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75화 (175/343)

1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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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오늘은 뭐할까요?”

“아니, 뭐 이렇게 매일같이 찾아오냐.”

이 계집애가 말이야.

이번 연주에서의 일로 오래간 떨어져 지낸 탓일까, 근래에는 아예 내 장원에 방문하기를 일상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저기요, 일은 없어요?”

마침 사마의에게 글과 문법에 대해 배우고 있었던지라 사마 꼬마도 갑작스러운 운이의 방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적거렸다.

“다 끝내고 왔는데?”

“…진짜 세금도둑.”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운이는 어느샌가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내가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자병법이네요?”

“…글을 배우면서 동시에 병법에 관한 걸 익히려면 이만한 고서도 따로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좀 나가주실래요?”

그런 소녀의 말에도 운이는 꿋꿋했다.

사마의는 한숨을 내쉬었고,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여포는 이제 일상다반사처럼 찾아오는 운이에게 힐끗 시선을 보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야, 울 주인 방해된다잖아.”

그녀는 슬쩍 다가와 옆자리에 주저앉은 운이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운이는 그 손을 칼같이 쳐냈다.

“방해는 그쪽이잖아요?”

“……주인아, 오늘 시체 하나 치워야겠다.”

“아서라 좀.”

하여간 근래 들어서 너무 주변이 북적였다. 여포는 시종이라는 명목으로, 사마의는 어차피 아직 어렸기에 소연 아씨의 저택이나 내 장원에 머물렀고, 운이도 이렇게 자주 방문하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형씨! 누님! 내 술 좀 가져왔는, 데…?”

“뭐하쇼, 안 들어가고.”

저 멀리서 장료가 입구로 들어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뒤이어 방삼이도 들어오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포와 다르게 항장으로 관직에 오른 장료는 우선 연공서열에 밀려 방삼이가 맡은 관청 방위군의 부대장이 되었기에 종종 저리 함께 움직이고는 했다.

물론 장료라는 남자 또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니 언젠가는 위로 올라가겠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동군 군승인 내 휘하인 셈.

이렇게 생각하니 방삼이 저놈도 출세했네.

“대장, 우리 왔수다. 오늘도 북적거리네.”

하도 자주 겪은 일이라 그런지 방삼이는 적당히 들어와서는 방앞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장료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양손에 든 술동이를 내려놓았다.

“누님, 그쯤 해둬.”

“아니 이 계집애가 자꾸 뭐라고 하잖아.”

여포의 칭얼거림에 장료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때 최악까지 치달았던 관계였다. 여포는 물론이고 장료 역시도. 그가 마지막까지 내게 죽여버릴 것이라며 소리치던 광경이 뇌리에 선명했다.

“응? 형씨,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

“별거 아니다.”

그는 여포가 살았음을 알고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바보 같은 누이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고 절까지 했다.

지금이야 저렇게 가벼운 태도로 실실 웃고 있었지만, 저 남자의 진면모는 중요할 때 태도로 증명하는 그 진중한 태도에 있었다.

“형씨도 가끔 싱겁단 말이지.”

장료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이제는 아예 서로 노려보다시피 하며 싸울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운이와 여포를 막으러 달려갔다.

시끌시끌했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전장의 함성으로 시끄러운 것보다야 이런 식으로 떠들썩하게 시끄러운 게 훨씬 좋지. 누군가의 비명보다는 이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악!! 시발, 누님아! 그렇다고 왜 나를 패!!”

저건 비명이 아니었다.

아무튼 아니다.

* * *

193년 5월.

천하의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소연은 눈을 감고 천천히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떠올렸다. 역사는 이미 절찬리에 가속하고 있었다.

하북에서는 공손찬과 원소의 전쟁이 재차 발발했다. 거기에 거듭하여 유주자사 유우와 공손찬과도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삼파전.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간 유주와 하북 일대에서 강한 지지를 받고 있던 황족이자 관료였던 유우의 목을 공손찬이 베어버린 것.

안 그래도 주변 호족과 백성의 지지를 이끌지 못하였던 공손찬에게 있어 그것은 자충수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야 아직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원소와 비등하게 군형을 유지한다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건 문제가 아니야.”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다.

문제는 장안.

동탁 사후 그 휘하 제장들이 각자 장안 내에서도 세력을 나누며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거대 세력이라고 한다면 곽사와 이각.

