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88화 (188/343)

18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제의 어가 어가를 비롯해 황제를 호위하는 군의 움직임이 너무 더뎠다. 아군이 고지를 잡고 기마를 몰고 나아가기에 얼추 시간을 계산하여 이쯤이면 잡히지 않겠거니 했는데, 여기서 계산 착오가 생겼다.

“시발, 저것들 뭐 하는 거야!?”

여포가 적토를 몰며 소리를 내질렀다.

동감이었다.

추격대의 움직임은 예상대로. 그렇지만 황제를 보필하는 군은 너무 무르고 무엇보다 움직임이 너무 굼떴다.

여러 방면에서 군을 모았기 때문일까.

이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일반적인 군의 움직임으로 착각해버렸다. 지금까지 잘 버텨내기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판단했다. 이대로라면 아군이 도착하는 것보다 황제의 어가가 먼저 혼전에 휩쓸려버린다.

이미 전열을 뚫리고 황제의 어가를 향해 달려드는 추격대의 모습이 여기서도 보인다. 조금 더 속도를 내려고 해도 이게 한계.

“달려, 달려!! 앞만 보고 달려라!!”

이렇게 속도를 내면 정작 추격대와 맞붙었을 때 말이 기진맥진하여 제대로 된 돌파력이 나오지 않을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뒷일을 생각할 상황도 아니니.

황제를 보필하기로 한 이상, 그리고 조조의 명령이 우선 황제를 살리는 방향성으로 정한 이상 아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적에게 뒤처질 수 없었다.

고지에서 내리꽂는 기마.

말의 거센 투레질과 말발굽이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속도가 속도인지라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저 멀리에서 피아 구분 없이 섞여 싸우는 난전 속의 비명도.

전부 두 귀로 듣고 있었다.

“여포!! 선두를 달려! 운이도 그 뒤를 보좌해!”

그녀들을 추격대의 정 중앙으로 박는다. 이미 뒤죽박죽 섞여 난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대로 돌격하면 어가 호위대도 군마의 말발굽에 짓밟힐 우려가 있었다.

하여 아군 본대는 선행 추격대의 후방을.

“오라버니는요!?”

“소수만 이끌고 어가로 간다!”

이미 엉망진창으로 짓밟히고 있는 호위군의 사이로 적 추격대가 속속들이 돌출하고 있었다. 아군 기마가 적의 후미를 끊고 압박한다 하더라도 황제에게 적병이 도착하는 순간 그 의미를 잃는다.

잠시 버텨주기만 하면 됐다.

그렇다고 본대 기마대의 병력을 많이 차출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소수만 이끌고 어가에 합류하여 황제 호위를 잠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거 좀 위험하지 않아!?”

“잠깐 버틸 뿐이다!”

미리 신호를 주어 50기의 기마만 이끌고 방향을 틀었다. 이대로 여포와 운이가 적 후미를 끊어주기를 기다리며 버틴다.

문제는 없었다.

뒤에서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순식간에 말발굽 소리에 묻혔다. 거참, 나도 약한 게 아니라니까는 다들 걱정이 태산이다.

손에 쥔 창의 무게가 괜스레 가벼웠다.

오늘은 몸 상태가 좋았다.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한 것에 비해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장의 소리. 모든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오감이 날카롭게 갈고 닦인 느낌.

나쁘지 않았다.

* * *

동승의 군과 양정, 양봉 등이 이끄는 백파적의 무리. 그리고 하내에서 출발한 장양의 군까지. 세 군벌이 하나로 뭉쳐 군을 운용하니 매끄럽게 군무가 돌아갈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장안의 추격대를 쫓아버리는 건 각 군이 돌아가면서 맡았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정작 대규모 추격대를 맞이하여 군을 정비하고자 하니 사방에서 잡음이 들려왔다.

“이이, 빌어먹을 도적놈들!!”

특히 동승은 이를 꽉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이 이상의 희생을 거절하는 백파적. 그들이 선두에 서는 걸 거부하면서 군의 배치에 잡음이 생겼고, 그 결과 진군속도가 점점 더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장양 또한 무의미하게 화살받이가 될 생각은 없었다. 군의 배치조차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데 적 추격대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에는 거의 따라잡혀 군을 정비했지만.

“폐하를 모셔라!! 이놈들, 허둥거리지 마라!!”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이미 대열이 무너진 상태였다. 곳곳으로 추격대가 파고들기 시작하여 진형은 진즉에 무너졌고, 이제 남은 건 오로지 힘과 힘의 맞대결.

