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89화 (189/343)

18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제의 어가 상황이 긴급했다.

어가 주변에서도 벌써 누군가가 싸우고 있었고, 장안 소속의 군으로 보이는 이들도 어가를 호위하는 방어선을 두드리는 상황.

그 사이로 말을 몰고 빠르게 진군했다.

조조군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

장양이 일 처리를 잘했다면 아마 검은 깃발을 보고 적대하지는 않으리라. 만약 적대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짓밟고서라도 황제의 어가로 향한다.

“달려라, 달려! 뒷일은 신경 쓰지 마라!!”

전장을 내달려라.

이미 말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투레질이 거칠고 속도도 많이 떨어졌다. 아마 어가에 도착하고 난다면 말에서 내려야 할 수도 있겠는데.

계속 내달리고 내달렸다.

앞만 보고 달려라. 가로막는 이가 적대한다면 짓밟고서라도, 그렇게 한참을 내달렸다. 주변으로 싸우고 있는 이들 사이로 빠르게.

수십의 기마가 달리고 있으니 싸우던 이들도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전장을 가로질러 어가 인근에 도착했다.

싸우고 있는 병력은 도무지 장안 소속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다가 기마가 다가오는 것에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을 무렵.

“적은 누구냐.”

“검은 깃발, 조조군이더냐! 설명할 시간이 없소. 저 무도한 이들이 황제 폐하의 앞길을 가로막으니, 부디 힘을 빌려주시오!!”

시선을 살짝 돌리니 백파적처럼 보이는 이들이 이쪽을 향해 무기를 견주고 있었다. 백파적은 분명 황제 편에 붙었다고 들었는데.

내분인가?

어이도 없지.

“빠르게 정리하자. 이각과 곽사의 군도 지척까지 와있다.”

이런 곳에서 힘을 뺄 이유가 없었다.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청강을 쥐었다.

그와 동시에 잠시 우리 병력을 보고 멈추었던 전투가 이어졌다. 창을 내질러 적병의 배를 꿰뚫고, 왼손에 쥔 청강으로 사이로 삐져나온 적의 검을 막아낸다.

창에서 손을 떼고 청강을 오른손에 고쳐잡고 다시 휘둘렀다. 다리에는 힘을, 몸은 앞으로 기울여 단숨에 앞으로.

여포는 말했다.

전투는 기세. 적의 움직임을 읽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내게 부족한 건 기세로 상대를 찍어누를 힘이라고.

그렇다면 더 빠르게,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간다.

백파적이 아무리 경험이 많다 해도 아군 역시 조조군의 정예 중 정예였다. 아군의 가세로 점차 전황이 기울고, 적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동승은 신이 나서 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쯧, 마저 정리해라.”

아군에 미리 신호를 주고 몸을 돌려 어가로 다가갔다.

황제의 어가답지 않게 소박한 느낌. 솔직히 과거 조숭이 타던 마차가 더 화려해 보였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 없었으려나.

천천히 손을 뻗어 어가의 문을 열었다.

순간 살짝 헛바람을 들이켰다.

황제가 어린 나이라고는 들었지만, 설마 우리 사마의보다 어려 보이는 소녀가 있으리라고는 솔직히 상상하지 않았었다.

황금으로 수놓은 곤룡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그 갈색 머리카락만이 겨우 보이는 상황.

분명 저 가녀리고 어린 여아가 황제일 터.

소녀는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는 덜덜 떨고 있었다. 이런 꼬마를 황제로 추대한 것도 우습지만, 아무것도 몰랐을 소녀가 전장에 끌려 나온 현 상황은 어떠한가.

이게 난세일까.

“…폐하.”

겨우 한 마디 꺼낼 수 있었다.

그 말에 소녀가 조금씩,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황제를 알현할 때 무슨 예의를 차려야 하던가. 솔직히 예법이고 자시고, 지금 익힌 것도 조조군에서 일하면서 겨우 조금씩 익혀가던 것인데.

일단 상태를 확인하려고 어가의 문을 연 것은 좋은데,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예법에 어긋난 행동 아냐?

“도착이 늦었습니다.”

말을 이으며 어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연주 동군의 군승, 전호라고 하옵니다. 현재는 상황이 급박해 예를 갖추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아, 여기서는 하옵니다, 라고 해야 했던가?

모르겠다.

“폐하의 위신을 모욕하는 무뢰배와 역적이 몰려오니, 하명하신다면 그들을 모두 배제하겠나이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자고로 윗분에게 무언가 건의할 때 선택지를 그에게 넘기라고 들었는데, 이게 예법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무언가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고개를 들지 말라고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조조에게도 이런 예를 갖춘 적이 없다.

아, 잠자리에서 조조를 무릎 꿇린 적은 있었나. 황제의 어전에서 이런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습긴 한데,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머릿속이 한창 복잡할 무렵.

“…그대는 짐의 명을 듣겠는가?”

소녀의 가녀린 목소리에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명만 하신다면.”

“그러면 짐을 겁박하는 이, 짐을 모욕하는 이, 짐을 이용하려 드는 모든 이들을 물리치라고 한다면. 그 명도 듣겠는가?”

범위가 너무 넓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하명하신다면.”

“그러면, 그리 하라.”

그 말에 드디어 고개를 들고 자리에 섰다.

“명, 받들겠나이다.”

