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18화 (218/343)

21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각자의 거리감 형주, 정확히는 완에서 출발한 장수의 군이 연주 인근까지 도착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진군속도에 출진을 더 늦출 수도 없었고, 이미 병력은 충분히 준비된 상황.

“그대의 무운을 빌지.”

출정식을 앞두고 조조가 먼저 날 찾아왔다.

오랜만에 붉은 정복을 벗어 던지고 하늘하늘한 예복 차림을 한 그녀는 슬쩍 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녀린 손가락으로 천천히 내 어깨를 쓸어내리는데, 그러면서도 입술 끝자락이 올라간 게 보였다.

“무운을 빌어준다면 나야 감사하지.”

“영웅의 행군에는 언제나 아리따운 여인의 가호가 따라야 하는 법. 본인은 본디 누군가를 마중하는 역할과 맞지는 않으나, 뭐 어떠한가.”

가볍게 입만 맞추었다.

그녀는 정말 담백한 태도로 씩 웃고 있었다.

앞으로 향할 곳은 전장. 일만이라는 병력을 이끌고 영천에서 형주로 넘어가는 근경 곤양현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백성들을 동원해 급조한 진을 건설하고 있다고 하니, 합류하며 아마 기반부터 다지게 될까.

“이미 그대는 장안과의 전투에서 다수를 거느린 전쟁을 경험했다. 장으로서의 경험도. 하지만 방심하지는 말도록. 그것은 그대의 목을 죌 가장 큰 적으로 여기는 게 좋다.”

“알고 있수다.”

그 말과 함께 허리의 패를 툭툭 건드렸다.

편장군의 증명.

이번 원정은 어디까지나 원정. 방위를 위한 것인데, 그건 군승이라는 일개 지방관의 역할을 크게 벗어난 것.

그렇기에 정식 장군으로 관직을 하사받게 되었다.

편장군이라면 그렇게 고위 관직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게 권력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사실상 조조군에 있어 내 작위는 수시로 바뀌기에 관직의 이름 같은 것에도 큰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조조는 그게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편장군의 패를 한동안 째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쉰다.

“쯧. 주변의 잡소리만 아니었더라도 그것보다는 더욱 높은 관직을 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황제 폐하께서도 직접 고위 관직을 내리겠다 하시었는데, 제깟 것들이 뭐라고.”

“뭐, 아무렴 어때. 그런 관직의 서열에 신경 쓸 때는 지났잖아? 어차피 편장군의 패도 오래 쥐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말에 그녀가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허, 그대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군.”

“요 몇 년간 관직을 몇 번을 갈아치웠는데. 당신, 솔직히 말해 그냥 쓸 수 있는 곳에 넣으면서 관직은 대충 맡기는 거잖아?”

“그도 그렇지. 그대와 본인은 그런 사소한 것으로 묶일 관계가 아니지.”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닌데. 그냥 댁이 언제나 필요한 일에 쓰려고 관직 쥐여주니까 그거 비꼰 건데.

“그렇다고 해도 되도록 좋은 걸 쥐여주고 싶은 것이 마음이다. 그대는 그런 여자 마음을 좀 헤아리도록.”

“예이, 예이.”

더 말해 뭣하랴.

어차피 곧 있으면 출정식이었다. 말이 출정식이지, 일만이나 되는 군을 어찌 이 허도 내 병영에 전부 모을까. 적당히 성 바깥에 집결시켜 준비하는 작업 정도에 불과했다.

“대답이 영 시원찮군.”

“그럼 뭐, 화끈하게 답해드리리까?”

“화끈하게? 그도 나쁘지는 않겠군.”

조조가 빙긋 웃더니 발꿈치를 든 듯, 몸을 쑥 들이밀며 내 목에 손을 둘렀다. 살짝 움찔한 사이에 그녀는 그 붉은 눈동자로 또렷이 날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화끈한 게 뭔지 보여주겠는가?”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살짝 입술만 쪽 내밀어 입술만을 가볍게 마주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또 이렇게 당해버렸다. 언제나 조조는 내 예상 밖의 행동을 저지르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다음번엔 그대가 먼저 해주길 기다리지.”

“무사히 돌아온다면 말이요.”

