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00화 (200/343)

20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제 옹립 아가씨가 움직이며 전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적진의 중앙을 꿰뚫는 돌파력은 상상 이상. 갑작스러운 기습에 적 대열이 흩어지고 본대와 선발대의 이음새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약속된 상황도 아니었기에 완전히 호응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적의 압박이 약해진 틈을 타 아군도 재정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었다.

적의 허점을 완전히 찌른 기습.

그 뒤는 대열을 갖춘 아군의 역공과 중앙을 헤집는 소연 아씨의 기병대. 거기에 퇴각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여포의 기마까지 재차 돌격을 감행했다.

“……이것이 조조군이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여포는 당연히 천하무쌍의 이름답게 강했지만, 이번에 전장에 난입하여 종횡무진 휘젓고 있는 소연 아씨와 그 기병대의 돌파력도 상당했다.

저게 조조군이냐고?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연주와 예주에 세력을 떨치는 조조군이라도 저런 군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저건 여포가 비정상이었고 소연 아씨가 이상한 것.

“걱정하지 마시죠. 저도 놀랐으니까.”

소연 아씨가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멀리서 그녀가 직접 선두에 선 전투를 본 적은 드물었다.

그래서 몰랐다.

조조군에서 조인과 함께 쌍두마차라 칭송받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그녀 본인도 강해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병주에서의 진소연과 같은 사람이 맞는가?

한때 그녀의 검을 자칭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낯부끄럽게 느껴졌다. 당장 소연 아씨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어떻게 보아도 나 이상의 실력.

나 또한 병주에서 떠나 많이 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 실력으로도 그녀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겠지. 먼발치에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무력감이 느껴졌다.

“장군?”

“아, 장양 태수님. 군을 움직이죠.”

지금은 그런 회의감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군을 움직인다. 여포를 앞장세운 지금, 본대가 이 지점에 머무르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전열을 지키던 보병도 대열을 갖추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승을 거둘 절호의 기회.

소연 아씨의 기병이 적의 허를 찔러 진형 자체를 무너뜨렸으니 그 선봉에 고립된 병력, 더 나아가 대열이 무너진 이각을 오히려 역으로 공략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자 않은가.

그녀는 자신의 방식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전군을 전진시킨다. 검을 빼 들고 전선을 누비는 역할은 여포와 운이를 주축으로 장료와 방삼이가 보좌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내가 맡은 역할은 총사령관.

“장양 태수님. 부탁하겠습니다.”

“이 국면을 보고도 멈춰 설 정도로 늙지 않았소. 본인도 과거 무관직을 수행한 적이 있으니, 장군도 걱정하지 마시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올라 제 진영으로 돌아갔다. 대열이 무너진 이각의 추격대를 여기서 최대한 깎아내야만 했다.

“전군, 전진하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팔수가 제 역할을 이행했다. 한 보, 또 한 보. 진군하는 군의 움직임을 보며 전차에 올라 전선으로 나아갔다.

여포는 이미 기마를 이끌고 횡적으로 움직인 소연 아씨의 기마대를 지나쳐 그저 앞만 보고 전진하고 있었다. 운이의 부대와 기존 백파적의 부대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

이대로 본대를 이끌고 그들의 뒤를 받친다.

한 번 대열을 잃은 부대는 그 결속력을 잃고 금방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잘 짜인 군대라고 해도 조직력을 잃으면 그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는 법.

공략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특히 거칠 것 없이 돌격하는 여포의 기마는 그 공격력이 상상을 초월했는데, 특히 이각의 군이라면 기존 동탁에게서부터 내려왔을 군.

그들이라면 여포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겠지. 마치 약속한 것처럼 적진이 반으로 갈라지는 모양에는 혀를 절로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선행은 너무 앞서나가지 않게 신호를 보내라.”

