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32화 (232/343)

23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당신을 위하여 군이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수군이 완전히 철수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에 필수적인 방위군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도로 귀환하게 되었고, 진궁 선생도 같이 허도로 향했다.

그에 더해 서주의 군도 뒤로 물렸다고는 하는데, 그 과정에서 황실과 다소 불협화음이 있었다던가.

하여 현 조조군은 여남의 기존 상비군만 유지한 채, 나머지는 전부 허도로 귀환하게 되었다.

잠시 휴식을 갖춘 이후 모두가 모이면 치하 겸 조정에 전부 모인다고는 하는데….

“어우, 조정은 또 뭔 얼어 죽을.”

“장군? 자꾸 그렇게 싫은 소리만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높은 자리에 오르실 분이 벌써 조정을 싫어하시면 어떡해요.”

진궁 선생의 핀잔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와는 못다 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여 날을 잡고 허도에 마련된 그녀의 장원에서 단둘의 자리를 마련했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요.”

“그래도 이젠 익숙해지셔야죠.”

아니, 절대.

그 날이 선 분위기에 녹아들 자신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바로 물어 뜯길듯한 분위기. 거기에 더해 그 권위적인 느낌은 나랑 정말 맞지 않았다.

솔직히 황제 폐하 모실 때.

그때도 속 쓰려서 죽는 줄 알았다.

황제 폐하라면 그거잖아, 그거. 말 한마디로 사람 모가지를 뎅겅 날려버릴 수 있고. 응? 뭐 실수 하나만 해도 대역죄인 취급 당하고. 그런 게 황제 폐하이지 않은가.

어가에서야 워낙 상황이 열악했으니 예를 경시하였다고 하지만, 이제 조조가 조정을 다시 꾸리면서 제대로 된 한 황실이 돌아가는 거니까.

그러니 전처럼은 할 수 없는 게 맞았다.

“황제 폐하 앞에서 실수라도 해봐요. 어우, 단박에 경을 칠 것인데 그 삭막한 분위기를 어떻게 버팁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여기서 진궁 선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여 의문을 표하려던 찰나, 그녀는 다시 웃는 얼굴로 확 바뀌며 내 찻잔에 차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아무튼, 우선 그런 자리에 익숙해지세요. 전호 장군께서는 사람을 모으고 싶으신 거잖아요? 조공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모임을, 그녀의 독단을 허락하지 않을 세력을.”

“그렇죠.”

그간 조조와 몇 번인가 관계를 나누었다 해서 그만둘 일이 아니었다. 서주를 공격한다는 것에 그럴 수 있겠노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이 어땠던가.

그녀는 조숭의 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조숭이 서주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는데, 그 부녀의 관계가 어떻고를 떠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촉매제로 제 아비를 죽였다는 독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간 연주에서 벌어진 전쟁,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지독할 만큼 이율을 찾아 쫓는 그녀에게 제동을 걸 장치는 분명 필요하다.

“필요한 희생을 반복하면 불필요한 희생 또한 반드시 발생합니다. 군에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느니, 희생은 없어야 한다느니. 그런 잡소리를 떠들 생각은 없으나.”

“예, 알고 있어요. 저도 그랬기에….”

진궁 선생은 거기서 말을 흐렸다.

복양에서의 일.

그녀 또한 조조에게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중요 거점이었던 복양은 당시 내가 성주로 있었고, 그녀는 그 성문을 염으로써 한 번이지만 내 믿음을 배신하게 된 것.

“……그때의 일은 죄송했어요.”

“이해는 합니다.”

아직 납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저 자신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바꾸려 했다. 그건 그 당시의 내가 가지지 못했던 대담함.

결과는 패착이었고, 장막의 혓바닥에 놀아난 꼴이었노라고 진궁 본인도 시인했지만, 당장 조숭을 죽인 것이 조조 본인이라는 게 확실한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의 행동을 단지 장막에게 놀아났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아뇨, 그런 말로는 부족해요.”

“예?”

아니 당사자가 이해했다는데.

어이가 없어 살짝 입을 벌렸는데, 그녀는 이내 고개를 홱홱 가로젓고는 당황하여 팔까지 내젓기 시작했다.

“아, 아뇨! 장군이 부족한 게 아니에요. 부족한 건 저죠. 어리석게도 장막에게 속았고, 그 뒤에 패한 배신자를 살려준 것이 장군이시잖아요.”

