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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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소란.
모든 건 원술의 황제 참칭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도 당황하여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조조를 선택한 것 같음.”
소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원술 이 미친놈이.”
한편 소녀와 거리가 떨어진 회의장 중앙에서 장비는 욕을 내뱉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의 욕설을 말렸을 관우도, 심지어 유비조차 살짝 낯빛을 굳히고 있는 상황. 제갈근은 한숨을 내쉬며 유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요.”
유비는 말문이 막힌다는 감각을 느꼈다.
방법이 없었다. 원술은 중이라는 새 제국을 선포했고, 이에 허도에서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어 원술 토벌에 협력하라는 공고문을 보내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기존 유비군의 기조는 원술과 조조, 그 사이에서 조율하며 조조의 틈을 지켜본다는 것이었는데 이래서는 기존 방침 자체를 전부 재고해야만 했다. 그뿐이면 모를까, 여기서 잠재적 적인 조조를 도와야 하는 상황.
“거절할… 수는 없겠네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순간만큼은 유비도 웃을 수 없었다.
억지로 웃었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그런 걸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현 상황은 그녀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현 중원의 패자는 조조.
그런 조조를 견제하려면 원술은 물론이요, 유표나 유비 등이 나서야 겨우 그 틈을 비집을 수 있었다.
아직 조조는 완전하지 않은 상황.
차라리 원술이 대대적으로 조조를 공격하려 했다면 상황을 보아 조조를 황실을 기만하는 역적으로 규정하여 참전할 수 있었다. 그러면 때를 기다리는 유표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일어설 터.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고, 그녀 주변의 인사들은 전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가장 경쟁력 있는 군벌은 원술이었으니까.
하여 원술의 반응을 기다렸는데.
관우는 그런 좌중을 지켜보며 이를 갈았다.
“원술 이 미친놈. 언니가 한의 황족이라는 걸 알면서도 동맹에 관한 얘기를 읊더니, 갑자기 나라를 선포한다고요? 이건 반역이잖아요.”
“반역이지.”
원술을 버릴 수 없다는 기존 전제가 무너진다.
그러나 여기서 조조를 도와 원술을 친다면 그 뒤에는? 대체 누가 이 서주의 편을 들어줄까. 결국은 중원에서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할 강자가 사라지게 되는 것인데,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렇지만 조조를 견제하기도 해야 하니까. 아니면 서주의 사정을 말하며 공고를 거절하는 건 어떨까요.”
“아뇨, 그건 안 됩니다.”
관우의 말에 제갈근은 단호하게 답했다.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현 황제에게 황족이라고 공인을 받아 이제야 황족이었노라고 인정받은 유비의 정치적인 생명이 끝나버린다.
설령 조조가 토벌에 실패하더라도 마찬가지.
비난을 피할 방법이 없었고, 그 실패의 책임을 물릴 가능성이 컸다. 조조라면 만약 원정에 실패할 경우 반드시 유비를 악으로 지목할 터.
“조조가 성공하건 실패하건 아예 불참하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만약 실패한다면 그녀는 정치적으로 흔들릴 것이고, 그럼 원인을 돌려야만 하는데….”
“아.”
관우도 거기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의 책임을 바깥으로 돌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형주야 조조와 같은 선상에서 움직일 수 없다지만, 서주는 바로 연주, 예주와 밀집한 지역.
“모든 건 원술이 참칭하면서 끝났어요.”
제갈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답이 안 보였다.
평소 저 자신을 명석하다고 생각했던 제갈근이었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기존의 전제는 고사하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조조의 휘하 아무개로 남을 수밖에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
한편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녀.
제갈량은 무심하게 그것을 지켜봤다. 원술을 쳐낼 수밖에 없다면 장차 중원의 패권은 공고해진다. 남은 것이라고는 유표, 그리고 북쪽에서 공손찬과 다투는 원소뿐인데, 그중 누구와도 유비는 연이 없었다.
여기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원소일까.
소녀는 제 손에 쥔 조약돌을 쥐락펴락, 그저 골똘히 생각했다. 이번 황실의 요청은 당연히 참가하는 것이고, 그 뒤에 어떻게 하면 이 전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제갈량은 경험이 적었다.
하여 단면적인 구성으로 그림을 그려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소녀가 생각하기에는 원소와 손을 잡는 게 나아 보였다.
잡아먹힐 바에는 활로를 연다.
“일단 조조에게는 알겠노라고 전하겠어요.”
반면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주 토호들은 반발할 거예요.”
“알고 있어요.”
제갈근의 말에도 유비는 요지부동. 겨우 웃는다는 느낌으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유비가 천천히 자리를 옮겨 벽면에 걸린 지도로 향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독박을 써야 해요. 원술 그 역적이 국가를 모욕한 순간부터 이미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데, 그러면 그를 제거하고 생각해야겠죠?”
고민될 때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유비는 지도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그간 이 지도를 보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곳곳에는 손때도 묻은 지도. 원래 예주 땅이었으나 도겸 시절부터 암암리에 서주가 관리했던 소패 땅으로 그 남자가 온다.
“조조는 소패로 관구사령관을 보낸다고 해요.”
