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21화 (221/343)

2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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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느낀 건 아마 나뿐만은 아니겠지. 아군을 이끄는 장수들 모두, 하다못해 군 전체에도 그런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깨작깨작 소규모 별동대로만 움직이는 적.

그들은 아군이 움직이면 물러나고, 그와 동시에 전혀 반대 진영을 공략하는 등 연달아서 소규모의 공습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전면전을 피하면서 살살 이쪽을 자극하는 상황.

특히 적 본대는 아군 본대가 진군하면 바로 퇴각하기를 반복. 그리고 아군이 다시 본영으로 귀환하면 언제 퇴각했냐는 것처럼 그 자리를 지킨다.

주먹을 아무리 휘둘러도 닿지 않는 상대.

“쯧, 말려들었어요.”

사마의가 손톱을 깨물며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적의 움직임에 수동적인 대처밖에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도발을 넘어서 군사행동까지 벌인 적치고는 너무 자잘한 움직임.

그것을 일일이 받아치려 하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군 병력의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특히 기병대.

장료가 말하기를 최근 기병대의 분위기도 영 말이 아니라고 하던가. 기동력 탓에 항상 가장 먼저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전장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는 허무감.

점점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차라리 군을 나누는 건 어때요?”

“아뇨, 그건 안 돼요.”

운이의 말에 사마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의 노림수를 파악할 수 없어요. 그렇게 아군도 병력을 소수로 나누었다가 동시다발적으로 잡아먹힌다면? 그것만으로 꽤 큰 피해에요.”

“하지만 아군 사기도 생각해야지.”

사마의라고 그걸 모르진 않겠지.

문제는 여기가 예주라는 것.

“이 지역은 아직 완전히 복속한 게 아니에요. 이렇게 계속 피해가 발생하는데 정작 조조군이 손을 놓는다? 이 인근까지 불안감이 퍼져나가는 건 삽시간일 거라고요.”

아군은 그저 지킬 수만도 없었다.

적의 행동을 전부 다 받아쳐야 한다.

“뭐야, 그러면. 우리는 계속 놈들에게 끌려다녀야 한다는 거야? 주인이도 그렇겠지만, 지금 상황이 답답한 건 수뇌부뿐이 아니거든?”

여포도 그간 장료와 함께 기병대를 이끌었기에 그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을 터. 이렇게 계속 공만 친다면 언젠가는 아군의 전의도 느슨해진다.

나는 이런 전장을 알고 있었다.

황건적의 잔당 토벌.

아직 어릴 때라 병사의 신분이었는데, 그 당시의 전장이 실로 이러했다. 황건적은 계속 민간인에 섞여 동시다발적으로 아군 부대를 기습한다. 그런데 정작 도착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

그때는 어땠더라.

기가 빠졌지. 맨날 죽을 기세로 달려갔는데, 정작 달려갈 때마다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없노라고 방심했다.

그리고 단 한 번.

그 전투는 이례적으로 황건적의 승리로 끝났다.

“아직 긴장을 풀면 안 돼.”

탁자를 한 번 두드리며 시선을 모았다.

“이렇게 휘둘린다고 긴장을 풀어버리면 끝장이야.”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주인아. 병사 사기가 어디 마음처럼 되나? 아예 화끈하게 붙지 않는 이상에는 의미가 없어.”

긴장해야 한다고 말만 꺼내는 건 의미가 없다.

알고는 있지만.

“차라리 병력을 분산하는 건 어떤가요?”

운이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지금 적은 저희 본영인 곤양만 피해서 양옆으로 부성과 무양을 자꾸 건드리잖아요? 차라리 거기에 병력을 분산시키면 지금보다야 병력의 피로는 낮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각개격파의 위험이 있어요.”

사마의가 재깍 반박하며 시선을 내게 돌렸다.

“아저씨, 잘 생각하셔야 해요. 지금 전장 자체는 장수군이 주도하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전장이고요. 솔직히 저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깔끔하게 움직일 거라고 예상치 못했지만, 반대로 당해줄 수밖에 없는 전략이기도 해요.”

“우리는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나도 이런 전장은 예상치 못했었다.

애당초 장수의 군은 규모가 작았다. 그런 이들이 이리 공격적으로 나올 줄도 몰랐고, 또 이렇게 집요하게 무방비한 현을 노리며 민간인의 피해를 야기하는 전술로 괴롭혀 올 줄도 몰랐다.

이런 전장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군은 지켜야 할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패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예주가 약탈당하는 꼬락서니를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일단 분성과 무양에 진을 꾸리고 있긴 하지만, 이게 언제 완성될지, 그 사이에 장수군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몰라요.”

