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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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진을 향해 포진한 적. 그간 계속 아군을 피해 안으로만 도망치던 적이 대거 나열하여 아군 본진을 마주하고 나란히 섰다.
“어딘가 했더니, 역시 본진이었나.”
우습지.
아군의 전력을 우습게 보았던가. 혹여 본진을 공략하면 함락시킬 수 있을 거라고? 물론 군을 양쪽으로 나누어 총 병력 자체야 적에게 밀리기는 했다.
“아저씨.”
“알고 있다.”
여기서는 지키기만 해도 그만이었다.
어차피 운이의 군과 장료의 군 모두 반나절 안에 본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설마 아무런 준비도 없이 군을 그저 나누어만 두었을 거라고?
저 멀리서 꽤 많은 숫자의 기마가 선봉에 서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받치는 보병 또한 잘 보였다.
하면 여기서 총력전일까. 이제까지 휘둘러 병력을 분산시키고 본진에 일점사를 가하겠다고?
“서황! 전열 보병을 맡긴다. 준비해라.”
“예, 두령!”
아군의 진은 그 뒤로도 몇 번의 보수를 거쳐 어지간한 성과 맞먹을 정도로 두터이 쌓아 올렸다. 비록 해자를 파지도 못했고 뒷부분은 여전히 노출된 그대로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반나절은 우습게 버틸 수 있었다.
“봉화대에 불을 붙여라.”
병력의 숫자는 얼추 가늠하여도 일만 언저리. 대장기를 포함하여 그간 보았던 장수군 소속 깃발이 전부 올라간 것을 보아 여기가 그들이 내건 총력전의 시작이었다.
이러면 우리야 고맙지.
본진에서 시간만 벌고 전력을 모은다면 맞대결에선 질 수가 없었다. 상대의 기병 전력이 더 많아? 아군의 기병은 여포, 장료가 이끄는 정예 중 정예였다.
적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기병?
공성전에 대놓고 기병을 앞장세운다고? 저들이 본래 기병 전력에 특화된 변방의 군이라는 건 알았지만, 기병을 선두로 하여 진을 공격하는 게 말이나 되던가.
혹여 아군의 뒤로 돌아들어 갈 생각인가?
그것도 문제는 없었다.
후방에는 이미 몇 겹으로 녹각을 쌓아두었다. 기마가 몇천이 몰려온다고 하여도 녹록하게 통과시켜줄 정도로 아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대로 군을 정비한다. 후방의 녹각에도 군을 배치하고 이대로 버티면서 아군의 합류를 기다리면, 그거야말로 필승이지.”
그간 사냥감이 제 처지도 잊고 날뛰었던가.
이제 그것을 배로 갚아준다.
이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아군이 먼저 합류하느냐, 본진이 먼저 함락당하느냐. 그 모든 것이 여기서 결판날 따름이었다.
적의 전략은 나름 훌륭했다.
하지만 사마의도 그렇고 나 또한 그들이 어느 한 점을 노리리라고 예상하지 못할 턱이 없었다.
장료와 여포의 군은 기병, 여차하면 충분히 빠져나올 기동력이 있었다. 운이의 부대는 보병 위주지만 상대적으로 아군과 밀접한 편이어서 지원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하면 함락당하여 큰 타격을 입을 곳은 어딘가.
“노릴 곳은 본진밖에 없겠지.”
“아저씨, 와요!”
고개를 끄덕이고 대장기를 들었다.
“궁수, 시위를 걸어라!!”
적 수천의 기병이 무서운 기세로 아군 진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정면으로 들어오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분명 양 측면으로 빠져 후방을 노릴 것인데, 그전까지 최대한의 피해를 주어야 했다.
그렇게 궁수를 준비시킨 상황.
적의 기병이 반으로 갈라져 아군의 진영을 피해 돌아갔다. 문제는 그 병력이 너무 멀리서부터 찢어져 활로 위협할 사정거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쯧, 역시 경계는 하는가.
“궁수는 대기. 녹각에 신호를 보내라.”
그러는 사이 기병 뒤의 보병대가 아군 본진의 정면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기병을 보좌하여 몇 정도는 후방으로 돌아 뛸 것을 예상했는데.
문제는 아니었다.
기병만으로 녹각을 뚫는다면 적의 부담이 커질 뿐. 아군은 이대로 방비를 굳히고 적을 맞상대하면 그만이었다.
적의 보병을 바라보며 천천히 시기를 재고 있었다.
효시는 너무 빨라도 안 됐고, 반대로 너무 늦어도 곤란했다. 우선은 천천히. 마른 침을 삼키며 계속 전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두령, 적 기병이….”
“뭔데?”
고개를 돌리니 서황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켰다.
“전부…, 빠져나갑니다.”
