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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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차 권력을 경쟁할 장양과 연주군이 먼저 떨어져 나간다면 감사한 일. 쭉 나아가 먼저 낙양으로 들어가 그 보필에 임한다면 동승 이상 가는 공신이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반면 유협은 어가 안에서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소녀가 생각하기에 동승은 아직도 군에 일하며 동탁과 함께하던 성질머리를 버리지 못했다. 다소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해야 할까. 어떤 의미로는 욕망에 충실하다고 해도 좋을 터.
몇 번이나 다른 이들은 어찌 되었냐고 물었는데도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이제 낙양으로 모실 수 있다며 실실 웃는데, 유협에게는 그게 답답하다고 느꼈다.
전선의 양상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동승은 어차피 빨리 따라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더욱 진군에 박차를 가하며 옛 수도로 나아갔다.
그렇게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다.
“…연주목.”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가?”
동승의 군과 마주한 조조가 빙긋 웃었다.
왜, 대체 언제부터.
연주 동군의 군승인 전호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었다. 설령 군을 준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사전에 장안에서의 움직임을 알지 못한다면 이리 빠르게 낙양에 도착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는 장양과 전호가 먼저 접촉했다는 걸 몰랐다.
사전에 장양과 접촉한 연주가 군을 모으고 있었다는 것을 장안에서 한창 유협을 데리고 도망치던 그는 알지 못했다.
“지금 황제 폐하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오?”
“그럴 리가 있는가. 본인은 폐하의 호위를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대의 군만으로는 황제 폐하를 모심에 있어 불편함이 있지 않겠는가?”
동승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기존 이각군과의 전투에서 패퇴한 이들을 긁어모아 구성한 것은 사실. 지금도 숫자는 오백에 불과했고, 그 상태도 변변찮은 이가 제법 있었다.
“폐하를 알현하고 싶다.”
거절할까.
지금 당장에라도 황제의 행차를 가로막는 이들이라며 꾸짖을 수는 있었다. 지금 황제를 모시고 있는 것은 동승 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군의 규모는?
당장 얼핏 보아도 일만은 가뿐히 넘는 숫자였다.
게다가 연주목 조조라면 동승도 알고 있었다. 최근에 여포까지 제압하며 실질적인 중원 최강으로 군림한 군벌. 물론 황제를 모시고 있기에 당장 무력을 써 공격해오지는 않겠지만, 그 이후는?
조조와 척을 지고 황제를 모신다고 하여 일이 원만하게 돌아갈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낙양에 입성하여 다른 제후를 소집하였으면 모를까, 그 전에 조조에게 덜미를 잡혔다면.
“…지금 폐하께 말씀 올리겠소.”
끝이었다.
“합리적이군. 그대의 그런 자세는 좋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눈치라면 조금은 살려두어도 좋겠지. 만약 여기서 호통을 쳤더라면 조조군도 다소 골치가 아팠을 일이었다.
물론 골치 아픈 정도에서 끝.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낙양에 황제가 도착한다고 하여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위로 원소가 있다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현 황제의 권위를 부정하던 인물.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장 가장 가까운 연주에서 주변으로 압력을 넣을 수 있을 만큼의 군벌이 된 조조에게 대항할 수는 없을 터. 만약 그랬더라면 조조도 손을 털고 황제를 포기하려 했다.
포기한다.
하지만 남에게 주기에는 아까운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 정답은?
너무나도 단순하지 않은가.
그녀는 저 멀리 황제가 탔을 어가를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휘하 제장 중에서는 구태여 아군이 황제를 옹립하지 않아도 강함이니, 구태여 무리할 필요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정욱이 그러했다.
조조 본인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러니 여기서 처신하는 것을 보자. 만약 황제나 동승, 어느 하나라도 그녀를 거부한다면 여기서 깔끔하게 털어낼 생각이었다.
“원양.”
“응?”
조조는 반응한 하후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말에 올라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렸을 적. 아직 아만이라고 불리던 시절에는 저 만인의 위를 드리운 하늘에 올라서고 싶었다.
구름 위를 거닐어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것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넓고 푸르렀다. 그 감상이 바뀌었다고 한다면 하늘이 바뀐 게 아니라 조조 본인이 바뀐 것.
“사람은 어찌 변하는가?”
“뭐?”
사람은 변한다.
