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06화 (206/343)

20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벗, 혹은 적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전풍은 그저 이쪽을 바라보기만 할 따름. 그는 제 손가락을 몇 번 꼼지락거리면서 슬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잘 지냈느냐.”

“예, 별가 어르신.”

나는 전풍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몇 번 고민하기는 했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래저래 복잡하게 엮인 사이였지만, 적어도 이 자리는 공적인 자리.

설령 친아버지라도 무덤덤이 답해야 할 자리였고, 그 이전에 나는 여전히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마운 감정도 있었다.

미운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큰 감정은 아니었다.

“…그래, 네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간과할 수가 없겠구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이냐.”

무슨 생각이라.

솔직히 원소군이 아니꼬웠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원소군을 통과시키면 기껏 자리를 잡은 황제는 물론이고 조조의 입지까지 뒤흔드는 사안.

애당초 원소의 움직임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명령에 따랐습니다만.”

“그런 겉치레는 치우거라. 지금 원소와 조조가 기 싸움을 하는 것은 알겠다마는, 왜 네가 구태여 그 효시가 되려 하는 게야. 설령 이 일이 틀어지더라도 조조는 너 하나만 쳐내면 끝이라는 걸 모르느냐?”

알고 있었다.

어차피 조조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그 이상으로 소연 아씨를 믿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그 소녀 황제를 부정했던 원소가 움직이는 것이 너무 노골적이기도 했다.

이유는 여럿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적어도 대군을 꾸려 피난길이 다 끝나고 나서야 도착한 원소군을 그 어린 황제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왜 직접 사지로 들어가느냐. 조조가 대체 무엇이라고. 애당초 일이 이렇게 번지면 조조와 원소가 결국 틀어질 것을 알고는 있느냐?”

“그건 상부의….”

“제발. 여긴 우리 둘뿐이다. 설령 말이 새어나갈 우려도 없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밖으로 퍼질 일도 없다. 그러니 속내를 말해보아라.”

어차피 여기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원소는 조조와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죽어도 황제 폐하를 원소에게 넘기지 않을 터. 애당초 추후 원소와는 싸울 생각으로 군비를 확장하고 있었다.

“뭐라 말씀하셔도 변하지 않습니다.”

“조조가 널 끝까지 보호해주리라 생각하느냐? 아니지, 아니야. 권력자는 자고로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팔아먹을 수 있는 이들이다.”

전풍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하거라. 지금 조조가 예주까지 손을 뻗었다고 하여도 그 여자의 적은 아직 많다. 원소가 작정하고 움직이면 형주의 유표를 움직일 수 있고, 서주 또한 연주와는 척을 진 관계가 아니냐.”

그는 천천히 걸어와 내 바로 옆, 조금 전까지 소연 아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움켜쥐었다.

깡마른 손의 감촉.

“설령 조조가 정말 원소와 싸우겠노라고 해도 원소의 적은 공손찬뿐이다. 그만 잡으면 그 드넓고 풍요로운 기주 전역이 원소의 차지야. 그런데 조조는? 형주와 서주, 양주까지 전부 이겨내야 하는데, 그 차이를 모르겠느냐?”

전풍은 그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고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분명 원소에 비해 조조는 적이 많았다.

형주의 유표는 애당초 원소와 손을 잡은 이였다. 서주는 연주와 사실상 일선을 넘은 상황에 양주의 원술 또한 조조와의 일전을 통해 척을 진 상황.

“그러니 원소에게 가담하라고요.”

“상황을 보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가 원소를 배신하고 제 세력을 꾸리려 한다손 쳐도 그게 어디까지 가겠느냐.”

안타깝다며 말하는 표정에서 절절한 감정이 느껴졌다. 저번 기주에서 만났을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랬다.

그는 여전히 나를 아들로 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속내를 의심했었다.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혹은 이용할 구석이 있어 그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행동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별가 어르…, 아니지. 전풍. 그쪽은 왜 자꾸 나한테 이러쇼? 솔직히 내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

솔직히 내 개인적인 감정을 전부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그랬다. 어머니와 어린 나를 내친 것은 다름 아닌 전풍 본인이었다.