사마의는 거기까지 말하고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의 침묵.

“뭔데, 꼬맹아. 갑자기 왜 입을 다물어?”

여포가 재촉하듯 물으니 와락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다가도 살짝 눈을 내리깔고, 이윽고 고개를 살짝 돌려서 이쪽을 바라보는 사마의.

“…선택하셔야 할 것 같아요.”

“뭘.”

“포기하는 것.”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확실히 내 머리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한숨이 나왔다.

여포는 사마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기?”

“각 현을 포기하고 무양의 방비에 몰두하는 거요.”

그렇게만 한다면 확실히 적에게 휘둘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마의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각 현을 비롯해 예주 자체가 아직 아군을 완전히 인정한 게 아니라고.

“의아야, 그건.”

운이가 먼저 손을 들어 소녀를 제지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그런데도 또렷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선택하라는 듯한 모양새. 확실히 이 전황을 뒤집을 방법은 적 본대를 잡아낸 교전, 그게 아니라면 완전한 수세밖에 없었다.

장내를 한 번 돌아보며 입술을 뗐다.

“백성들을 전부 포기하라는 말이냐.”

“이주시키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없어요.”

그게 그 소리였다.

곧 겨울이었다. 안 그래도 예주는 막 발전을 시작하는 단계. 영천 인근의 현 거주민을 전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조조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 지역의 토착민.

“전쟁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물론 반발도 있을 것이고 예주 내에서 조공의 위상도 깎이겠지만, 그 선이라면 황제 폐하를 모시고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조운 행군사마. 결정은 편장군께서 내립니다.”

평소 운이에게 퉁명스레 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친근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없이, 그저 관직으로만 부르고는 곧장 시선을 내게 돌렸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에요.”

“가장 살을 깎아 먹는 방법이기도 하지.”

그 의견을 일축하면서도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군의 입맛에 가장 맞는 전략이었다. 적이 계속 살살 긁는다면, 그 긁힐 곳을 없애버리면 그만이었다.

“아직 여유는 있다. 당장 실행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곧 겨울이니 시간만 버티면 더 곤란해지는 건 거리가 먼 장수군이 될 거니까.”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마의를 바라보며 작게 웃어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여포의 뒤를 지키고 있던 장료를 바라보며 고개를 들었다.

“각 현에서 진으로 삼을 곳은 알아봤나?”

“뭐, 아직은 힘들지. 당장 토대를 구축하고는 있는데, 이게 기반도 안 닦인 곳에 진을 짓는 게 사실 토목공사랑 뭐가 다르겠나.”

“그러면 현의 촌 중에서 가장 크거나 입지가 좋은 곳으로 마련해. 현 전체의 인구를 이주시킬 수는 없어도, 각 촌 정도라면 어떻게든 된다.”

촌이라면 기존 백성들의 거주지.

터를 새로 닦을 필요도 없었고, 기존에 있던 시설물 등을 이용하면 한결 수월하겠지. 이주한 백성들에게는 따로 그만큼의 보상금을 지불하면 될 일이었다.

“우선 부대를 셋으로 나눈다. 지휘체계는 운이와 장료에게 일임하지. 각 부대는 내 명령이 없더라도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줄 테니, 거기에 맞게 병사를 재편해.”

“아저씨.”

어허, 또 표정 굳어지기는.

“걱정하지 마라. 부대를 벌써 파견한다는 소리가 아니니까. 단지 무양현을 기점으로 병력을 셋으로 포진시켜, 여차하면 양 날개가 될 병력이 움직여줄 수 있게 체계를 잡는 거다.”

적은 아직 전면전으로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지나면 겨울.

그 겨울은 원정 거리가 먼 장수군에게 더 혹독하게 다가오겠지. 아군은 그때까지 최대한 지키고 버티면서, 여차할 때 나오는 장수군 본대의 빈틈을 노리면 그만이었다.

날뛰는 사냥감의 발이 날래?

그러면 숨을 죽인다.

숨죽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언젠가는 반드시 그 발걸음이 꼬일 순간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척, 아무것도 모른 척. 그렇게 시간을 벌자.

뭘.

“물어뜯을 때까지만 참는 거다.”

그때가 오면 지금 있던 일을 배의 배로 갚아주면 그만이지 않겠나? 전투력에서 아군이 밀릴 이유가 없으니, 한 번만 걸리면 된다.

딱 한 번이었다.

“여포는 미안하지만 그때까지는….”

“알고 있어.”

