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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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의 상황이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황궁과 조정 일대를 포함한 정치판의 일. 아직 수도 건설사업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이었기에 일반 백성들은 활기와 분주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꽤 많은 부채를 감당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그런 내정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드문 일.
그래도 조정과 다르게 생기가 느껴져서 나온 보람은 있었다. 그쪽은 좀 음습하다고 할까, 요즘 들어 일반 관료까지 날이 선 게 느껴졌으니까.
겨울의 초입.
숨을 내뱉으면 허연 김이 서렸다.
천천히 입에서 나와 허공으로 흩어지는 입김. 이제 곧 겨울도 절정에 다다를 것이고, 그러면 이리 활기찬 기운도 잠시 사그라질런가. 자고로 일반 백성에게 겨울이란 몸을 추스르고 추위에 견디는 시기였다.
예전에는 겨울이 진저리나게 싫었다.
춥고 배고팠으니까.
비축해둔 곡식으로 서너 달을 버텨야 하는데, 그런 식량이 내게 있었을까. 그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나날.
특히 병주에서는 그 길이와 혹독함을 더했는데, 안 그래도 인구수도 적은 지방이 겨울만 되면 얼어 죽는 시체가 수두룩하게 나왔었다.
지금은 어떨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썩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예전만큼 진저리를 칠 정도는 아니겠지. 겨울은 자고로 없는 사람에게 더욱 혹독한 법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난 어느 정도 풍요를 찾았으니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리게 먹구름이 낀 하늘. 조만간 눈이 내릴 것 같았는데, 그러면 북문에서 개수공사를 하던 것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방삼이가 그쪽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조만간 불러들여야겠네.
“중랑장님! 오래 기다리셨나요?”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한 여인이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럴 때마다 큼직한 젖가슴이 출렁거리는데….
“아니요, 별로 안 기다렸습니다.”
답하면서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하여간 남정네들 생각은 다 똑같다고, 저마다 유비에게 시선이 쏠린 게 딱 보였다. 하기야 예쁘고 가슴 큰 여자가 달리고 있으면 누구라도 시선은 가겠지.
인정한다.
“죄송해요. 제가 불렀는데, 애들이 너무 극성이라서.”
“있던 일이 있으니, 동생분들이 그리 생각하는 것도 알만하지요. 솔직히 서주목께서 너무 무방비하신 것이 아닌지 걱정까지 됩니다만.”
암살 시도를 당하고 이제 막 일주일 조금 지났다.
그런데도 호위병 하나 없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대체 얼마나 주의가 부족하면 이렇게 대범하게 혼자 시가지를 걸을 생각을 하나?
“괜찮아요. 이번에는 잘 챙겼으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제 허리춤을 두드렸다.
두 자루의 검.
쌍검인가? 하여 고개를 돌리니 유비가 자신만만하게 콧김까지 뿜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도 싸울 줄 알거든요. 그때는 무장도 못했었지만, 적어도 누가 덤비더라도 중랑장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라고요!”
“그렇습니까.”
쌍검이라. 실제로 그런 난잡한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아. 없지는 않네. 병사 중에서 가끔 그런 놈들이 있기야 했지.
물론 방패를 든 것만 못해서 금방 죽었지만.
그래도 유비는 예전 황건적 토벌부터 전공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인물. 경력만이라면 솔직히 내가 뭐라고 토 달기 모호할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이번에도 불한당이 덤빈다면 제가 지켜드릴게요!”
팔을 걷어 주먹을 쥐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기에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중랑장이고, 그녀는 황족이니 지켜도 내가 지키는 게 맞는 걸 텐데.
“…믿겠습니다.”
“예! 그럼 가실까요?”
그녀는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사실 그것도 잘 이해가 안 갔다. 솔직히 말해 최근 유비의 신변 문제와 더불어 황족과 조조, 각 진영에서 시달리고 있을 게 뻔했는데도 그녀는 그 미소를 잃지 않았다.
황족으로 인정받자마자 그 황족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이윽고 암살 시도까지 있던 것. 적어도 조금 위축은 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안 가시나요?”
“아,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진짜 어떻게 되먹은 신경 줄이냐. 저런 정신은 나도 좀 배우고 싶네. 그러면 자꾸 황궁이나 조정에 갈 때마다 위가 쓰릴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유비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저번에 제가 맛있는 곳을 찾았거든요? 진짜, 진짜로 만족하실걸요? 허도가 아직 허현이었을 때부터 요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토종 맛이 있다니까요.”