어릴 적에는 저 드넓은 하늘 위에 올라서고 싶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을, 그 전망을 꿈꿨던 유소년기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군을 준비시키도록. 기세를 끌어올려라. 전시의 태세를 갖추고, 모든 이에게 무기를 들고 삼엄을 유지하도록 명한다.”
“무슨 생각이야? 동승도 곱게 나왔잖아.”
그녀의 눈에 애당초 동승은 비추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저 황제에게 꼽사리를 낀 파리 중 하나. 조조의 시선은 줄곧 어가를 향하고 있었다.
“다 쓸데가 있다.”
어린 황제여.
당신은 이 조조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장차 그녀는 황제의 권위를 짓밟으리라. 시간이 지나 그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황제를 발아래 깔고 그 권위를 휘두르는 권신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 황제에게 조조는 역적이었다.
언젠가는 그 곤룡포마저 앗아갈 불구의 역적이며 원수. 지금 조조가 움직인 이유도 황제의 휘광을 빌려 현 중원의 혼란을 빠르게 제압하며 각 제후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조에게 있어 이제 황제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과거 한 황실을 위해 일하던 조조는 욕심에 집어 삼켜져 버렸다. 이제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은 응당 제국의 너머. 이윽고 검은 깃발이 온 천하에 꽂혀있는 광활한 대지.
영광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권력도 그것에 견주면 보잘것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천하 전부를 손아귀에 쥔다는 감각. 천하 누구나가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하며 아욕을 숨기지 않는데 조조에게만 금욕을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났다.
저 멀리서 동승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것은 황제의 어가. 본디 수하가 황제에게 가야 하는 것을, 동승은 조조에게 기가 눌려 그런 생각은 못 하고 그저 황제의 어가를 조조 앞으로 몰고 나왔다.
“우습군.”
황제의 권위가 이토록 땅에 떨어졌다.
“연주목, 비록 전장이라고는 하나 황제 폐하의 어전이요. 병사를 물리라고는 하지 않겠으나, 적어도 연주목의 무장은 전부 해제해주셔야겠소.”
“그리하겠다.”
그녀는 그 허리춤에 찬 의천을 뒤에 있던 병사에게 맡겼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하후돈을 비롯한 장교들도 전부 그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어가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황제 폐하 납시오!”
상시의 말에 조조는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흙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원소와 헤어져 동군으로 내려온 이후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일 일도 없었지만, 그녀는 이것을 굴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제국의 황제가 제 도구가 되기 직전인데.
“…연주목은 고개를 들라.”
어린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더라도 황제는 황제. 그 어린 소녀의 등장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를 뵙사옵니다.”
전시에는 만세를 열창하는 등의 과도한 예는 생략하였기에 그녀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짐의 행차에 이리 몸소 참전하여 고마울 따름이노라. 연주목이 보낸 이도 크게 활약했으니, 이게 어찌 국가의 충신이 아니겠는가?”
전호라면 실패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저 자신의 마음을 별개로 놓고 보더라도 그는 충분히 유능한 인재였다. 그 무력과 인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 때문에 그녀와도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 단지 무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볼 줄 아는 인재였다.
“그가 도움되셨다면 그보다 기쁨은 없사옵니다.”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
그 붉은 눈동자가 빤히 자신을 응시한다. 예전에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말을 섞어본 적은 없던 여인. 유협은 조조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했다.
동탁을 암살하려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반동탁 연합군이 낙양에 결집했을 때도 누구보다 강하게 동탁을 추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것. 이런 것만 들으면 누구보다도 충신에 가까운 인물일 터.
그런데 어째서인가.
“고생, 하였다.”
살짝 말이 끊겼다.
목이 말라붙는 느낌도 들었고, 무엇보다 살짝 어깨가 떨렸다. 저 검은 군기를 올린 군대의 모습에 위압감마저 들었다.
그들은 유협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 조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소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여인을 모두가 바라본다. 조조는 진중한 자세로 유협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붉은 눈동자에 흉흉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전부 기분 탓일까.
“연주목. 짐은 이리 무사하나 뒤에 남아 마지막까지 짐을 수호하고자 한 영웅들이 남아있노라.”
“분부만 내리신다면 장안의 역도를 전부 물리치겠사옵니다. 완벽한 승리를. 그 역도의 살과 피를 짓이겨 폐하의 이름을 천하에 알리겠나이다.”
그녀는 분명 동탁과 다른 사람이었다.