내가 이끄는 본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뒤에서 받치며 여차할 때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좋지만, 승기에 취해 너무 돌출하여 열을 무너뜨린다면 제때 상황에 맞추어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손을 저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미 한 번 흐름을 놓친 이각의 군은 그 기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자리에서 버티면서 여포에게 쫓겨오는 군을 수용하며 자리를 지켰고, 그 수습이 끝났다 싶을 무렵에는 퇴각해버렸다.

더 쫓을 수는 있었지만, 이미 이각이 있는 본대는 정비를 마친 상황. 그 병력의 숫자만으로도 위협적인 데다가 아군도 지치기는 매한가지였다.

승리에 취해 잠시 체력을 무시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 승리에 취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디면 내디딜수록 뼈저리게 부하가 가중될 터.

“흰 깃발을 올려라. 퇴각의 신호를 보내.”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전장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아군도 다시 본대로 합류하게 하였다. 저 멀리서 소연 아씨가 이끌던 기마대도 그 고삐를 잡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갑옷을 두른 모습.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의 나풀거리는 하늘색 비단옷이나 문관의 복장이 어울렸다. 물론 이제는 무관으로, 그리고 장군으로서도 대성한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하지만 난 그녀가 전장에 나서지 않았으면 했다.

“…고생하셨수.”

“응.”

오랜만에 재회는 제법 담백했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고는 모여든 기병에게 근처에 주둔할 것을 명하고는 내게 다가와서는 픽 웃었다.

“우리 호세, 고생 많았나 봐?”

“…뭐, 조금은 말이요.”

솔직히 황제를 비롯해 정치적인 문제와 예법, 그리고 전술과 부대의 통솔까지. 후자야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전자는 그다지 경험한 적이 없는 분야였다.

어떻게든 잘 수습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다른 이였다면 그보다 더 잘해냈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다소 떨떠름하게 손을 만지작거렸다.

“잠시만.”

소연 아씨는 그리 말하고서는 등을 돌려 갑옷 품새에 넣어둔 수건을 꺼내 얼굴과 손을 닦기 시작했다. 흥건하게 묻어나오는 핏자국은 그녀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많이 싸웠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후우, 이제 좀 낫네.”

고개를 돌린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감각이 좀 찝찝하기는 하지. 아가씨도 이제 전장에 서는 무관의 느낌을 좀 안 것 같은데, 내가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좀 아시겠수?”

웃으면서 말했지만, 딱히 웃겨서 웃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가슴 한편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쌓인 느낌이어서, 그런데 그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기에 적당히 우스갯소리를 꺼냈다.

“응. 많이 알았어.”

“…뭐요. 그렇게 말하니까 낯간지럽잖아.”

그 말에 소연 아씨가 손을 뻗었다.

따스하게 내 손을 맞잡는 그녀의 양손. 내 손이 차가운 것인지 그녀의 손이 따듯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손은 따스하다 느꼈다.

“그간 너도 날 많이 도왔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구세주처럼 딱 등장했는데, 어때? 조금은 너의 주인도 쓸모가 있다는 생각 안 드니?”

“쓸모라니, 애당초 그런 게 아니잖아.”

오히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가지면 가질수록 나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것을. 그녀는 내 말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이럴 땐 그냥 찬양하면 되는 거야.”

“오오! 우리 아가씨!! 그대가 나의 빛이요, 광명이리니! 어찌 하늘에서 선녀가 내 앞에 내려, 어욱!”

너무 까불었나.

배에 박힌 그녀의 주먹에 손을 뻗었다.

“아니, 찬양하라고 한 건 아가씨 아니요. 거참, 시키는 거 똑바로 해줘도 불만이 많으니 이런 여자를 대체 누가 보살피려나 몰라.”

말하고도 조금 씁쓸했다.

돌려 말하자면 당신의 곁을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노라고, 그렇게 언질을 준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실수한 것 같아서 영 부끄러웠다.

“네가 있잖니?”

“내가 없을 땐 어쩌려고.”