양 갈래로 찢어진 적 선행 기병대가 그대로 합치지 않고 쭉 아군 본진의 뒤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군 본진을 무시하고 그 뒤편으로.
“아저씨!!”
“봉화를 끄, …아니지.”
늦었다.
혹시나 아군 방어선이 뚫릴 상황도 상정하고는 있었다. 문제는 그 봉화 자체도 이렇게 틀어막힌 상황마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으니.
이미 본진으로 합류하라는 봉화가 켜진 시점에서 다른 쪽 봉화를 키려면 본진 뒤편의 능선으로 가야 했는데, 이미 적 보병대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면 생각하자.
적이 기병으로 후방으로 잠입한 이유는 뭘까.
“……당했네요.”
“기병의 기세는 좋지만, 당장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설령 예주를 휘저으려 할지라도 허도 내의 병력은 아직 건재한데, 그러면 그들을 쳐낼 수 있는 거 아냐?”
아군 영내로 진입시킨 것은 껄끄러웠지만, 반대로 아직 예주 방어선이 건재한 지금. 오히려 뒤를 잡힌 것은 그 기병대가 아닌가.
자처하여 포위망에 들어온 쥐새끼.
“허도 인근의 방위 병력만 아직 일만이다. 움직이기 힘들 거라고 했지만, 이 상황까지 치닫는다면 조조라고 군을 아낄 이유가 없어.”
“아니죠. 후방에는 저희의 보급창고가 있어요.”
그건 알고 있었지만, 당장 그 창고가 전부 털린다고 하더라도 예주는 우리의 안마당. 언제든 보급받을 수 있을뿐더러 본진에 있는 군량만으로도 일주일 이상은 너끈히 버틸 수 있었다.
달라질 것은….
안마당?
“적과의 전쟁이라는 가시적인 시야에 사로잡혀 전제를 잊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이건 확실히 제 불찰이에요.”
“예주를 들쑤실 생각인가.”
“이제 그들은 사정 볼 것 없이 허도 인근의 현을 있는 대로 약탈하고 파괴하며 돌아다니겠죠.”
그리하여 기병인가.
아무리 조조가 허도에서 군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예주 안마당에서 수차례 약탈을 반복한다면.
하지만 그건 그들도 목숨을 내놓는 전략이 아닌가.
“이해할 수가…, 아니, 일단은.”
이미 적 보병대가 진까지 밀고 들어왔다.
막아내야만 했다.
양 현에 배치했던 운이와 장료도 이미 회군을 시작했을 터. 여기서 또 한 가지 깨달았다. 보병을 계속 아군 본진을 공략하는 이유는 기병의 추격을 저지하여 본진에 붙잡아두기 위함이었다.
계속 전장을 휘두르며 자신들의 목적을 속인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집요하게 몇 현만을 유격하여 공략, 그렇게 병력을 움직이면서 아군에게는 한 번의 승부를 걸고자 분산을 유도하고 있겠거니 착각하게 유도했다.
여기까지 오니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들과 아군은 대전제가 달랐다.
아군은 오롯이 적과의 전면전, 그리고 저들을 격퇴하는 것에 시야가 사로잡혔다. 특히 유격대가 아군을 교란하면 교란할수록 더더욱. 그렇게 몰아넣은 시점에서 그들은 전술이 아닌 전략적 행동을 취한다.
우리는 전투에서 패하지 않는 전술을 선택했다.
반대로 적은?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아직은 만회할 수 있었다. 우선은 이 자리에 남은 적을 전부 상대한다. 그들이 물러나거나, 혹은 무찌를 수 있다면 그 뒤에는 말머리를 돌려 예주로 파고든 장수군 기병을 물리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들은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선행한 기병대가 살아남을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물론 예주 인근에 타격을 입는다면 그건 조조군 입장에서도 큰 타격. 그렇지만….
아니, 아직은 아니다.
우선은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는 것이 시급했다.
“죄송해요, 조금 더, 생각했어야….”
“나도 못 알아차렸어. 아예 군 자체를 희생하면서까지 전투를 피하려고 한 달 넘게 유격만 할 거라고 누가 생각해. 그러니까 일단 정신 차려라.”
사마의에게는 거기까지 말하고 손을 뻗었다.
여기서부터는 이 꼬마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무장들의 영역. 소녀의 어깨를 붙잡고 진 뒤편으로 물리고 다시 올라와 깃발을 크게 흔들었다.
“사격! 교대하면서 계속 화살을 퍼부어!!”
저 군은 아마 시간 벌이겠지.
하지만 그나마도 아군의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자랑하는 보병. 한 번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밀릴 우려가 있었다.
입맛이 썼다.
