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벗, 혹은 적 군을 홍농 부근에 배치하고 며칠 정도 휴식을 취했다. 그간 연이은 전투로 부상한 이들을 돌보거나 보급품 등의 재분배 등만 해도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
솔직히 이게 쉬는 거냐?
아니 진짜 미치겠네.
“아씨! 백파적놈들 보급품은 어떻게 됐수?”
“그거라면 방삼이를 보내두었어. 그쪽에 서황과 만나 필요하다는 걸 듣고 일정 선을 넘지 않는다면 통과시키라고 해뒀고.”
장양은 저 알아서 잘할 것이고 조홍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정작 중요한 건 내가 기존에 끌고 왔던 기병과 소연 아씨와 합류한 병력, 그리고 특히 백파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 빌어먹을 족속들은 안타깝게 군량도 모자란 데다가 기본적인 치중마저 모자랐다. 그나마 이제 전투는 없겠으나 기존 군수물자를 지원해달라는데 거절할 이유 또한 없었다.
“군마의 상태는? 이번에 쓰러진 군마가 좀 있다고 들었는데, 그쪽은 누구에게 일임했어? 여포?”
“일단은. 장료 그 양반도 돌아와서 같이 맡겨두었고, 운이에게도 상태를 봐서 부상병의 관리만 끝나면 그쪽과 병행해달라고 했수.”
혹시라도 놓친 게 없을지 정리하면서 상황을 살폈다. 병사를 쉬게 하면 간부가 바빠진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되려 군이 멈추니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몰려왔다.
특히 부상한 병사와 말의 관리.
군량을 비롯한 치중이야 필요한 만큼 적당히만 배분해도 문제는 없었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병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 방법도 없었다.
군마라면 차라리 잡아라도 먹지.
어쩔 수 없이 민간요법으로 간간이 처리하고는 있었지만, 이건 가끔 소연 아씨도 직접 찾아가 응급처치를 해야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머릿수가 많으니 돌아버리겠네.”
“원래 군의 일이 다 그렇지.”
소연 아씨도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녀가 군 전역에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특히 의학은 언제 배웠는지 종종 부상병의 응급처치를 도맡아 하는데, 덕분에 그녀는 아군 내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 중 하나였다.
덕분에 근래 있었던 아가씨와 나 사이의 기묘한 기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좀 여유가 있어야 진득하게 하지. 이건 뭐 거의 과로사 당할 수준이잖아.
머릿수가 일만 가까이 되는 데다가 군마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솔직히 몇 장수만으로 전부 처리할 양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되잖니?”
“그렇긴 한데, 솔직히 너무 피곤하지 않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준비라도 했지, 처음에는 그냥 백파적 토벌이라고 해서 기병만 끌고 왔다고.”
그게 천추의 한이었다.
만약 황제가 이렇게 오고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만반의 준비를 했지.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웠다.
“일단 군마의 처리는 맡길게. 살리지 못할 것들은 오늘 밤중으로 도살하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낙양까지는 끌고 가는 방향으로.”
“알고 있수다.”
어차피 해야 할 작업도 거의 다 끝나가는 와중이었다. 아마 모레엔 낙양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게 낫겠지.
그렇게 계속 군수물자의 출납 장부를 살피면서 아씨와 말을 주고받았다. 바쁜 일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몸이 좀 가벼워지려는 찰나.
“주인아!”
천막을 걷고 여포가 들어왔다.
“뭐야, 뭔데. 또 뭐야?”
목소리가 다급해 보였기에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막사로 들어온 여포는 곧장 이리로 다가와 내 손목을 붙잡고는 살짝 끌어당겼다.
“일이 꼬였어.”
“아니 뭔데. 뭐 병이라도 돌았어?”
만약 그러면 진짜 꼬이긴 한 건데.
낙양까지 진군하는데 부상병까지 돌보며 가려면 약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 부대에 병이라도 돌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차라리 병이면 낫지.”
여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혀를 찼다.
“노란 깃발을 단 병력이 전방에 나타났어.”
“뭐?”
소연 아씨가 살짝 고개를 들고 여포를 바라봤다. 순간 머리가 잘 돌지 않았는데, 노란 깃발이라면 황건적은 아닐 것이고….
생각나는 군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원소냐?”
“그렇겠지. 규모는 약 이만 정도로 추산된다는데.”
염병.
이만? 갑자기?
대체 어디서. 아니, 어디서라는 말은 우습지. 어차피 황하 건너가 바로 하북과 연결되는 지역인데 배 타고 넘어오면 바로 코앞이 아니던가.
소연 아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는요?”
“…어, 음….”
여포는 갑작스럽게 아씨가 말을 거니 살짝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여포는 은근히 소연 아씨를 좀 어려워했다.
