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39화 (239/343)

23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한의 이름, 유씨의 성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한두 방울씩 땅에 떨어지는 소리. 그것은 이윽고 그 규모를 키우며 대지를 적시기 시작했는데, 그런 와중에 둘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조조는 유비라는 사람을 알고 싶었다.

가벼운 문답에 불과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답으로도 그녀의 성향을 얼추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상대가 속이려 들지 않는다는 전제 하의 일.

반면 유비는 그저 웃는 얼굴을 고수했다.

“영웅이요?”

갑작스럽기도 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저 자신을 영웅으로 치켜세워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닐 텐데. 혹 여기서 기선제압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캐내려 하는 것일지.

“그렇다. 현 천하는 복잡하나, 그만큼 영웅이 등장하기도 쉬운 구조. 어쩌면 천하 그 자신이 난세를 종결할 영웅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조조는 스스로 말하고도 그것이 우스웠다.

생명 없는 것의 의인화.

그것에 의사나 뜻 따위 있을 턱이 없는데도. 그녀는 그런 무생물, 혹은 단체나 개체. 그러한 것에 이름 붙이어 생각하는 것을 일종의 정신병이라 생각했다.

“그러네요.”

유비는 그 맞장구를 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대지를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리가 조금씩 거세지고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내리는 거센 빗줄기였지만, 그녀는 예로부터 빗소리를 좋아했다.

“영웅이라 하시면, 천하의 힘 있는 자 모두가 거론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령 형주목도 있을 것이고, 후장군이나 기주목. 그리고 대장군 각하 본인도 응당 영웅이라 부를 수 있죠.”

“유표? 원술? 진심인가. 원소까지야 내 넉넉히 쳐 그 기준에 넣을 수도 있겠으나 앞의 둘은 아니지. 그대의 기준은 꽤 너른 모양이군.”

사실 조조는 유비를 그리 경계하지는 않았다.

분명 한 개 이상의 특기가 있을 여인. 눈으로 보기에도 나중에 비범해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아군에 해를 끼칠 정도로 거슬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신하가 경계하고 있는 상황.

진소연은 계속 유비에게 눈을 두고 있었다. 여차하면 죽일 기세로 쏘아보는데, 허도에서 유비를 죽이려면 그녀의 가치 이상으로 많은 피와 준비가 필요했다.

하여 여기서 그것을 알아보겠다.

조조 개인은 유비를 쳐내기보다는 휘하로 두고 싶었다. 황제를 만나게 한 것도 그 일환. 하여 황실에 충성하게 하고 자신을 따르게 할 수 있다면 그 서주까지 단숨에 영향권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탐나는 인재이긴 했다.

“본인을 영웅이라 불러준 것은 고마우나, 그 외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자고로 영웅이라면 천하를 바꿀 정도는 되어야 그 이름을 감당할 수 있음이다.”

“바꾼다, 라.”

유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어떤 요량으로 바꾼다는 말일까. 현 천하는 이미 각 제후의 독립, 피와 폭력의 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한의 이름이 점점 지워지는 과정일까.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겠어요.”

자기 자신을 자조하며 웃었다.

천하를 바꾼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구국을 이룰 수 있겠으나, 반대로 여전히 한의 제식과 규율을 존중하는 천하 제국의 이름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유비는 솔직히 말해 조조가 무서웠다.

저 조그마한 몸에서 나오는 기백은 보통 것이 아니었다.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할 때마다 몸이 굳는 감각을 느꼈다.

“그대 또한 충분히 영웅의 자질을 가지었다.”

조조는 슬쩍 운을 뗐다.

현 유비는 서주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황실의 이름 아래 묶어 제 아래 들인다면 서주의 반발도 씻어낼 수 있지 않는가. 게다가 그 휘하로 있을 관우와 장비까지.

그녀는 분명 매력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본의와 의중을 떠본다.

