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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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가는 길에 있는 하천도 그리 깊지 않았고, 사실상 거리도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까.
나와 방삼이, 그리고 운이.
거기에 여포와 장료, 서황과 조홍이 동반하는 원정이었다. 그 외에도 장교급 인사도 대거 배치되었으니 저번 낙양전처럼 장교의 부족으로 허덕일 이유도 없었다.
장수의 군은 곤양에서 형주로 넘어가는 경계에서 자주 출몰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마 그 지역에 진을 친 것 같은데, 사실상 이 정도면 국지적인 도발을 넘어선 수준.
규모는 아군과 비슷한 일만 규모라고 했던가.
“오라버니.”
“오우, 이건 야….”
저 멀리에 곤양의 진이 보였다.
급조했다고 하더니 생각보다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나. 석제를 기존 골격으로 삼고 모자란 곳으로 목조로 덧댄 진영.
무려 일만이 주둔해야 하니 우선 예주 방면을 향해 길게 둘렀을 따름이지만, 그나마도 사실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목조 진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오라버니가 말하던 거 이상인데요?.”
“그러게. 미리 준비하던 것도 아닐 텐데.”
이 일이 정해진 건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 긴 장벽을 세워 진을 꾸릴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야?
“이거면 나쁘지 않네요.”
사마의는 내 앞에 태웠는데, 이 꼬맹이가 고개를 살짝 올려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빙 두른 장벽에 불과하다지만 저것만 해도 적을 저지하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게다가 그 안쪽으로도 미리 땅을 다져둔 것 같으니 아군 장병들이 오자마자 토목공사를 할 일도 없을 터.
이거라면 설령 형주의 군이 공격해온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은 그냥 군이 주둔할 수 있게 자리를 제공해주는 정도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조조가 자신만만하게 미리 준비는 해두었다고 했던가. 뭐 갑자기 준비한다고 얼마나 하겠나 싶었더니.
“적어도 곤양을 잃을 걱정은 없겠네.”
내가 조조한테 고맙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고마움을 느끼네. 이러면 기반은 충분하고, 오히려 역으로 공세를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네? 무슨 말이에요.”
사마의는 내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저희는 우선 저 경계에 있을 장수군을 격파할 생각을 해야죠. 공격당할 걸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이, 예이.”
하여간 자신감은.
어차피 나도 이 주둔지에서 쭉 주둔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 가져온 치중을 보관할 본영으로 삼되 본대는 형주 부근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럴 때 후방의 진이 이렇게 단단하게 버텨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도 없을 터. 물론 형주의 군이 직접 싸움을 건 적이 없으니, 아마 대치상황을 길게 이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조조나 참모진의 공통적인 이해였다.
“우선 조조는 가능하다면 공격하라고 했거든? 너희 생각은 어때. 일단 적 자체는 인근에 주둔할 뿐이라던데.”
이에 사마의가 먼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야 뻔하죠. 일단 저희가 황제를 옹립했으니 아니꼬웠겠죠. 그러니까 방해는 해야겠고, 그러니까 군을 움직여서 흔들 생각이잖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해요.”
만약 형주에서 진짜로 조조를 노렸다면 고작 일만, 그것도 외부인사인 장수라는 이를 보내기보단 직접 형주의 본대를 이끌고 왔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다.
양주의 원술은 아직 양주 내에서 힘을 끌어모으는 상황. 서주의 군은 출정 전에 듣기로는 군을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장수가 가지는 의미.
“아니, 다들 뭐 그리 말이 많으쇼?”
방삼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듣다 보니 어차피 맞붙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 아닌감? 대장도 요즘 뭘 자꾸 그렇게 생각하는지 원.”
“저기요. 방삼이 삼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고민하고 생각하여 거듭한다. 거기에서 나오는 방안도 분명 있을 텐데요.”
사마의가 방삼이를 살짝 노려보는데, 놈은 거기에도 굴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삼촌이라니. 나는 아저씨면서 왜 저놈만.
아니지.
삼촌보단 아저씨가 나은가?
“흥. 대장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거든? 요즘은 뭐 거의 문관 어르신들처럼 자꾸 고민하고 생각하기만 하는데,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더니 원.”