진궁은 말했다.

“남은 인생을 당신을 위해 쓰라고 장군 본인이 말씀하셨죠. 예, 좋습니다. 미약하나마 이 진 공대의 힘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미약하다니요.”

이번 예주 공방전에서 철저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평소 내정에 집중하였지만, 당장 전장에 세우면 그만큼의 활약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당장 사마의가 나를 지략으로 받쳐주고 있었지만, 여기에 진궁 선생까지 본격적으로 도와준다면.

“장군. 이 목숨은 당신이 살리신 것.”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목으로 내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내 손을 조금씩 펴, 이윽고 완전히 내 손안에 자신의 목이 쥐어지게 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이 목숨은 당신의 것. 그전의 진궁이라는 사람은 복양에서 죽었어요. 그러니 장군이 죽으라고 하시면 죽고, 살라고 하시면 살겠어요.”

“아니, 선생님.”

부담스럽다 이전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너무 무겁잖아.

물론 사람 대가리를 굴리면서 협박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진궁 선생을 이리 모질게 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다가 진짜 제가 회까닥 돌면 어떡하시려고요.”

“당신이 걷는 길은 제가 긍정했어요. 거기에 필요하다면, 기꺼이. 딸은 잘 부탁한다는 말밖에는 못 하겠네요.”

미치겠네.

그럴 생각도 아니었고, 애당초 이런 무거운 얘기를 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내가 뭘 하면 좋을지. 그런 미래를 묻고자 찾아왔던 것이지, 이렇게 사람 하나를 노예로 만들려고 온 게 아니다.

“그러려고 선생님 찾아온 게 아닙니다.”

“제 각오예요. 앞으로 장군께서 걸으실 길. 그 길을 동반하고자 한다면 분명 언젠가는…. 그러니 사죄와 감사, 그리고 결의를 당신에게.”

“갑자기 왜 이러쇼 진짜!”

난 부담스러운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편장군? 그 직함도 불편했는데, 하필 진궁 선생까지. 것보다 이 사람은 내가 이런 걸 굉장히 불편해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인데.

“저 속 뒤집혀 죽으라고 고사 지내십니까?”

“……조공에게 단지 순응하고 한 자리를 차지하시겠다면 구태여 말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장군께서는 다른 길을 선택하셨고, 그 길에는 당신 어깨에 짊어져야 할 목숨이 너무나도 많아요.”

자신은 그 목숨 중 하나라며 빙긋 웃는다.

어이가 없지.

“일단 알겠습니다. 알았으니까 이러지 마시고, 전 그냥 조정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를 묻는 겁니다요.”

“조정, 말이죠.”

그녀는 내 손목을 놓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에요. 어지간한 사고가 아니고서야 폐하가 조공의 심복에게 해코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엥? 그래도 폐하인데?”

물론 지금 당장에야 조조의 권위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한나라 대제국의 황제다.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는 아니겠으나….

“황제도 가진 것이 없으면 그저 꼭두각시죠. 현 폐하는 돈도, 병사도. 그렇다고 사람도 없으신 혈혈단신의 몸. 지금 그 어리신 폐하께서는 조공이라는 범의 입에 물리신 꼴이니까요.”

“그거 괜찮은 겁니까?”

내 질문에 진궁 선생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조공 나름이지요. 조공이 그래도 한나라를 최대한 예우하고자 한다면 한은 유지되겠으나,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녀의 말을 거기서 멈췄지만, 그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컨대 제국의 앞날과 미래도 조조의 손아귀에 쥐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어느 정도 조조가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고자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국 자체를 무너뜨리려 할까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데.

“선생님. 그래도 수백 년이나 이어진 대제국이 그리 쉬이 없어지려고요? 나라라는 건 곧 체제 아닙니까.”

무지몽매하다는 백성들은 제 땅, 제 지역 관리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런 백성들도 기억하는 이름이 딱 하나 있었으니.

한(漢)

그것은 소속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장차 이 드넓은 대륙과 널리 퍼진 백성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이름이었다.

소속감 이전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말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드넓은 대륙에서 구태여 이민족과 한민을 나눌 수 있는 경계도, 그리고 현 백성들이 살아온 생활양식과 관직의 체계도 전부 이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에서 시작된 것.

그러니 한이라는 이름이 곧 체계였고 질서였다.