“예, 예.”
이번 자리는 저번 습격에서 지켜준 답례라고 그녀가 초대한 것이었다. 하여 그냥 나오기는 했는데, 이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안 그래도 그 소란으로 황족이 압박당하고 있는 와중에 무언가 또 움직임을 가져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타인의 속내는 모를 일이었다. 특히 한 번 미쳐서 행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더더욱.
“흐흐흥~ 말이 움직이면 강아지도 폴짝거리네~”
그나저나 기분 좋아 보이네.
갈색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다. 저 살짝 뾰족한 귀가 힐끗힐끗 드러나는 게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런 신체적인 부분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싶어 그냥 그 뒤를 따랐다.
기분 좋게 길을 걷는 그녀와 그 뒤를 묵묵히 따르는 나.
사실 유비에게서 황족의 접촉은 없었는지, 혹은 동승이라던가 하는 작자의 간섭이 없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는데 영 그럴 분위기가 조성되질 않았다.
밥이라도 먹으면서 말해야 할까.
“아, 중랑장님. 저거 보세요.”
“예?”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녀는 그걸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아니, 뭐 애들이 뛰어노는 게 뭐 어쨌다고.
“허도는 막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벌써 백성들은 이곳을 편안하다 여기고 있는 게 보이네요.”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약 반년 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던 거주지는 얼추 완성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번듯한 대도시라 일컬어도 될 정도로 많은 인구가 모였다.
여전히 미완공된 부분과 미흡한 곳도 많아 제국의 수도라 칭하기엔 부족함이 있었지만, 적어도 대도시라는 기준점에는 합격한 것이 아닐까.
“이런 광경을 보니 좀 부럽네요.”
“부러….”
말을 하려다가 끊었다.
그녀는 서주목.
부럽다는 말의 뜻도 얼추 이해는 갔다. 그렇기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한때 예주보다 풍요롭던 서주에 풍파를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조조가 이끄는 연주병이었으니.
물론 명분은 있었다.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그걸 현 서주목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턱이 없지.
유비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는 말을 꺼냈네요.”
“전쟁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맞죠.”
어깨를 으쓱이며 길을 걸었다.
그녀가 지금은 허도에 있다고 해도 잠재적으로 적이 될 확률이 높았다. 서주와의 관계는 여전히 껄끄러웠고, 황제 폐하를 모셨다고 하여 모든 분란이 종식될 거란 희망찬 기대도 품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당시 복양에 있어 서주 전쟁을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지만, 그 상세만은 들을 수 있었다.
각 지방을 초토화하고 서주민들을 강제로 이주, 그 이후 토목을 포함하여 서주의 근간 자체를 한 번 뿌리째 불살랐다던가.
하면 그 복구에만 수년이 넘게 걸릴 일.
생각해보면 지금 유비가 허도에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진궁 선생의 말에 따르면 조조는 유비를 포섭하여 서주까지 노리는 듯하다던데, 그게 말처럼 쉬울지는 다소 의아했다.
한 번 짓밟힌 민초는 그 원한을 기억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럼 가실까요?”
“예.”
* * *
기본적으로 조운의 일과는 한가했다.
그녀는 이번에 상서성 소속 상서령 진소연의 직속 무장으로 발령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치안이나 경비, 혹은 군부의 일을 겸하는 등 겸직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렇게.
“왔니?”
소연의 말에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우, 춥네요.”
겨울 초입이라 그런지 슬슬 날씨가 쌀쌀함을 느꼈다. 겉에 둘렀던 외투를 벗은 그녀는 자리에 앉았는데, 소연이 미리 덥혀두었던 주전자를 꺼내 찻잔에 차를 따랐다.
“좀 기다려.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아, 감사해요.”
그 뒤로는 침묵이 이어졌다.
조운과 다르게 소연의 일과는 언제나 바쁘게 돌아갔다. 본래 상서성 자체는 황제의 시중으로 각 신하가 올리는 상소를 정리하여 보고하는 등의 업무를 돌보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의미도 없는 역할.
지금의 그녀는 사실상 내조 문관의 수장이 되어 형식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군부의 수장인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올랐다.
물론 조조와 그녀가 동렬은 아니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그녀가 맡는 업무는 비단 허도를 넘어 조조의 세력권인 연주와 예주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오늘도 일이 많나요?”
