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76화 (176/343)

17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삼보의 난 황실은 만인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황제는 만인은 아우르는 존재였다.

그러하면 지금 한나라의 황실은 그 역할에 맞게 기능하고 있는가? 우습지만 그건 황제 본인이라도 그렇노라고 답할 수 없었다.

이미 천하가 기울기 시작했다.

황가와 그 황실의 권위는 벌써 땅에 떨어진 지 오래. 동탁의 집권으로 시작되었을까. 아마 그전부터 천천히 한의 황실은 몰락하고 있었으리라.

오래도 참고 견뎌내었다.

동탁의 손에 언니가 죽었을 때도, 억지로 세워진 황제라고 은연중에 무시당하던 상황에서도. 최대한 울지 않고 의연하게 있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장안 일대를 포함하여 삼보 일대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그것에 단지 참고 견뎌야만 할까.

“시가지의 상태는 어떻던가.”

“…최악입니다. 이각과 곽사의 내전은 계속 번지고 있는 데다가 당장 세율이 너무 높아 이 황도에서 도망치는 백성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물론 아사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유협과 독대한 중상시는 어린 황제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아무리 현 상황을 깨달아야 한다지만 그런 것까지 전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몇 번인가 황실의 재산을 털어 구휼하고자 하였던 시도도 전부 실패로 끝났다. 애당초 이각과 곽사를 포함한 동탁계의 인사들은 백성의 삶에 흥미가 없는 이들이었다.

어쩌면 황실의 재산을 제 것이라 굳게 믿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제의 명으로 진행되는 구휼미를 전부 털어갈 리가 없었다.

“상시여, 짐은 어떡해야 할까.”

“이각과 곽사를 필두로 장안은 현재 지옥도입니다. 지금은 잠시 때를 기다리심이 옳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언제까지?”

만인지상은 황제에게만 붙을 수 있는 수식어였다.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제국의 황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붙여진 것은 대체 언제부터였던가.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이 제국이 점점 몰락하기 시작했단 말인가.

이대로는 황실의 근간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당장 황실로 들어오는 세수조차 없었기에 문무백관을 유지할 방도도 없었다. 애당초 기존 동탁 세력의 강압으로 문무백관의 관직 대부분을 그들의 사람에게 쥐여줬고, 몇 안 남은 한 황실의 충신에게 하사할 것도 없었다.

동탁은 적어도 황실의 구색이라도 유지하려 했으나, 그 사후 기존 동탁의 부하들은 말 그대로 도적과 다르지 않았다.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사방으로 수탈과 약탈을 반복했다. 황실의 권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종묘사직을 그들이 쥔다 하더라도 써먹을 수도 없었다.

멍청한 놈들.

그러나 그 멍청한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도도 없는 유협은 무엇인가. 그런 개나 돼지와 같은 이들보다 못한 무력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동승이 또 사람을 보냈습니다.”

“…놈도 어차피 황실을 이용하려 드는 역도잖느냐.”

과거 동탁을 따르던 이였으며 이번 장안 내 권력다툼에서 진즉에 탈락한 것이 동승이었다. 붙잡을 연줄이 없으니 이젠 황실을 이용할 생각인가.

소녀는 이를 갈면서 고개를 떨궜다.

방법이 없었다. 애당초 이제 고작 13세에 불과한 소녀에게는 너무나도 복잡한 일이었다. 물론 유협은 어릴 적부터 명석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것이 부족한 경험을 메워주지는 못했다.

“우선 얘기는 들어보시는 것이 나을 듯 사료되옵니다.”

황제에게 조아린 중상시는 계속 생각했다.

그는 과거 십상시의 난 전부터 황실에서 근속하던 환관이었다. 원소를 필두로 황궁 내 무력행위와 동탁의 밑에서도 살아남았을 정도로 처신에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

이제는 몇 안 되는 유협의 사람이었던 그가 판단하기에 지금은 지푸라기 한 올이라도 잡아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매몰당한다.

황제에게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상 장안 내에서 유협을 따르는 인물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천하에서는 이미 황실을 무시하고 멋대로 군벌들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각지에서 내전을 벌이는 상황. 황실이 정상적으로 기동했더라면 그 모든 행동을 반역으로 규정해도 문제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그들은 황실의 존재마저 잊고 스스로 왕이라 자칭하며 제국의 권위에 도전할 터.

