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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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어떠셨어요?”
“나쁘지는 않았어.”
그녀는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답했다.
조조가 유독 신경 쓰는 사람이라 하여 어떤 인물인가 궁금하였는데, 그것이 다소 해결된 느낌도 들었다.
“운장아.”
“예, 언니.”
“너는 중랑장을 어떻게 생각하니?”
유비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고심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고 할 정도로 많이 만난 것도 아니었고, 몇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있었지만 그게 한 사람을 평가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자주 본 것도 아니어서 뭐라고 말하기는 힘든데요. 그래도 구태여 말하자면 꽤 호탕한 사람 같기는 했지만….”
“그러니? 너희에겐 그리 보였어?”
“언니는 좀 다르신가 봐요.”
관우의 질문에 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탕하다.
물론 그런 성격도 있는 듯했다. 은연중에 보이는 털털한 성격은 아마 그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겉으로 예의를 차리고는 있었지만,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거친 느낌을 전부 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일.
유비가 본 전호라는 남자는 조조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간이었다. 행동거지, 주변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생애와 조금 전 있었던 문답까지.
“여포가 어떻게 조조군에 있을까 내심 고민했었거든. 조조라면 주군을 몇이나 바꾼 데다가 내환까지 일으킨 여포를 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조조란 여인은 본래 그런 여인이었다.
필요하다면 쓸개도 마지않겠으나, 반대로 제 주춧돌을 흔들 존재는 절대로 용납할 성격이 아니라고 보았다.
여포가 딱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여포는 조조군의 휘하에 있었다.
정확히는 한 남자의 몸종을 자처하고서.
“너희와 떨어져 있을 때 여포를 한 번 봤는데, 그 천하무쌍이 저 자신을 몸종이라고 자처하지 뭐니.”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군 내부적인 징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목숨을 놓고 위협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네. 사실 여포가 어떤 방식으로 가담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
중요한 건 그 여포를 품었다는 사실뿐.
조조라면 쳐냈을 사람을 전호는 제 사람으로 품었다.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기에 반대로 제 주군이 돌보지 못할 이들을 품고 나아간다.
그녀는 처음 보았을 당시의 그를 떠올렸다.
사실 그때는 잘 싸우는 무장이라는 정도의 감상밖에는 없었다. 여포를 대적하였다고 들었을 때는 그 근성과 배짱에 감탄하였으면 하였지, 이렇게 인간적으로 감상이 들게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어떤 느낌일까.
사실 평소 사람을 잘 본다고 자부하는 유비에게도 다소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끼게 하는 성격과 외모였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살짝 껄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전호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가끔 자신이 시선을 살짝 떼었을 때 불편한 표정을 짓던 남자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외모가 출중하여 이성에게는 싫은 소리를 잘 들어본 기억이 없던 그녀에게는 나름 신선한 일이었다.
그 남자는 왠지 살짝 꺼려졌다.
무언가 가슴 한편에서 자극한다. 거슬린다고 표현해도 좋을까. 유비는 괜스레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조조군에서는 조조와 진소연으로 구심점을 맞추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녀들과 맞지 않는 사람을 따로 품는 게 그 사람이겠지.”
세간의 시선은 조조의 편애로 관직에 올랐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조군에서는 조조 당사자의 친족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 기간도 썩 길지 않아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주류였던가.
그 사람들의 눈은 전부 옹이구멍이었다.
당장 자신이 보았던 것만 해도 관우, 장비보다 못하다뿐이지 어디서 밀릴 실력은 아닐 맹장.
거기에 제 주군과 반목했던 상대 제후를 휘하에 둘 정도로 인망도 있는 듯싶었으며, 무엇보다 조조 본인이 그걸 용납해줄 정도로 군주의 신임도 두터운 사람이었다.
조조가 담지 못하는 걸 주워담는 남자.
“그래서 그냥, 조금 궁금하네.”
유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걸요?”
관우는 그런 그녀의 뒤를 따랐는데, 정작 유비는 그 질문에 슬쩍 고개를 위로 돌렸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조조를 왜 따를까, 하고.”
* * *
유비가 허도에 방문하고 한 달이 지났다.
12월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상황. 황실은 그간 있었던 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는 나름 안정기에 접어들어 겨울을 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곧 194년이 된다.
그러니 그 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와 신년의 행사 등, 여러 가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던 상황에서 들려온 한 통의 서신.
“어이가 없군.”
조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원술은 중이라는 새로운 제국을 건립하려 한다는 첩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원술이 전국옥새를 손에 넣었다는 정보까지 적혀있었다.
“어이없다고 치부할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요.”
소연은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미간을 찌푸렸다.
빨랐다.
조숭의 죽음도 그러했고 여포의 침공, 황제의 장안 탈출까지. 모든 역사가 조조의 강성화에 따라 가열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조정의 근간을 다지는 도중이기에 섣부르게 방치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한 황실에 대한 평가가 점점 떨어지는 와중에 황제를 참칭한 원술을 방치한다는 게 어떤 결과를 야기할 지는 빤히 보이는바.
“당장 대응해야만 해요.”
“하지만 아군은 돈이 없다. 그간 전쟁도 너무 잦았고, 무엇보다 허현을 수도로 하여 구축하는 과정에서 든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는 그대도 알지 않는가.”
전부 돈이 문제였다.
소연도 그걸 알았지만, 그래도 원술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만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구강 일대에서 호족을 정리하고 손책으로 하여 양주를 토벌하는 동안 힘을 기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보다 수년 이르게 황제라 참칭하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한 결과. 역사가 틀어지고 비틀린다고 하여 그렇게 빠르게 사건이 벌어질 거라는 판단을 못 했다.
