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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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라!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 기존 연주의 군은 물론이요, 백파적과 동승, 장양의 군을 모두 동원한 전장인데도 추격대에게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이각과 곽사 중 이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스스로 대사마에 오른 이각이 직접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사실상 총력전을 의미하는데, 앞으로 함곡관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들이 조급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곡관은 험준하고 성벽이 높아, 만약 그 거점을 중심으로 농성을 벌인다면 사실상 추격은 요원한 일.
조만간 총력전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했었다.
“깃발을 들어라!! 조홍 태수에게 신호를, 좌익으로 군을 더 투입하라고 전달하라! 나팔을 불어 여포에게는 회군의 명을!!”
복잡하게 흘러갔다.
선봉의 개념으로 적진을 꿰뚫어 뒤집고 있는 여포와 기마대. 하지만 그 뒤를 받쳐줄 보병대의 전진이 지지부진했다. 이대로 놔두다가는 여포도 적군 사이에 고립될 판국.
이건 보병의 잘못이 아니었다.
애당초 숫자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조운이 좌측 보병대를, 양봉과 양정이 이끄는 백파적이 우측 보병대를 이끌게 하였다. 양 병력은 총원 오천. 그런데도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서 있었다.
“장군, 아군도 밀리고 있소!”
내 옆에 나란히 섰던 장양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동승의 군은 이미 초전부터 공략당해 박살이 나버렸고, 우익에 세운 장양의 군도 억눌려 퇴각을 반복하는 상황.
손이 근질근질했다.
당장에라도 군을 이끌고 요격하러 나가고 싶지만, 문제는 그러면 이 자리에서 군을 통솔할 이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사람이 부족했다.
병력의 열세는 지형으로 어떻게 메꾼다고 해도 당장 병력을 통솔할 지휘관이 부족했다. 대장으로 내세울 이는 많았지만, 정작 그 휘하 장교가 부족하니 장수들이 그 장교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게다가 장양의 군도 동승의 군도 내가 지휘할 수 없었기에 고정된 방향성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었고, 덕분에 동승의 군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퇴각시킬 수밖에 없었다.
“우선 퇴각시키세요.”
“그러면 중앙 보병대가 밀리지 않겠소?”
그건 운이와 방삼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휘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군의 배치도 좁은 가도를 중심으로 배치했고, 질적으로도 이각의 본대에게 밀리지 않았다.
숫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교와 병사의 숫자가 너무 부족했다.
여포와 장료가 회군하는 걸 기다린 다음에, 조홍을 좌측으로 돌렸으니 우측 백파적에게 연계하게 해야 할까.
하지만 이미 돌격을 감행하여 저렇게 싸웠으니 아무리 군마라도 지쳤을 것. 재차 돌격을 감행하게 하기에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장양 태수님. 군을 본대로 돌린 이후, 빠르게 재편하여 우익으로 펼쳐주세요. 그쪽이 밀리면 비대칭이 됩니다. 본영은 물론이요, 좌측에 포진한 보병대까지 포위당합니다.”
“그건 알겠으나 지금 상황이라면 퇴각에도 시간이 걸리오. 그때까지 백파적놈들이 버텨주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손이 부족했다.
동승의 군이 그렇게 빠르게 퇴각하면 안 됐다. 우익이 먼저 무너져내리니 그 방면의 백파적이 압박을 받고, 거기에 말려들어 운이와 방삼이가 이끄는 보병대가 너무 돌출되어 함께 밀렸다.
여포와 장료의 기병을 이을 보병대가 없어진 것.
애당초 동승의 군은 너무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도, 거기서 전력의 누수만 안 생겼더라도 이렇게 지난하지는 않았을 일.
머리가 복잡해졌다.
“흑기를 들어라. 전령은 폐하께 가, 먼저 출발하시도록 말씀드려라. 호위는 퇴각한 동승의 군과 함께 움직이시면 되겠지.”
“장군, 그것은.”
장양이 뭐라고 하려 했지만, 그것을 손을 내밀어 저지했다. 물론 동승 홀로 폐하를 모시게 하면 장차 어떻게 나올지는 대충 가늠이 되었다.
