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30화 (230/343)

23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예주 공방전 긴 전투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후방으로 놓친 장수군의 기병이 유일한 불안이었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는 성공리에 장수군의 보병을 물리기에는 성공한 셈.

“후우.”

투구를 벗고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바람에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 전장에 관련된 모든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하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느낌이었다.

“수고하셨어요.”

사마의가 손을 내밀어 내가 벗은 투구를 받았다.

“장료랑 여포는?”

“이미 출발시켰어요. 시간이 생각 외로 지체되어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거면 됐어.”

남은 장수군은 한나절 내내 본진을 공략하다가 이내 후퇴하였다. 근방에 진을 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말 그대로 아군이 뒤로 돌아들어 간 기병대를 추격하지 못하기 위해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조조한테 미리 연락이라도 할까?”

“저희의 연락보다는 아마 그 기병대를 포착하는 게 더 빠를걸요? 그것보다는 다른 걸 생각하셔야죠.”

사마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거?”

이미 아군의 기병을 전부 후방으로 돌렸다. 그 기병대의 움직임을 놓친 것은 뼈아팠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면 아군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셈이 아니던가.

“저들을 저대로 놓아둘 거에요?”

조막만 한 손이 저 먼 곳을 가리켰다.

“저들을 추격하자고?”

“기병을 놓친 것은 뼈아프지만, 반대로 그간 붙잡을 수 없었던 장수군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셈이에요. 그들에 대한 대처는 뒤로 물리고, 지금 상황 자체는 최고의 호기잖아요?”

장수군이 물러가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따라잡고자 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는 있었지만, 반대로 아군도 많이 지쳐있었다.

운이와 방삼이가 이끌고 온 병력도 봉화를 보고 반나절 내내 강행군을 거듭하였고, 본진을 지키던 아군 또한 지치기는 다를 바 없었다.

분명 사마의의 의견은 나쁘지 않았다.

당장 군을 틀어막기에 급급했고, 또 지금은 아군의 후방으로 침투한 적 기병대에 신경이 팔렸기에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성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빴다.

“군이 지쳤어.”

“지친 건 적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장수군이 근래 유격대를 운영하면서 얼마나 부대를 혹사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거기서 내 뒤를 지키던 서황이 입을 열었다.

“두령, 아직 한 번은 가능합니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분명 천재일우의 기회. 정면에서 부딪치기만 하면 아군이 승리하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처럼 병사가 지친 상황에서마저 상정했던 전투력이 나올까에 대한 의문도 공존했다.

병사도 사람이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는데 창을 내지를 수 있을까?

분명 상대도 지쳤기야 하겠지만, 당장 이번 전투에서 군을 계속 교대하며 차륜의 형세로 아군을 공략했기에 우리보다 지쳤을 거라고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건….”

이대로 급히 뒤를 쫓는다면 분명 붙잡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아군이 필요 이상의 피해를 각오해야만 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아저씨. 병사를 소중히 하는 건 장수의 미덕이죠. 그리고 아저씨의 가장 큰 강점이지만, 반대로 결단하실 때는 확실하게 하셔야 해요.”

“내가? 아낀다고?”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나 스스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을 이끌고 전장에 서서 사지에 내보는 처지에 병사를 아낀다고?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기에는 아직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있었다.

“두령.”

서황은 또렷하게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도 같은 의견이냐?”

“예, 두령.”

입맛이 썼다.

전쟁은 숫자놀음이 아니었다. 설령 적을 삼천 잡아낼 수 있더라도 아군의 피해가 천이라면 그걸 옳은 전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는 아저씨의 의향을 존중하지만, 지금만큼은 반드시 나가서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선택이라.

장군이라는 이들은 전부 이런 무게를 견뎌내야만 했는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불편한 의자였고, 내게 맞는 옷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편장군 전호.

내게 붙기에는 너무 거창한 칭호였다.

“…전군에 명을 내려라.”

지친 병사에게 하기엔 다소 가혹한 명령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사마의의 말마따나 지금 이상의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

“출진이다. 운이에게도 사람을 보내두고.”

불편한 의자의 감촉.

그것을 감내하겠노라고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예전처럼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는 것은 분명 마음이 편하겠지.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상황을 주도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내가 주도하는 자리까지 올라야 했다.

조조의 독단을 견제하겠노라고 다짐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이런 거추장스러운 감투를 쓰고 전장에 선 것이었다.

“매복에 주의할 필요는?”

