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한의 이름, 유씨의 성 최근 황궁 인근으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조조가 황제를 유비로 갈아치울지도 모른다는 소문.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과거 동탁이 전 황제를 폐위하고 현 황제를 모시게 되었다는 점을 꼽은 게 묘하게 현실감을 주었다.
“웃기지도 않아.”
그게 말이나 되던가?
기분 나쁜 소문이다. 최근 조조와 유비가 가까이 지낸다는 점과 유비가 서주목이라는 것을 빌미로 유비를 포섭해 자신이 다루기 쉬운 황제로 바꿀 거라는 게 이 소문의 요점인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야 동탁과 다를 게 없어. 대외적으로 끝장이 날 일인데, 조조가 미쳤다고 그럴까. 게다가 유비가 다루기 쉽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렇긴 하죠.”
사마의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다루기 쉬운 황제로 바꾼다는 소문 또한 난점이었다. 아무리 황족 사이에 조조를 불신하는 기류가 있다지만, 설마 그런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졌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꼬맹이가 좀 정신을 팔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해도 영 시원찮은 대답만 돌아오는 게 거슬렸다.
“꼬맹아, 뭔 일 있냐?”
“…그냥 조금 생각하느라고요.”
갑자기 애가 말이 없어서 당황했잖아.
아무튼, 이번 일은 쉬이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 솔직한 말로, 황족 거주지 내에서 사달이 난 것인 데다가 하필 그 요인이 황족에게 내리는 시종들로부터 시작된 것.
“이거, 일 크게 벌어질 거 같냐?”
“가능이야 하겠죠.”
나도 그럴 거 같아서 무서웠다.
“이번 일로 황족의 힘이 얼마나 깎여나갈지 모르겠다. 유비도 황족이라 불리지만, 그 이전에 서주목. 예주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면 자연스럽게 조조에게 비난이 맞춰질 건데.”
“대신 황족을 처벌할 수 있는 빌미를 잡았어요. 이번 일이야 유비에게 그만한 보상을 해주면 그만이고, 반대로 황족을 짓누를 수 있는 명분이니까.”
역시나 낚여 들었다.
조조가 유비를 왜 황족 구역에 넣어뒀겠는가. 그건 그간 숨죽이고 있던 반대파를 끌어들일 미끼에 불과했다.
나도 그걸 알기에 필요 이상으로 경계했던 것이었는데, 설마 미리 시종으로 심어두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해서 벌어진 패착.
“여기서 황족을 건드려도 될까?”
그 질문에 사마의가 어깨를 으쓱였다.
“당장 다 죽이겠다는 건 아니니까요. 천천히 그들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정도. 그 정도만 해도 대장군은 만족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황족 자체의 힘이 떨어지면 조조에게 황실 자체가 잡아먹히지 않겠느냐, 이거지. 그러면 한나라라는 이름에 의미가 남을까?”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잠시 조가에 위탁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죠. 아저씨가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겠네요.”
황실과 제국.
사실 그런 건 알 바 없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 뒤. 만약 한이라는 방파제, 혹은 울타리가 사라진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고민. 아직도 천하에는 한 이전, 진이 있기도 전인 전국시대의 나라를 자신의 국가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국가라는 것은 그 사람의 소속감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나라는 수백 년 이어져 내려온 통일제국. 그것을 조조가 무너뜨린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지금 이상으로 안정될 것이냐가 관건.
나는 아니라고 보았다.
아직 한에 충성하는 이는 많았다. 그 이름을 가슴에 새긴 이는 더더욱. 구태여 한에 충성하지 않더라도 절대자의 권력을 탐하는 이들 역시 수두룩한 상황.
한나라라는 체제를 유지한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조조가 그 이상의 욕심을 낸다면?
“대륙에 더 큰 혼란이 올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난 한나라가 최대한 오래, 강건하게 남길 바라고. 그러면 차후 조조가 한 황실을 휘둘렀을지언정 시대를 바로잡은 충신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
문제는 조조가 그런 역할에 만족할 것이냐인데.
이건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우선 현 연주와 예주를 하나로 뭉치게 하려면 황족의 힘과 발언권을 깎아낼 필요는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과 타협할 것인지, 혹은 잘라낼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조조는 단연 후자를 선택했다.