“풉, 푸흐, 흣, 화, 확실히 오라버니가 그러긴 했죠. 생각해보니까 예전이랑 비교해서 많이 바뀌긴 하셨네요.”
“…또 본인들만 아는 얘기…….”
사마의가 입술을 삐쭉 내밀기에 손으로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어차피 그 당시에는 내가 짊어진 거라고는 그리 많은 게 아니었으니까.
“너무 삐지지 마라.”
“안 삐졌거든요.”
입술이 그렇게 나왔는데 뭐가 안 삐져.
꼬맹이의 보라색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문지르면서 픽 웃어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군은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고, 이제 어느덧 방어선 주둔지에 입성하기 직전이었다.
“자자, 이제 잡담 그만하고.”
손뼉을 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포와 장료에게도 전언을. 우선 기병 먼저 후방으로 돌려야 하니까 뒤로 물리고 우선 막사나 진영 구축부터 시작하자.”
오늘 아침부터 부지런히 왔더니 딱 정오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막사를 세우고 군을 준비한다면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군의 임시 거처를 마련할 수 있겠지.
그렇게 곤양으로 들어가 진을 구축했다.
땅도 고르게 닦아놓은 상황이니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반나절 만에 다 정리하고 군을 푹 쉬게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 뒤였다.
“장군님! 막 무양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마침 딱 군의를 열려 하는 찰나에 막사를 열고 들어오는 병사. 그는 내 앞에 무릎 꿇고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완의 기병대가 무양으로 침입! 그 인근 부락을 약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기병으로 휘젓고 다니니 방도가 없다 하여 지원을 요청한다고…!!”
“쯧, 벌써 시작했네.”
아군이 도착하는 시기에 맞춰 군을 움직인다.
“대놓고 싸우자는 소리네요.”
사마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간 이 지역이 공백이었을 때는 움직이지 않던 장수가 지금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여도 바로 옆 현을 습격한 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애당초 대놓고 끌어들이는 모양새인 것도 조금 수상하긴 하네요.”
일단 대처해야 했다.
병력이 적지 않다고 하여 우리 주 내의 백성이 약탈당하는 걸 그냥 보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아군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좋다.
“우선 장료를 불러. 기병으로 움직인다면 같은 기병으로 잡아야지. 기병의 규모로 우리가 밀릴 리가 없다.”
여기서 보병까지 그 기병의 움직임에 딸려 나갈 이유가 없었다. 우선은 장료를 선행시켜 무양 인근을 수호하고, 그사이에 본대는 정면에 있는 형주의 섭을 친다.
싸우겠노라면 좋다.
받아주지 않을 이유도 없지.
“출병 준비다. 방삼아, 너도 운이를 따라가.”
“……이거 하루 만에 바로 출정 준비라니, 병사들이 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어쩔 수 있겠냐.”
지금은 움직인다.
아군의 전력은 단언컨대 적 이상이었다. 이대로 휘둘릴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먼저 선제 타격한 적을 가만히 놔두어서야 얕보일 뿐.
“아저씨, 잠시만요.”
“응?”
사마의는 내 옷깃을 붙잡았다.
“적의 움직임이 이상할 때는 반드시 생각, 또 생각하셔야 해요. 적을 친다는 건 저도 찬성이지만, 당장 무양의 움직임에 너무 화들짝 대응하는 것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요.”
소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탁자 위에 올려진 지도에 깃발을 살짝 움직였다. 아군이 있는 곤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형주의 섭.
“우선 본진에도 군을 반 정도는 남기세요.”
“응? 그러면 전면전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나?”
“여차하면 불러들이면 그만이에요.”
그도 그런가.
본대가 도착한 이후에야 무력행사를 시작하는 장수군의 움직임은 그만큼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무슨 목적이 있었건 아군에 큰 피해를 주고 싶었다면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움직이면 그만인데..
일단은 사마의의 말에 따라 보험은 든다.
그러면 우선 기병 오백을 장료에게 주고, 나머지 보병대 위주의 삼천 정도를 본진에 남기고 나머지는 장수의 본대와 마주하게 될 터.
조금 구린내가 났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 * *
가후는 미리 움직였던 기병대의 동향을 파악하며 저 멀리에 보이는 석벽에 시선을 돌렸다.
