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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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더 진군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기동력과 움직임을 중시하기 위해 무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현지보급으로 약탈하여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 발목이 잡혀버렸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다섯 곳의 촌을 털었고 적의 보급기지도 무력화시키고 짓밟았다.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문제도 아니었기에 딱 챙길 수 있는 것들만 챙기고 계속 진군을 거듭했다.
여기서 문제.
지나가면서 본 셋이 넘는 촌이 전부 비워진 것은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가? 촌의 농지는 전부 불살라져 있었고, 건물을 뒤져도 식량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는 상황.
“…장군.”
“알고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연기의 매캐한 냄새가 채 빠지지 않았으니 백성들이 빠져나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닐 터.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군의 움직임보다 적의 대처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앞지른 것이었다.
이 작전은 신속이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몰아치듯 바로 달려온 것인데, 이 움직임이라면 누군가가 미리 관리하여 손을 뻗치고 있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직 버틸 군량은 충분합니다. 이대로 빠져나가기까지 배급만 줄인다면 충분히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놈아. 지금 그게 문제더냐?”
이 작전의 요지는 간단했다.
예주 방어선의 후방을 완전히 박살 낸다. 예주를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조조의 근간 자체를 흔드는 것이 목표라고 가후가 말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군이 살아가?
그건 고무적인 일이겠지.
하지만 여기까지 무리하여 진입한 이유를 떠올린다면, 작금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건 확실히 말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대체 누구냐.
그 누구도 예주 방어선을 무시하고 곧장 예주로 달려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간 아군이 보인 움직임도 방어선에 혼동을 주기 위한 것. 당장 장수만 하여도 가후가 상세한 전략을 말하기 전까지는 방어선을 뚫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존 전제에 없던 변수.
여기서 장수는 선택해야만 했다. 예정된 경로로 계속 나아가던지, 혹은 방향을 틀어서라도 주변의 촌락을 찾아 짓밟음으로써 기존 전제를 지킬 것인지.
그는 고민했다.
가후는 이 전략 역시 장기적으로 예주 방어선을 완벽히 궤멸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인다면 아마 전제 자체를 대폭 수정해야만 할 일.
“…기수를 틀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흘.
이미 이틀가량의 시간이 경과한 이상,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이틀에 불과했다. 방어선에서 가후가 힘을 쓴다 하여도 언젠가는 여포를 필두로 한 기병이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은 뻔한 일.
여기서 조금만 안쪽으로.
그렇게 부대를 옮겨 조금이라도 예주에 상처를 내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적의 보급기지를 부순 것 외에는 어떠한 전공도 남지 않고, 오히려 아군이 피해만 보는 셈.
어쩔 수 없노라고 한숨을 내쉰 장수.
“조금만, 이 위로 가면 아마 겹이라고 하는 현이 있을 거다. 거기만. 딱 거기만 털고 바로 빠진다.”
“예, 장군.”
그간 들인 공을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임무였다. 그렇기에 장수는 조금 과감한, 당초에 계획되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군을 바라보는 시선.
“군이 북상한다.”
“독우께서 하신 말이 맞았다.”
“봉화를 피워라.”
장수군이 거침없이 북상하는 시점에 산등성이에서는 연기가 올라왔다. 뿌옇게 하늘로 솟는 연기는 분명 푸른 하늘에 한 줄기 선명하게 비추기 충분했다.
그 연기를 보고 다음 등성이에서, 또 다음 등성이로.
봉화의 행렬은 쭉 이어졌다.
“…그냥 갔으면 살았을 것을.”
그리고 최종적으로 겹현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여인이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화가 거듭하여 이어지는 시각을 계산했을 때, 아직 장수군이 여기에 도착하려면 수 시간은 걸릴 터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공.”
“이 이통, 독우께 부탁받으니 감히 거절치를 못하겠소이다. 내 아직 조조를 따르는 몸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선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본디 여남에서 크게 세력을 일구었던 이통은 조조가 황제를 보필하여 예주까지 점거한 뒤로 세력을 이끌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을 품은 것이 현 영천군의 독우.