“별거 아니긴 한데, 최근 상소가 많이 올라와서. 이번 유비의 건이 크긴 컸어. 황족들이 입에 거품을 문다니까.”
그 말에 조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번 서주목의 암살미수 사건에 황족까지 엮여 들어가며 일이 복잡해졌는데, 특히 기존 조조와 반목하던 인사들 위주의 상소가 끝을 모르고 밀려들어 왔다.
거기에 현 허도의 건축 일정과 재정의 조율까지.
“좀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긴 해도, 아직은 괜찮아.”
현대와 달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았다. 사실 본격적으로 업무를 보는 시간 자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소연은 픽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일이 너무 커졌네요. 게다가 오라버니까지 엮여서 지금 중랑장 관련된 화제도 끊이지를 않는다니까요?”
“듣긴 들었어. 호세와 유비 사이의 염문설, 아니면 사실 유비 암살은 중랑장이 사주한 일이라던가. 세속적인 속설이 재미야 있겠다지만,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뜯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중랑장이 뭐가 아쉬워 독단으로 유비를 살해하려 들까. 유비와의 염문설 또한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알고 있어도 기분 나쁜 감정이 끓었다.
“너도 고생이 많네.”
“예?”
“호세랑 유비가 염문설이 돌았잖니?”
소연은 애써 웃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조운이 당황할 즘, 소연은 고개를 들어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숨기려고 했던 걸까. 그러면 좀 미안한 짓을 했을지도.
“아, 아가씨. 그게….”
“알고 있어. 괜찮아. 너희가 마음이 맞은 건데, 내가 축하해주지 않을 리가 없잖니? 벌써 몇 년이나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
그녀는 소연의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던가. 조운은 소연에게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빈틈을 파고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언제나 그녀를 볼 때마다 작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가씨.”
“왜 부르니?”
괜찮으냐고.
정말 그런 반응이 옳냐고.
물을 수 없었다.
하여 죄송하다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편안한 얼굴로 서류를 정리하는 소연의 얼굴을 힐끗 훔쳐보며 고개 떨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다.
조운은 소연이 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말할 수 없었다.
말해서는 안 될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와 일정 이상으로 관계를 진행할 수 없는 이유도 그런 죄책감에서 나오는 것. 여전히 연인 미만의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유도 아마.
“자, 가자.”
“아가씨….”
“왜? 아까부터 표정이 영 어둡네.”
소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었다.
그 둘이 맺어졌다면 축하할 일. 그 사이에서 순서를 놓친 건 자신이 우물쭈물 답하지 못한 결과였다. 여전히 안타깝고 속이 쓰렸지만, 그리하여 둘이 행복하다면 그녀는 그것을 응원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진짜, 괜찮으세요?”
“얘도 참. 이상한 걸 묻네.”
둘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세계로 넘어온 이후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건 조운과 전호였다.
그런 둘이 맺어졌다는데.
만약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였거나, 혹은 그 외의 관계가 있다면 모를까. 그 둘의 관계라면 웃으며 축하할 자신이 있었다.
소연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코웃음을 쳤다.
웃음? 축하?
다 자기기만.
사실은 웃을 수 없었다. 사실은 축하할 수 없었고, 사실 언제나 그가 자신에게 본심을 묻는, 그러면서 고백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그 날의 일을 떠올렸다.
후회도 있었다.
그 이상의 자책도 있었다.
“가자.”
“예, 아가씨.”
의기소침해진 조운에게 소연이 손을 내밀었다.
모든 걸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갈 길 잃은 연심은 여전히 그녀의 안에 남아있었고, 외로움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존재 자체는 여전히 그녀의 안에 깊게 내리 앉아있었다.
유일한 지지대이며 기댈 언덕.
그가 만약 조운만을 바라보겠노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것에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때는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도중에 사마의도 만날 거니까, 그때까지는 얼굴 피기. 알겠니?”
“예, 아가씨.”
그 대답에 소연이 픽 웃으며 문을 열었다.
싸늘한 바깥 공기가 달아오른 몸을 식히는 느낌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도 조금씩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감각.
“바람이 세네.”
소연은 의미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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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선 조조와 사마의의 양강구도네요...
소연 아씨............. :(
천천히 작품 곱씹으며 준비하고 있사오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금방 2연참 구도로 찾아뵙겠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