인의 체면과 명예에 신경 쓰던 원소였음에도 당당히 웃고 있었다.
전풍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주군은 행동을 정했다. 이게 길로 이어질지, 흉으로 이어질지. 그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이었고, 저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주군의 의사를 꺾는 것이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치적인 힘이 다소 깎여나가겠으나, 그와 별개로 현 흑산적의 병력은 추산되는 것만 하여도 물경 10만을 넘는 대군.
얻을 수 있다면 당장 큰 힘이 되었다.
“알겠습니다. 사람을 추려보지요.”
“좋다.”
원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조가 앞서나간다면 자신도 뒤처지지 않겠노라고. 본래라면 천천히 힘을 길러 흑산적과 공손찬, 그 둘 모두를 잡아내는 게 최상이라는 건 원소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이걸로 끝을 내겠다.
공손찬과의 악연도, 그리고 뒤이어 있을 조조와의 결전을 통해 미련도 끊어내겠다. 마지막 남은 가면도 벗어던졌으니, 이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원소는 본인답지 않게 한동안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걸로 공손찬을 예정보다 빨리 잡아낸다면 자신을 추월한 조조를 재차 뛰어넘어 그 위를 점할 수 있는 일.
거기까지 생각한 원소는 문득 옛날 일을 떠올렸다.
너는 항상 내가 저보다 크다며 불평했던가. 자신을 내려다보지 말라고 투덜거리던 소녀 시절의 그녀를 떠올렸다.
“크흐, 이걸 어쩌나 아만.”
내가 다시 위에 서야겠다.
부디 불평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먼저 배신한 것은 너니까. 이 원소를 발아래에 깔고자 했던 것은 너이니, 내가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하여 불평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 * *
서주의 군은 생각보다 잘 조련된 느낌이 들었다.
“어떤가요?”
“나쁘지 않습니다.”
자랑스럽게 뽐내듯 말하는 유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척 보아도 아군에 밀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딱히 입에 발린 말도 아니었다.
“에이, 이제 말씀 좀 편히 하시어요. 세상에 황제 폐하의 대리 장군께서 서주목에게 말을 높인다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잖아요?”
“……거, 왜 그런 거에 고집하고 그러시나.”
확실히 장차 군을 이끌다 보면 명령할 일도 생길 텐데, 그때도 계속 존대로 말하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유비를 편히 대하기 껄끄러운데.
“부디 편하게 대해주시어요.”
그 웃는 얼굴에 긴장이 풀릴 것만 같았다. 하여 일부러 거리를 두려 했는데, 또 이렇게 말하니까 대꾸할 말도 없네.
“아무튼, 일단 내 지휘하에서 군을 움직이는 것에는 동의하나? 고유 통솔권에 간섭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큰 틀에서는 지휘에 따라줘야겠는데.”
“물론이죠. 관구사령관의 말은 황제 폐하의 말과도 마찬가지. 그것에 따르지 않을 불손한 사람처럼 보였나요?”
그럼 좀 슬플 것 같다며 유비가 헤프게 웃었다.
하여간 마음에 드는 건지, 안 드는 건지. 그 속내가 표정에서 드러나질 않으니 당최 모르겠단 말이지. 그나마 겉으로는 수긍하는 게 다행일까.
사실 이 조건도 아군으로서는 상당히 양보한 것이었다. 사마의는 아예 대놓고 조홍 누님을 서주군의 사령관으로 하여 그 명령에 따르게 해도 관례에 따라 문제없을 거라고 강조했었으니까.
“만약 이의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받겠는데.”
“아뇨? 무슨 이의가 있겠어요.”
그럼 됐고.
어쨌건 한동안은 서주에 머무르며 군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직 허도에 있을 조조도 출발하지 않았으니, 아군에게 출병을 명할 때까지는 서주가 곧 아군의 거점인 셈.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우.”
손을 내미니 유비가 냉큼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앞으로 얼마나 오래 계실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서주에 계시는 동안 저희가 편의를 봐 드릴게요.”
“기대해도 되나?”
“진심이라니까요? 굉장할 걸요?”
유비가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이는데 순간 출렁거리는 가슴에 시선이 쏠렸다. 위가 살짝 파인 옷을 입어서 그런지 유독 뽀얗게 부푼 젖가슴에 눈이…….
아니, 이건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중랑장님?”
“아, 아니. 뭐, 그냥.”
뻘쭘해서 맞잡았던 손을 놓았다.
귀가 조금 독특하기는 하나 확실히 미인이기는 했다. 문제는 저 생글거리면서 웃는 얼굴이 마치 가면과 같아, 그것이 벗겨진 모습을 내가 모른다는 것인데.
아, 모르겠다.
깊게 생각하는 건 그만하자.
어차피 당분간은 같이 일할 동료였는데, 여기서부터 껄끄럽게 여기고 경계해서는 끝이 없었다.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속 편하고 좀 좋아?
“대장! 대자아아아앙!!”
순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방삼이의 목소리.
고개를 돌렸더니 놈이 땀까지 뻘뻘 흘리며 연신 팔을 휘젓는 게 보였다. 급해 보인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대체 무슨 일이기에.
“뭔데, 뭐 있어?”
“그, 허우, 어으, 시벌.”
“야, 서주목 앞이다.”
유비는 살짝 볼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시벌, 그게 중한 게 아니고. 지금 그, 장비라는 양반? 아무튼, 그 양반이랑 여포 그 양반이랑 한바탕 붙게 생겼수!!”
누가? 누구랑?
“염병.”
“……예?”
이 순간에는 유비도 당황.
나는? 더 크게 당황.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이번 편은 원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였네요.
내일은 아마 제갈량과 사마의가 만난 이야기도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대 로리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