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52화 (252/343)

25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제 참칭 상서령의 집무실은 꽤 복잡했다.

사방에 정리된 죽간. 그리고 벽면에는 잔뜩 종잇장이 붙어있었는데, 아무래도 소연 아씨 나름대로 중요 정보를 정리하여 언제든 확인하고자 붙여둔 것이 아닐까.

“왔니?”

아씨는 가장 상석에 앉아 이쪽을 바라봤다.

“뭐 이렇게 잔뜩 붙여뒀대? 이건 뭐야. ……염병, 하나도 모르겠네. 하여간 문관 나리들은 이런 게 피곤하겠어.”

“사마의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텐데?”

그녀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내가 그 꼬맹이를 못 놓지.”

녀석에게는 언제나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가끔, 아니 종종 내 머리 위에서 노는 느낌도 들기야 하는데, 그건 그 꼬맹이가 하는 일에 비한다면 웃어넘길 수 있는 재롱이었다.

“일단 앉아.”

“안 바쁘신감?”

“바쁘기는 한데, 적어도 이런 시간을 못 낼 정도로 바쁘지는 않아. 안 그랬으면 너를 이 시간에 불렀을 리가 없잖니?”

그도 그런가.

그렇지만 상서령이 지금 현 상황에서 누구보다 바쁠 사람 중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마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요즘도 무리하는 거 아니지?”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잠은 잘 자고 있어. 조운 그 애도 잘 도와주고 있으니까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말이지.

저번에 보았던 죽기 직전인 사람의 안색을 생각하면 안 할 수가 없었다. 조금 기대라고 하고도 싶었지만 내 코도 석 자니까. 당장 관구사령관에 부임하면서 생긴 일정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생각하면…….

시발이지.

“내가 차라리 문관이었으면 아씨 곁에서 일을 도왔을 건데 말이요. 이참에 나도 그런 거나 좀 배워볼까?”

“아서. 사람에게는 적성이란 게 있으니까.”

이걸 진실로 후려치네.

하지만 소연 아씨의 말이 맞기도 한 것이, 난 아직도 저런 글 잔뜩 적힌 죽간을 보면 머리부터 아파 왔다.

어떻게든 이해하는 것까지야 가능하겠으나,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사고가 불가능한 성격일까. 만일 적성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게 적성이겠지.

하여 그녀의 말에 따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에 준비하는 군의 상태는 어떻니?”

“뭘, 평소대로지. 우선 내가 지휘했던 군 위주로 편성하기는 했는데, 전부 다 합쳐도 2만 언저리나 될까 몰라.”

거기에 여남에 상주하던 군이 2만. 따로 각지에서 긁어모으는 군은 따로 조조가 이끌고 여남으로 가 조인 장군과 합류한다고 하는데, 그 전부를 합쳐도 원술의 군보다 수적으로 부족함이 있다 들었다.

“이쪽에서도 계속 재정을 조율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사정이 영 별로야. 당장 조공은 집안 재화까지 팔아치우면서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하여간 이게 무슨 날벼락이요.”

“원술의 참칭이 너무 빨랐어. 대응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갑작스럽지만 않았어도 적보다 대등, 그 이상을 목표로 군을 모았을 텐데.”

아씨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병력으로는 아마 서주의 군을 합해야 겨우 대등, 어쩌면 열세일 수도 있어. 게다가 그들의 진영으로 직접 공격해 들어가는 거니까….”

“뭐요, 걱정하는 거요?”

하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 날 바라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또 상황이 이렇게 되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거, 너무 걱정하지는 마쇼.”

겨우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는 어휘력이 밉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전쟁에 나서는 사람을 걱정하는 건 남겨진 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야. 그러니 너도 네 몸부터 생각하고 움직여.”

“나만큼 몸 신경 쓰는 사람이 어딨다고?”

“많아.”

아니, 그렇게 단칼에 끊어버리면 내가 무안하잖아. 정말 대쪽같은 표정으로 이쪽을 쏘아보는데, 차마 그 기세가 무서워서라도 반박을 못 하겠다.

사실 전쟁하면서 언제나 안전지역을 찾는 습관을 들인 만큼, 사실 난 제법 내 보신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또 정작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경우도 상당히 있어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넌 언제나 그랬지. 매번 괜찮다고 하면서 매번 들것에 실려 오는데, 정작 입으로는 허세. 그런 말에 속을 것 같니?”

“아니, 아씨요. 내가 매번 까진 아냐.”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약해 보이잖아.

누가 들으면 진짜 맨날 줘 털리고 돌아오는 줄 알겠네. 응? 기껏해야 여포랑 손견 정도인데, 그게 어딜 봐서 매번이야?

“상대가 상대잖어. 그건 좀 고려해줘야지.”