동승이 협잡배에 가깝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런 인간이라도 이용하지 않고서는 언젠가 자리에 주저앉아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황실 근위대도 사실상 전부 이각의 군세로 채워진 상황에서 저희가 의지할 곳이 많지는 않사옵니다.”

“짐이 황제가 맞기는 한가?”

“폐하….”

유협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는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소녀의 정통성을 책잡았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라고는 전부 과거 동탁 휘하의 협잡배뿐.

동탁이 내세운 어린 황제.

우습지만 동탁아야말로 소녀에게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증명해줄 가장 최선의 수단이었다. 그가 죽고 왕윤마저 죽은 지금, 그녀의 권위를 대변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 제후 중 짐을 돕겠다는 이도 없지?”

황제에게 거짓을 고할 수 없다지만, 이 실상을 전부 적나라하게 밝혀도 좋을까. 이 어린 소녀에게 그러한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게 옳은 선택인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 천하에서 황실을 수복하고자 하는 이가 누구던가. 아무도 없었다. 북으로는 원소와 공손찬이 대립하고 있었고, 중원으로는 조조가 서주의 도겸, 양주의 원술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

누구 하나 황제의 권위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황제라는 작자가 참으로 처량하구나.”

“폐하.”

“잠시 쉬어야겠어.”

유협은 천천히 등을 기울이며 드러누웠다. 비단으로 수놓은 침상도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당초 소녀라고 언니를 대신하여 황제로 오를 생각이 없었다.

모든 건 난세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천하의 그 누가 짐을 구원해줄까?”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웅은 대체 누구인가. 몰락하여가는 소녀에게 홀연이 다가와 구원할 구세주는 어디에 있는가.

“소녀는 여기에 있다.”

이 자리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메말라갈 따름. 천천히 말라 비틀어지고 있으니,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이윽고 완전히 몰락하여 썩어 문드러진다.

그 전에 누군가 없는가.

비극의 난세에서 황제의 감투를 눌러쓴 소녀를 구할 영웅은 아무도 없는가. 진정 소녀에게 남은 미래는 천천히 가라앉을 뿐인 비참한 몰락인가.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아직 꽃조차 피우지 못한 나이였다.

황제로서의 권위와 제국의 안녕. 그런 것을 논하기 이전에 아직 인간으로서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어린 나이였다.

“중상시, 잠시 자리를 비키거라.”

“예, 폐하.”

그가 물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누구 하나 그녀의 곁에 없었다. 홀로 쓸쓸히 침상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어미는 황실 내 권력다툼으로, 아비는 십상시의 손에 휘둘리다가 죽었다.

배다른 언니는 동탁의 손에.

“소녀는 언제쯤 거둬가려고.”

이럴 거라면 차라리 빨리 거둬갈 것이지.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좋다면야 그런 미래도 나쁘지 않았다. 황실의 권위와 제국의 무게? 그런 확연하게 와닿지 않는 두루뭉술한 것을 위해 평생을 바칠 생각은 없었다.

어린 소녀에게 그건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어려서부터 누려온 것이 있으니 황실 권위가 얼마나 준엄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까지 깨닫기에 유협은 아직 너무나도 어렸다.

유협 또한 자신이 어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녀는 여기다. 여기에 있다.”

* * *

내가 연주 동군의 군승으로 승진한 것에 비해 아가씨의 관직은 여전히 별가였다. 얼핏 보면 아무런 변동도 없는 듯싶지만, 소연 아씨의 영향력은 관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궁 선생이 관직을 박탈당한 지금, 연주와 예주를 아우르는 조조군에서 조조 당사자 다음가는 이인자의 위치를 명확하게 굳힌 셈.

이건 별가라는 관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조금 늦었네?”

“저녁 시간이잖수.”

적당히 서두른다고 움직였지만,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면 시가지를 비롯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법이었다.

“여포 장군도 같이 오셨네요?”

“장군 아닌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 뒤에 붙었다.

소연 아씨도 그런 여포에게 잠시 시선을 흘기고는 이내 내 손을 잡고서 천천히 이끌었다. 그간 그녀가 계속 바빴기에 이렇게 따로 만나는 건 제법 오랜만이었다.

“여공. 그러시면 잠시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군승과 잠시 긴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공적인 일이라서요.”

아씨의 말에 여포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호위가 자리를 비우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자리를 비워?”

“외람되오나.”

그녀는 입가를 가렸다.

하지만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이 보였다. 당연히 여포도 그 표정을 보았겠지.

“무슨 일은 귀하가 있는 쪽이 불안한걸요?”