그는 이런 명분이 생기면 지체 없이 아군을 버리고 함곡까지 들어갈 터. 아마 아군을 방패막이 삼아 그대로 낙양에 입성하겠지.
알고 있었다.
“방도가 없습니다. 여기서 폐하가 잡힌다면 모든 희생과 노력이 헛되이 됩니다. 우선은 폐하의 안위를 생각하고, 연주에서 본대가 오니 그와 합류하면 동승도 제멋대로 굴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장군, 그건 달리 말하면.”
“압니다.”
우리가 그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다.
연주의 본대가 어디까지 도착했을까. 군을 준비하고 출발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제 낙양에는 입성하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 동승의 독단만은 제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군이었다.
여기서 이각의 군을 막아 세우는 것까진 좋지만, 지금 당장 전면전에서도 밀리고 있으니 함곡관에 입성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말라죽을 우려가 있었다.
“우선 버팁니다. 최대한 야간을 틈타 퇴각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각도 군의 운용에는 이골이 난 장수. 아마 그 수도 견제하겠죠?”
“당연한 거 아니요!”
그렇다고 아군이 살겠다고 줄행랑을 쳐버릴 수도 없었다. 이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황제. 그는 그 소녀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지.
황제에게 합류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고전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병력의 수적 열세에 비해서는 잘 버티고 있으니,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여포 장군, 퇴각하고 있습니다!!”
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좌 보병대와 우 보병대 사이의 길로 여포와 장료가 퇴각해온다면 배치를 다시 짤 수 있었다. 물론 기병대의 전력을 전부 활용하려면 휴식도 주어야겠으나.
글쎄. 상황은 영 여의치 않았다.
“우선 대기…, 잠깐. 누가 북을 울리라 하였지?”
북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 상황에 군을 전진시킬 이유가 없으니 북 또한 울릴 리가 없어야 정상. 게다가 뿔 나팔의 소리까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군승, 아니요. 그게 아니올시다!!”
그는 크게 외치면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켰다.
전선에 집중했던 시선을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렸다. 현 전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대를 점거한 부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검은색 군기였다.
“…벌써?”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리리라 예상했다. 게다가 저 멀리 대장기의 색은. 멀어서 그 글자까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저 대장기는 본 기억이 있었다.
어떻게 잊을까.
한때 저 대장기의 밑에서 움직였는데.
“소연 아씨.”
뿔 나팔의 소리가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웠다. 같은 간격으로 울리는 북소리가 전장의 소음을 뒤덮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수천 규모의 기마가 고지에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고지를 잡고 전장에 내리쏟아지는 화살의 비. 하늘을 마치 검은색으로 물들이려는 마냥, 그 규모가 미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았다.
밀리기만 하던 전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
고지를 점한 소연은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씩 밀리고 있는 군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배치 자체는 탄탄하여 이각군의 공세에 어떻게든 버텨내는 전세.
“나쁘지 않네.”
우선 가도를 가로막은 양 군의 방비가 두터웠다. 미리 준비해둔 것인지 몇 겹이나 쌓은 녹각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필사적으로 방비하는 상황.
저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 건 여포의 기마였다.
“장군, 어찌하시겠습니까.”
우금의 말에 소연은 잠시 고민했다.
단번에 전세를 바꿀 수 있는 전략을 무엇일까.
이대로 돌격하여 적 측면을 꿰뚫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는 했지만, 이각의 군에게 압박당하고 있는 본대가 그 방비를 풀고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궁수의 준비는.”
“우선 만질 줄 아는 이들만 최대한으로 모았습니다마는, 표적을 노리고 쏘기까지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거면 됐어.”
어차피 저 멀리, 저 사방에 깔린 이각군이 전부 표적이었다. 방향만 맞춘다면 누구든 맞을 터. 그러면 우선 궁수로 견제하고, 측면을 돌파한다 하더라도 한 수가 모자랐다.
“기병 절반을 떼어 내가 직접 돌격할 거야.”
소연은 지휘봉으로 길게 나열된 적진의 중앙을 가리켰다. 저 지점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만 있다면 전선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터.
“너에게는 기병 절반을 떼어줄 테니, 우선 궁수를 통솔해서 아군이 돌격하기 전까지만 적진에 화살을 퍼부어버려.”
