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35화 (235/343)

23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한의 이름, 유씨의 성 궁중으로 전 문무백관이 소집되었다.

사실 문무백관이라는 말도 우스운 것이, 폐하는 거의 몸만 남아 예주로 도착하였으니 사실상 그 절대다수가 기존 조조 휘하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아무리 비상설이라 하지만 편장군이라는 무관 내에서는 태수와 맞먹는 과한 관직. 본래라면 어지간한 경력과 실적 없이는 수여 받을 수도 없을 관직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조정에 들어서 미리 자리를 잡고 황제 폐하의 도착을 기다리는데, 딱 보아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면식 있는 이들뿐.

조정을 비롯한 종묘사직 전부가 조조의 것이 되었다.

이윽고 황제 폐하가 들어서고 나서도 마찬가지. 사람들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어린 황제 폐하에게 쏠렸지만, 그 와중에도 곁눈질로 조조를 바라보는 것을 어찌 모를까.

그리고 그 절정.

“이번 국지적인 군사행동을 성공리에 완수하였고, 그에 더불어 짐과 황실의 안녕을 바로잡은 조조에게 대장군의 직을 내리겠노라.”

그 말에 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존 조조계의 인사들은 얼추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대로 외부에서 새로 유입되었거나 황제를 따라 허도로 온 조정 관료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장군이 어떤 자리던가.

이 제국의 모든 병력을 총괄하는 직이었다. 황실의 권위가 아무리 유명무실해졌기로서니 어찌 그 이름의 무거움을 모를까.

그리고 그 뒤의 인사배치 또한 논란거리였다.

소연 아씨는 상서령의 자리에 올라 문관의 수장 자리를 꿰찼고, 순욱을 비롯하여 정욱과 같은 인사들 또한 문관 계의 고위직에 올랐다.

무관 또한 마찬가지.

조인을 필두로 하후돈, 하후연을 비롯하여 그간 조조군에서 군사적인 행동에 선봉을 선 이들을 저마다 장군의 이름을 하나씩 달게 되었다.

그나마 동승이 거기장군에 올랐다고 하지만, 이미 대장군이 된 조조의 아래에서 이름만 하사받은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저마다 이름을 호명되어 관직을 거머쥔다.

아직 앳된 소녀일 폐하는 무슨 기분일까. 어전에서 멋대로 고개를 들면 안 된다기에 호명되기 전까지 고개를 숙였지만, 그 표정이 궁금하였다.

그렇게 여러 이름이 불리기를 반복.

그때까지 내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두령.”

“기다려라.”

주변 모든 이들이, 하다못해 장료마저 언급되던 시점에서 나만 빠진 것을 알고 내 주변에 모인 이들이 술렁였지만, 사실 그건 큰 상관은 없었다.

이미 편장군의 직에 오른 상황이었다.

물론 이번 예주 공방전을 끝으로 다시 비상설로 돌린다고는 했지만, 일단 기존에 앉은 직책만 하여도 태수와 동급, 군사력을 움직이는 권한에선 그보다 훨씬 윗줄의 관직이었다.

어쩌면 여기서는 한 번 관직의 승격을 멈출 필요도 있으리라. 안 그래도 내가 편장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뒷말이 오갔다 하니, 확실히 그런 걸 고려하면 지금은 호명 받지 못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 싶을 무렵.

“하여 편장군 전호, 앞으로 나오라.”

폐하의 부름에 중앙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거의 마지막에 불린 이름.

모든 이목이 이쪽에 몰린 것을 느꼈다. 공도 있다면 과도 있는, 그렇지만 조조 휘하 친인척 인사를 제외하고 조조군에서 가장 오래 싸운 것은 소연 아씨를 비롯해 나와 운이와 같은 이들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꽤 고참이었네.

그런 이가 마지막으로 불려 나왔으니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끄는 것도 응당 당연할까.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편장군은 고개를 들라.”

“예, 폐하.”

살짝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갈색으로 길게 치렁거리는 머리카락. 황금색으로 어깨에 걸친 황제의 복식부터 시작하여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 이상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전장에서의 활약, 칭찬하여 마땅하겠노라. 그러나 전쟁이 끝나 편장군의 직함도 끝을 맞이하였다.”

알고 있던 일이다.

장군의 직은 전시가 아니라면 오래 유지되는 직함이 아니었다. 하여 동급의 문관과 비하여도 다소 모자람이 있다고 들었고, 곧 해임될 관직임을 알고 있었기에 딱히 아쉽지도 않았다.