“이번엔 진짜 대리 장군이겠네요.”
제갈근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진소연이 한 번 황제의 깃발을 걸고 왔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랑장이 직접 관구사령관이 되어 황제를 대리하는 사령관으로 이 땅에 찾아온다.
그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직까지는 명확해지지 않았다.
“우선 저희도 군을 차출하죠. 기왕 참전하는 거, 화끈하게 이겨야 하잖아요? 어차피 원술이 반역한 이상 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유비는 애써 해맑게 웃었다.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며 때를 기다린다.
“중랑장이라면 전호라는 인물이었던가요.”
제갈근도 그 이름을 자주 접했다.
청주에서 연주를 습격한 황건적을 복양성에서 압도적으로 박살 내었다던가. 비교적 연주 북부와 밀접한 낭야군에서 살고 있었기에 그 소문을 모를 리 없었다.
“유능하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는 어떤가요? 관구 사령관을 이쪽으로 움직인다는 건 저희를 그 휘하에 놓겠다는 소리 아닐까 하는데.”
“나한테 걸리면 순식간이지.”
제갈근의 말에 가장 먼저 장비가 답했다.
물론 그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닌 제갈근은 유비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그녀는 살짝 볼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쁜 사람은 아닐 거예요. 장비는 이렇게 말했지만, 무예에도 일가견이 있고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니까.”
단지 그녀가 묘하게 꺼려질 뿐이었다.
이런 느낌은 유비 자신도 난생처음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본인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묘한 거리낌.
비슷한 듯 다른 그 감각이 껄끄러웠다.
생리적으로 혐오하던 사람도 있었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도 있었다. 여러 군상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도 했지만, 그런데도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불합리하게 아군을 압박할 일은요?”
“우선 없을 것 같아요. 그 남자의 성격도 성격이거니와 기본적으로 조조군은 이번 원정에 사활을 걸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아마 괜찮으리라.
유비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지도의 한 점을 짚었다. 조조군은 아마 중랑장 전호를 필두로 하여 서주에 입국할 것이고, 하면 거기서부터 합을 맞춰 남하. 아마 회수를 건너 구강으로 향할 터였다.
하면 하비국 일대에서도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 나루터를 확보하죠. 우선 하비까지는 아군의 영지이니 저희가 미리 준비하는 게 옳지 않겠어요?”
“진군 경로는 미리 알아보겠지만, 관구사령관의 지휘 여하로는 어떻게 사정이 변할지 모르니 몇 곳으로 이동할 길을 알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제갈근에게 말을 마친 유비는 고개를 돌렸다.
“운장이랑 익덕도. 병사 모병을 준비하고 조련해두렴. 아직 청주 방면으로는 불안정하니까 그쪽은 건드리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언니.”
“……예입.”
관우와 달리 살짝 불퉁스럽게 답하는 장비. 그렇지만 그런 그여도 맡은 임무만큼은 성실하게 수행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슬쩍 웃어주며 시선을 돌렸다.
아직 조금의 시간은 있었다.
조조군도 전쟁 채비를 갖추어야만 했고, 거기에 서주로 이동하는 기간까지 생각하면 서주도 준비할 기간은 넉넉히 남아있었다.
갑작스러운 원술의 돌발행동.
이것은 그녀의 목을 턱 조이고 있었지만, 고작 그런 것에 죽을 정도로 연약한 소녀였던 기억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쉬운 전쟁을 치렀던 적이 없었고, 이것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오히려 명확히 해야 할 목표가 있는 지금이 황건적을 잡던 때보다는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뒤로는 어둠뿐이겠으나.
“서주 명사들은 제가 설득할게요. 간옹에게도 따로 호족들을 돌보라고 말할 것이니, 여러분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서주는 현재 친 유비파와 반 유비파로 나뉘었다.
그 과정에서의 조율은 현재 이 지역 최고 부호였던 미축이 담당해주고 있었지만, 조조에게 협력하여 원술을 공격한다는 건 외정이니만큼 그간 있었던 반발이 우스울 정도로 각지에서 구설에 오를 터.
유비는 웃고 있었다.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한편 제갈량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술의 움직임과 조조의 대응, 그리고 북부에 도사리는 원소와 그나마 아군에게 협력적인 공손찬까지.
원래 근본 자체가 공손찬의 무리였던 유비가 조조에게 협력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음에도 유비는 단호하게 조조와 현 황실의 손을 들었다.
이럴 것이라면 차라리 조조에게 귀순하는 것이 낫겠으나, 유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뭘까.
“원소에게 가담? 나쁘지는 않음.”
소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현 북방의 균형추는 원소에게 점점 기울고 있었다. 하여 조조가 중원에서 패권을 잡더라도 하북 전체의 패권을 잡은 원소라면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만큼 북부의 힘은 강대했다.
“공손찬 패배, 이후 전장 움직임. 혼란.”
혼란은 약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큰 기회. 앞도 뒤도 없이 펼쳐지는 전장은 분명 잔혹하겠으나, 그 난세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위로 올라갈 길도 열릴 터.
하여 소녀는 생각했다.
천하는 지금도 여전히 난세였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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