그게 걱정이었다.
“확실히. 그건 그 상황이 도래하지 않으면 모르겠네요. 이건 저라도 확실하게 말해드릴 방법은 없지만,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마의는 거기서 말을 끊고 내 손을 붙잡았다.
“아저씨는 위로 올라가야 해요.”
갈망하는 듯한 눈동자.
보라색으로 빛나는 그것과 시선을 마주했다. 사마의는 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내게는 그것이 어딘가 요사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소녀는 내 손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 위로. 언젠가 조조나 진소연에게도 밀리지 않을 힘, 그 권력을 쟁취하셔야 해요. 그런다면 아저씨가 걱정하는 모든 것도 해결될 것이고, 장차 더 나아가 그 뜻을 천하에 풀어낼 수 있어요.”
그러니 위로 향하셔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사마의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그 말 어딘가에 조조와 소연 아씨와 언젠가 격돌하는 미래가 그려져 썩 달갑지는 않았다. 이 어린 소녀는 대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걸까.
“제가 도울게요.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요사스러운 미소와 손짓.
세상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감각이었다.
* * *
소연은 집무실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붓에 먹을 묻혀 도화지에 그린다. 선을 하나, 둘.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붓을 움직였다. 선과 선을 이으며 움직이는 작업을 과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소연은 이런 행동을 자주 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긋는 동안에는 불안함도, 외로움도, 하여 고독함도. 전부 지워낼 수 있었다. 가장 바라는 건 따로 있었지만, 당장의 사유로 함께할 수 없기에 대신한 취미.
“황족은 움직였어.”
먹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황족을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물론 유비가 그것에 호응하지 않고 몸을 사려대기만 하여 유감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현 상황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연은 가로로 큰 줄기를 그렸다.
“여기서 천천히 영향력을 깎을까. 한 명 정도는 독박 씌워서라도 쳐낼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는데.”
황족 중에서도 큰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를 엮어버려 유배라도 보낸다면 그들도 반발하겠지. 아니면 조심하려나. 사실 소연에게 있어 그들의 반응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오직 유비만을 겨냥했다.
죽일 수 있다면 이 허도에서 그 목을 친다.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조조는 유비를 회유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녀는 그게 불가능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일 수 있다면 죽이되, 안 된다면 약점이라도.
천천히 그려지는 그림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먹물은 그녀의 의사와 뜻에 따라 도화지에 먹을 묻혔고, 그것은 점점 하나씩 선으로 덧대어져 이윽고 하나의 큰 그림으로 화한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까.”
유비가 있는 동안 수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이번 유비 암살 작업에서 전호가 엮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소연은 그 주범을 찾아내고자 사람을 움직이고 있었다.
독을 썼다던가.
그러면 그 배후는 누구일까.
사실 누구라도 좋았다. 중랑장과 서주목을 동시에 건드린 것. 황족이라 하더라도 가히 처형에 올릴 수 있는 일.
원래 피를 볼 생각은 없었지만….
전호를 건드렸다면 얘기는 별개. 사실 그녀는 이리 붓으로 먹을 칠하는 와중에도 그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었다.
만약 거기서 그가 독에 당해 죽었다면?
그 이후의 미래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천하에서 유일하게 버팀목이 된 것은 그였다. 현대에서의 자신과 한으로 떨어진 자신과의 괴리. 그 고독함과 혼란을 억눌러준 것이 바로 그 남자였다.
독을 썼다면 마찬가지로 독으로 죽여야겠지.
그녀는 픽 웃으며 자신이 그린 큰 도화지를 접고, 또 접어 구겼다. 어차피 한때의 여흥으로 아무렇게나 그어 올린 조잡스러운 물건.
하여 다시 자리에 앉은 소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비와 관우, 둘을 떨어뜨렸어. 조조는 황제와 황실을 조율하는 중이고, 호세는 지금 유비와 딱 붙어있으니까….”
여기서 재차 한숨을 내쉰다.
하필 그는 무엇에 꽂혔는지 유비를 호위하는 작업에서 저 스스로가 나서고 있었다. 불러들이자니 명분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모든 걸 솔직하게 터놓을 수도 없었다.
