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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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해도 있었다.
아무리 사방에 불을 붙였다고 해도 말 자체는 본디 시야가 어두워지면 예민해지는 생물. 그러니 몇 병사는 말에서 나가떨어지기도 하는 등의 피해는 있었다.
그래도 승리했다.
초전의 패배와 이번 야전에서의 대패.
이걸로 이각의 추격 의지를 반쯤은 꺾을 수 있을 터. 물론 아군도 피해가 있었지만, 적을 물리친 규모에 비해서는 작은 편. 확실히 대승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도중에 우금이 이끄는 부대도 합류했다.
함곡관을 우회하는 협소한 가도를 가로막아 곽사의 군을 막았다는데, 애당초 가파른 능선 위에 포진하고 있었기에 곽사는 이렇다 할 힘도 못 쓰고 돌아갔다던가.
이걸로 아군의 전력이 전부 모였다.
장양의 군이 약 천정도 남았고, 나와 소연 아씨의 병력이 육천 가까이. 거기에 백파적이 이천하고 오백 남짓의 차이이니, 얼추 만에 가까운 병력이 모인 셈이었다.
이각과 곽사의 추격도 떨쳐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운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적의 주력이던 이각의 부대와 별동대 역할을 하던 곽사의 병력도 깎아낸 시점.
“바로 낙양으로 향하면 되는 거 아니니?”
조홍의 말에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이각과 곽사의 주력 추격대를 떨쳐내긴 했다. 그러니 이제 아군이 낙양으로 향하는 걸 방해할 존재는 몇 없었고, 당연히 움직이기는 해야 했다.
“그건 너무 이르잖소.”
하지만 당장 할 일은 아니었다.
“병력이 너무 지쳤어. 어차피 폐하의 안전이 확보된 시점이니 이각과 곽사가 재차 추격하는 것을 방지할 겸, 이 부근에서 며칠 정도 충분히 휴식을 주면서 대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병사라는 것은 도구가 아니었다.
움직이면 지치고 배고프면 힘이 빠지는 인간. 아무리 앞날이 바쁘다고 해도 휴식에 짜게 굴어서는 제대로 된 전투력은 유지할 수 없었다.
적어도 몇 번이나 연전을 치른 군을 또 움직이게 하는 건 부담스러우니까. 내가 병사로 군에 종사했을 적, 전투와 행군을 병행하던 사령관이 있었다.
솔직히 죽이고 싶었다.
심지어 말도 없는 일반 병사에게 미친 듯이 땅을 내달리며 싸우고 행군하기만을 반복시킨다? 아마 조만간 다 퍼져버리겠지.
조홍의 말도 맞는 말이지만, 당장 급한 게 아니라면 우선 휴식을 충분히 부여하고 싶었다.
“…그러네. 어차피 언니도 낙양에 도착했을 것 같으니까. 어쩌면 벌써 폐하와 합류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선 병사를 좀 쉬게 합시다. 장양 태수님과 조홍 태수님도 그걸로 괜찮으시다 하면 우선 진영을 구축하겠습니다만.”
그 말에 장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야 쉬면 좋지.”
조홍도 수긍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장료.”
“예, 장군.”
그는 평소에 나를 가리켜 형씨라고 불렀지만,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깍듯한 자세를 유지했다.
“기병 백을 이끌고 주변 정찰을 봐줬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에 물러난 이각의 본대. 그쪽을 파악해줘.”
아군의 기병대장은 명목상으로 장료였다.
여포는 아직 제대로 된 관직도 없었고, 그녀는 어디까지나 내 몸종. 주먹구구식으로 그녀를 대장으로 세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장료가 있다면 그를 통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백은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여차할 때 몸을 뺄 수라도 있지. 난 아직 장료, 당신한테 시킬 일이 많아. 만약 적 병력과 맞닥뜨렸을 때 승산이 없으면 그냥 빠져.”
어차피 그가 물러날 정도로 많은 병력이 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면, 그건 이각의 본대가 여전히 벼르고 있다는 말이었다.
“예, 장군.”
장료의 확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는 방삼이랑 진영을 구축하고, 우선 장양 태수님도 아군과 근접하여 배치해주실 수 있습니까?”
“문제는 없소만.”