“문제는 없습니다만, 하면 저는….”
그 말에 소연이 이각 본대에서 부근을 가리켰다.
“군이 이각만 보이는 게 이상해. 그들도 아마 이 부근에서 저항이 있을 건 예상했을 텐데도 그 추격대의 규모가 작아.”
물론 저 이각의 본대만으로도 충분히 기존 방위군의 전력을 웃돌았지만, 이각이 움직였는데 곽사가 보이지 않는 것이 거슬렸다.
오는 길에 함곡을 빙 돌아가는 샛길이 있다는 정보는 입수했다. 이각과 곽사는 한동안 낙양에 주둔했던 만큼 그 인근 지리에도 빠삭하리라.
“군을 우회한다면 그 가도는 협소해. 너는 내가 돌진하는 것만 확인하고 바로 우회로로 달려가서 진을 꾸려. 무슨 말인지 알겠니?”
“예, 장군.”
그 가도는 매우 협소하고 폭이 좁으니 아마 제대로 진을 꾸려 가로막기만 해도 진군을 방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궁수도 전부 우금에게 몰아주었다.
소연은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손에 쥔 철봉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이제는 그 무게마저 가볍게 느껴졌다. 전장을 앞에 둔 고양과 긴장감도 전부.
차가운 철봉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말도 전장의 분위기를 읽었을까. 원래 순진하던 것이 지금만큼은 투레질을 거세게 반복하며 말발굽으로 땅을 긁고 있었다.
“뿔 나팔과 북을 울리렴. 대장기는 높게, 더 높게. 누구나가 올려다볼 수 있게. 나발과 북은 전장의 소음 전부 묻어버릴 정도로 크게 울려서 우리가 왔다는 걸 전장 전역에 알려.”
그리하여 전호, 너에게도 들리게.
그녀는 전장 저 멀리, 호위대의 본진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주었다.
소연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는 빠르게 발전했다.
그것은 조금 쓸쓸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직 전호가 없으면 불안했다. 여전히 밤마다 홀로 이불을 끌어안고 떨고 있는데, 반대로 그는 점점 홀로 서가고 있었다.
자신은 그를 필요로 하는데.
“너는 내가 없어도 되려나.”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전장은 혼잡한 상황. 이대로 있다가는 이각의 군에게 본대 전체가 잡아먹힐 우려가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적진을 크게 헤집으며 그 중추를 끊을 수 있다면 다시 재편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군을 준비시켜.”
그녀는 한 손에는 고삐를, 한 손에는 철봉을 쥐었다.
그래도 아직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리라 믿었다. 그는 분명 성장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더 발전하겠지. 그래도 아직은 자신이 없으면 불안할 거라고, 필요할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오늘도 그것을 위해 군마로 적을 짓밟고 이 철봉으로 적의 두개골을 으깨겠지. 그 감각은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어버렸다.
대한민국에 있을 적에는 어떻게 살았더라.
현대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을 할 거라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때는 그저 바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정작 떠올리려 하니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행위. 병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부터 각지의 동향을 살피는 것까지. 현대에서는 할 이유도 없고 방법도 없을 그것에 너무 녹아내려 버렸다.
그렇지만 이게 전장이었다.
이게 난세였고, 그녀가 뿌리내린 자리가 여기였다.
「 진소연 」
통솔력 - 100
무력 - 100
지력 - 100
정치력 - 100
매력 – 100
이 홀로그램은 여전히 거슬렸다.
그렇지만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는 못 됐다. 적어도 이 자리에 서서 피부로 느끼는 감각과 감정. 그 모든 것은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하여 지금은 현실에 충실하게 살자.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닌, 한 제국.
지금 여기에 나는 살아있으니까.
“전군, 돌격!!”
고삐를 쥐었다. 말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참과 동시에 세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군마. 그 움직임에 이어 천 가량의 기마가 그녀를 뒤따랐다.
지금은 잡다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그것을 행한다.
타인을 짓밟고 죽이는, 그 어디보다 생명의 값이 하한가로 떨어지는 그곳으로. 전장으로 향한다.
한나라의 진소연.
그녀에게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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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유부덮밥은 더 성실하게 찾아뵙겠습니다 :)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