전부 말하면 자신을 혐오할 것 같아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돌아봐도 다소 음흉하게 느끼고 있었다. 뒤에서 모략, 음해, 암살. 갖은 작업으로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피를 묻히는 작업이었다.
하여 그것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생긴 자가당착.
제 사람이었던 전호에게 떳떳이 밝힐 수 없는 일을 하는 와중에, 결국 그와 연관된 문제에서 대담하게 나설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를 잠시 비켜놓고 작업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급한 일도 아니었다.
유비의 일은 이제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죽지 않았으니 다음은 아마 회유일까. 소연은 이 천하에서 가장 낯가죽이 두꺼운 족속 중 하나가 바로 황족이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피난길에 오를 때는 모르는 척하다가 모든 사달이 수습되고 나니 이 허도로 모여든다. 그런 이들이 지금은 무려 50의 숫자를 넘겼다.
“웃기지도 않지.”
황족이 다 무엇인가.
이런 부분은 현대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선민의식에 찌든 머저리들. 소연은 그런 이들의 기득권을 용납할 생각도, 하여 그들에게 국가의 운영을 맡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작업을 시작해보자.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서령! 들어가도 돼요?”
“들어와.”
그 말을 끝으로 곽가가 손에 호리병을 쥔 채 집무실에 들어왔다. 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고는 질색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또 무슨 짓을. 이렇게 먹물 튀기니까 청소하는 하인들이 자꾸 구시렁거리는 거잖아요.”
“너야말로, 아직 근무 시간에 벌써 술이니?”
“……그건 좀 봐줘요.”
곽가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네? 술은 봐준다면서요. 이번에 시킨 일도 잘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찾았니?”
곽가에게 맡긴 일은 이번 유비 암살모의의 주체. 그녀가 이 시간에 자신의 집무실에 왔다는 건, 아마 그 진범을 찾았다는 뜻일 거라고 생각한 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아, 찾긴 했는데 말이죠….”
거기서 곽가는 살짝 머리를 긁적였다.
“건드리기 힘들 거 같아요. 그, 뭐냐. 황족이 엮인 데다가 나름 어르신으로 불리는 작자라서. 유초라고 들어보셨어요?”
“아, 그 인간.”
확실히 지금까지 황도에 모인 황족 중에서는 제법 이름이 있는 인간이었다. 한때는 관리도 지냈다고 들었는데, 그 탓인가 황궁에서도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영 아니꼬웠던 것을 떠올렸다.
“이게 상서령도 오빠야가 엮여서 좀 그런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지금 이 양반을 쳐내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 인간이란 말이지.”
“상서령?”
곽가는 그 시점에서 살짝 당황했다.
눈이 살벌하게 빛난다는 게 어떤 건지 여기서 새삼 깨달았다. 진소연은 평소 사리분간이 빠르고 나름 합리적인 사고관을 가졌는데, 가끔 이렇게 확 튀어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보통 그 이유는….
“그리고 곽가.”
“예, 옙?”
“……아니, 됐어.”
무언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연의 모습. 곽가는 그 시점에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나 마나 오빠야라고 부른 게 맘에 안 들었겠지.
“그렇게 좋아하면…, 아 알겠다고요.”
“그런 거 아니야.”
곽가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평소 소연과 마주할 일이 잦았고, 특히 이런 뒷공작에서는 언제나 소연의 수족처럼 움직이고는 했다.
그러니 그녀의 반응을 살필 일도 많았는데, 특히 전호의 앞에서는 소연이 얼마나 변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사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가끔은 순수하게, 어떨 때는 퉁명스럽게 굴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소연은 그의 앞에서 단 한 번도 상사로서 군림한 적이 없었다. 그건 집무실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었고, 곽가는 그런 평상시의 그녀와의 괴리를 알고 있었다.
그냥 깔아뭉개지.
곽가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 그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으면 자빠뜨리면 그만이 아니던가?
“편하게 생각하자고요, 상서령.”
“…아니라고 했지.”
눈이 무서웠다.
곽가는 대충 대답하면서도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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