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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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말단 관직이라는 게 다 그런 법이지. 물론 중랑장을 말단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당장에 할 일이 없으니 말단 아닌가?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고.
그냥 장군이었던 때가 조금은 편했다.
“대장, 또 왜 죽상을 쑤고 그러슈?”
“짜증 나서 그러지.”
염병할 놈들, 사람 좀 적당히 갈구면 안 되나? 특히 근래 들어서 자꾸 찾아오는데, 그게 얼마나 사람 미치게 하는지를 알아줬으면 싶었다.
“고생이 많구만.”
“웃어? 이 새끼가 대장이 존나 진 빠져서 헐떡이면 괜찮으시냐고 위로라도 건네야지. 이게 빠져서는 말이야.”
“원래 그랬지 않았남? 뭘 새삼스레.”
하여간 꼬박꼬박 말대꾸야.
그와 별개로 지금 상황이 참 개떡같이 돌아가는 건 사실이었다. 당장 조조의 명이 떨어졌으니 기존 중랑장 휘하 군부도 재편해야 하는 와중에 황실 친위대도 신경 써야만 하는 상황.
그런데 자꾸 황실에 줄을 대려는 놈들을 시작으로 하여 괜히 압박하여 기존 조조 휘하와 거리 둘 것을 촉구하는 작당 모의까지.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 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놈들 죄다 일렬로 나란히 세워놓고 매질이라도 실컷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보통 그렇게 나서는 인간들은 죄다 기존 고위직이었거나 지방 호족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진짜 염병할.
“다 아저씨가 고위직에 올랐으니 그러죠.”
사마의는 거기까지 말하고 또 다과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고는 싶은데, 사실 중랑장의 업무 중 서류를 포함하여 일정 이상을 사마의에게 의존하고 있어 그러지도 못하겠고.
솔직히 이 꼬맹이 없었으면 진즉에 던졌다.
“하여간 높으신 분들이 더해. 응? 뭘 자기도 관직 누렸으면 좀 만족할 줄을 알아야지. 제 자식들까지 어떻게든 높여보려는 거 좀 역하거든.”
“원래 그들은 가진 자니까요. 그 명망을 유지하려면 자식을 포함하여 가문 전체가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도 그렇지, 무슨 황실 친위대에 나이 열 살 좀 넘은 꼬맹이를 밀어 넣으려고 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그래도 황실 친위대다.
여차하면 황실을 수호할 최후의 보루. 당연히 최정예여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원래 관례가 어쨌고 하면서 자꾸 청탁을 해대는데, 조금만 더 지랄하면 화병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뭐, 전쟁이랄 전쟁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황제와 가까워지면 눈에 띌 확률도 있고, 진급하기도 편한 친위대에 청탁이 많을 수밖에 없죠.”
“난 잘 모르겠수다.”
사마의의 말을 듣던 방삼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보면 놈도 내 부관인지라 나름 내 휘하에서는 꽤 높은 지위였음에도 이 멍청함 때문에 이런 일을 맡길 수가 없었다.
“너도 좀 뭐라도 배워라.”
최근에 연애한다는데, 복순이 걔는 적어도 글은 읽을 줄 알잖아. 적어도 이놈이 글을 읽을 줄 알면 나 대신 보내기라도 하겠는데.
“난 그럴 깜냥이 아니요. 대장도 알면서.”
“나라고 이럴 깜냥이냐?”
“그럼. 우리 대장인데.”
이 빌어먹을 놈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저 좋을 때만 대장 취급한다는 것일까. 그런 놈이라는 건 알지만, 알아도 가끔 열 받을 때라는 것이 있었다.
“조조를 필두로 하여 아가씨까지 현재 바쁠 테니까요. 가장 만만한 중랑장에게 찾아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아움.”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과를 집어 먹는다.
그러고 보니 최근 궁정에서는 한창 부채를 지고 있다던가. 아직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력가들이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쓸데없이 높은 이율을 불러 골머리를 앓고 있다 들었다.
그런 것보다는 나을까.
솔직히 돈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사람 상대하는 게 낫지. 아니면 둘 다 싫을까. 어떤 의미로건 이런 일은 나와 썩 맞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렇잖아.
배운 거라고는 칼 잡고 인육 써는 것밖에 모르던 살인마를 데려다 놓고 높으신 분들 상대하게 하는 게 정상이냐고.
물론 이렇게 한탄해도 선택한 건 나였다.
알고 있었다.