“아, 대충 어림잡아 행군속도로 반나절 정도? 그렇게 멀진 않아. 아마 그쪽도 우리를 보고 멈췄을 거 같은데.”
“…왜 잠잠하나 했더니.”
뿌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만이면 일단 우리끼리는 못 이겨도 낙양에 주둔한 조공을 부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저쪽이 싸울 생각이라면 말이야.”
우선 명목상으로 원소군과 조조군의 동맹은 여전히 굳게 이어져 있었다. 갑자기 뒤를 치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우선 아군은 대치하면서 상대와 먼저 대화를 여는 게 관건.
하지만 원소가 황제를 요구하면 어떡하지.
“아마 당장 싸우려고 들지는 않겠지만, 이번 일로 틀어질 확률은 높지. 조공은 황제 폐하를 모실 생각이고, 그게 아니어도 현 황제 폐하를 무시한 원소가 날름 모셔가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으니까.”
소연 아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간의 정적은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한 침묵이었다. 아마 원소군 내에서도 조조를 견제하자는 말이 있었겠지.
연주와 예주. 사실 주로만 따지면 원소가 기주 하나를 자치했을 때 조조는 두 개의 주를 가진 셈이었으니까.
물론 하북의 중앙인지라 땅도 드넓고 인구도 많은 기주를 하나의 주로 치는 건 좀 무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행정구역으로 치면 그랬다.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었다.
“전투까지 번질 일은 없겠지?”
“아마도. 그쪽도 아직 아군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번 일로 틀어질 건 확실하겠네.”
원소가 구태여 하북에서 군을 사예주로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조가 원소에게 대뜸 황제를 보낼 리도 만무.
“주인아, 그럼 어떡해? 일단 대치만 해?”
“자리를 만드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하고.”
골치가 아팠다.
솔직히 원소군까지 꼈다면 내 권한은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것. 살짝 고개를 돌려 아가씨에게 시선을 건넸다.
현 조조군 내에서 조조 당사자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건 소연 아씨였다. 이런 외교적인 일에서 그나마 발언권을 가지려면 적어도 아씨 정도는 나서는 게 순리겠지.
“일단 기다리자.”
“이대로?”
아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펼쳤다.
“어차피 그들은 아군을 넘지 못하면 함곡관으로 진입할 수가 없어. 어떻게 되었건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먼저 말을 걸어오겠지.”
확실히 현 홍농 방면에서 낙양으로 들어서려면 아군이 자리 잡은 가도를 지나 함곡관을 거쳐야만 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낙양으로 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 너무 빙 돌아가는 길이라 안 가느니만 못한 길.
“그럼 뭐, 기다려 보자고.”
어깨를 으쓱이고 다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정해졌다면 우선 해야 할 일에 다시 집중해야지. 솔직히 이런 문제는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 * *
정확히 하루 뒤 원소군 사자가 도착했다.
저 자신을 고람이라고 소개한 장수는 나와 소연 아씨를 향해 바라보며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는데, 솔직히 그 말에 대뜸 수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난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원소군의 총의요. 황제 폐하가 역적의 손아귀에서 피난길에 오르셨다 하여 구원군을 보냈는데, 동맹이라는 그대들이 길을 가로막는 것이요?”
콧수염까지 씰룩이면서 말하기에 픽 웃어주었다.
“난 잘 모르겠고. 내가 받은 명령은 그 누구도 함곡을 넘게 두지 말라는 거였으니까. 명령에 순응하는 것이 장수로서 무슨 잘못이 있는지?”
“기주의 병력을 역적으로 모는 것이요?”
“누구도, 라고 하지 않았소?”
정 급하면 따로 수뇌부에게 연락하라는 식으로 뻐겼다. 물론 다 구실에 불과하지만, 솔직히 이대로 낙양으로 원소군을 보낼 수도 없잖아?
“기주목께서 그간 연주목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었는데, 그대들이 이리 무도하게 굴어도 되는 거요? 황제 폐하께 호응하고자 하는 아군을 가로막는 것은 대체 무슨 저의란 말이요!”
“누가 들으면 억지로 그러는 줄 아시겠네.”
어깨를 으쓱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다 얘기는 끝났다. 여기서 따로 조조의 명령이 없다면 이들을 결코 함곡관 너머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버티다가 만약에라도 조조가 통과하라 시키면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만이잖아?
물론 조조가 그럴 리도 없겠지만.
“나는 그저 군부의 장수요. 상부의 명령에 충성하는 것이 군인의 역할인데 저의라니? 난 분명 누구도 통과시키지 말라 들었으니 이러는 거 아니겠소?”
솔직히 좀 얄밉게 군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가지 않으면 원소군을 붙잡아두기 힘들었다. 고람이라는 장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으니 반쯤은 성공한 느낌이긴 한데.