물론 그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강간당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내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 명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쳐낼 수밖에 없었겠지.

분하기도 했고 밉기도 했지만, 이해도 했다.

문제는 그렇게 쳐냈으면서 왜 이제야 아비처럼 행동하려 구느냐는 말이었다. 그럴 것이라면 적어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라도 얼굴 한 번 보이지.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이름을 그리워하며 죽어갔다. 불미스러운 사고를 숨긴 자기가 잘못이라며 한탄하면서.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당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본인이 잘못한 것이라며 자책했었다.

그렇게 죽어갔다.

“…아들이잖느냐.”

“요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아들이 됐던가? 적어도 난 입양된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핏줄도 아닌 이를 아들이라고 키울 수 없던 것도, 외간 남자에게 겁탈당한 어머니와 함께할 수 없었던 것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역겹지만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아비 행세를 하면 안 됐지. 만약 그러려거든 애당초 그러질 말았어야지. 그 엄동설한에 그리 모질게 내치지 말았어야지.

정말.

진짜 조금만이라도.

“…웃기지 마쇼.”

그녀는 전가에서 쫓겨나고 몇 년도 버티지 못했다. 어떻게든 아직 어렸던 나를 데리고 생계를 꾸리다가 털썩 쓰려져, 결국에는 시름시름 앓아 죽었다.

“원망하는 건 아니야. 아니, 조금은 원망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야. 단지 그렇게 모질게 내쳤는데 이제야 아비라고 자칭하면 좀 우습지 않겠어?”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그동안 나이를 먹고 뭔가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는가? 죄책감이라는 것이 나이와 함께 찾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왜 자꾸 사람을 들쑤셔.

난 잊고 잘 살아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용서해주겠느냐.”

“용서할 것도 없소. 애당초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 유일하게 당신과 연이 있다면 어머니일 것인데, 안타깝게 그분은 진즉에 돌아가셨거든.”

사죄와 용서는 산 사람끼리 하는 행위다.

죽은 이에게 사과한다고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는 것이라고는 단지 자기 위로와 회한, 그리고 허망함 뿐이겠지.

“이런다고 변할 거 없소. 그 누구도 결코 이 뒤로 넘어갈 수 없고, 나는 동군의 군승이며 당신은 기주의 별가. 딱 그것뿐이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는가 싶어서 소연 아씨를 내보냈지만, 이럴 것이었으면 애당초 그냥 안량이 떠났을 때 자리를 파했어야만 했다.

괜한 얘기를 들어버렸네.

“가문이라는 것은 나 혼자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기반도 없었고, 전가의 가로들은 아직 정정했다.”

“그건 내가 말할 부분이 아니요.”

“나중에 그녀와 널 찾았다. 정식으로 가주에 올라 너희 모자를 찾았을 때, 그녀는 이미 죽었고 너는 이미 그 땅을 떠났더구나.”

구구절절한 옛날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신파극은 내게 어울리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이제 그런 사소한 것에 흔들릴 수도 없었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었다.

운이와 방삼이 같이 내가 돌봐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여포처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이가 있었다. 소연 아씨나 조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만 했다.

과거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겠느냐. 아직은 어색하겠지만, 미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조금씩 합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관직이 문제라면 그보다 더한 것도 쥐여줄 수 있다.”

“미안한데.”

한 발짝 걸음을 내디뎠다.

예전이라면 몰랐다.

아직 병주에 있을 때. 소연 아씨를 만나기 전의 나였다면 따랐을 수도 있겠지. 그때는 목표도 없었기로서니 삶에도 급급했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전호이기 이전에 호세였수다.”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마지막으로 시야에 잡힌 전풍은 허망하게, 그렇지만 무언가를 갈구하듯이 손을 뻗고 있었다. 물론 맞잡아줄 사람도 없는 손길.

기분만 잡쳐버렸다.

막사 바깥으로 나와 아군이 모인 진영으로 걷다 보니 소연 아씨가 서 있었다. 군영과 아직 거리가 좀 떨어진 위치에서, 그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검은 머릿결의 여인.

“…어떻게 됐어?”

“별 쓰잘머리 없는 얘기였어.”

아무튼, 이걸로 얘기는 전부 전달했다.