그녀는 그 말에 픽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군은 여전히 퇴각작업에 한창이었다. 저 멀리 나섰던 여포도 돌아오고 있었고, 저 멀리 백파적의 군대와 운이와 방삼이가 이끌던 군도 합을 맞추어 돌아오는 상황.

“앞으론 그럴 상황을 줄이려고.”

“그게 마음처럼 되나.”

허리를 젖히면서 기지개를 켰다.

몸이 긴장해서 그런지 뻣뻣하게 굳은 느낌이었다. 허리를 비롯한 척추 부근과 허벅지까지 땅땅하게 당겨오는 감각.

쭉 늘어지는 몸을 허리로 받치고 있는데, 순간 배를 쓰다듬는 감각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아.”

허리를 젖힌 사이에 아씨가 다가왔을까.

몸을 갑작스럽게 일으켜 자세를 잡았는데 소연 아씨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보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마끼리 서로 부딪쳤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어우, 갑자기 만지니까 이런 일…, 이.”

살짝 당황하여 물러나려던 내 팔을 소연 아씨가 붙잡았다. 순간 움찔거리며 멈춰버린 몸. 등골에서 무언가 오싹한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좋네.”

“어, 엉?”

“그냥, 그렇다고.”

그러면서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살짝 시선을 피했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이쪽에서 시선을 떼는 일이 없었다.

세상에 둘밖에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후끈한 열기는 전장의 열기일까. 그녀의 시선이 뜨거운 것도, 붙잡힌 팔이 묘한 열기를 느끼는 것도 그 온도가 전이되었기 때문일까?

“가끔은 괜찮잖니?”

뭐가 괜찮냐고 되묻기도 전에 그녀가 팔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났다. 여전히 멀뚱히 서서 눈만 껌뻑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소연 아씨는 빙긋 웃으며 등을 돌렸다.

“군을 정비하고 돌아올게.”

“어?”

“함곡으로 퇴각할 거라면 오늘 밤이잖니?”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천천히 이쪽에서 멀어졌다. 물론 그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지금 이각의 군을 대패시킨 상황에서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함곡으로만 입성할 수 있다면 그곳을 거점으로 추격대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황제 폐하를 먼저 보냈으니 우리도 따라가는 게 맞았다.

그렇지만.

“…아니, 대체 뭐냐고.”

영문을 모르겠다.

그녀의 달뜬 눈동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애당초 붉은 눈동자라 그리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그 표정에서는 평소와 다른 느낌이 느껴졌다.

“오라버니??”

“…언제 왔어.”

고개를 돌리니 운이가 살짝 의문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죄를 들키기 직전의 느낌이었다.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 왔어요. 저기 소연 아가씨 아니세요?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조금 시간이 안 맞았네요.”

“…어차피 당장 퇴각을 준비해야 하니까. 아군도 지쳤고 부상병도 많겠지만, 일단 그들까지 어떻게 호송할 준비를 해줄 수 있을까?”

“그야 물론 가능하죠. 이각을 물리쳤다고 해도 일시적인 거니까요. 여기서 발을 묶이면 나중이 힘들잖아요?”

아가씨와 잠깐 나누었던 대화와 그녀의 몸짓.

그것도 신경 쓰이긴 했지만, 솔직히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었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지지부진하여 다시 이각의 본대와 맞선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여포에게도 따로 말을 전해줘. 나는 백파적과 본대를 이끌 테니까, 운이 너는 여포와 합류해. 방삼이에게는 따로 부상병을 돌볼 병력을 따로 편재할 권한을 주고.”

“…그것도 괜찮은데. 오라버니 지금 얼굴 좀 빨갛거든요? 어디 몸이라도 상한 거 아니에요? 요즘 밤새 무리하셨었잖아요.”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이 지점에 병력을 편재하기까지, 그리고 어떤 편성에 구상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밤새 고민하기는 했지만, 그게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이유는 아니었다.

아가씨와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들킨 듯한 기분일 필요도 없다. 이건 과민반응이잖아.

우리의 관계는 연정과 무관했다.

우리는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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