저 멀리까지 추격대의 행렬이 보일 정도로 다수의 군이었다. 황제 어가를 수호하는 군이 오천을 넘기는 병력이라지만 이만한 병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리도 만무.

사기가 떨어지니 제대로 통솔할 방법도 없었다.

“동공, 이제 어쩔 생각이요!”

“당신이 먼저 군을 움직이기만 했어도 이런 사달은 안 났을 것인데, 이제야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요!?”

동승의 말에 장양이 제 지휘봉을 땅에 내던졌다.

“말은 똑바로 하시오!! 당신도 나설 수 있었소! 먼저 몸을 사린 것이 누구인데. 그러니 백파적놈들도 당신을 믿지 못한 것이 아니요!”

“뭣이?”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

장양은 동승에게 한 번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제 군을 이끌고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떠났다. 동승도 차마 제 몸을 희생하여 적을 저지하려는 장양에게 큰소리는 치지 못하고 콧김만 씩씩거릴 뿐.

어가의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던 유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적 병력이 다가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리 서로를 탓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가장 어이없는 건 그런 이들에게 미래를 맡긴 자기 자신이겠지만.

“이대로 장안에 끌려가려는가. 아니면 죽을까.”

몸이 떨렸다. 황금으로 수놓은 곤룡포가 제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당장은 목숨을 살려줄 갑옷보다 도움 되지는 않았다.

장안으로 끌려가는 것도, 이대로 죽는 것도 싫었다.

이대로 끌려간다면 지금껏 자신의 탈출을 위해 죽었던 병사들의 목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죽는다면 앞으로 이 제국과 황실은 어찌 될 것인가.

아니지. 그 또한 결국 변명이었다.

소녀는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겪지 못한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직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했다.

인생에서 행복하다 느꼈던 순간이 얼마나 있던가.

어려서부터 궁중 암투로 어미를 잃었다. 아비는 얼굴도 마주하기 힘들었고, 유협에게 남은 건 몇 안 되는 상시와 궁녀뿐.

언제나 책을 읽었다.

그 안에는 적어도 유협이 경험하지 못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언젠가는 그것을 누리고 싶었다.

아직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남았으리라 믿었다.

그것을 보고 싶었다.

“이익! 일단 폐하를 모셔라!! 뚫리지 마라!!”

저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와 함께 함성이, 누군가의 비명과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철과 철이 서로 맞대는 소리는 이리도 거칠고 청명한 고음이었는가.

이 또한 처음으로 하는 경험이었다.

우습지.

어가의 문이 열리고 동승이 얼굴을 내밀었다. 본래 예법에는 맞지 않는 행동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것을 따질 여력도 없었다.

“폐하!! 우선 먼저 출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싫어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었다.

소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동승이 어가로 들였던 몸을 젖히고 마부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시발, 가긴 어딜 가.”

“……빌어먹을 도적놈들.”

백파적의 몇 무리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여기서 죽은 형제가 몇인데, 황제만 쏙 가로채겠다고? 좆까. 차라리 시발 계집이라도 바치면 저놈들이 목숨만은 살려줄지 누가 알아?”

“양정이나 양봉이 시키더냐?”

그 말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양반들도 저 앞에서 싸우고 있는데 무슨. 우리 같은 놈들은 다 제 살길은 알아서 찾는 법이야. 그게 인생 아닌가?”

그 비웃음에 제대로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이래서 도적을 끌어들여서는 안 됐는데. 이미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적은 계속 몰려들고 있는 상황.

지체할 시간도 없는 것을.

“당장 물러나라! 황제의 어전이다!”

“뭣도 없으면서 황제는 개뿔. 잘 챙기면 몸값이라도 두둑하게 받을지 누가 아나? 그치?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 챙길 건 챙겨야지.”

대치상황이 길어지고 있었다.

동승은 그들을 호통치며 물러날 것을 권고. 그러면서 주변에 배치한 자신의 군을 불러 그들과 대치했고, 싸우고 있는 백파적과는 계파가 달랐던 이들끼리 뭉쳐서 그런 동승을 적대했다.

전장에서 또 다른 내분.

어가 안에서 듣고 있던 유협은 고개를 파묻었다.

황제의 위상이 무엇이더냐. 결국에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 아니면 자신 같은 어린 여아가 황제라서 그런 것이더냐.

“이럴 시간이 없다! 네놈들이라고 장안에서 온 이들이 살려줄 것 같으냐!? 지금은 우선 몸을 피하는 게 먼저가 아니냐!”

“그 황제 폐하를 바치면 살려는 주겠지.”

심드렁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동승은 이를 갈았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적은 점점 다가올 것인데. 힐끗 고개를 돌리니 정말 저 앞까지 도착한 추격대의 군사를 본 동승은 결국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네놈들을 죽이고서라도 가야겠다!!”

