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85화 (185/343)

18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제의 어가 우선 황제에게 향해 그 행렬을 지원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연주에서 출발할 본대가 올 때까지 그 시간을 벌어라.

하지만 그 세부적인 명령은 어떤가.

사람을 전부 물리고 혼자 막사에 앉아 줄곧 고민했다. 조조와 소연 아씨는 무슨 생각일까. 그들이 바라는 미래는 무엇인가.

“후우….”

한 황실 같은 건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뭐 그 영광을 위해 몸을 불사르겠다는 성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제국에서 받은 것도 없다. 그러니 그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열의도 떨어질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래도 현 천하의 안정을 위해서는 여전히 한이 유지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몇백 년에 걸쳐 이어온 체제가 무너진다면 그 뒤로는 혼란밖에 없을 터.

“지원하되 파리가 많으면 기다려라.”

명령서에는 그리 적혀있었다.

파리라는 건 아마 황제의 권위, 제국이 다시 일어설 때 그 근처에서 단물을 빨고자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거겠지.

구태여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선 황제와 제국에 대한 의리는 다하겠다. 하지만 황제를 차지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생각인가.

포기?

그것도 이상했다.

만약 다른 제후가 황제를 차지하게 된다면 골치가 아플 우려가 있지 않은가. 아니, 아니지. 우려로 끝날 리가 없다. 분명 황제와 함께하는 제후는 그 권위를 빌미로 사방을 압박하려 들 터.

“이대로 포기할 사람들은 아닌데.”

조조도 그렇고 소연 아씨도 그랬다.

그 둘은 공통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중시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황제의 피난 건을 이리 무르게 처리할 리가 없었다.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수 있었다.

물론 반대한다.

제국이 이 시국에 갑자기 무너진다면 그나마 잠자코 있던 타 제후까지 움직일 우려가 있었다. 이것도 당장 있을 일이고, 장기적으로 본다면 저마다가 제국을 세우겠다며 봉기하지 않겠는가.

주인이 없어진 대륙에는 새로운 주인이 필요했다.

만약 여기서 한나라의 기둥이 사라진다면? 물론 한이 존속한 기간이 있으니 사방으로 황족의 씨앗은 많겠지만, 과연 누군가가 황제를 자칭한다고 하여 다른 누군가가 인정하려 들까?

결국엔 천하 전체를 말려들게 할 우려가 있었다.

잘 생각해야만 했다.

“일단 가긴 가야겠는데.”

이미 황제의 어가는 하동을 지났다고 들었다. 아군이 연주와 소통하느라 대기하고 있던 동안 장양도 그 어가를 지키기 위해 나섰고, 듣자 하니 백파적 놈들까지 끌어들여 필사적으로 장안의 추격을 뿌리치려 한다던가.

이천의 기병이면 충분히 그 추격전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규모의 군대였다. 단지 여차하면 대기하라는 명령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이 망설여지는 순간.

그래도 슬슬 움직여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오래 앉아있었던 탓인지 허리 부근으로 하여 살짝 지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생각할 생각인 것이 예상 이상으로 시간을 지체한 상황.

“여포! 거기 있지?”

“어우, 뭐야. 이제 다 끝났어?”

역시나.

확인도 없이 그저 소리쳤지만, 바로 막사의 천막을 걷고 여포가 들어왔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주변을 맴돌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자기가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있나.

“하동으로 가야겠다.”

“뭐야, 진짜로 넘어가게? 빡셀 건데.”

장안에서의 추격대는 확실히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기존 장안에서 황제를 보필한 병력에 사방으로 병력을 징발하고, 거기에 하내 태수 장양과 백파적까지 끌어들이고도 붙었다 하면 연전연패.

과연 동탁이 이끌었던 정예병인가.

“우선 명령서도 받았으니까.”

“기병으로만 구성되어있어 나쁘지는 않은데, 그래도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건 자살이야. 기병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아는 놈들이라고.”

이각과 곽사는 동탁이 병주에 있을 적부터 따랐다고 들었다. 그러면 인간 됨은 몰라도 병사를 이끄는 수완만큼은 백전노장이라 불러도 과언은 아니겠지.

어차피 정면으로 적과 대적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황제의 어가에는 안 그래도 여러 세력이 결집하여 정신도 없을 터. 구태여 황제의 어가에 직접 합류할 생각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인 이해에 엮여버린다.

대뜸 아군보고 황제의 명을 빌려 장안의 적을 격파하고 돌아오라는 둥, 그딴 명령이라도 받아버리면 답이 없는데 뭐하러 거기에 합류할까.

“어차피 상황만 지켜보는 거야.”

지금 황제의 근처에는 파리가 많았다.

조조도 분명 그런 뜻으로 명령한 거겠지. 우선은 지켜보면서 아군이 나설 수 있을 때 독자적으로 나서 어가의 호위를 지원한다.

“괜찮겠어?”

“뭐가.”