“허나.”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뚜렷하게, 이윽고 선명하게. 조금 전까지 흔들리던 눈동자에 망설임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편장군은 멀게는 짐을 직접 도와 간악한 역적의 흉수에서 짐을 보호하였고, 가까이는 이 허도 인근에서의 군사행동을 성공리에 제압하였다.”

“모든 게 폐하의 은덕 덕분이옵니다.”

진궁과 사마의 모두가 입을 모았던 것이 있었다.

폐하의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반드시 그 뒤에는 폐하 덕분이라는 말을 붙이라고. 이 제국의 땅과 사람, 그 모든 것은 황제의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로 나설 것을 신신당부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막상 서고 나니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이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한 가운데, 황제라는 제국 최고위의 인물을 마주한다는 게 얼마나 위통을 쓰리게 하는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런 편장군의 헌신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지.”

소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힐끗 시선을 돌렸다. 황제의 바로 아랫자리에 배치된 조조의 자리. 조조가 그 시선에 살짝 표정을 굳힐 즘.

“편장군 전호는 지금 이 순간부터 편장군의 관직에서 해임하고, 새로이 관직을 부여하니. 그대는 현시점으로 중랑장의 관직을 임명받아 황실의 안위를 돌보도록 하라.”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변했다.

중랑장.

물론 편장군이 아무리 장군 관직 중에서는 모자람이 있다 하여도 장군은 장군. 어떻게 보면 명백히 관직이 떨어진 것이지만, 비상설이던 편장군에 비해 중랑장은 상설.

거기에 황제와 황실의 경비를 맡는 관직이기에 비교하기 모호한 감도 있었다. 예전에 사마의가 말하기를, 황제와 가까이 붙은 관직은 서열의 고저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던가.

“폐하, 그것은….”

조조가 답지 않게 먼저 입을 열었다.

“대장군. 짐은 그가 적임이라 생각하고 있노라.”

과거 황건적의 난 당시 사령관을 역임하던 이들 또한 중랑장. 따로 장군직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중랑장의 관직은 무관 계열에 있어 상당히 고위 서열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중랑장은 황실과 황궁에 밀접한 관계를 맺는 관직. 사실상 황제의 사람이라고 보아 무방한 관직이었다.

그걸 내게 하사한 이유는 뭘까.

조조의 반응으로 보아 본래 그녀가 내게 맡기려던 자리가 중랑장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변의 반응을 보아도 그것은 일목요연.

거절할 수도 있었다.

너무 중임이라고, 내 역량에는 맞지 않노라 하여 사임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황제 폐하의 명을 대놓고 반박하는 건 자칫 폐하의 권위 상실과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조조의 장악력이 너무나도 강했다.

여기서 나까지 나서 황제 폐하의 칙명에 사의를 표한다면, 장차 그 누가 폐하의 명을 따를까. 이미 누구나가 현 황실의 실세는 조조임을 알고 있는 상황인데.

“신 전호.”

그렇기에 고개를 숙여 손을 모았다.

“명, 받들겠습니다.”

중랑장 전호.

말도 안 되게 높은 관직이었지만, 반대로 이 직함은 황제 파벌의 인사가 내정되어야 했을 자리였다. 그렇기에 저 어린 소녀의 의도가 궁금했고, 그와 비슷하게 조조의 반응에도 신경이 쏠렸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

하여 나는 선택하였다.

“짐은 그때 그대에게 말했노라. 짐의 안위를 해치려는 자, 짐의 권위를 짓밟는 자를 용서치 말라고. 그 명, 아직 기억하는가?”

“어찌 잊겠습니까.”

그 당시의 명령이 총 셋이었음도 잊지 않았다.

겁박하는 이, 모욕하는 이.

그리고 이용하려 드는 사람까지.

총 세 부류의 이름을 언급하였던 소녀의 모습을. 그리고 이 자리에서 왜 두 부류밖에 언급하지 않았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조조는 예외로 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슬쩍 시선을 돌리니 딱 보아도 불편한 표정의 조조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조정의 회의에서 황제 폐하의 직접적인 지목이니까.

이건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어쨌건 그 뒤로 회의는 평이하게 진행되었다.

각 지방에서 있었던 전투의 정리. 그리고 새로이 관직에 오른 이들의 정리와 배분. 요컨대 내가 들어도 머리만 아플 얘기가 오가는 중이었을까.

살짝 시선을 돌렸을 때, 조조와 눈이 마주쳤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표정.

할 말이 많다는 듯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본다. 그렇지만 아직 어전 앞이기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빤히 이쪽을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 * *

조정에서 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조조에게 불려갔다.

