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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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호가 이끄는 군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하여 고립시키면 끝.
그렇게 생각했던 가후의 한 가지 오판.
“…강하네.”
포위 자체도 적의 발걸음을 제압할 수 있어야 성립하는 것. 진군을 억제하면서 후방을 비롯하여 가둘 수 있어야 비로소 포위라는 개념도 성립하는 것이었다.
말 위에 올라 선두에 서서 거침없이 깃창을 휘두르는 무장을 필두로 하여 달리는 기마의 돌격은 확실히 특출났다. 여포와 겨루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그걸 고려하더라도 정보가 너무 부족했던 상대.
실적이 많은 이도 아니었기에 다소 경시했다.
그렇기에 중앙의 군을 되려 물렀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며 잘못된 판단이라고 깨닫고 후회하였다.
물러나는 군을 사정없이 짓밟는 기병대. 반전하여 재차 가로막지만, 그 군의 돌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검은 깃발이 펄럭인다.
조조군의 상징인 그 검은 깃발은 마치 폭풍과도 같아, 대지를 가르며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짓밟았다. 그것은 기수가 특출나기도 했지만, 선두에서 길을 여는 남자의 강함이기도 했다.
잘 육성된 기마 부대의 돌격은 재앙이다.
“후방의 군을 돌려, 막아내야 해.”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한 기마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포위하고자 끌어들였던 것이 오히려 양 떼 사이에 늑대를 푼 꼴이 되어버렸다.
반면 전호는 거침없이 말에 박차를 가했다.
“전진, 계속 내 등만 쫓아라!”
깃창을 내질러 가로막는 적을 찌르고 옆에서 창을 견주던 병사는 청강검으로 베어낸다. 아군이 출격하자마자 슬금슬금 물러나는 적을 보고 의도까지는 파악했지만, 그런데도 전호는 구태여 그 안으로 돌격했다.
오히려 돌격할 거리를 주면 좋았다.
아군을 포위하겠다고 추진력이 붙을 거리를 내준다면 나쁠 게 없었다. 이대로 돌격, 또 돌격을 감행하며 아군 진영에 들러붙은 장수군을 몰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손에 쥔 깃창을 치켜들었다.
이제 기마를 가로막던 적마저 혼비백산하여 물러나기 시작했을 때. 그때 비로소 전장의 분위기를 역전시켰노라고 여긴 전호는 몸을 틀며 말머리를 살짝 왼쪽으로 틀었다.
휘젓는다.
여포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선두에 선 무장이 굳세어야 뒤를 따르는 병사도 제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기마대의 돌격이란 거구의 말을 몰고 달려들어 적이 막아설 생각조차 못 하게 하여야 비로소 성공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말이라도 창에 찔리면 죽는다.
병사가 죽음을 각오하고 말을 가로막아 창을 내지른다면 기병이라도 당해낼 수가 없으니. 그리하여 기병은 언제나 압도적인 기백과 기세로 적을 짓눌러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백은 선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달려라, 달려! 멈추면 죽으나 계속 나아가면 산다!! 이대로 계속 짓밟고 분쇄하여, 내 앞에 고개 치켜세운 모든 것들을 용서하지 마라!”
대륙 끝까지 나아갈 기세로 달려라.
내달려라.
여기서 한 번 적을 흩어버리고 사기를 낮추면 차후 도착할 조운과 장료의 군과도 쉬이 호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전호는 슬슬 무겁다 느껴지기 시작한 깃창을 계속 휘두르며 검은 군기를 펄럭였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으며, 대륙 끝까지 나아갈 기세를 유지한다. 전호가 이끈 기병의 숫자는 적었고, 그렇기에 한 번 멈추면 바로 죽음과도 직결했다.
그러니 계속 박차를 가한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하여.
* * *
서주의 군은 국경에서 연주와 마주하고 있었다.
한 번 국경을 넘었던 하후돈과 하후연의 군을 물린 것은 좋지만, 당장 그 군은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다 죽이는 게 낫지 않았나?”
장비는 그게 불만이었다.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라면 다 죽이는 것이 옳았다. 살려둔 적병은 곧 아군을 죽일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법.
그것이 전쟁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렇다고 조조와 전면전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싸우게 될 상대인데.”