저번 원정에서야 별 탈 없이 끝났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전쟁에만 나서면 어디 한 군데는 다쳤다. 실력에는 분명 자신감이 붙었는데, 어째 실력이 늘면 늘수록 상대하는 적도 강해지는 느낌.

착각은 아닌 거 같아.

“본인의 가호다. 그대는 무사할 것이다. 무사하여야지. 이런 미인의 입맞춤, 갚지도 않고 떠난다면 죽어서도 그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야.”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가시게?”

“그대도 슬슬 준비하여야겠지. 본인도 이 원정을 위해 처리해야 할 사안이 아직 중대하다. 연병장에는 갈 것이니, 그대도 그때까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라.”

처리해야 할 일?

어차피 군을 준비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내 결제가 필요한 사안은 없으니까, 사실상 나는 이제 병력이 전부 모이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는데.

“진소연.”

조조가 고개만 살짝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더군. 그대는 소연과 특히 오랜 기간 지내지 않았는가. 물론 본인의 것을 빌려주기는 영 찝찝하나….”

그녀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아직 당신 거 아닌데.”

“뭣이?”

왜 당황해? 아직은 그런 사이 아니잖아.

“어이가 없군. 본인의 가장 중요한 경험을 그리 앗아가 놓고서는 본인의 것이 되지 않았노라고? 무엇인가. 그러면 이 자리에서 다시 도장을 찍어야겠는가?”

“여기? 자, 잠깐만.”

여기 야외다, 야외! 아무리 사람이 없다지만, 언제 사람이 올 줄 알고! 조조가 대담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순욱이 있는데도 대놓고 자지를 빨 때부터 알아봤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농담이다. 그리 표정 굳히지 말도록.”

조조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슬쩍 자리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먼저 끼어든 것은 본인이니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 말의 뜻을 채 되묻기도 전에 조조는 살짝 손을 흔들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연 아씨는 최근 정무에 바빠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특히 궁내의 일을 처리하는 문관 중에서도 단연 경력으로는 최고이니, 그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던가.

“하여간, 안 갈 수는 없겠네.”

이대로 떠날 순 없었다.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그녀는 최근 내무부에서 떠나는 일이 없다고 하니, 우선 그녀의 집무실로 가볼까. 미리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시간이라면 내주겠지.

“어? 대장. 어디 가쇼?”

“볼일이 있어서.”

마침 군영 근처를 지키고 있던 방삼이가 있어 손을 흔들어줬다. 녀석은 좋은 점이 꽤 많았는데, 그중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질문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출정식에만 늦지 마쇼.”

“내가 애냐?”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치니 놈이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시간은 넉넉했다. 출정식은 정오 무렵. 못해도 수 시간 이상 남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가는 길 주변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아무래도 군의 출정식이니 그럴 만도 했다. 군이 일만이 움직이면 그 관련 종사자들도 한껏 분주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방에서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마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분주한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저 멀리에서는 수주 금액과 시비가 붙었는지 내관과 장사치가 말다툼을 나누는 소리가 들렸고, 또 저 멀리에서는 한창 말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라? 오빠야는 여기 무슨 일이야?”

아직 관인이 완벽하게 이양되지 않아 임시로 내무부라 임명한 곳에 도착하니 곽가가 이리로 쫄래쫄래 다가왔다.

“볼 사람이 있어서.”

“그거 소연 별가 맞지?”

구태여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니 곽가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어깨에 손을 얹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오빠야가 가서 말 좀 잘 해봐. 요즘에 그 사람 미쳤다니까? 내 살다 살다 그렇게 일만 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어.”

일만 해?

소연 아씨가 그럴 사람도 아니다.

그건 내가 알고 있었다. 손을 놓을 때는 놓을 줄 알았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휴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아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우리도. 오빠야, 여기 봐라. 응? 눈 밑에 거뭇거뭇한 거. 이렇게 파릇파릇한 소녀 눈가가 이래서 쓰겠어?”

“야, 근데 너 술 냄새나는데.”

“…………나?”

아주 잘.

공무 시간인데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가까이에서 말만 거는데 벌써 그 술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 말에 곽가가 뻘쭘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안 마셔? 이건 별가도 뭐라고 안 한 거야. 내가 좀, 그런 기질이 있어서 말이지.”