“야간이라 걱정되는 감은 있지만, 그 근방에 이렇다 할 협소한 가도는 없어요. 산간을 타고 후퇴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대군으로 산을 탈 수는 없잖아요?”

사마의의 말을 끝으로 팔을 빙글 돌렸다.

아직 쉴 때가 아니었다.

* * *

가후는 장천과 함께 군을 이끌고 퇴각하고 있었다.

온종일 치러진 긴 전쟁을 끝. 돌아가는 병사들에게서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고, 심지어 장천 또한 종일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른 탓에 전차에 몸을 기대고 쓰러지다시피 했다.

이 정도로 시간을 벌었으니 장수가 적 후방의 보급기지를 초토화하고 예주로 나아갈 시간을 번 셈이었는데, 이제 군을 최대한 온존하면서 다음 일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생. 이걸로 아버님은 괜찮겠지요?”

“예, 별 탈 없으실 겁니다.”

가후가 알아본 바로는 조조군의 여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여남에만 2만에서 3만. 영천 곤양에서 아군과 마주한 병력도 일만이었고, 당장 서주로 배치한 병력도 오천 이상.

거기에 황도를 건설하고 있으니 거기에 빠져나갈 인력과 물자도 상당한 데다가, 기본적으로 황제가 거주하는 황도에는 못해도 수천의 상주군을 배치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미 예주에 그리 방어선을 쳐둔 상황에서 그 후방에까지 군을 배치한다? 오히려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일단 도련님께서는 걱정을 내려놓으시고 안정을 취하시지요. 저희도 복귀하는 즉시 바로 군을 재편해야 하니까요.”

“……알겠어요.”

장수가 복귀하는 즉시 흐트러진 예주 방위선에 동시다발적인 공세를 가해야만 했다. 사기가 바닥을 칠 적을 상대로 대회전을 건다.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

후열에부터 시작된 소란이 군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이윽고 선행하고 있던 가후와 장천에게까지 보고되니.

“후, 후방! 적군의 모습이 보입니다!!”

“서, 선생!!”

“쯧.”

이 부분에서는 가후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걱정하던 부분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상대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이니 추격대가 붙지 않기만을 바랐으나, 전장에서는 가장 바라지 않던 것이 가장 곤란한 상황에 찾아오는 법이었다.

“예정대로 하시지요.”

“하, 하지만 그래서는 호거아가.”

병력 천으로 후방을 지키고 본대는 퇴각한다. 이미 그것을 위해 병력을 재편하여 둔 상황이었다.

단지 병력을 남기기만 해선 의미가 없었다.

누군가는 뒤에 남아 그 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적의 공세를 방어해야만 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게 가능할 정도의 장수는 많지 않았다.

“나, 괜찮음.”

구릿빛으로 탄 피부.

그녀는 이민족과 한족의 피가 섞인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병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것을 장제가 포섭했고, 그 뒤를 이어 장수군에서까지 활약하던 고참이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이런 역할에 적합했다.

어떤 병사라도 사지에 던져져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억지로라도 지휘할 우두머리가 필요했는데, 그녀는 이 군에서 몇 안 되는 장교로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호거아!”

“나, 괜찮아. 잘 부탁.”

“뒤는 맡기겠습니다.”

계획에 있던 일이라지만 입맛이 썼다.

여기서 호거아가 잘 탈출해준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녀까지 죽는다면 장수군의 입장에서도 꽤 큰 피해를 본 셈.

호거아는 제 금발을 뒤로 묶고는 픽 웃었다.

“도련님, 표정 펴.”

그녀는 애당초 주변에서 핍박받던 사람이었다.

이민족, 그중에서도 특히 외형적으로 독특한 특징이 두드러진 탓에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여인이었다.

그랬던 그녀를 받아준 것이 장제와 장수였다.

“나, 한족 아냐. 그래도.”

가슴팍을 툭툭 치며 빙긋.

“은혜 알아.”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장천이 고개를 돌렸고, 가후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출진을 배웅했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란 뒤, 가후는 다시 본대를 이끌고 진군속도를 높였다.

조조군의 전투력은 장수군 이상.

여기서 뒤를 잡히면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호거아가 자진하여 후열을 맡아준 이상, 그 병력은 필요한 희생이라 여기고 계속 나아가야만 했다.

“선생,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

“지금까지는요.”

여기서 살아남은 병력만 하여도 오천 이상.