제갈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만 끌어서, 정작 나중에 조조와 전면전을 벌이게 될 때의 승산을 확신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공존하고 있었다.
“차라리 조조 그년의 상황이 복잡해진 지금 치는 게 적기 아니냐는 건데. 누이는 어떻게 생각해. 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호응하는 게 옳다고 봐.”
“…그러기엔 아직 수가 모자란단다.”
유비는 시선을 살짝 틀었다.
저 멀리 양주. 그곳에는 아직 힘을 모으고 있는 원술이 있었다. 이 조조를 압박하는 포위망은 유표도 아니고, 하물며 유비 본인도 아닌 원술이 핵심이었다.
그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조조에게 눈도장을 찍혀선 안 됐다. 적어도 원술이라는 거인이 발걸음을 시작하기 전까지 조조와 대적할 수가 없는 게 현실.
딱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서주의 국경을 넘은 조조군을 포위하여 치중을 전부 불살랐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을 끊지는 않았으니, 혹여 책잡힌다 하더라도 항변할 말이 있었다.
“일단은 기다리자꾸나.”
아직 조조를 포위할 요소가 전부 모이지 않았다.
유표 또한 여전히 형주에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수라는 이가 행동했다고 거기에 호응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지금 상황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조조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고, 원술과 유표 또한 작금의 상황에서 눈치를 보며 언제든 칼을 빼 들 준비를 마친 상황.
장수군의 행방에 따라 누군가는 분명 움직일 터. 그러니 그때까지 서주는 계속 시선을 끄는 정도에서 멈추는 게 옳다고 내다보았다.
“유공께서 하시는 말씀이 맞아요. 우선 군을 물리고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조조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으니까요.”
제갈근 또한 그것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의 기존 호족과 명사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지금 이 기회를 살려 조조를 치지 않고 어떻게 연주와 예주를 꺾겠냐며 항의하던 그들을 필사적으로 억누른 것도 제갈근이었다.
그녀는 아직 조조와 싸울 시기가 아니라고 내다보았다. 우선 국경 인근에 진을 치고 대기하며, 혹여라도 서주 땅을 밟는 조조군이 있다면 최대한 인명피해가 나지 않는 선에서 물리친다.
이대로 장수군, 이어 유표와 원술의 움직임을 살피며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그만인 남는 장사.
그렇게 생각할 즘이었다.
저 멀리서 관우가 말을 몰며 달려왔다. 전선을 지키며 적 동태를 살피던 관우가 달려오는 것에 유비는 내심 조조군이 다시 움직였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말에서 내린 관우는 바로 유비에게 향했다.
“어, 언니. 조조군이 다시 움직였어요.”
평소 그녀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
하지만 이미 준비는 마쳐두었다. 하후돈이 이끌던 조조군을 상대할 때는 미처 준비가 부족하여 매복하는 등 갖은 책략을 동원했지만, 근래 들어서 막 요새를 완공한 상황.
오천이 아니라 일만 이상이라고 하여도 버틸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이렇게 조조군을 묶어만 두어도 아군의 승리.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인데.
“누님은 또 왜 그리 당황하시고 그래?”
장비가 유비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조조군의 규모는 오천. 혹여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조조군의 전력이 서주로 향했다고 해도 이만 정도일 것인데, 그 정도라면 막을 수 있겠다고 말한 것이 다름 아닌 관우 본인이었다.
“그, 깃발이….”
관우는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금색 깃발이었습니다.”
규모는 전과 같은 오천 정도였지만, 그들을 상징하는 깃발이 바뀌었다. 조조군의 상징은 언제나 검은 깃발이었는데, 이번만큼은 황금색으로 수놓은 깃발을 내건 것.
“대장기의 이름은?”
“……유씨였습니다.”
여기에서 제갈근이 이를 빠득 갈았다.
황제의 깃발을 내걸고 진군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이는 이 자리에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그것은 오롯이 황제와 황실의 상징. 그것이 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황제 혹은 황제의 대리 장군이 나타났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제후 간의 전쟁에 나올 물건이 아니었다.
애당초 먼저 서주의 국경을 넘은 것도 조조군.