그러고 보니 복양성에 있을 적에도 일이 없을 땐 허구한 날 술병을 입에 달고 살던 게 떠올라 어깨를 으쓱였다.

아씨가 그랬다면야 내가 할 말도 없겠지.

“그래도 적당히 마셔라. 아직 나이도 창창한데.”

“예이, 예이. 아무튼, 말이나 잘 전해줘. 그 사람, 진짜 쓰러질 것 같으니까. 내가 힘들면 별가는 얼마나 힘들겠어?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다며.”

“……그건 내가 잘 말할게.”

곽가는 그 확답을 듣고 나서야 평소의 그 고양이가 연상되는 웃음을 짓고 자리에서 떠났지만, 반대로 내 발걸음은 잠시 그 자리에 멈췄다.

“대체 무슨 일을 그리하기에.”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곽가는 분명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계집애였다. 평소에는 술이나 퍼마시면서 대충대충 하는 듯해도 머리가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 계집애가 저리 말할 정도면.

하여 조조도 소연 아씨를 언급한 걸까. 바쁘다는 건 알았어도 그게 이리 주변에 걱정을 끼칠 정도라는 건 몰랐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그런 기색이….

…그러고 보니 화장.

저번에 소연 아씨가 웬일로 화장을 하고 나왔기에 웃으면서 칭찬했던 기억이 있었다. 진한 분을 바르고 나와 평소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무거운 걸음을 한 발짝.

조조의 말과 곽가의 말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 티를 낸 적이 없어서 나는 몰랐다. 몰랐었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평소 내가 알던 소연 아씨는 그렇게 몸을 망치면서까지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모르던 그녀의 모습.

그 편린.

그것이 조금 엿보인 기분이었다.

그녀의 집무실은 내무부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병사 둘이 그녀의 집무실 앞에 서 있었는데, 바로 그곳까지 걸어가 그들에게 손짓하였다.

“펴, 편장군님.”

“별가께선 안에 계시느냐.”

“예! 계시옵니다.”

“그러면 말을 전해라. 아니, 아니지. 됐다.”

구태여 말을 전할 것도 없겠지. 지금 집무실에 있다면 어차피 또 업무를 보는 도중이 아닐까. 그래서 그냥 문을 열려고 하는데 병사들이 손을 뻗었다.

“……뭐냐?”

“그, 별가께서 따로 말씀이 없기 전까지는 들이지 말라고 하시어서……. 그것이 명령인지라, 아무리 편장군님이라도 들어가실 수 없사옵니다.”

들이지 말라, 라.

내무를 보면서 현재 그 수장의 집무실에 일일이 보고를 올려야 한다?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그러면 한 번 여쭤봐.”

“……그, 그것이….”

우물쭈물하는 병사의 모습에 얼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면 그렇지. 소연 아씨는 이렇게 비효율적인 작업을 선호하지 않았다. 언제나 직관적이고 간단하게, 겉치레를 사양하는 편에 가까운 사람.

그런 사람이 구태여?

“별가께서 그러느냐? 편장군은 들이지 말라고.”

“아니, 그것이.”

“책임은 내가 진다. 비켜.”

머리가 복잡했다.

덩달아 기분도 썩 좋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심박 수가 점점 가빠지는 것도 느껴졌다. 왜 구태여.

그들을 살짝 밀어 물리고는 문을 열었다.

“…예전에. 내가 노크라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니?”

정면에는 집무실의 탁자가 보였다. 잔뜩 쌓인 서류가 가장 먼저 보였고, 벽에 따로 서류를 잔뜩 붙여 난잡한 방 또한 눈에 들어왔다.

소연 아씨는 그 탁자에 턱을 괴고 있었다.

그녀의 뚱한 표정.

그 뚱한 표정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알잖수? 내가 원래 머리가 좀 나빠.”

언제였더라.

병주에 있을 때 들어오기 전에 먼저 기척을 내라며 문을 두드리라고 하였지. 그걸 소연 아씨는 노크라고 불렀다.

오랜만이네. 이런 것도.

“나 출정식인데, 보러 안 올 거요?”

“…그때까진 가려고 했어.”

그녀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표정이 아니라 안색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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