* * *
장수는 그 길로 적 후방의 보급기지를 분쇄하고도 계속 진격을 거듭했다. 가로막는 것은 전부 말발굽 아래 뭉개버리며 나아가길 반복.
가후가 장수에게 부탁받은 내용은 단 하나. 압도적으로 짓밟고 약탈하고 불살라라. 경로까지 전부 그녀가 조율하였기에 장수는 그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달려라, 달려! 계속 나아가자!”
도합 삼천의 군마는 지나가는 길마다 존재하는 마을을 부수고 약탈하며 계속 나아갔다. 이대로 양성을 짓밟고 예수를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있을 현과 촌을 전부 약탈하며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형주 남양으로 돌아간다.
조조군의 정수는 전부 방어선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설령 방위군이 있다 하더라도 삼천 가량의 기마를 막을 저력은 없으리라 판단되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니.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해지는 심야가 되어서야 장수군의 행보는 끝을 맞이했다. 우선 조금 전까지 약탈하고 학살을 자행했던 촌에 말을 묶어두고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장군, 이대로면 무난히 돌아가겠는데요?”
부관의 말에 장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방심하지는 마라. 선생도 말했지만, 이 작전은 모가지 내놓고 하는 작전이다. 조조 고년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는 바로 빠져야 한다.”
“…그런데 왜 구태여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그건 장수도 잘 몰랐다.
어디까지나 조조의 정치적, 그리고 예주의 지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만 들었을 뿐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군이 예주의 방어선을 뚫은 것도 아닌데 과연 유표가 호응할까?
가후는 장수가 돌아오는 즉시 다음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장수 자신도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는 제 참모를 믿었을 뿐이었다.
“놈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리나 깔아라.”
“…선생을 정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이놈이? 잔말 말아라.”
그는 지금까지 그 신뢰로 여기까지 버텼다. 장제의 사후, 뿔뿔이 흩어질 뻔했던 군을 어떻게 하나로 바로잡았던가. 그 자신의 인망은 곧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장수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러니 자신이 한 번 믿기 시작한 사람도 의심하지 않았다.
전부 계획대로.
이제 남은 건 장수 본인의 분발뿐이었다.
장수는 횃불로 곳곳을 밝힌 진을 바라보았다. 오늘 오전부터 시작하여 내내 예주를 달리며 학살과 이동을 반복했기에 말도 사람도 전부 지쳐버렸다.
나흘.
가후가 그에게 신신당부한 기간이었다.
그 안에 한 번 헤집으며 예주 남단 하천인 예수를 타고 올라오며 형주로 귀환하기까지 나흘을 넘기지 말라고 했던가.
지금 상황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후우…. 이게 옳은가 모르겠군.”
가후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이었는데, 과연 유표를 믿고 이렇게 분전하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물론 그에게는 지원도 많이 받았고, 머물 땅까지 제공되었다. 그러니 그에 합당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나, 반대로 조조를 적대하여 그의 선봉이 된다고 하여 무엇이 돌아올지는 잘 몰랐다.
“쓰구만, 써.”
오는 길에 약탈한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분명 북방의 술보다 약할 술이 오늘따라 독하게 느껴졌다. 몸이 지쳤기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정신적인 피로를 느꼈다.
그 순간, 그의 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순간 흠칫하여 고개를 돌렸지만, 주변은 이미 밤의 장막이 내리깔린 어둠뿐. 횃불로 간신히 밝힌 진영 위로 무언가가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명.
“저, 적습이다! 화살이라고 시발!!”
누군가가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지는 화살 세례. 장수도 즉각 허리춤에 찬 작은 방패로 머리를 가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당황하지 마라!!”
하필 밤이라 시야가 고르지 못했다.
하지만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던 것이, 생각보다 떨어지는 화살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잠깐 한 번에 내리꽂혔을 뿐이지, 이 정도 숫자면 적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증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횃불의 크기보다 더 밝게 비추는 빛.
“허, 빌어먹을.”
저 멀리 작게 치솟는 불길
크기도 작았을뿐더러, 당장 화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야습이라면 분명 불을 지르는 것도 기본적인 방식이었으니까.
문제는 이 탁 트인 곳에서 어떻게 들키지 않고 불씨를 옮겼냐는 것. 분명 보초도 세운 상황에서 이상한 불빛이 보였다면 보고가 들어왔어야 정상이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
그것은 저 불길이 일어난 장소였다.
“제대로 당했군.”
말은 밤눈이 어두워 기본적으로 밤에 예민해지는 생물이었다. 그런 말을 묶어놓은 곳에 불이 나버렸다. 게다가 병사들이 야습을 당하며 내지른 소란과 소리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말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장수는 이를 뿌득 갈며 이마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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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아직 더 커야해...
오늘은 몸 상태가 영 애매해서 한 편, 내일 더 보충해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