“아무튼, 일단 당분간 사람은 안 받는다. 우리도 군을 편성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촉박하기는 해.”
둘에게는 원술의 일에 대해 터놓았다.
하여 조만간 원정이 있으리란 것도, 그 과정에서 내가 이끄는 군단이 서주로 가 유비와 합류하여 여남의 군과 연계할 계획이라는 것도 전부 설명했다.
“우선은 기존 아저씨가 편장군으로서 이끌었던 군을 중심으로 해야죠. 그 병력 숫자도 제대로 기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없다고 하니 뭐라 말도 못 하겠네.”
보상이 없으면 병사는 모이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모았다 하더라도 군량이 없으면 병사들을 싸울 수 없다. 모든 게 돈으로 이뤄진 것인데, 그걸 소홀히 한다면 장차 누가 조조군의 깃발 밑에 모일까.
“일단 대장이 말한 대로 장료한테 말은 꺼냈소. 아마 그도 기존 여포군이었던 사람들을 모아본다고는 하는데…….”
“얼마 안 모여도 괜찮다고 전해.”
많은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마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조조도 사람을 모아주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현 추정되는 원술의 병력 숫자는 6만을 웃돈다던가.
저래서 사람은 돈이 많아야 한다는 거지.
“진궁 아줌마도 당장 전쟁 준비는 힘들다고 하던데요. 지금까지 진 부채만 하여도 주에서 수년에 걸쳐 갚아나가야 할 정도인데, 거기에 전쟁까지.”
“쯧,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정말 1년 중 절반 가까이 전쟁으로 보낸 기분이었다. 아군이 먼저 벌인 전쟁은 서주 전쟁이 있겠으나, 그걸 제외하고는 전부 외부에서의 군사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번 원술의 건도 그랬다.
“의아야. 너는 원술이 어떻게 될 거 같냐?”
“움음, …네? 별거 있나요. 저희가 만약 패한다면 그는 양주 중심으로 더욱 굳세게 뭉칠 것이고, 저희가 이긴다면 아마 풍비박산이 나겠죠.”
사마의는 정말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우리가 패한다면 일이 커졌다. 안 그래도 정통성 부족에 시달리는 어린 황제와 그런 황제를 모신 제후.
아직 황실의 기반은 물렀고, 황제를 참칭하는 자에게 패한다면 그 뒤가 얼마나 험준할지는 꼭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드시 이겨야 해요. 시기가 너무 빨라 대응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그 근방으로 하여 군을 움직인다면 어떻게든? 그 전에 미리 그 주변 세력을 포섭할 수 있다면 최고겠죠.”
“대장은 뭘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쇼?”
방삼이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전쟁에서 지면 죽는 것을. 원술이 어떻고를 신경 쓰기 전에 일단 이긴다는 마음가짐으로 팍 후려쳐야지. 답지 않게 재니까 좀 안 어울리네.”
이게 관직에 올라서 그런 거냐며 놈이 비웃는다.
물론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조조는 당연히 유비가 협력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를 직접 보았던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소 의문도 들었다.
그녀 입장에서 조조는 타도해야만 할 적.
그런데도 쉬이 도울까?
“유비는 아군에 협력할까?”
그 질문에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그 여자가 평소 황족을 칭하며 그것을 통솔의 근간으로 삼았잖아요? 인물 자체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서주도 내분을 감당해야만 할걸요.”
“쯧, 머리 아프네.”
쉽게 생각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진궁 선생은 내부에서 차근차근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수집해주고 있었다. 소연 아씨는 당장 주변 호족을 중심으로 하여 교섭과 조율. 대장군인 조조 또한 조정 문무백관을 통솔하며 내실을 굳히고 있는 상황.
많은 걸 바랄 수가 없었다.
“아마 총사령관은 조조 본인이 나설 거예요. 그러니 아저씨는 관구사령관으로서의 굳건함만 보이면 되잖아요?”
“아니, 걱정되잖아.”
내가 바라는 것은 천하의 빠른 평화.
난세의 종결.
이렇게 전쟁이 잦은 이유도 오롯이 난세이기 때문이었다. 사방으로 강자가 너무 많았고, 천하가 하나로 뭉칠 구심점을 잃었기에 혼란이 찾아온 것.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하여 줄곧 그랬다.
전쟁이 길어지면 당연히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민간인. 전쟁을 위한 과세에 덧붙여 군역과 징발, 거기에 따른 식량난과 기아에 전략에 따른 학살과 이주까지.