아군의 입장은 결코 원소군을 이 뒤로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 이제 남은 것은 전풍과 안량이 어떻게 나서냐는 것인데, 만약에라도 그들이 무력을 행사할지도 모르니 그것에 대응해야 했다.

“갑시다. 혹시 모르니까 우리도 준비해야지.”

“…전호.”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만은 호세라고 불러주쇼. 그때처럼. 우리 왜, 병주에서 있을 적처럼. 그냥 아무것도 없는 호세라고, 그냥 그 느낌으로 불러줘.”

지금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호세,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글쎄. 사실 잘 모르겠어.”

조금 가슴이 먹먹해서.

그의 마지막 눈짓과 표정. 허공으로 뻗은 그 앙상한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알더라도 어릴 적 추억과 겹쳐지니 묘한 기분도 들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떨까. 솔직히 가슴 한편이 여전히 복잡한 감정으로 뒤죽박죽되어, 그 안에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 내 스스로도 잘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뭐, 힘들 정도는 아니니까.”

“힘들면 기대. 내가 처음으로 원소와 마주했을 때, 그때는 내가 너한테 기댔잖니.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나한테 기대도 돼. 특별히 언제라도 허락할게.”

소연 아씨의 말에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라도 해주면 특별한 게 아니잖어.”

“할 때마다 특별한 감정이 들면 그게 특별한 거 아닐까? 사소한 행동이나 매번 하는 일이라도 감정이 움직인다면 그게 특별한 거잖아.”

하여간, 말은 잘해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뉘여 그녀의 머리에 내 머리를 기댔다.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걷는 와중에, 그녀의 머리에 살포시 기댄 머리가 간지러웠다.

어쩌면 가슴도 같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 * *

원소군은 결국 함곡도 넘지 못하고 회군했다.

이만이나 달하는 군이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온 일에 대해 원소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풍과 안량을 고생했다며 돌려보냈다.

“아만.”

벗이여, 나의 친우여.

너는 그런 결정을 해버렸느냐.

어릴 적 내 뒤를 쫄쫄 따라오던 개구쟁이에 거짓말쟁이. 그러면서 욕심쟁이였던 너를 아직도 기억한다. 천진난만하게 모든 일에 흥미를 품던 은발 소녀의 모습은 아직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었다.

“커서는 철이 들었구나 했는데.”

원소는 홀로 집무실에 앉아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소리를 키웠고, 이윽고 그 웃음은 폭소가 되어 집무실 전체에 울릴 정도로 그 크기를 키웠다.

원소는 한참을 웃었다.

웃다가, 울었다.

“결국은 너도 내 적이 되기로 했느냐.”

세상 모두가 원소에게서 등을 돌려도 그 말괄량이 아만만은 자신의 편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원가의 사생아이며 얼자.

가문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자신과 유일하게 어릴 적부터 어울리던 것이 조조니까. 그러니까 가족은 몰라도 그녀와는 쭉 이어질 줄 알았다.

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까.

그녀는 그의 유소년기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장성하고 나서 관료로 입문하고 나서도 줄곧. 미숙했던 그녀를 돕기도 했고, 반대로 그녀가 그에게 지혜를 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존했다.

원소는 그 옛날을 추억했다.

그녀는 유독 자신이 키가 작은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원소는 키가 컸기에 나란히 서면 유독 작아 보인다며 제 옆에 서지 말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녀가 십상시의 친족을 때려죽였다는 소식에는 얼마나 놀랐던가. 생각해보면 그녀는 언제나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예전에는 그게 우스웠다.

크고 나서는 그게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그런 과거가 있었다. 그녀와의 추억은 어릴 적 소중한 것을 넣어둔 보물상자와 같은 구석이 있었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애틋했고, 그 이상으로 소중한 것들이 잔뜩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가.

원소에게는 그 피보다 진한 우정이었다.

“벗이여. 아아, 나의 친우여.”

친애하노라.

애정했노라.

나의 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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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어먹은 게 상했는지 배탈이 너무 심하게 났네요. 여러분도 혹여나 냉장고의 성능에 의존하시어 배달음식 며칠 지난 거 드시면 안 됩니다.

여전히 화장실을 전세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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