근데 진짜 나중에 뭐 탈 나는 건 아니겠지?
“어찌 이리 무도한가! 조조에게 동군 태수의 자리를 상소한 것도 원공이었고, 그대들을 비호하고 지원한 것도 원공이거늘, 그대들이 진정 은혜라는 걸 아는가!!”
“군인은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명령에 충성하오. 미안한데 솔직히 말해서 난 두 분의 관계는 모르겠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다 책임질 것이니 우선 그렇게만 알아두시오.”
……정말 책임질 일은 없겠지?
살짝 눈을 옆으로 굴려 소연 아씨를 바라봤는데, 그녀는 제법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 계속 이렇게 나가도 되는 거 맞겠지?
“어찌 이리 융통성이 없소?”
“군인은 정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설령 동맹이라 하여도 사전에 통보되지 않은 움직임에 대해 무조건 길을 열어줄 필요는? 상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소.”
“…이 일을 감당하실 수 있겠소?”
고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일이 꼬인다고 내 모가지를 잘라 원소에게 보내진 않겠지. 아무리 조조가 좀 막 나가는 여자여도 설마 그러려고. 아무리 좀 분위기가 그래도 일단 하룻밤을 같이 보낸 사이인데, 설마.
에이, 설마 그러려고?
“…내 이 일은 반드시 보고할 것이요. 별가와 병조께서 이 일을 안다면 이번엔 직접 담판을 지으러 오실 것이요.”
“그러시오.”
어차피 조조가 보기에 원소 또한 잠재적인 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구태여 이들을 낙양으로 보내어 안 그래도 복잡한 판도를 더 복잡하게 꼬아야 할 필요가 있던가?
전혀.
당장 아군을 건드릴 수도 없을 원소가 두렵다고 원소에게 황실의 안위를 맡긴다고? 동탁이 세운 소녀는 정통성이 없다고 꺼드럭거리던 그 양반한테?
웃기지 말라고 해라.
농담도 너무 웃기면 반대로 웃을 수 없었다. 염치가 있다면 원소가 감히 현 황제 폐하에게 손을 뻗을 생각도 못 할 것인데, 아무래도 원소는 염치도 모르는 파렴치한이 맞는 것 같았다.
“…조만간 다시 봅시다.”
“멀리 못 나갑니다.”
“쯧.”
고람은 마지막까지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그 뒷모습이 떠나고 난 뒤에야 각자 이 사태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나도 고개를 돌려 소연 아가씨에게 시선을 돌려 앞으로 있을 일을 상담하려 했다.
“…아씨?”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살짝 웃고 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살짝 사색이 된 얼굴. 딱딱하게 굳어서는 고람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뭐요. 혹시 나 뭐 실수했어?”
“원소군의 별가까지 나왔다고.”
별가?
그거 소연 아씨의 관직과 같은 그거 아닌가? 물론 그게 주에서 목을 보좌하는 중역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이렇게 난감해 할 정도의 일이던가.
“어차피 할 일은 똑같은 거 아니요?”
“기주의 별가가 누군지 아니?”
그런 걸 알 리가.
애당초 지금까지 정치판과는 영 별개의 일만 했으니까. 복양에 있을 때는 성주로서 서류작업만 해도 벅찼고, 연주성에 있을 때는 보통 무관으로 병사 조련에 매진했었다.
“누군데 그러쇼? 뭐 대단한 사람인가?”
“…대단하기는 하지.”
대체 누군데 그리 뜸을 들이나.
솔직히 좀 답답해서 소연 아씨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 아가씨가 못내 한숨을 쉬면서 내 손을 붙잡았으니.
“전풍.”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현 기주의 별가 종사사는 그 남자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솔직히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고, 관계되고 싶지 않은 이름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마주치리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자리에서 딱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것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사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원소군이 낙양으로 향하는 걸 저지하면 그만이었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그걸 저지하면 끝.
상대가 누구건 관계없었다.
관계는 없는데….
“좀, 껄끄럽긴 하네.”
그 남자와는 여러 이해관계가 있었다. 잊고 싶은 추억도 있는가 하면 감사한 일도 있었다. 어릴 적 조그맣게 남은 추억 안에는 그 남자의 이름도 분명 존재했다.
이렇게 다시 엮이나.
어지간해서는 다시 재회하리라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저 언젠가는 적으로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 했을 뿐이었다.
아마 다음에는 전풍이 직접 나서겠지.
참, 인연이라는 것도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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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회입니다.
그리고 진궁 선생에 대해 질문해주신 분들이 계신데, 스포일러는 자제하더라도 진궁 마망도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중에 분명 제대로 지분 빵빵히 들고 등장하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