“대장군 각하, 무슨 일로?”

“그대여, 지금 본인이 장난하자고 부른 것 같은가.”

그도 아니었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불렀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게 그녀에게 있어 왜 아픈 손가락인지. 전부 알고 있었지만, 그걸 고려한 뒤에 했던 행동이었다.

“본디 그대는 군가사마가 될 예정이었다.”

“군가?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대장군 휘하 부장이다.”

이런.

그녀가 왜 이리 짜증 내는지 얼추 짐작이 갔다. 요컨대 제 밑의 부관으로 놓고 부리려던 내가 홀라당 황제의 근위대 방면으로 빠져버린 거잖아? 평소 그녀가 내게 보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도 간다.

그래도 누군가는 맡아야 할 일.

“황제 폐하가 직접 지목한 거 아니요. 여기서 능력 어쩌고 하면서 거절하고 냅다 군가사마에 오르면 주변에 폐하를 어떻게 보겠어.”

“그건 그대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아니, 신경 써야지.”

나는 한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길 원치 않았다.

그것은 고작 이름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몇백 년간 뿌리처럼 내려, 이윽고 만백성을 묶고 연결하는 울타리와도 같음이었다.

“난 당신이 한을 망하게 하는 걸 원치 않아. 그건 곧 체제고, 질서와 균형을 잃은 천하가 재차 혼란을 빚는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까.”

수백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제국.

그것이 무너진 뒤에는 어떠했던가. 천하를 통일한 진이 내정 실책과 더불어 각국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들었을 때는 어떠했고, 한이 한 번 무너져 쪼개졌을 때는 어떠했던가.

“국가는 고작 이름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 황제의 권위가 앞으로 방해될 거라 생각하는 건 알겠지만, 이 상태라면 한이라는 이름이 조조라는 이름에 잡아먹혀.”

“그게 나쁜가?”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음울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쥔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 붉은 눈동자로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데,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가.

“지금의 질서와 체제는 수명을 다하였다. 그간의 혼란을 잠식하기 위해서라면 한이라는 이름 따위에 집착할 필요도 없지.”

“한나라의 대장군이 할 말은 아니네.”

그 말에는 그녀도 픽 웃었다.

“그도 그렇군.”

국가는 곧 뿌리였다. 한 번 불사르고 그 토양에 새로운 것을 재배할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불사르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피해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안에서 바꿀 수 있다면 바꾸면 된다.

그것은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통일된 제국. 구태여 불사른 뒤를 장담할 수 없다면 그 테두리 안에서 조금씩 고치면 되는 게 아닌가.

“아직 한을 신봉하는 이는 많아. 그 이름에 열망을 느끼는 이도, 제 정체성에 있어 한을 빼놓을 수 없는 이도. 이 제국에 충성하는 사람은 아직 널렸고, 그건 우리 중에도 분명 있을 거야.”

당장 내 주변에서라면 운이도 그런 과였다.

몇백 년의 통일된 역사를 우습게 여겨선 안 됐다. 예로부터 쪼개졌던 백성을 하나로 묶여 그 긴 기간을 하나의 제국으로 연결한 것이니.

그 이름은 곧 정체성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대도 그러한가?”

그녀는 내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대도 이 한이라는 이름에 그리움을 느끼는가.”

“나?”

그러게.

그건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다른 이들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 뒤에 있을 혼란과 분쟁. 덧붙여 그 진통을 걱정하는 것이었지, 나 자신에게 한이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돌려줄 말도 없었다.

“글쎄올시다.”

한나라의 백성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이 한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뒤에 있을 혼란이었고, 이 한이라는 이름 자체에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답하기 어려운 감도 있었다.

원체 밑바닥에서 자유롭게 살던 영혼이니까.

“그대의 말은 곰곰이 고민해보지.”

“부디 그래 주셔.”

그리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가는가?”

“해야 할 일이 많더라고.”

중랑장이 뭔지.

하여간 다짜고짜 황실 쪽 상서가 부르지를 않나. 게다가 황실 인근의 경비까지 맡아야 했으니, 그 부분에서 각 군부의 장군들과도 합의를 봐야 했다.

“차후 다시 부르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랑장 전호.

내가 황실의 수호를 맡게 됨으로써 장차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몰랐다. 조조와 황제가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소연 아씨와 조조를 비롯하여 내 근간 자체는 조조군이었다.

그러니 이 선택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황제 폐하는 왜 조조군의 사람인 나를 중랑장에 임명한 것인가. 이걸로 바뀌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고민은 많았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나는 이 선택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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