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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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동탁 소속의 군이면서도 오랜 기간 양주와 병주 인근에서 머물렀던 군이기에 꽤 많은 숫자의 기병을 이끌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번 전장에서도 특유의 기동력을 자랑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여포와 장료가 있는 방면은 성공적으로 적을 격퇴했으나, 반대편 조운과 방삼이에게 맡기려던 군은 보병을 주로 배치하였기에 그 공격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웃긴 것은 그 와중에도 직접적인 전면전은 피하고 있다는 것. 장수군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유격전 위주의 전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쯧, 빌어먹을 새끼들.”
수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이와 방삼이를 아군 본진이 배치된 건양 북부로, 여포와 장료를 무양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령,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홍빛 단발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찰랑거렸다.
서황.
그녀는 결국 본대에 남겨 나와 함께 본영을 지휘하게 하였는데, 처음 보았을 때처럼 딱딱한 자세를 고수했다. 이 정도면 정말 천생이 군인 같은 것이, 적어도 도적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나저나 말이야.
“자꾸 두령이라고 하지 말래?”
“두령은 저희를 도적의 율법으로 아래에 들이셨습니다. 그러면 도적의 수장이 되신 것인데, 하면 그것이 두령 아닙니까?”
“나는 편장…, 됐다, 됐어.”
이 자리에서 호칭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마의, 넌 어떻게 생각하냐?”
“전장을 혼전으로 이끌려는 의도가 분명하네요. 상대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저희를 뚫어내고 싶을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쥐고 흔들려고 하겠죠.”
“두령, 아직 양 현의 진은 부족합니다.”
알고 있었다.
아군은 최근까지 서주, 연주, 사예주 등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전쟁을 벌여왔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예주인데, 이곳은 최근까지 아군이 실효 지배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지역.
그렇기에 대비 또한 미흡했다.
“우선 언제든 유기적으로 운이와 장료를 도울 수 있게 채비한다. 어느 한쪽에 전력이 몰리더라도 그 둘이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
장료와 여포는 물론이거니와 운이도 그간 전장을 수차례 겪으며 지휘관으로서 성장했다. 그녀의 무력과 판단이라면 일정 기간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터.
본대는 중앙에 머무르며 양군을 지원한다.
“…뭔가 분명히 노리는 것이 있을 텐데.”
“아직도 불안하냐?”
사마의는 국면이 이렇게 흘러갈 때부터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계속 손톱을 뜯으며 지도를 노려보고, 그러다가도 결국 한숨을 내뱉기 일쑤.
“저라면 분명 여기서 수를 쓸 거예요. 그런데 당장 상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문제죠. 딱 한 번 잡아채 전면전으로 이끈다면 백전백승, 아군의 필승이겠지만….”
“상대가 그것을 계속 피하고 있습니다.”
서황이 사마의의 말을 받으며 이쪽을 바라봤다.
분홍색 눈동자가 빤히 날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내 역량을 파악하려는 듯한 눈빛.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시선이 영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우선 생각하자.
적은 계속 아군의 양 날개를 흔들며 균열을 내고자 했다. 나라면 분명 이렇게 양쪽을 계속 위협하다가 어느 한쪽을 몰아서 공격할 것 같았다.
한쪽만 빠르게 무너뜨린다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 아군 또한 그것에 대비하여 본대를 둘로 나누어 언제든지 양쪽으로 지원을 나갈 수 있게 채비하여 둔 상황이었다.
“나라면 분명 한쪽에 집중해서 공격할 거야.”
“보통이라면 그러겠죠.”
사마의도 그 의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불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적이 생각해낼 거라고 여기는 걸까.
“우선 방비는 했으니 어느 쪽을 노려져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어. 네가 말했잖아? 전면전은 아군의 필승이라고.”
그 이상의 신묘한 계책이 있겠는가?
자고로 구전되어 들리는 신묘한 전술이나 전략 같은 건 전부 허구라고 말한 것이 사마의 본인이었다.