군의 규모는 컸지만, 그렇다고 아직 이 주변이 안전하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적어도 각지에 정찰병을 파병하지 않는 이상에야 각 군이 뭉쳐있는 쪽이 여차할 때 대응하기 편한 감도 있었다.
그렇게 각자 역할을 맡기며 군을 조율하는 동안 소연 아씨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끝까지 말을 이었다.
“우선 관문을 넘기 전에 잠시 대기. 두 태수분께서도 군을 대기하여주시고, 여차하면 소통 가능한 병사는 상비시켜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알겠소.”
“아니 뭐, 나는…. 알았어.”
장양과 달리 조홍은 무언가 한마디 하려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
힐끗 시선을 돌려 아가씨를 바라봤다.
그저 살짝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보아 내가 잘하고 있는 거겠지? 솔직히 지금이라도 더 나은 방식이 있을까 조금 고민하게 됐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엔 이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장 움직이기엔 병사에게도 너무 많은 피로가 많이 쌓였다.
군의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소연 아씨가 남아있는 걸 보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내 곁에 남아있으려던 여포도 장료에게 딸려 보냈다.
마지막까지 버려진 강아지처럼 바라보는 게 조금 찔리긴 했지만, 솔직히 언제까지 여포를 내 주변에서만 움직이게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군막에 단둘이 남았다.
“…어떠셨소?”
“응. 아주 좋았어.”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짝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까부터 저 웃는 얼굴은 당최 변할 줄은 몰라 그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 다가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이 자리를 지키면서 행동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지금 기병 전력이 너무 과도하긴 한데, 어차피 낙양 쪽에 조공이 도착했다면….”
“그쪽에서 보급은 받을 수 있어. 아군이 여기서 며칠 정도는 머물러도 문제는 없을 거니까 맞는 선택이야.”
병마가 소모하는 건량을 비롯한 치중 소모는 과도했다. 게다가 이번에 그 건량 대부분을 작전을 위해 태워버렸으니 더 버티기 힘든 것도 사실.
그렇지만 보름 정도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잘하네. 솔직히 네가 황제를 보필하면서 이렇게까지 잘해줄 줄은 몰랐어. 특히 백파적 무리를 수하로 들인 건 정말이지….”
“원래 하던 방식을 좀 응용한 거지.”
“조금 엇나갔으면 내전으로 번질 수 있었잖니? 그걸 잘 조율한 건 네가 잘 판단한 거야. 그 군을 규합한 것도, 이렇게 안정적으로 움직인 것도 전부.”
사실 각 군의 눈치를 좀 보긴 했다. 그게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싶을 때, 그때 방삼이의 말에 망설임을 지우고 공격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렇게 네가 혼자서도 잘하면….”
그녀는 천천히 다가왔다.
너무 조금씩 다가와서 언뜻 보기에 다가온다는 걸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온 그녀는 이윽고 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천천히 뻗어지는 손길.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작에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손길이 내 멱살을 부드럽게 휘어잡았다.
“나, 좀 싫을지도 몰라.”
“…어, 음…. 그, 아씨?”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울었다.
“잘 성장해줘서 기뻐. 이건 사실이야. 그런데 가끔은, 정말 가끔은 네가 이렇게 멀어지는 거 같아서 그게 싫어.”
빤히 바라보는 두 눈동자가 정확하게 시선을 맞추어왔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그 눈빛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색.
조조와 비슷한 색상이지만 분명 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건 분위기의 차이일까. 단순히 그렇게 느끼기에는 너무 극명한 차이였다.
“우리가 처음에 만났던 거, 기억해?”
“그걸 잊을 리가 있나.”
여전히 그녀에게 멱살을 잡혀 살짝 고개를 숙인 느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는 소연 아씨의 얼굴에서는 묘한 기색이 돌았다.
“그럼 네가 했던 말은?”
“…그간 말했던 게 한두 가지도 아니잖수.”
“내 검이 되겠다며.”
아 제발.
지금 생각하니까 부끄럽잖아.
그때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누가 내 대사를 읊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니까. 지금도 그 말에 후회는 않지만, 적어도 이렇게 소연 아씨의 입으로 되새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간 생각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너에게 어떤 걸 해줄 수 있고, 너는 내게 무얼 바라고 있을까.”
분위기가 영 요상했다.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지만 다소 웃음기가 있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살짝 물러나고 싶어도 멱살이 잡혀 그럴 수 없는 상황.