아무리 황제를 모시고 있다지만 그녀도 결국 일개 제후. 이건 조조와 서주의 갈등일 뿐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친정을 상징하는 황가의 깃발을 내건 전례가 없었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로막으면 역적이에요.”
막을 수 없다.
아무리 황실의 권위가 떨어졌다지만, 그 존재감만은 여전했다. 게다가 유비는 본인을 유씨 황족을 자처하는 인물.
그런 이가 황제의 친정을 가로막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조조는 황실을 능멸하기로 정했나 보네요.”
유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허리춤의 검을 풀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관우는 그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고, 장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열라면 열어야지, 어떡하겠어요?”
그녀는 웃고 있었다.
여전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소연은 저 멀리 군기를 내리고 문을 연 유비군의 요새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애당초 황족이라 자칭하는 유비를 무릎 꿇리기 위해 다소 무리하여서라도 군기를 빌려온 것이었으니 그도 당연했다.
“별가, 그거 아세요?”
“뭔데 그러니?”
곽가는 소연의 질문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별가는 정말 악마예요.”
“어머. 칭찬 고마워.”
이 천하 난세에서 일반인이 어떻게 살아남으랴.
황실의 상징을 빌리는 과정에서 잡음은 있었지만, 반대로 효과 또한 확실했다. 임시로나마 황제의 대리 장군이 된 것이니 천하 다른 제후라면 몰라도 유비는 이것에 거역하지 못한다.
물론 유비를 죽일 수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연책.
그와 동시에 유비를 무릎 꿇리며 서주에서의 준동을 억제하는 작업에 불과했다. 반역자로 선언한다면 죽일 명분이 충분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유비 또한 목숨을 도외시하고 싸우려 들 터.
게다가 조조의 입맛에 맞춰 쉬이 반역자로 몰아간다면 장차 그 어떤 제후가 황제의 칙서를 인정할까.
그러니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덕분에 조공께서는 또 한동안 황실에게 시달려야만 하겠네요. 안 그래도 적이 많은데, 황제와도 이렇게 적대할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할 상대야.”
유협과는 오래갈 수 없었다.
언젠가는 황제 본연의 권리를 찾으려 들 터. 그때가 된다면 분명 황제와 조조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 싸움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러라고 있는 군주요, 주군이 아니니? 이럴 때 방패막이라도 되어주어야 우리 같은 참모의 책략도 빛을 발하는 거잖아.”
“황실에 대한 존중과 충성은요?”
소연은 곽가의 그 질문에 픽 웃었다.
정작 묻는 곽가 본인도 황실의 안위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을 거면서. 그녀가 아는 곽가는 황실에 충성하며 한에 충성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곽가는 어디까지나 조조에게 충성하는 인물.
그러니 이 질문은 떠보는 것이었다.
“그러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천하를 안정케 하면 그게 곧 충성 아니겠니?”
설령 주인의 이름이 달라지더라도.
소연은 사실 한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 언젠가는 무너질 고인 물이며, 한이라는 이름은 언젠가 반드시 갈아치워야 할 잔여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이 세계에 떨어지고 전호와 만나 밑바닥에서 사는 이들의 삶을 보았을 때부터 한에 대해 어떠한 감상도 품지 않았다.
애당초 이 나라에서 태어난 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이 제국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은 반드시 갈아치워야 할 찌꺼기 정도에 불과했다.
곽가는 그런 소연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별가도 참 특이하네요.”
“그런 너는 다르니?”
이미 곽가라는 인물의 성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되물었다. 곽가는 그런 그녀의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고민, 이윽고 허리춤에 찬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술을 한 모금, 두 모금.
하여 호리병에서 입을 뗀 곽가가 웃는다.
“책사라면 응당 특이한 족속 아니겠나요?”
그 말에는 소연도 살포시 웃었다.
그 지략으로 상대를 속이고 희롱하며, 책상에 앉아 책략을 고안함으로 무수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들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곽가는 진성 책사였다.
“그러네. 그게 맞지.”
그리고 진소연 본인도 어딘가 망가져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이질적인 변모에도 아무런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그럴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성장의 비약...
그런 건 있을 수 없지만, 사마의는 얼른 자랐으면 좋겠네요.
아니, 다른 의미는 아니고 그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