허리춤에 갈무리한 청강을 다시 뽑았다. 백파적은 얼추 정리가 끝난 듯했고, 저 멀리 시선을 돌리니 적 후방을 휘젓는 아군 기병의 무리가 보였다.

그 말인즉슨 이 자리만 버텨내면 충분하다는 뜻.

유협이 픽 웃으며 내게 손가락질했다.

“황제의 앞에서 검을 뽑는 것은 반역도다.”

엥?

아니 잠깐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건 좀 용서해주십쇼.”

어떻게 칼을 안 뽑아. 이제 저 앞에 대열을 지키던 호위병도 밀리기 시작했는데. 주먹으로 싸우라고 명한다면 당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자신이 있는데.

“농담이야.”

소녀는 조금 전까지의 근엄한 말투를 지우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하여간 이래서 높으신 분들은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연주로 돌아가면 당분간은 휴가 써야지.

“가서 소녀의 적을 모두 없애줘.”

“옙.”

황제의 명이라면 따라야지.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어가에서 멀어졌다. 백파적을 얼추 정리해낸 동승의 군과 아군에 시선을 한 번. 다시 고개를 돌려 방어선을 바라보았다.

“아군은 모여라!!”

청강을 쥐고 한 걸음.

“폐하의 명이 내려졌다. 이제부터 아군에게 저항하는 모든 이를 역도로 간주, 즉결처형에 옮겨도 좋다 하셨으니 그 명을 따르도록.”

다시 한 걸음.

주변으로 모이는 아군과 함께 방어선을 향해 걸어갔다.

조금씩 속도를 올린다. 걸음은 곧 경보로, 그것은 이내 뜀박질이 되었고 오십여의 무리는 하나가 되어 적을 향해 달려든다.

“황명을 받들어라, 역적 새끼들아!!”

앞으로 크게 도약, 방어선을 지키던 병사의 방패를 발디딤대로 삼아 다시 뛰어올랐다. 전투는 기세, 여포가 했던 말을 다시금 머리에 새긴다.

예전이라면 자살이라고 기피했을 행동.

앞으로 튀어나가 적의 한가운데로 떨어지며 검을 크게 내질렀다. 과거에는 엄두도 못냈을 행동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

지금이라면 뭐든 가능할 것만 같은 기분.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휘두르는 검의 무게도, 적의 검을 받아내는 행동도 전부. 흐름에 맞춰 적의 창을 피하고 돌리는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확실히 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여포와의 대련은, 그리고 그 전부터 이어진 전투의 경험은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힐끗 바라보는 적의 움직임만으로 대략적인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다.

빠르게, 더욱 빠르게.

아군을 앞에서 이끄는 장수가 되어라.

적을 꿰뚫은 파쇄추가 되어라.

여포는 그랬다. 조운 또한 그랬고, 장료도 이 정도 무를 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부 제 무력 하나로 전투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장수였다.

“물러나라, 이 역적 새끼들아!!”

시선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내가 받아낼 수만 있다면 아군의 피해는 더욱 적어진다. 적을 위축시키고 나를 본래 이상의 강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전투는 기세.

여포의 기세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다.

더 거칠게,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힘차게 발을 내디뎌라.

한 명, 두 명, 연이어 세 명. 적을 계속 베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멈추지 마라. 여기서 적의 기세를 꺾어둔다면 밀려나던 방어선에도 활력이 돋을 터.

정상적이라면 적 병력을 전부 막아낼 수 없었다.

고작 오십여의 인간이 합류한다고 대세가 바뀔 턱이 없지. 그러니 남은 건 기세와 힘으로, 강제로 밀고 나간다.

“밀어내라!! 전군, 적을 요격하라!!”

주변을 향해 강압적으로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다소 움츠러들었던 방어선에 활력을. 내 병력은 아니지만, 지금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싸우는 이로서 소리쳤다.

싸워라, 분전해라.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다면 모든 걸 불살라라.

내가 앞장선다.

너희는 내 등만 보고 따라오면 그만이니.

“역적을 몰아내고 폐하를 지켜라!”

* * *

유협은 어가에서 내려 그 앞을 바라보았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전장. 소녀는 그 광경이 도무지 낯익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낯익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소녀의 앞에 낯선 이가 등장했다.

그는 소녀가 바라던 영웅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협잡배인가. 누구나가 그녀를 이용하려 들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언제나 진심으로 자신을 위할 영웅을 바랐다.

낯선 이가 영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싸우는 광경은 문외한인 소녀의 눈에도 호쾌한 싸움이었다.

황궁의 병력이라 하더라도 저렇게는 못 싸울 것인데.

적 병력의 한가운데로 뛰어내려 사방으로 검을 휘두른다. 예전에 보았던 검무가 떠오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확실히 그 검에 피를 흩뿌리는 이들이 있었다.

“너는 누구야.”

소녀는 한 발짝 내디뎠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 싸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작은 키가 오늘따라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다.

“날 이용하려는 동탁이야?”

아니면.

“이야기가 현실이 된 거야?”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상황 좋게 나와 소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기로서니 단번에 그를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속았으니까.

하여 믿지 않는다. 믿을 수 있을까 보냐. 소녀의 주변은 언제나 그 권위를 이용하려 드는 이들뿐이었다. 황제의 이름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그것을 제 물건처럼 휘두르는 역적뿐이었다.

간단히 사람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소녀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믿지 않아.

안 믿어.

정말로, 안 믿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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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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