“원술에게 그만한 자본이 남았을 리가 없어요. 친다면 지금인데, 문제는 돈이네요. 뭘 하려고 해도 아군에게도 그만한 여력이 부족해요.”
연주와 예주.
중원에서도 알짜배기 땅을 점거하여 본래 역사보다 빠르게 몸집을 부풀렸지만, 반대로 아직 안정화가 미흡하여 부풀어 오른 풍선과도 같이 실속이 없었다.
내실을 다지기 전까진 그 두 주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그걸 알고 있던 조조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이미 허도를 건설하는 와중에도 빚이 늘었다. 여기서 군사까지 일으킨다고 하면 막대한 부채를 안겠지.”
“하지만 조공. 이 사안을 내버려 둘 순 없어요.”
“알고 있다.”
안 그래도 주변에서 잡음이 심했다.
여기서 황제를 참칭한 원술을 타도하지 못한다면 조조 자신의 지배력에도 영향이 미친다. 황실과 조정에서도 그녀의 진실함에 대해 의문부호를 떠올릴 터.
“우선 유비를 서주로 돌려보내고 그녀의 지원을 받지. 부족하기는 하나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유비, 말이죠.”
조조의 말에 소연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는 애당초 이 허도에서 유비를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이미 황족을 중심으로 하여 정보를 넣고 천천히 비틀어 반역도당으로 엮어버릴 준비에 착수하던 상황.
그러나 전세가 급변하고 말았다.
“그대가 유비를 걱정하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도 유비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만일 그럴 생각이라면 본인은 아집이라고 명명하겠다.”
“알고 있어요.”
현 조조군이 최대로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많지 않았다. 당장 여남으로 보내었던 군이 2만. 거기에 허도에서 재차 병력을 모은다면 1만 언저리까지 모을 수 있겠으나, 연주의 방위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다.
“아직 원술은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니 다소의 시간은 걸릴 터. 우리도 최대한 준비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장기 말을 모으는 게 우선이다.”
유비를 쳐낼 수 없다는 건 입맛이 썼다.
물론 서주 자체는 언젠가 짓밟아야 하는 곳이었지만, 당장은 그 주에서 전세와 판도를 바꿀 정도의 저력은 없었다.
일이 수순대로만 진행된다면 장차 제아무리 유비라고 하여 조조에게 저항할 수 없겠지만, 소연은 유비라는 영웅이 가진 잠재력과 미래에 대해 여전히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생긴다.
인생에 있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 소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첩보에 따르면 당장 구강, 수춘 일대에 모인 정병만 하여도 6만이 넘는다네요. 앞으로 원술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숫자만 하여도 꽤 힘들어요.”
“그놈의 원씨가 무엇이라고.”
조조는 그게 싫었다.
원술이 어떤 남자던가. 예전부터 번뜩임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한량. 나름의 호탕함을 보였다지만, 조조가 보기에 그런 모습은 그저 허세에 불과했다.
그녀가 아는 실제 원술은 제 안위와 위신에 혈안이 된 머저리. 주변의 평가는 영웅의 기개가 있다느니 하는 말은 전부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남자라도 저런 대군을 이끌 수 있었다.
모든 게 원씨라는 이름 하나로.
“능력도 없고 기개도 부족하다. 그런 놈이라도 원씨의 정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리 위세를 떨치는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씨의 이름을 등에 업고 천지 분간 못 하던 얼간이. 그랬던 한량이 이제는 정말 제 주제도 모르고 황제라고 자칭하며 천하의 조롱거리가 되려 한다.
그런데도 그것이 위협적이다.
생각하자면 마치 자신이 원술에게 휘둘리는 것만 같아 조조는 그 사실을 굉장히 불쾌하노라 느끼고 있었다.
“우선 유비에게는 미리 사정을 알려 서주로 돌려보내지. 만약 차후에 유비가 원술 타도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충분히 황족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하여 엮어버릴 수 있다.”
“……그러시죠.”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소연은 유비를 이리 살려 보내야 한다는 게 못내 찝찝했다.
“하여간 그대도 하나에 꽂히면 집착하는 경향이 있군. 확실히 자질은 있으나, 그것이 그대가 두려워할 정도인가?”
“언젠가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조는 그런 소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도 유비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자질도 확실하며 그 본연의 매력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군에게 위협조차 될 수 없는 서주의 주인일 뿐.
“본인은 이해하지 못하겠군.”
“제 직감이라 보아도 좋아요. 하지만 살려두기에는 불안한 요소가 너무 많잖아요? 일단은 제쳐놓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녀는 서주를 잡고 있으니 언젠가는 붙어야겠지. 기왕이면 허도에 있을 때 아군으로 회유하고 싶었다.”
물론 날은 언제고 있었다.
우선은 원술을, 그 뒤에는 서주를 포섭하거나 공격하여 외환을 뭉개야만 했다. 그렇게 모든 작업에 착수한 이후에야 겨우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원소.
원술 같은 모자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성한 적이 북쪽에 도사리고 있었다. 공손찬과의 혈투로 그쪽도 상황이 여의치는 않았지만, 조조는 원소가 만에 하나라도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성 없는 희망은 망상에 불과한 것.
꿈을 꾸기에는 너무 현실에 찌들어버렸다. 그러니 원소에게 대항, 그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건 원술이라는 경쟁자를 짓밟아야만 했다.
“소연, 그대는 유표에게 보낼 사신을 준비하라. 본인은 따로 유비에게 말을 전해두지.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이 일은 바깥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알고 있어요.”
원술은 현재 비밀리에 준비하는 단계.
만약 그것이 세간에 공개된다면 원술은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면 아군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하나 넘으니 또 하나가 걸리는군.”
조조의 한탄에 소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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