“사람 목숨이 얼마나 쉬운지 아니? 길 가다가 잘못 넘어진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어. 날아드는 화살 하나 잘못 맞아도 죽는 세상이잖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러니 걱정하게 해줘. 너의 안전을 걱정하게 해주고, 신께 빌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빌 수 있으니까 무사히 돌아와.”

“…아니, 오늘따라 왜 이래. 미안, 내가 미안했수다! 거참, 뭔 말을 못하겠네. 그거 말하려고 불렀수?”

“……그건 아닌데.”

그러면 다른 얘기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이런 주제는 거북스러웠다. 누군가가 날 걱정해준다면 감사하고, 그게 진심이면 기쁘기야 하지. 그런 걸 받아본 적이 드물어 살짝 불퉁스럽기야 하겠지만 내심 기뻐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소연 아씨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두워진 표정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게 나로 말미암아 생긴 그늘이라면 참을 수 없었다.

싫었다.

소연 아씨가 날 걱정하는 이유는 내가 약해서니까. 그런 걸 생각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되묻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포함하여 전부 껄끄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이번 전쟁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군량도 제대로 안 모였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단기적으로 휘몰아쳐야 한다던가. 미리 알아야 거기에 맞춰 병사들을 조련할 수 있으니까.”

“……말 돌리기는.”

아, 제발. 그냥 넘어가 줘.

소연 아씨는 잠시 날 쏘아보다가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살짝 자리를 옮겨 본인 책상에 놓인 죽간 몇 개를 들고 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달콤한 냄새가 순간 코에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네. 말 그대로 우선 군량이 충분히 모이지 않았어. 황제의 깃발을 내건 이상 현지조달도 힘들 거고.”

“요컨대 속전속결?”

“아무래도. 거기에 여전히 손가의 무장들과 손책이 원술을 따르고 있으니까, 그것도 주의해야 할 사안이겠고. 원래라면 손책도 아군에 가담했어야 했는데.”

응? 손책이?

순간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견이 아군과 싸우다 전사했는데 손책이 어떻게 원래는 우리 편에 들어?

“원래? 손책이 우리랑 무슨 관계가 있던가?”

“…아, 아니야. 이건 말을 실수했네.”

아씨답지 않게 말을 더듬는다. 무슨 말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말실수에 연연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니까 잠자코 있었다.

“아무튼. 지금 상황으로 보아 원술은 구강 북부 회수 이남에 진을 칠 거야. 아군은 그걸 뚫어야 하니 군을 양분한 건데, 여기서부터는 알겠지?”

“그야 뭐.”

도하 작전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하니까.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반대편에 상대가 진을 치고 있다면 건너는 것도 일이었고, 건넌 뒤에도 미리 준비하고 있을 적과 바로 전투에 임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어쩌면 강이야말로 그 어떤 요새보다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부분이었는데,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나와 서주군이 연합하여 우회해 구강군을 밟을 필요가 있었다.

“전장은 원술군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회수 이남일 건데, 그러면 보급하기에도 시간이 걸려.”

“일단 속전속결을 염두에 둬야겠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그야 당연하지.

상대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6만에 육박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들의 안마당에서 싸우는데 그걸 경시할 정도로 멍청했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그 문제로 내내 고민하고 있었다.

유비를 만나 얘기하지 않으면 정리되지도 않을 일이지만, 우선 그녀와 군을 함께 이끌어야 한다는 것부터가 부담이었다. 거기에 군을 운용하여 회수를 우회하여 본대가 움직일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나는 머리 쓰는 재능은 부족했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것을 반복한다. 사마의와 진궁 선생에게도 지혜를 빌리지만, 결국에 선택은 내 몫이었으니까.

“우선 정리한 것들은 전부 사람을 통해 중랑장의 관사로 옮기게 할게. 나머지 우려할 부분이라던가,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전부 거기 기재해놓을 거야.”

“그러면 뭐.”

물론 내가 전부 읽을 수는 없으니 사마의와 함께 보겠지만, 그 정도만 하여도 고맙지. 안 그래도 바쁠 상서령을 너무 부려먹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한데.

“그러니까 다치지 마.”

“아씨.”

“죽지 마.”

안 죽을 거라니까는.

어차피 원술과의 전투도 우리가 목표했던 통일제국의 일환 아닌가. 그 과정에서 벌써 뻗어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할 일이 아직 많다.

장차 조정. 그리고 군 내에서도 세력을 키워 조조, 만약 아씨가 그것에 동조한다면 그녀조차 견제할 세력을 구축하고자 했으니까.

그것도 전부 크게 보아서는 내부적인 순환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들의 제동장치가 망가졌다면 내가 그 역할을 맡기 위해 움직이는 것인데, 그걸 위해서라도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씨가 인간으로 남길 바랐다.

그러니까 안 죽는다.

“난 너 없으면 죽어.”

“아니, 농담이라도 너무 흉흉하… 게?”