“천하 강자들이 저마다 황실을 무시하고 그 권위를 짓밟고 있다. 통탄을 금치 못할 노릇이지. 그런 이들을 어찌 영웅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거기까지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들이 직접 한을 무너뜨리고 제 나라를 건국한다면야 그것은 영웅이라 불러줄 수 있겠으나….”

너는 어느 쪽이냐.

조조는 유비의 녹색 눈동자를 비롯해 얼굴 근육까지 전부 살폈다. 한에 충성하는 이라면 조금의 반응을 보여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모종의 반응 정도는 있어야 옳음이었다.

현시점에서 가장 황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녀 본인이었다. 그런 이가 황실의 존폐를 언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유비가 모를 리 없었다.

“하긴 그러겠네요! 모든 장수도 승리하면 영웅으로 불리듯, 혹여 역적이라고 해도 승리자가 된다면 영웅이라 불릴 수 있겠네요. 음…,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을 못 해봤어요.”

티 없이 웃는다.

순박하게, 혹은 멍청하게.

조조는 더욱 유비라는 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바보를 연기하는 것인지, 혹은 바보인지. 하지만 그저 바보라면 장비와 관우 같은 맹장들이 유비를 따를 턱이 없었다.

그러니 알 수 없었다.

황족 중에서는 한나라 따위 알 바 없노라고 행동하는 이도 많았다. 그러니 유비가 원하는 게 한의 재건인지, 아니면 권력, 그도 아니면 재물인지.

어떤 행동원리로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다.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갈망하는 이는 조종하기 쉬웠다. 그것을 약점으로 삼아 원하는 것을 쥐여주며 조금씩 조정하면 그만.

그녀 개인은 유비를 탐내고 있었다.

진소연은 유비를 경계하였지만, 반대로 그런 이기에 잘 구슬려 휘하에 넣을 수 있다면 최고가 아닌가. 마침 상대는 황족이고, 자신은 황실을 받드는 대장군.

그런 것을 잘 이용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여기서 밑천을 까본다.

“음, 그러네요. 전….”

유비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뚫어지라 자신을 바라보는 조조의 붉은 눈동자. 그것을 계속 응시하고 있으려니 마치 세상 전체가 빨갛게 물든 느낌마저 들었다.

은연중에 황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며, 지금의 발언 또한. 이 시점에서 조조가 명확히 유비를 떠보고 있다는 건 분명. 그렇기에 유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저 멀리 시선을 돌렸다.

빗방울은 제법 많이 굵어져, 이제는 장대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지면을 적시는 물방울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며 픽 웃는다.

“저희 남매가 바르게 살 수 있는 것. 만인이 웃을 수 있다면 더 좋겠으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평화로운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면 지방에서 농사나 하여도 좋을 것 같아요.”

“서주목.”

“대장군께서 보시기엔 별거 아닌 사소한 것이라 느끼실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런 삶이 마음에 드네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조조 입장에서 그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알아들어야 정상 아닌가. 정말로 몰라서 저리 답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진짜 멍청한 것인지.

하여 조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주목. 아직 천하는 넓고 폐하에게 반기를 든 역적은 널렸다. 법도는 땅에 떨어졌고 폭력만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게 천하의 현주소지.”

유비는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정작 조조의 말 대부분이 조조 본인을 향한 화살표이기도 하다는 걸 그녀는 알까. 유비가 생각하기에 조조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미 황실에 대한 존중과 충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역설적이었다.

과거 황건적의 난과 반동탁 연합군.

거기서 보았던 조조는 세속에 찌들었을지언정 한에 대한 충심이 남아있었다. 빛나고 있었다.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와 열의 또한 보였다.

지금의 조조에게선 그게 보이질 않았다.

짙은 어둠을 보는 것과도 같은 모습. 새까맣게 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그 붉은 눈동자만이 선명히 남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본인은 이 천하를 바로잡고 싶다. 그러니 그대에게 정식으로 부탁하지. 부디 본인과 함께 한을 받들어 천하의 혼란을 바로잡지 않겠는가?”