그녀는 이통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었다.
“그러면 백성들의 이주를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요!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차피 장수라는 작자가 이곳에 온다면 다들 죽을 목숨. 그에 따른 보상만 있다면 그들도 만족하겠지.”
“그건 조공께 꼭 말씀 올리지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통은 제 수하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모여있는 겹현의 백성들을 향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후방에서 할 수 있는 준비를 다하며 사람을 모으고 현마다 연결고리를 이어 맺어둔 것이 지금 여기서 그 빛을 발했다.
여기서 장수군을 격퇴한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여남에 조인이 주둔하며 밀려났던 이통과 만났던 것이 천운. 그리하여 필요한 인력을 받고 영천의 현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이제 시간을 들여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 * *
장수는 군을 재촉하여 더욱 박차를 가하였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겹현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간 지나오던 현마저 사람이 없어 불안하였는데, 현의 치소가 있는 겹현만은 여전히 불길이 살아있었다.
“전군, 이대로 진격!! 전부 다 짓밟자!!”
곧 해가 떨어진다.
심야에는 기병을 이끌기도 힘들었고, 오늘 하루는 이곳을 점거하고 다음 날 바로 하천을 타고 이동하여 형주로 돌아가면 되었다.
군마의 말발굽 소리가 대지에 울린다.
저 멀리에서는 이미 도망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보였고, 장수는 그것을 추격하는 한편으로는 병사들을 따로 빼 현을 점령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났을 무렵.
“관청에 남은 관료들은 없었습니다. 재물 같은 것은 고스란히 남은 거로 보아, 아군이 등장하자마자 도망친 게 아닐까요?”
“덕분에 쉬이 떨구었으니 되었다.”
현이라고 해도 영천에서 여수와 이어지는 하천가에 자리한 현. 제법 목책 등이 두터웠기에 죽기 살기로 버텼다면 말에서 내려 때아닌 백병전을 벌일 판국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도망치고 백성들이 그 뒤를 이은 것이 나을 수도 있는 일. 지금은 이런 곳에서 힘을 빼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우선 건물을 병사들에게 배분하기로 하고, 다음날에는 바로 불사르고 떠난다. 전의 일례도 있으니 말도 안으로 최대한 모으고.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장군.”
만약을 대비하여 부족함은 없었다.
그때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노라 다짐한 장수는 일부러 주변에 파수병도 다수 배치하며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다.
그리고 심야.
“시간이 되었네요.”
“경비는 꽤 삼엄하군.”
이통은 그녀의 말을 받으며 산등성에 올라 쭉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 바깥으로도 돌아다니는 파수꾼들이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 간이 초소를 설치하여 횃불을 잔뜩 밝혀둔 상황.
심야를 틈탄 기습을 가하기에는 적의 방비가 너무 훌륭했다. 산의 능선을 타고 바로 뛰어내려 기습한다고 하여도 이래서야 바로 덜미를 붙잡힐 확률도 높은 것.
“독우 선생. 정말 가능하겠소?”
그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기동력을 잃은 기병은 걸어 다니는 병사와 다를 바가 없지요. 특히나 적은 야습을 주의하여 안 그래도 병력에 비해 좁을 땅에 말까지 전부 모아두었습니다.”
야습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힘 대 힘의 대결이라면?
“아군의 전력이 보병뿐이라는 것도 이런 전장에서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빽빽하게 밀집되어있던 장수군 입장에서 목책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입구는 셋뿐인데, 빠른 대응이 가능할까요?”
“가두고 패겠다는 소리요?”
다소 속된 말이지만 딱 적절한 표현이었다.
“과히 밀집된 부대에 편재가 통할 일도 없지요. 삽시간에 목책을 포위하고 출입구 틀어막습니다. 거기서 입구를 막고 그들을 둘러싼 목책에 불을 지른다면….”