입을 삐죽 내밀고서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그녀는 사실 끝까지 본대에 남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본대의 전력은 이미 나와 방삼이, 거기에 사마의로도 충분했다. 장교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구태여 여포까지 본대에서 놀릴 이유는 없는 것.

“뭐요, 누님. 나랑 돌아다니는 거 싫어?”

“니 새끼가 뭐가 좋다고.”

여포가 엉덩이를 걷어차는데도 장료는 굴하지 않고 킥킥 웃어댔다. 그녀는 그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연달아 걷어차기 일쑤.

“하여간 남자가 뭐라, 아니 누님? 방천화극은 왜 꺼내시나? 잠깐, 아직 군의 중이거든? 형씨! 형씨도 좀!”

“자, 이걸로 군의 끝.”

남자의 비명을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운아, 너도 서황이랑 말 잘 맞춰봐. 백파적에 있었다고는 해도 나름 마음가짐은 괜찮은 거 같고, 무력도 나름 대단해 보였거든.”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 여포를 상대로 열세에 뒤져 몇 합을 버텨내는 건 지금의 나로도 무리였다. 분명 서황은 잘 다룰 수만 있다면 훌륭한 전력이 되어줄 터.

아군의 전력은 분명 강했다.

아마 장수군과 정면으로 상대한다면 필승. 그런데 정작 주먹을 휘둘러도 자꾸만 헛맞으니 그게 짜증으로 이어지는 건데.

기다리자.

“오라버니, 그러면 군수 쪽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건 너한테 일임할게.”

“……자꾸 그렇게 잔일만 주는 거 아니죠?”

살짝 찔리는데.

하지만 아직 이쪽에서 처리할 일도 많았다. 특히 이번에 형주 최북단인 주현 인근으로 보냈던 정찰병이 늦어지고 있어서, 그 부분에서 할 일이 전부 멈춰버린 영향도 컸고.

“운아, 오빠 못 믿어?”

“…조금은요.”

이런.

언제 이렇게 신뢰를 잃어버렸지?

“…전제까지 두 사람끼리 떠들지 마시고 저도 좀 끼워주시죠? 지금까지 고생한 게 누군데, 저만 쏙 빼놓기에요? 이거 섭섭하거든요?”

“어머? 의야, 고생은 이 언니도 했는데.”

하여간.

어쩔 수 없어서 둘 모두를 꽉 끌어안고 픽 웃었다. 그간 까칠하게 긴장되던 분위기도 반쯤 녹아내리는 느낌도 들었다.

“형씨, 두고 봐.”

“살아있었네?”

거참 살벌하게 이 빠득빠득 갈지 마라.

그래도 아까까지 무거웠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것 같아, 그것만은 다행이었다. 점점 떨어질 군의 사기저하는 분명 문제였지만, 우리까지 그 분위기에 먹혀선 될 것도 안 된다.

우선은 그렇게 생각하자.

시간은 분명 우리의 편이니까.

“아저씨.”

사마의가 소매를 잡아당기며 작게 읊조렸다.

“그러면 군을 배치할 때, 따로 사람 조금만 저한테 맡겨주실 수 있으세요? 기수 삼백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그거라면 가능은 한데, 왜?”

순간 소녀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고혹적인 웃음. 그 나이 또래가 짓는 웃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끌리는 눈웃음.

“상대가 휘두르는 걸 당해주기만 해서야 성에 안 차잖아요? 이 건은 전면적으로 제가 맡을게요.”

“내용을 말해.”

이 꼬맹이에게 전권을 맡기기엔 불안했다.

뭐가 불안한지, 그걸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몰랐다. 머리도 나쁘지 않았고 조심성도 있는 아이니까.

그런데도 어딘가.

왠지 찝찝함이 남았다.

“별거 아니에요. 적이 계속 저렇게 움직이는데 저희는 그 꼬리도 못 잡았죠. 분명 어딘가에 통괄하는 진이 있을 거예요. 저는 그 꼬리를 밟을 생각이고요.”

“…가능하겠어?”

“해볼 만큼은.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을걸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뭐라도 해야만 했으니까.

겨울에 들어서면 적의 기동력도 줄어들 게 뻔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참는다. 적의 움직임을 전부 봉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버티기에 도움이 된다면야.

발 빠른 짐승을 사냥하는 일은 지난했다.

그러니 기다린다.

참고 기다려, 언젠가 사냥감이 저 자신을 사냥감이라는 걸 잊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어차피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 덜미를 붙잡히는 순간 그들은 깨달으리라.

본인이 사냥감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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