곤양의 방비는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단단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기존 전략에서 벗어날 정도의 착오는 아니었다.
“선생. 진짜 조조를 이렇게 쳐도 되겠소?”
“네. 오히려 지금의 조조군이기에야말로 쳐야 해요. 지금 그들은 막 세력을 부풀리는 과도기의 상태. 그렇기에 주위의 반응에 민감히 대응할 수밖에 없을 거니까.”
“응? 민감하게 대응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그 말에 가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현 조조군은 주변 세력의 도전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상황. 작은 불씨라도 어떻게든 꺼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허점을 내비친다면 분명 사방에서 물어뜯길 게 뻔했으니까. 그러니 이런 소규모 도발에도 군을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
어떤 반응에도 격하게 반응하는 상대.
그런 상대를 상대하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기동전으로 상대의 아픈 구석만 톡톡 찔러줘도 적은 받아칠 수밖에 없어요. 이대로 본대는 계속 적과의 교전을 피하면서….”
가후는 손에 쥔 종이의 모서리를 작게 찢었다.
“한 입, 또 한 입.”
그녀는 조금씩 작게 종이를 찢었다.
천천히 찢고, 찢고, 또 찢었다. 그렇게 찢겨나간 종이가 마침내 지금까지 찢긴 것들과 비슷한 크기로 작아졌을 때.
“이렇게 베어 물면서, 한 번에 짓이기는 거죠.”
장수는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 그게 말처럼 쉽게 가능하겠소?”
그가 생각하기에 조조군은 분명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분명 아직 방비가 미흡한 구석이 있다고 첩보는 받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최근 조조군의 전쟁에 패배라는 글자가 있던가.
서주 정벌전?
그것 또한 여포의 기습 탓에 회군한 것이지 서주 자체는 조조의 발아래 한 번 깔렸다. 거기에 여포까지 진압해내는 것에 성공.
그들의 최근 전쟁에 패배라는 글자는 없었다.
“물론 어렵죠.”
가후는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픽 웃었다.
“그러니까 잘 해내야죠. 마침 예주의 땅은 참 넓으니, 그 점을 잘 파고든다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시오.”
“후훗, 농담이에요.”
이미 준비는 끝났다.
서주의 군이 움직였다는 소식은 들었다. 게다가 양주의 원술 또한 계속하여 군비를 증축하고 있으니 조조군은 그 양면의 세력에 손을 뗄 수 없는 상황.
사실상 장수군의 상대는 저들이 전부였다.
그러니 여기서 한 번 저들을 고꾸라뜨릴 수만 있다면. 그러하면 형주의 유표도 기회라 여기고 군을 움직이려 들 터.
안 그래도 잦은 전쟁을 벌인 조조였다.
“조조군은 겉으로는 제법 강대해 보이나 아직 내실이 여물지 않았어요. 땅덩어리는 넓어도 여전히 그 지역들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죠.”
딱 한 번이었다.
한 번만 제대로 고꾸라뜨린다면 그걸로 저 세력도 끝. 팽창하는 것이란 본디 그 표피에 난 작은 구멍만으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 역할을 장군께서 맡는 거예요.”
땅따먹기였다.
장수의 군은 기존 동탁의 군에서 물려받은 군. 그렇기에 병주와 량주 출신의 군이 많았고, 기본적으로 군마를 타 기동력으로 승부하는 것에 능한 병력이었다.
그 기동력을 살린 기동전을 벌인다.
조조군은 지킬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중 하나라도 잃는다면? 그거야말로 참 볼만하지 않겠는가.
“나는 선생만 믿겠소.”
“그 믿음, 전력으로 보답하지요.”
거물 조조?
형주 방면의 국경이 무너지면 그다음 움직일 이는 양주의 원술이었다. 그렇게 삼면의 주와 전쟁을 벌인다면 제아무리 조조라도 버틸 수 없을 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보이지요.”
가후는 할 수 있는 일만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관점에서 이 일은 충분히 해봄직 한 일.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적어도 중원의 강자 조조를 고꾸라뜨리는 성과에 비해서야 낮은 난이도였다.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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