“혼비백산이겠지. 나는 독우만 믿겠소.”
“그 믿음과 협조에 보답할 장소는 마련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통 장군의 역량에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실망하진 않으실 거요.”
이통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 일어나는 이들의 숫자만 천하고도 오백. 장수군의 숫자와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전장을 마련하였다.
이대로 능성을 따라 내려가면 곧장 나타나는 현의 목책. 바로 포위할 수만 있다면 장수군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빠른 포위도 가능했다.
“자, 가자! 감히 예주 땅을 밟고 무고한 백성을 학살한 죗값, 우리가 톡톡히 치르게 해줘야 하지 않겠냐!!”
이통을 선두로 하여 그를 따르는 일파가 삽시간에 내달리며 현의 목책 주변을 포위하고자 하였다.
남겨진 그녀는 홀로 산에 남아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첫날의 야습에 피해를 본 장수는 군을 배치함에서 야습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넓지도 않은 현에 병사와 말 모두를 밀어 넣은 것이 그 패착.
보이지 않는 적을 경계하였던가.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겠지.”
전선에는 여전히 전호의 군이 형주의 군과 대치하고 있을 상황이었다. 그녀는 미리 전장을 살피며 후방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전선을 살필 시야를 잃어버렸다.
부디 승전하시기를.
그러는 사이, 저 멀리에서 이통의 군과 장수군의 파수병이 마주쳤다.
그는 정말 삽시간에 대치한 파수병을 포함하여 경계를 위해 배치된 병력 모두를 휩쓸고, 즉각 사전에 약속된 대로 병력을 나열해 진을 포위하며 목책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장수를 잡을 수 있다면 최적.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적 병력의 태반은 이 자리에서 죽어 나갈 것이 분명했기에 상관은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적장의 목이 아니라 예주에 적을 침입시켰다는 실책을 덮는 것이었으니까.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사전에 기름을 먹여둔 목책은 정말 삽시간에 불이 번져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으로 불길을 뚫을 수 없는 이상, 나올 수 있는 곳은 딱 세 곳.
그곳을 틀어막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제 남은 건….”
형주와 서주, 그리고 양주인가.
그녀는 손가락을 비비며 전선을 바라보았다. 여남을 지키는 장수가 조인인 이상, 가령 양주의 원술이 움직이더라도 버틸 수 있었다.
서주는 진소연이 출발하였다고 하니 걱정은 없을 것이고, 남은 것은 형주의 군인데 회심의 기습이라 여겨지는 장수군의 진입을 여기서 차단하였으니 문제는 없을 터.
모든 게 틀에 짜인 것처럼 흘러갔다.
“이게 시대의 흐름일까.”
마치 모든 게 조조군의 승리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다. 영천군의 독우로 그녀가 발령된 것도 전부 이날, 이때를 위한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
“아니, 아니지.”
그런 생각을 잠시 머리에서 지웠다.
그녀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모든 건 스스로 개척하여 이뤄내는 영광이었고, 앞으로의 일도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받아 흘러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조조는 황제를 옹립했다.
이 국면을 틀어막고 안정에 접어들 수만 있다면 장차 조조를 위협하는 적은 없어질 터였다. 그때 과연 조조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녀는 그것만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전호 성주, 이제는 장군님이셨던가. 그분이 부디 조조에게 밀리지 않고 잘 버텨내셔야 할 것인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매캐한 연기가 흐르고 흘러 그녀의 코까지 닿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이 산을 타고 울려 퍼지는 상황.
여기서는 몇천이나 죽을런가.
순간 저 멀리서 기병의 무리가 기어이 포위망을 벗어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순식간. 그 뒤를 다른 이들이 잇기 전에 다시 봉합하였으니, 아마 이대로 전쟁은 끝날 것으로 보였다.
“탈출한 건 장수이려나.”
죽였으면 전황이 조금 더 편하게 흐를 수 있었겠지만, 그것까지 바라기에는 욕심이었을까. 그녀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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