조조는 손을 내밀었다.

“아까 영웅에 관해 물었지. 본인이 대신 답하자면, 이 천하에 제 깃발을 달고 다니는 이들 중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본인과 서주목 단둘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손을 잡아라.

현 천하의 혼란을 종식할 방법은 가장 강한 이를 만들어 그 손으로 전부 때려눕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 황실을 겉으로나마 받들고 있는 조조 자신에게 힘을 싣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은가?

진소연 또한 그런 논리로 제 휘하에 들어왔다.

여전히 유비가 바라는 이상향을 알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그녀가 한 황실에 미련이 있다면 분명.

“영웅이라니 가당찮사옵니다.”

유비는 손을 맞잡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

“황족의 몸으로 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겠사오나, 반대로 영웅이라 치켜세워주심은 곤란해요. 그릇에 맞지 않는 이가 영웅 행세를 하는 건 그저 비극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라와 황실을 위해, 저도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할게요. 그러니 대장군께서도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 주시어요!”

“……그런가.”

한나라와 황실을 위해 움직이겠다.

본인의 손을 잡지 않겠다는 말이렷다.

그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황실 자체를 거머쥔 조조였다. 황실을 위해 일하겠노라면, 그것을 빌미로 관직이라도 하사하여 잘 구슬려 움직이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주목. 저곳이 보이는가.”

“네?”

조조가 저 멀리 손으로 가리켜 유비의 시선을 잠시 돌렸다. 그녀의 이목이 전부 그곳으로 쏠렸다 싶었을 때, 조조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쾅!!

이윽고 탁자 밑에서 무릎으로 차올린다.

위에 놓인 그릇마저 흔들거릴 정도로 세게. 엎어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몇몇 그릇은 실제로 바닥에 떨어져 깨질 정도로 강하게 올려 찼다. 살짝 시선을 돌린 와중에 생긴 갑작스러운 혼란.

조조는 그녀의 표정을 잘 관찰하였다.

유비의 고개가 점점 돌아가 탁자로 시선을 향하려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때도 웃는지 보겠다며 조조가 벼르고 있었고.

“……와! 깜짝 놀랐네요, 무슨 일이죠?”

“별거 아니다. 잠시 의자가 기울어져서.”

볼 것은 전부 보았다.

역시라고 하면 역시겠으나, 유비 또한 언제나 웃는 그런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빈틈을 타고 본 그녀의 표정은 분명 그런 인상이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무표정. 당황하여 고개를 황급히 돌린 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금세 평소의 허당스러운 면모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그 둘 사이에 있을 괴리를 느끼게 하였다.

“이번 자리는 나쁘지 않았다.”

“예? 에?”

이해하지 못한 듯 유비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조조는 방금 그 표정 하나만으로 이 자리를 만든 값어치를 전부 다했다는 느낌이었다.

“서주목. 본인은 밀린 업무가 있어 먼저 일어나지.”

“아, 예!”

조조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무언가 생각이 나, 고개를 돌려 유비를 바라보며 턱을 치켜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대는 지금 바깥 장원에 따로 기거하고 있다고 했지. 이번에 폐하께서 그대를 황족이 기거하는 거주구역으로 숙소를 옮기라 하였으니 그리 알도록.”

그 말에 유비가 무언가 입을 열려 했지만, 조조는 그저 등을 돌리고 자리에서 떠났다. 어차피 그녀가 확인할 것은 전부 보았으니까.

탁자를 올려 찼을 때 그녀의 순간적인 표정.

그건 그녀의 내면의 단편이었다.

“나쁘지 않군.”

그저 멍청하기만 한 여인이 아니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다. 그 싸늘하다 못해 차갑게 식은 듯한 무표정을 어찌 잊을까. 그런 속내를 감추고 바깥으로는 계속 헤실거리며 웃고 다녔는가.

그간 알고 싶었던 것을 하나.

유비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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