“조공이라도 아무리 그런 생각은 안 하겠지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이 제국이 대체 얼마나 길게 유지되었는데, 그걸 없애면 그 뒤의 혼란은요?”

체제라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일개 부락과 촌에도 체제라는 것은 존재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제 마을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시 모이는 것처럼, 그리고 더 널리 이어가 모두가 저 자신을 한의 백성이라고 기억하는 것처럼.

그것은 정체성과도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부분.

“전호 장군께서는 평소에 책을 멀리하신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기본적으로 영특하신 면이 있으시네요?”

“놀리십니까?”

“진심이에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그녀는 픽 웃다가도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검은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일 정도로 빤히, 그리고는 이내 내 손을 맞잡았다.

“지금의 한 황실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원소는 아예 현 황제 폐하를 경시하는 단계. 그 분위기는 점차 제후를 중심으로 천하에 퍼져나가고 있어요.”

“아니 그렇다고 그리 쉬이.”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어요. 조공이라고 해도 설마 한이라는 이름 자체를 버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미래도 있을 수 있다고 기억만 해두세요.”

진궁은 딱 거기까지 말하고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한이 몰락한다.

알고는 있었다. 애당초 나 같은 것이 황제 폐하를 구할 때부터, 아니면 그전부터. 언제부터인가 한이라는 이름은 점점 쇠퇴기를 걷고 있었다.

백성들은 아직 모르겠지.

그저 삶이 고되다고 한탄하며 삶을 비통할 뿐. 그렇지만 이렇게 너른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견문을 쌓아갈 때마다 보이는 것도 분명 존재했다.

“우선 조정에 등청하시거든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을 추천 드리어요. 조공도 장군께 섭섭히 대하지는 않을 것이니, 우선은 상황을 지켜만 보셔도 원하시는 고위직으로 나아가시기엔 충분할 거예요.”

“그렇겠죠?”

그 말에 수긍은 하였으나, 하필 한의 멸망과 관련하여 얘기를 듣고 나니 영 찝찝했다. 설마 조조가 그러겠느냐마는, 그런데도 왜 그녀를 올곧게 믿어주지 못하는 걸까.

이름만 바뀐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이런 나라도 이해할 수 있으니 조조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하나로 뭉친 것을 이름만 바꾼다고 그대로 모두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 그것도 모를 정도로 미련한 여자가 아니니까.

완성된 것을 부수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어렵다.

황금색 복장의 소녀가 눈에 아른거렸다.

“장군께서는 너무 깊게 생각하시지 마시옵고……, 죄송해요. 제가 좀 쓸데없는 얘기를 꺼낸 것 같네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알아둘 필요는 있는 얘기였네요.”

지금의 황실을 포함한 조정 전반에서 조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막연하게 조조가 황제를 휘두를 것은 짐작했지만, 그걸 타인의 입으로 듣고 나니 실감되는 부분.

“아, 오랜만에 식사나 하고 가시겠어요?”

진궁 선생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것처럼 말을 돌렸고, 나도 이 이상 머리 아프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주방으로 떠난 뒤.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드러누워 생각을 이었다. 기존 진궁 선생을 끌어들인 선택과 지금의 상황. 거기서 내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지금 내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짐짓 권력과 연결되지는 않는 부분.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면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권력.

그것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장군? 주무시나요?”

멍하던 정신이 확 깨어났다.

진궁 선생은 식탁을 들고서 빤히 이쪽을 내려다보는데, 그 시선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켰다.

“생각 좀 하느라고요. 그나저나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습니까? 다 먹을 수 있을…… 런지?”

뭐야, 이게 다.

웬 등딱지가. 저건 자라인가? 아니, 난 그냥 조촐하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시작부터 자라탕에, 저건 또 뭐야?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자, 많이 드시어요.”

“많이, 라고 하셔도….”

이걸 다?

게다가 뭔가 좀, 그. 속설이지만 건강에 좋다는 음식들로만 잔뜩 차려진 것 같은데. 아니 물론 전장에서 복귀하고 얼마 안 되었으니 몸의 건강을 챙겨 나쁠 건 없겠으나.

이거 정력에도 좋다고 소문난 음식들이 아닌가.

“안 드세요?”

너무 순수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

“잘 먹겠, 습니다.”

오해하지 말자. 건강에 좋은 음식과 정력에 좋다는 음식은 사실 굉장히 비슷하게 겹치는 경우도 많으니까. 이것도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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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소 늦었습니다마는...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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