그러니 여포가 살짝 머리를 긁적였다.

끙끙거리면서도 뭔가를 계속 떠올리려는 모양인데, 잘 생각나질 않는 건지 이제는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안절부절못한다.

“아니, 그 뭐야. 그, 있잖아? 황제가 오면 우리도 한몫? 그런 거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말마따나 황제가 다른 놈한테 가면 골치 아프잖아? 그 동탁 돼지 새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꼬마 끼고 돌아다녔는데.”

“그렇다고 당장 몸을 담글 순 없어.”

지금 황제의 어가가 어떤가.

백파적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간절한 상황이니 당장 합류하면 좋다고 반기기야 하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똥통도 없었다.

도적까지 끌어들여 도망치는 이들에게 명예 같은 것이 있겠는가. 물론 황제를 보필하려면 어쩔 수 없다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당장 저 무리에 합류하는 건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황제 하나 끼면 동탁놈 하던 짓 가능한 거 아니었어? 아니, 뭐 그 새끼가 좋다는 게 아니라. 그 권력이 대단하긴 하잖아.”

“어차피 내 권력도 아니다.”

지금 우선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의 안전뿐이었다. 물론 조조가 직접 합류할 것을 명령했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면 구태여 나설 필요도 없었다.

“대장이 됐으면 제 사람은 지켜야지.”

“주인아.”

“지금 여기 모인 이천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내 명령 하나에 죽고 살고가 정해지는 거잖아. 그러면 내가 최대한 안전히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게 맞는 거 아냐?”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그러했다.

“그런 게 대장 아닌가?”

구태여 나설 필요도 없는 일에 나섰다가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었다. 언제나 전장이고 싸우기 위해 모집된 병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필요한 일에 목숨을 날릴 필요는 없다.

“그러라고 조공도 나한테 이런 직함을 내어준 거겠지. 물론 좀 답답하기는 한데, 일단은 이 불편한 의자에서 좀 견뎌보려고 해.”

아무래도 평생을 민간인으로 살았기에 영 불편하기는 했다. 지금도 주변에서 떠받드는 사람들이 영 불편하기는 했다.

“난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없어.”

여포는 그리 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녀는 그렇겠지. 본인의 무력이 전부였던 여자였으니까. 그러니까 내게 마음을 허락했고, 그 빈틈을 찔려 붙잡힌 사람과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떠들고 있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다들 제 영광과 명예, 권력을 위해 싸우잖아. 천하에 높으신 분들이 그런다면, 한 명 정도는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을 거 같아.”

“주인이는 가끔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네.”

그 말에 픽 웃어버렸다.

사실 그랬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이었다. 솔직히 남 위에 서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사실 전권을 잡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초보 장군이었으니까.

그저 내가 병사의 신분이었을 당시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남들도 그렇지 않을까 하여, 그래서 그걸 지켜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 주인이도 더 강해져야겠네.”

“응?”

갑자기 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갈색 눈동자가 유독 선명하게 빛나는 느낌이었는데, 그 표정이 묘하게 편안해 보여서 내 마음도 다소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야 제 사람을 지키려면 강해야 하잖아?”

“…그도 그러네.”

이 천하에 패배는 곧 죽음이었다.

물론 무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군을 적재적소에 맞게 배치할 줄 아는 능력부터 군을 다스리는 방법. 군 외적으로 본다면 정치적인 다툼에 얽히지 않을만한 입지가 필요했다.

“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아무튼, 황제는 좀 지켜보고 행동하겠다는 걸로 이해하면 될까?”

“응. 어차피 당장 황제의 곁에는 따르는 이가 제법 있으니까. 그 양상을 보면서 위험할 때 움직이기만 해도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 같아.”

서둘러 하동까지 도착해야겠지만, 도착한 뒤로는 그렇게 바쁠 일은 없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상황을 우선 관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면 애들한테 말해두고 올게.”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를 떠나려는가 싶더니 살짝 흠칫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다시 몸을 돌려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포.

“이거, 오늘치.”

그녀는 그리 말하고 작은 꽃송이 하나를 내밀었다.

순간 복양에서 매일같이 꽃다발을 보내던 때가 떠올랐다. 내 시종이 되고 나서는 안 하는가 싶었는데, 게다가 꽃송이에 묻은 흙을 보아하니 바로 근처에 자라던 꽃을 따온 것처럼 보였다.

“그만둔 거 아니었어?”

“응. 그러려고 했는데….”

살짝 머뭇거리더니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 말만을 남기고 여포는 먼저 막사에서 떠났다. 손에 쥔 조그마한 꽃송이. 예전 복양에서 받았던 것보다 규모도 작았고 예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이게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뭘까.

샛노란 꽃망울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는 또 복잡하게 전쟁이니 정치적인 분쟁에 황제까지 껴서 복잡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지금만큼은 이런 꽃망울 하나 보면서 잠시 쉬어가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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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린 일러스트의 주인공은 완성되면 공개하겠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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