문득 말하며 시선을 돌렸는데, 아가씨의 얼굴이 바로 내 머리 지척까지 다가왔다는 걸 거기서 깨달았다.

숨결마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감.

“네가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어. 그것만 알아둬. 이 세계에서 가족 없는 내게 너는 어쩌면 처음으로 생긴 가족일 테니까.”

“…그, 그건 좀 너무 나간…….”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아씨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가느다란 손이 천천히 볼을 훑고 지나가, 이윽고 턱을 붙잡는다. 그 오싹한 감각에 살짝 몸을 떨었을까.

“난 조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정을 구축해야 하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는 거야. 그게 아니었더라면 너와 함께 전장에 나섰을 거고.”

“아 거, 괜히 그러지 마쇼.”

옛날부터 그녀가 전장에 나서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을 죽이게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의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문관으로 자리 잡는가 싶어 안심했는데, 왜 구태여 전장에 나서려고 하나. 여기 좋을 거 하나 없는 곳이거든? 솔직히 인세에 있을 유일한 지옥을 꼽으라면 난 전쟁터를 꼽을 자신도 있었다.

“널 걱정하는 내가 있다는 것만 기억해.”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리 말했다.

다치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사실 전쟁에 나서면서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병사는 없었다. 그런 낙관적인 놈이 있다면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혹은 멍청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올 때까지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없으면 자신은 죽을 거라던 그녀의 말은 잊을 수가 없었다.

터덜거리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움직였다.

주변에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관료들이 많았고, 그중 날 알아보고 인사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어떻게 대꾸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어머? 오빠야 아닌가?”

슬쩍 고개를 드니 곽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상서령 보려고 왔었나 봐?”

“그러는 너는 또 술이나 퍼마시고 있냐.”

하여간 보자마자 술 냄새가 확 났다. 그녀는 내 말에도 낄낄 웃으며 손에 들린 호리병을 살살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난 어지간히 마셔도 안 취하고, 오히려 이러는 게 능률도 더 올라가니까. 상서령이 말한 건데 군부 사람이 딴죽을 걸어?”

“하여간 아씨도 너무 풀어주네.”

“키히, 뭐든 능력만 있으면 장땡이지.”

어이가 없지.

근무 중에 술을 마시면 벌하는 제도가 분명 있었을 것인데도 예외로 둔다는 건 그만큼 곽가의 업무 실력이 출중하다는 건가. 물론 복양성에서 도움받은 기억이 있어 막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좀 마셔라. 젊은 나이에 그리 퍼마시면 훅 간다. 아냐? 술 잘 못 마시다가 병으로 죽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알겠고! 오빠야도 늙었나? 벌써 잔소리네.”

그녀는 픽 웃으면서도 다시 호리병의 마개를 열고 몇 모금인가 술을 들이켰다. 말하자마자 저러는 싸가지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꿀밤 마렵네.

“파하!! …맞다 오빠야. 이번에 원정 얘기로 상서령을 만난 거 맞지? 그러면 아마 상서령도 말했겠지만, 손책이라는 여자는 특히 주의하라고.”

“손책?”

손견의 딸이라고는 들었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그 남자의 위용을 생각하면 결코 얕볼만한 사람은 아니겠지. 나이가 아직 어디다고는 들었지만, 아씨도 말했으니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기억은 해두었다.

“1년도 안 되어 양주 전역을 휩쓸었어. 손견 휘하 무장들도 여전히 건재하니까, 잘못하면 그 여자 손에 목 달아날 수도 있다?”

곽가는 거기까지 말하고 낄낄 웃으며 호리병을 휘두르고는 등을 돌렸다.

“살아 돌아오거든 그쪽 술도 좀 챙겨오고!”

마지막까지 얄미운 소리만 하네.

그래도 덕분에 아가씨의 말에 살짝 복잡했던 심정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저런 얄미운 인간도 주변에 하나 정도 있어 나쁠 건 없다 싶어 픽 웃었다.

“넌 싸구려 곡주가 어울려.”

“뭐!? 오빠야, 못하는 말이 없네?”

발끈하는 곽가를 뒤로하고 상서성을 떠났다.

군이 준비되기까지는 약 보름. 그 뒤는 바로 서주로 떠나 유비와 합류하고, 이후 예주에서 여남으로 출발할 본대의 움직임에 맞춰 전쟁을 개시한다.

복잡하게 됐으나 이것도 난세의 수순.

알고는 있지만, 그런데도 입맛이 다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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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에 나무위키 제작 중이라고 말씀해주신 독자분도... 정말 놀랍고 감읍하며, 대단히 기쁠 따름입니다...!!!!!!!!

이런 기쁨들은 연참으로.

유비 일러스트는 현제 제작 단계이고, 조만간 유협도 같이 부탁드릴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쿠폰,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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