“…주인아.”

“잠시 물러나 있어. 나중에 부를게.”

이런 알력싸움은 하등 도움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아가씨에게 그런 식으로 먼저 발언한 것도 여포였으니, 그녀에게 꼭 이 자리에 남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알았어….”

살짝 시무룩한 표정.

안타깝지만 아가씨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여포를 보내고 나서야 의자에 걸터앉아 몸을 쭉 늘어뜨렸다.

“고생 좀 했나 봐?”

“아무래도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건 어쩔 수 없겠더라고.”

조금이지만 긴장을 풀었다.

최근 내 주변에는 사람이 늘어났다.

분명 원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오히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영 긴장을 풀기 어려웠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었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밉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남았다.

“그러게 왜 여포를 품어서는.”

“살리겠다고 약속했거든. 아씨도 나 알잖아?”

약속은 지키는 남자였다.

“글쎄다. 난 모르겠는걸?”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장난스레 웃었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장난치며 떠든다. 소연 아씨와 이런 느낌으로 대화한 것이 너무 예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갑자기 왜 불렀수?”

“이번에 동군 일대의 군사훈련에 대해 협조받을 게 있었거든. 물론 뭐 반쯤은 구실이고, 이러지라도 않으면 단둘이 있기 힘들잖니?”

“뭐야, 나랑 단둘이 있고 싶었어?”

골리려고 했던 말에 소연 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순순히, 그것도 이런 부끄러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굴면 내가 곤란한데. 의자에 걸터앉아 몸을 축 늘어뜨린 내 곁을 다가온 소연 아씨가 이윽고 손을 내밀어 내 뺨을 쓰다듬었다.

간질거리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너와는 언제나 단둘이 있고 싶었어.”

무슨 말로 돌려줘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아니, 그 뭐냐.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들이댐에는 약하다고. 난 남을 골리는 건 좋아해도 골려지는 것에는 약한데, 특히나 이런 식으로 뒤 없이 다가오는 공세에는 더더욱 취약했다.

그녀는 내 뺨을 더듬고 있었다.

온갖 흉터가 남아 더러운 내 손과는 달리 부드러운 여자의 손. 그것이 자꾸만 내 뺨을 쓰다듬거나 꼬집고, 그러는가 싶으면 내 입술을 살짝 쓰다듬었다.

“궁금한 게 있거든.”

입술을 쓰다듬는 손길에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일까. 머리를 살짝 치워 그녀의 손길을 피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한 손을 더 뻗어 양손으로 내 뺨을 붙잡았다.

뺨이 눌려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풉, 웃긴 얼굴.”

“아가씨가 눌러놓고는.”

그녀는 픽 웃으면서도 손을 떼지 않았다.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조조와 소연 아씨는 둘 다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조조는 조금 검붉다는 인상이었고 소연 아씨의 눈동자는 선명한 빨간 색.

그 눈동자와 잠시 시선을 얽혔을 무렵.

“왜 그랬어?”

양 뺨을 누른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웃던 게 거짓말 같았다. 소연 아씨는 그저 뚫어지라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내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뭘?”

“진궁과 여포.”

언젠가는 이런 질문을 들으리라 예상했었다. 특히 아가씨라면 어렴풋이나마 내 의도를 파악하고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겠지.

“무슨 속셈이야.”

조금 무서울 정도로 이쪽을 바라본다.

속셈이라.

물론 뜻하는 바는 여럿 있었다. 물론 여포의 경우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비롯해 이것저것 마음이 흔들려 움직인 것도 없잖아 있었지만, 아가씨가 묻는 건 그런 사적인 이유가 아니겠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어떻게 말하면 소연 아씨가 이해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조를 견제하고자 하는 목표 그대로를 까발린다고 해서 아가씨가 전부 이해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속인다면 지금은 편하겠지만, 그렇게 뒤로 미룰 문제도 아닌 것.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고도 간단했다.

“조조를 견제하고 싶었어.”

그녀만은 속이고 싶지 않았기에 생각하던 바를 솔직하게 터놓았다. 현 연주와 예주에서 조조의 독단적인 행보를 제지할 사람이 없다면 그 역할을 맡고자 했다.

만약 아가씨가 그녀의 방식에 물들었다면, 정말 유감이지만 그녀 또한 견제해야 할 대상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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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가 고생이 많습니다 :)

내일은 두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소연 아씨는 메인 히로인에 가까운 분이니...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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