책사도 병사도 결국은 인간.
애당초 무적의 전술과 전략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진군하고 언제 멈추는가. 전장은 어디로 유도하고, 진은 어디에 구축하느냐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였다.
그것을 내게 알려준 것도 사마의 본인.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꼬맹아, 일단은 기다리자. 뭘 생각하더라도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상대가 우리 방비를 뚫고 뭘 할 수 있겠어?”
“…일단 방비는 완벽하죠.”
그러면서도 손톱을 자꾸 깨물기에 살짝 손을 뻗어 사마의의 손목을 잡아챘다. 가녀린 손목을 그대로 당겨 손을 맞잡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여기서 어떻게 하겠어?”
“……우선 방도가 없네요. 적은 아군의 상세를 모르고, 여남의 군이 거기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몰라요.”
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자꾸만 걱정하는 소녀의 보랏빛 머리칼을 잔뜩 헝클어준 뒤에 픽 웃었다. 서황은 그런 우리를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우선 이대로 간다. 어떻게 움직이던 아군은 대응할 방책을 전부 세웠고, 만약 그 이상의 책략이 있다면 반대로 그걸 알고 싶네.”
“……알겠어요.”
만약 정말로 신묘한 계책을 세운다?
그런다고 적이 상식적으로 아군의 일만 병력을 전부 일소할 전투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장수가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하더라도 이쪽에 있는 병력과 장수가 어떤 이들인데?
일단은 이걸로 됐지 않을까.
자꾸 불안해하는 사마의를 품에 넣고 그 머리에 턱을 괴며 애써 찝찝한 기분을 달랬다. 적이 아군을 흔들고자 한다면 아군은 바위보다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면 그만.
적의 수단에 놀아날 이유가 없다.
* * *
가후는 말에 올라 전장을 바라보았다.
“꽤 참을성이 있네.”
이렇게 번갈아 양군을 공략한다면 분명 어떠한 반응이라도 보일 줄 알았다. 가령 가후가 생각하던 것 중 하나는 상대가 본대의 군을 움직여 유격대를 한 번에 일소하려 드는 것.
그렇게 해주면 더 편했을 텐데.
“……선생, 정말 괜찮은 것 맞소?”
“네. 애당초 조조를 이기려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 전략은 위험과 견주어 얻을 수 있는 게 상당히 커요.”
상대 군이 삼분으로 나뉘어 군을 재편한 이상은 더더욱. 만약 실패하더라도 퇴로를 확보하기도 용이할뿐더러,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만 있으면 적의 중추를 뒤흔들 수도 있었다.
적이 만약 본진을 허술히 하고 군을 돌려 유격대를 잡고자 했더라면 더 편할 수 있었지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실행할 수단은 있었다.
그간의 유격은 전부 이 한 수를 위한 것.
장수군이라고 아무 득도 없는 현 공략에 힘을 뺄 정도로 치중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세밀하게 군을 쪼개고 나누어 체계적으로 약탈을 감행한 것은 전부 아군의 노림수를 속이기 위함.
실제로 적이 군을 삼분한 것만으로 대성공이었다.
“이제부터 장군께서 하셔야 할 역할이 막중해요. 병력을 말 그대로 손발처럼, 의사 하나로도 따르게 할 정도로 통솔이 잘 되어야 하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휘하를 막론하고 십 년 이상 장씨와 함께한 이들이었소. 비록 형님께서 돌아가시어 예전만 못할지언정, 이 장수가 그들을 전성기 이상으로 이끌어 보이지.”
가후는 자신만만한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간 계속 예주 국경을 흔든 유격대의 운용으로 느꼈던 것이, 이들은 다른 군과 비교해도 유독 그 유기적인 움직임에 뚜렷한 강점이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가후는 이번 원정을 찬성하지도 않았으리라. 이 모든 건 분명 장수와 장제가 꾸려놓은 병력의 강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
곧 출정을 감행한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전부 돌려받을 한 번의 전쟁.