예전에 한 번 호랑이와 대치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사람 숫자도 여럿 있었기에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 호랑이가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오금이 저린다는 감각.
그 비슷한 감각이 지금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우리가 사마 가문에 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니? 그때 내가 했던 말, 했던 행동. 그리고 마주했던 입술, 아직 기억해?”
“…놀랍게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수.”
떠올리라면 당장이라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 감각을 어떻게 잊나. 내가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 따르기로 했던 사람이 날 인정해준 느낌은 어지간한 쾌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살짝 상기된 볼과 분홍빛 입술. 내 입술은 다소 말랐었던가.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것을 덮었던 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응.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됐어.”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손을 뗐다.
쥐었던 멱살을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겨져 수그러진 몸을 펼 생각도, 그렇다고 무언가 답할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거면 됐어.”
그녀는 무언가 여지를 남기고는 떠나버렸다.
* * *
황제가 홍농 인근까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찬가지로 연주의 조조가 군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첩보를 들었다.
이에 원소는 군을 출병하기로 결정.
그 사령관으로 안량을, 그 보좌를 전풍에게 맡겨 군 이만을 편재하여 홍농 인근으로 출발시켰다.
“전풍 참군. 우선 당신도 인정하였고 원공도 동의하셨기에 군을 움직인다마는, 아직 공손찬이 건재한데 이렇게 병력을 돌려도 되는 거요?”
“아직 괜찮습니다. 이제 가을의 초입이고 곧 수확 철에 들어가는데, 안 그래도 공손찬의 군은 최근 군량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전풍은 안량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군량이 부족한데 당장 추수철을 앞두고 그 노동력을 전쟁에 돌릴까? 아무리 공손찬이 전쟁으로 떠오른 군벌이라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전쟁으로 성공한 이이기에 그런 보급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올해는 겨울 전까지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확률은 없었다.
“단언해도 좋습니다.”
“참군은 가끔 보면 참 신기할 때가 있소. 내 똑똑하다는 이는 여럿 보았지만, 참군만큼 단언하는 이는 본 적이 없거늘.”
전풍은 꺼낸 말을 정정하는 적이 없었다.
언제나 확언하듯이 말을 꺼내는데, 정작 까보면 대부분 그의 말대로 돌아갔다. 그러니 원소도 꼬장꼬장한 전풍의 말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이는 것.
반면 전풍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만 있으면 나머지는 유추하기 쉽지요. 그 대상의 성향과 상황, 정세, 판도만 정확하다면 그 뒷일을 예측하는 게 무에 어렵겠습니까.”
“거참.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지.”
안량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그를 긍정했다.
사실 그는 이번 원정이 영 달갑지 않았다. 안 그래도 조조군이 움직인 데다가, 현 황제라면 원소와는 영 껄끄러워야 할 관계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렇게까지 시원한 확답을 듣고, 또 그런 이가 강력하게 황제 옹립을 주장했다면야. 안량은 전풍이라는 남자를 존중하며 인정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요?”
“우선 낙양으로 바로 달려가기보다는 홍농 일대에 주둔하며 압박해보지요. 이번 일로 조조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명확해질 것입니다.”
만약 조조가 여전히 원소에게 충성하고 있다면 황제를 하북으로 보낼 터.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조라면 원공을 배신할 리 없지 않소이까.”
“세상일은 모르고, 그것보다 더 모를 것이 사람입니다. 한 번 권력을 맛본 이는 특히 제 머리 위에 누군가가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지요.”
물론 여기서 조조가 원소에게 반기를 든다 하여 바로 그녀를 공격할 수는 없었다. 아직 원소에게는 공손찬이라는 최대의 적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적이라고 판명할 수만 있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니 우선은 움직이되, 조조군의 반응을 기다린다.
“진실이라면 원공께서 슬퍼하시겠군.”
“그러시겠지요.”
전풍도 그 말에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아마 슬퍼하기보다는 분노하지 않을까 싶었다. 애당초 원소라는 사람은 오랜 벗의 배신보다도 그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것을 더 신경 쓰는 남자였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전풍과 안량은 수배한 선박에 병력을 편재하여 황하 너머로 건너갔다. 목적지는 홍농, 더 나아가 낙양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하북의 강자 원소와 중원의 강자 조조.
두 세력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사예주 반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