이각과도 달랐고 곽사와도 달랐다.
그렇다고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은 십상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여인. 분명 그들보다 황실을 위하여 여러 전공을 올린 인물.
“그러면 그들을 구원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묘한 찝찝함이 남았다.
조조는 분명 황실과 제국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것은 황실에 갇힌 유협에게 들릴 정도로 공공연한 사건들.
그러니 의심하면 안 됐다.
어차피 의심한다고 하여 연주목 조조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수하인 전호도 소녀를 위해 많은 전공을 올리지 않았던가.
생각하지 말자.
소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주목. 그대의 분투를 응원하겠노라.”
“예, 폐하.”
조조가 살짝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그렇지만 그것은 점차 소리를 키워 이윽고 땅을 울릴 정도로 거대한 진동으로 변했다.
“폐하께 인사를 올리거라.”
조조가 주변 장교에게 가볍게 읊조렸다.
“만세!!”
처음은 그녀 주변의 장교가 외쳤다.
“만세!!”
그 뒤로는 전열에 섰던 이들이 그 구호를 외쳤다.
“만만세에에에!!”
이어서 연주의 전 병력이 만세를 외치니, 반복되는 구호가 평야에 울린다. 만대에 이어 황제와 제국의 안녕을 기리는 구절이 그 소리를 점차 키워나간다.
조조는 자리에 서서 황제를 바라보았다.
유협 또한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시선이 얽혔다.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유협이었고, 조조는 그 모습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호위할 군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걱정이오니, 그 군을 정예로만 선정하여 폐하께 진상하고자 합니다.”
“연주목의 마음이 실로 갸륵하구나.”
소녀는 자신이 시선을 피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니 조조에게서 살짝 시선이 엇나갔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그 말에 조조가 고개를 들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만세의 구호는 끊이지 않았다.
일만을 넘어 이만에 달하는 병력이 동시에 구호를 외친다. 크게, 더 크게. 주변에 전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면 그대의 분투를 기대하노라.”
유협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가로 돌아갔다. 조조는 그 뒷모습에 마지막까지 고개를 숙여 배웅하였고, 동승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뒤를 따랐다.
“…만세는 황제에게만 바치는 축복의 뜻이지?”
“예, 그러하옵니다.”
동승의 말에 소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분명 그것이 맞았다. 그러니 그 수많은 병사가 자신에게 열창하던 것도 분명 예와 충을 다한 것.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왜 유협은 그 방향이 다르다고 느낀 것일까.
그간 너무 이용만 당해왔던 탓일까. 그래서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 모두를 의심하게 될까. 어쩌면 이게 의심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 솔직히 말해 유협은 그 광경에 살짝 기가 눌려 있었다.
반면 조조는 그 뒷모습을 배웅한 이후 군영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전부 물려 홀로 남은 막사에서 양손을 포개어 턱을 괴었다.
“아직은 어린 소녀군.”
너무나도 가녀렸다.
유협이 의연한 척하기는 했지만, 병사의 움직임에 딱 보아도 질린 듯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만인에 서기에는 아직 작고 연약한 존재.
연민하기도 했다.
소녀의 배다른 언니이자 선황은 동탁에게 사약을 받고 시해당했다. 새로 황제에 올랐을 나이는 10살도 채 되지 않는 나이였으니, 그 나이에 비해 너무 과중한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동정은 한다. 연민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감히 범인이 황제에게 품어도 될 감정이 아니었다. 조조라고 그걸 모르지 않았고, 지금은 어디까지나 황제가 아닌 한 소녀를 바라보며 떠올린 감정들이었다.
딱 거기까지.
황제가 아닌 소녀로 본다면 동정과 연민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소녀가 황제의 감투를 쓰고 있다면 얘기는 별개.
오히려 어리고 연약할수록 이용하기 쉬웠다.
“짐승은 어린 것이 살도 연하고 발라먹기 쉽지.”
황제도 이 난세에 이르러 사냥감으로 전락하였는가. 만인의 주인에서 그저 용도에 맞춰 사용할 뿐인 도구로 몰락하였는가.
죄책감 같은 것은 들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었다. 벌써 죄책감 같은 것에 눈을 떠버려서는 장차 시간이 지나면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을 터. 그녀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았다.
저런 소녀라도 이용할 곳은 무궁무진했다.
황제를 옹립한다.
이것은 그 첫걸음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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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으로 한 편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200화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