염병할 일이었다.
“뭐, 사실 원술 자체는 큰 군재가 있다고 들은 적이 없네요. 주의해야 한다면 손책이라는 무장일까요.”
“손책?”
내 말에 사마의가 픽 웃었다.
“듣자 하니 아직 약관도 지나지 않은 젊은 무장이라던데요. 그래도 손견의 딸이라고, 원술의 휘하에서 양주를 들쑤시고 있다니 그 여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일까요.”
손견이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과거 내 목을 베어낼 뻔했던 남자. 아마 여포의 난입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이 손견 아닌 나였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 남자의 딸.
“아마 아비의 원한도 있을 테니까 저희와는 반드시 적대할 거예요. 아직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소수로 양주를 박살 내는 저력 자체를 무시하기 힘들겠죠?”
“그렇겠지.”
“거기에 손견 휘하 정예도 좀 모였다고 하고요.”
지난 원술의 연주 침공 당시 상당수의 적병을 물리쳤다지만, 그게 원술군 전체를 궤멸시켰다는 수순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니 원술이 재차 6만이라는 군을 키웠겠지.
그리고 그중에서는 호랑이라 불렸던 손견의 직할 군대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고, 그런 걸 고려하자면 분명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일단 사마의. 너는 진궁 선생이랑…, 곽가랑 아직 연락하고 있다면 그녀에게도 말을 건네서 현 내무 상태가 어떤지 좀 알아봐 줘. 방삼이 너는 군부에 좀 얼굴 튼 사람 없냐?”
“음, 글쎄올시다. 그러고 보니 그때 대장이랑 같이 있던 이전이라는 사람? 그 사람이랑은 조금 얼굴을 트긴 했는데.”
“그러면 군부 쪽에도 모병 상황을 알아봐.”
물론 조조나 소연 아씨를 통해 묻는다면 전부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녀들을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그녀들이 전해주는 것과 내가 파악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미리 얼마나 군량을 모을 수 있고, 병력은 또 얼마나 차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과와 유입경로를 알아야 그에 맞는 판단이 가능했다.
아마 총사령관은 조조겠지만, 관구사령관에 임명한다면 서주에서 내려가는 연합군의 사령관은 내가 될 터.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재능이 부족했다.
군을 이끌기 시작한 경력도 미천하고 재능도 부족하다. 그러면 미리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생각을 거듭하고 고심하고 고뇌하여야 겨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
“알겠어요. 곽가 그 여자랑은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니, 그 경로를 통해서 진행상태와 소연 아씨에 대해서도 물어볼게요.”
“소연 아씨는 왜.”
그러니 사마의가 픽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마치 그것이 속 보인다는 것처럼 골리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 꼬맹이는 사람 속도 모르고 턱을 치켜들었다.
“딱 봐도 최근에 소연 아씨한테 잘 안 갔잖아요.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죠? 다 티가 나는데 아저씨만 모른다니까요.”
“그건 그렇지.”
거기에 방삼이까지 맞장구친다.
물론 예주 방어전을 위해 출격했을 당시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에 눈에 밟히기는 했다. 마음에 걸렸고, 그렇기에 반대로 그녀를 찾아가기 꺼린 면도 있었다.
아씨가 숨기고자 했던 걸 엿본 것 같아서.
그래서 그다음을 아는 게 좀 껄끄러웠다.
어쩌면 무서웠을 수도 있겠네. 그녀의 약한 면을 알아가는 게 무서워서, 그녀가 언젠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어 눈을 돌리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점점 현실에 짓눌리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됐다. 아씨한테는 내가 직접 갈 테니까, 너희는 그것만 잘 처리해줘. 만약 꼬투리를 잡히거든 시원하게 중랑장 이름이라도 팔아넘기고.”
그러라고 있는 관직이니까.
하여 둘에게는 각자 필요한 것을 맡기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마 조조는 원술이 참칭하자마자 바로 양주로 쳐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유비가 협력한다는 전제하에 서주로 이동하여 그들과 함께 내려갈 것이고, 그러면 아마 회수까지 건너지 않고 마주하게 될까.
어쩌면 원술은 회수를 가로막고 강을 방패막이 삼아 버틸 수도 있었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서주 남부로 빙 돌아 원술의 거점 동쪽에서 진군할 방법도 있겠네.
“하아….”
전략이라는 게 이렇게 머리 아픈 일이구나.
앞으로 사마의는 조금 더 잘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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