“아, 그래?”

그 순간 남자는 활을 꺼내 들었다.

동승 주변의 병사는 바로 방패를 꺼내 들어 동승 앞을 가로막았지만, 애당초 그가 노리는 건 동승의 목이 아니었다.

쏘아지는 화살.

정확히 어가를 끌던 말의 목덜미를 꿴 화살에 동승이 경악할 무렵, 그는 픽 웃으면서 동승을 향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도망칠 수단도 없네?”

“이노오오오옴!!”

낄낄거리며 비웃고 모욕한다.

이런 곳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동승이 고함을 치고 칼을 휘두름과 동시에 전투가 벌어졌다. 백파적과 동승의 군이 벌이는 내전. 적의 추격대는 저 앞, 최후의 방어선을 뚫으려는 찰나.

유협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는 아군까지 서로 내분한다.

딱히 저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목숨이 달렸으면 응당 자신과는 하등 관계없는 황제를 바쳐서라도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 아니던가.

자신조차 이리 살고 싶은데, 저들은 어떻겠는가.

“봄날에는 꽃을 흩날리고, 여름에는 빗물이 땅을 적셔, 가을에는 풍요의 수확을, 그러하니 겨울에는 휴식의 기간. 그리하여 천하의 순리가 완성된다 이르렀던가.”

인간의 삶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들었다.

유아기를 거쳐 청년이, 그리고 중년이 되고 노년기가 찾아온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 또한 마찬가지.

시황제 유방이 나라를 일궈 발전했고, 한때 침체기도 있었으나 다시금 한의 이름을 되찾았던 대제국의 겨울은 지금인가.

일개 도적조차 황제와 황실의 권위를 짓밟는다.

여기서 장안으로 끌려간다면 아마 두 번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올 일은 없으리라. 어쩌면 불필요한 행동을 벌인 유협을 폐위시키고 다른 황제를 세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을 터.

어찌 되었건 유협이라는 인간의 역사는 여기서 끝날 상황이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우스워서, 또 너무나도 서럽고 억울하여 소녀는 눈물을 흘렸다.

황제로서 무언가 돌볼 시간도 없었다.

기회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짓밟히고, 모욕당하고. 그 끝에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가 끝날 인생이었던가. 그것이 황제의 삶이어도 정말 좋은 것인가.

“소녀는 여기에 있다.”

이야기 속 영웅이라면 나와라.

언제나 누군가가 위기에 처하면 달려오는 용사는, 만부부당의 무력과 누구나 돌아보게 할 인품으로 누구나 품에 끌어안을 영웅이 현실에도 존재하던가.

만약 존재한다면 유협은 말하리라.

“소녀는 여기다. 여기에 있다.”

허공으로 내뻗은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여기에, 있었다.”

주변에 소란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동승과 백파적이 다투던 소리는 계속 들려왔는데, 그 이상의 소란이 벌어졌다면 추격대도 지척까지 도착한 것이리라.

비명이 들렸다.

말발굽의 소리도, 장병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고함도, 함성도, 외딴 단말마도 전부. 듣고 싶지 않은 추한 것들이 사방에서 소녀를 괴롭혔다.

점점 그 소리가 격화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소란이 멎기 시작했다. 멀리서는 아직도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 근방에서 당장 선명하게 들리던 전투 소리가 사라졌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까.

그 소리는 유독 선명하게 유협이 귀를 자극했다.

누가 이겼는가. 사실 누가 이겼어도 어차피 끝이었다. 어쩌면 그 둘이 다투고 있는 동안 장안의 추격대가 도착하여 상황을 정리하였을지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의미도 없는 일.

체념해야만 했다.

“이렇게 끝나라고…?”

그저 살고 싶었다.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소녀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황제가 되었을 뿐. 적어도 소녀는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적어도 유협 본인은 그리 생각했다.

황제가 된 것이 벌인가. 천지신명께서는 자격 없는 이가 황제가 되었기에 그것을 벌하시는 건가.

점점 다가오던 발소리가 어가 바로 앞에서 멈췄다.

유협이 눈을 질끈 감았을 무렵.

“…폐하.”

듣지 못했던 목소리에 소녀는 살짝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조금 놀란 듯한, 그렇지만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소녀에게 손을 내미는 남자가 한 명.

“도착이 늦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따스히 웃었다.

아아.

겨울은 가고, 다시 봄이 올 징조인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유협은 그 모습에 눈물을 글썽였다. 안심? 적어도 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에 마음이 풀어졌을까.

소녀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 좌석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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