이 한 번의 전쟁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예주 방어선의 큰 균열을 줄 수 있었고, 거기에서 재차 빈틈을 찌른다면 예주 방어선을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선생. 내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
장수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였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아마 여기서 끝.
이 전쟁을 끝으로 아마 가후는 자신들의 곁을 떠나리라고 직감했다. 애당초 장안에서부터 이제는 떠난 장제에게 가담했을 때도 바람처럼 그들의 곁에 머물던 여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왜 우리와 함께하시는 건가?”
“이상한가요?”
“그럼. 돌아가신 형님은 몰라도 나는 다르오. 적어도 선생은 우리와 같은 이들과 어울릴 그릇이 아니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소.”
저 자신을 그리 대단하다 치켜세워주는 것은 기뻤지만, 그와 반대로 가후 자신은 그 말을 동의할 수 없었다.
가후라는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 뵈었을 때 말씀드렸지요. 저는 그저 나그네에 불과하다고. 정착지를 찾아 떠나고, 또 떠나는 이정표 잃은 여행자니까요.”
그리고 장수는 그녀의 정착지는 아니었다.
분명 제법 사람을 편안히 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정말 딱 그것뿐. 가후가 생각하는 정착지란 천하의 정세를 움직일 수 있는 폭풍, 그곳의 중앙이었다.
정적과 폭풍의 사이.
“그러니 마지막까지 장군을 돕지요.”
거물 조조와의 일전, 그리고 승리.
그 정도면 이별 선물로는 썩 적합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도 선생의 말에 따라 경로를 잡을 터이니, 선생도 부디 무운이 있기를 비오. 전호라는 남자,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라 생각하니 말이요.”
“여포를 거느린 남자…. 명심할게요.”
장수는 그녀의 확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올랐다. 그를 따르는 것이 완을 비롯한 영지 일대에서 전부 끌어모아 무장시킨 기병 삼천.
나머지 칠천에 달하는 병력의 지휘권은 전부 장수의 아들 장천과 가후가 이끌었는데, 아직 나이가 어린 장천을 내세워 실질적으로는 가후가 그 병력을 전부 지휘하게 되었다.
앞으로 한 번, 못해도 두 번.
이 전쟁으로 예주 전선의 판도가 바뀐다.
가후는 문득 제 손에 땀방울이 맺혔다는 걸 깨달았다. 등골에도, 이마에도 전부. 그것을 긴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오싹했다.
두근거리는 이 심장도 전부.
“이런 기분, 상당히 오랜만이네.”
언제였더라.
가후는 저 멀리 떠나는 장수와 삼천 가량의 기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그들은 전부 자신의 전략대로 움직이는 장기말.
그런 이들과 합을 맞추어 전장에 나서 승리하는 것은 오롯이 책사인 본인의 역량에 달린 일.
모든 게 제 손아귀에 달린 것이었다.
제 역량의 전부를 쏟아부어 심판받는 판결대 위에 오른 기분. 이 오싹하면서도 짜릿한 희열을 그 누가 알아줄 터인가.
이런 괴팍한 성격이기에 그녀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동탁군에 임관했을 적에도 이런 성격 탓에 서영에게 내쳐졌던 게 가후였다.
이상한 성격이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외줄을 타는 듯한 짜릿함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성취와 그 쾌락의 충족을 어떻게 잊을까. 전략으로 적을 희롱하고 혓바닥으로 타인을 속이는 이 감각을 어떻게 잊을까.
“전군에 출정을. 장천 도련님께도 알려드리렴.”
이제부터 그 심판대에 재차 오를 때였고, 그런 그녀를 상대하는 것은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조조의 정예.
상대로 하여 부족함은 없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오늘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성실 이벤트라 코멘트가 많아져 기쁩니다.
ㅊㅊ밖에 없는 건 좀 슬프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