거기에 이번 전공을 빌미로 형주에서 지원군을 받는다면 예주 방어선의 군을 능가할 머릿수를 모을 수 있었다. 그 뒤에 흐트러진 후방을 뒤로한 방어선에 양동을 걸고 천천히 적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모든 건 장수의 귀환에 걸린 일.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쳤고, 유표에게도 이미 사람을 보내둔 시점에서 더 손 쓸 방법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기다릴 수밖에.

“잘 되기를 빌어야지요.”

회심의 일격.

그 끝을 기다리며 장수군은 예주에서 퇴각했다.

* * *

“유공. 정말 오래간만에 뵙네요?”

“…그러네요.”

진소연과 유비가 만났다.

예전의 아군, 지금은 아마 적.

그 둘의 만남에 장비는 이를 빠득 갈았다. 황제의 깃발을 내걸고 진군한 군의 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태평한 얼굴. 당장 누이가 명령만 내린다면 저 면상을 갈아버릴 자신이 있었다.

관우는 그런 장비의 어깨를 슬쩍 눌렀다.

“어우,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요? 다들 웃어요!”

소연의 뒤에 선 곽가는 연달아 술을 퍼마시며 낄낄 웃었다. 황제의 대리 장군이 이끄는 군에서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한 모습.

그러나 사실 그게 맞았다.

저들은 황실이 공인한 대리가 아니었으니까.

“이번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게다가 폐하의 깃발…. 소연 장군도 전과 몰라뵐 정도로 바뀌셨네요.”

“폐하께서 친히 하사하신 걸 어찌 거절하겠나요?”

뻔뻔하기는.

그 문답을 듣던 제갈근이 속으로 수십, 수백 번을 욕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사? 그 어떠한 황제도 이리 사사로운 일에 대리 장군을 내세운 적이 없었다.

어린 황제를 세워 이리도 횡포를 부리는가.

반면 소연은 빙긋 웃으며 유비를 바라보았다. 유비 또한 웃으며 그것을 받아내니, 사정을 모르고 보면 정말 친근한 두 사람이 만난 것처럼도 보였다.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알다시피 공무로 나온 일. 황제 폐하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까요?”

그녀는 픽 웃으며 검을 뽑았다.

순간 장비가 움찔하였으나 관우가 그 어깨를 힘껏 억눌렀고, 그러는 사이에 소연은 그 칼끝을 유비에게 돌리며 입술을 뗐다.

“서주목 유비는 사사로운 병력의 이동을 삼가라. 이 드넓은 천하의 대지 모두가 황제 폐하의 것임을 알고, 경거망동하지 말지어다.”

“별가.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잖아요.”

곽가의 핀잔에 소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가?”

“아무렴요? 요컨대, 서주의 여러분? 당장 병력 해산하고 서주나 잘 관리해라, 이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나요?”

저항하지 마라.

불필요한 국지적 도발을 걸지 마라.

반항하지 마라.

항거하지 마라.

잠자코 숨죽이며 살아가라.

“할 말은 많지만요. 솔직히 저도 여기까지 나오는 거 저엉말 힘들거든요? 별가도 좀, 뭐라고 해봐요. 자꾸 고개 쳐드는 잡배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에요?”

“얘, 말조심하렴.”

소연은 그리 말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잡배라는 말에 순간 유비가 움찔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유비는 온화하게 웃는 얼굴로 천천히 몸을 수그렸다.

“누이!!”

오른쪽 무릎이 먼저.

그리고 이어 왼쪽 무릎마저 꿇고 고개를 숙인다.

“명, 받들겠나이다.”

“…허어.”

그 모습에 곽가는 헛바람을 삼켰다.

이렇게까지 도발하는데도 웃는 낯짝 하나도 바꾸질 않아? 곽가는 그 모습에 살짝 치를 떨며 소연의 뒤로 물러났다.

“뭐, 그러면 공무는 여기까지 하죠. 황제 폐하의 의중, 잘 헤아리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 회포나 좀 풀까요?”

“이, 이익!!”

장비는 아예 얼굴까지 시뻘게졌지만, 관우의 억누름에 애써 참으며 이를 벅벅 갈았다. 제갈근은 아예 눈을 질끈 감은 상황에서 오로지 유비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빙긋 웃었다.

“찻잎이 입맛에 맞으실는지 모르겠네요.”

유비는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정말 뼈아픈 수순이었지만, 그렇다 하여도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적에게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유비는 웃을 수 있었다.

소연은 그 웃음이 정말 싫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슬슬 이 파트도 끝이 다가오네요.

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