그들은 서로 견제하다가 이윽고 성내에서 시가전마저 불사할 정도로 험악한 관계가 되었다. 황제를 모신다는 이들이 벌일 일로는 부적합한 것.

문제는 시기가 너무 일렀다.

“역시 여포가 없어서일까.”

원래 역사대로라면 그들은 서로 갈등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장안을 점거한 왕윤과 여포에게 저항했다.

그렇게 연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들은 서로 적대하기보다는 화합을 택했고, 이런 식으로 내분이 일어나는 건 앞으로 좀 더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 여포는 동탁이 죽기도 전에 장안을 빠져나왔다.

왕윤 혼자서 아무리 황실 근위대를 이끈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동탁의 정예병에 이겨낼 리도 만무했고, 결국 그들은 너무 쉬이 종묘사직을 틀어쥐었다.

외부의 적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내부로 돌아간다. 장안 내에서 최강으로 군림할 수만 있다면 허울뿐이라고는 해도 종묘사직을 거머쥐는 셈.

소연은 지도에 그려진 장안에 X자를 칠했다.

어차피 불확실한 황제의 권위와 옹립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미 193년임에도 실질적으로 2개의 주를 차지한 조조는 명백하게 원래 역사보다 훨씬 강해졌다.

황제가 없더라도 원소와 겨룰 수 있었다.

“형주는 당분간 움직이지 못해. 서주는… 유비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아직 전화에서 회복하지도 못한 거점.”

그녀는 몇 번인가 시선을 옮겼다.

형주는 여전히 내부에서 호족과의 갈등을 빚어 채 군사적 움직임을 취할 수 없었다. 유비 또한 제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그 피폐해진 서주 전토에서 어찌 군을 움직일까.

남은 상대는 누구일까.

바로 맞댄 곳에 있는 낙양 일대를 포함한 사예주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쪽에서 도적떼가 넘어오지라도 않는 이상에야 군사적 마찰을 빚을 리도 없었다.

하면 남은 상대는 원술.

그는 언제든 군을 일으킬 수 있는 상대였다. 명가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그는 여전히 주변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었다. 몇 번을 무너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하지만 그를 선제공격할 수는 없었다.

“음? 소연. 이곳에 있었는가.”

“아, 조공.”

그녀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조조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조는 그런 그녀에게 한 번 손짓하고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표정.

근래 들어서 조조의 표정이 한결 좋아 보였다.

분명 예주를 점거하게 된 것은 분명 큰 이득이겠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만 하기는 뭣한 것이 아직 전부 처리하지 못한 불길이 남아있었다.

특히 진궁.

전호는 그녀의 결백을 증명했지만, 반대로 역사를 알고 있던 소연은 그 말을 쉬이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진궁도 진궁이지만, 무엇보다 여포가 이렇게 합류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부 그 남자가 살린 목숨이었다.

그는 점점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적어도 조조에게 있어서 그들이 살아남은 건 좋은 일이 아닐 텐데. 그런데도 최근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소연에게 있어 한 가지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대가 보기에는 어떤가?”

조조는 최근 소연에게 유독 친근하게 굴었다.

소연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영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조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나쁠 것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장안에서는 내분. 서주는 아직 움직일 수 없으며 유주에서는 유우가 사망했어요. 형주도 여전히 호족에게 발목이 붙잡혀있는 상황이죠.”

“아군으로서는 한시름 놓았지.”

연주의 안정화와 예주의 복속.

그 모든 것을 행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간은 전쟁에 전쟁을 거듭하는 혼란이었다면, 이제는 아무리 시간이 급하더라도 내실을 다져야만 했다.

소연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아군도 당분간 세력을 확장할 수가 없게 된 셈. 적어도 서주를 재차 침공할 수 있을 때까지는 몸을 웅크려야겠지요.”

“흠, 재차 공격이라.”

기존 서주를 점거하고자 했던 공세는 실패했지만, 반대로 예주를 손에 넣었다. 조조는 이제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으나 소연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이미 한 번 서주를 공격한 이상, 재차 공격하더라도 명분은 충분합니다. 도겸이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아예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대여.”

“도겸을 넘기라고 한다면 그의 후계자라는 명분으로 서주목에 오른 유비가 과연 순순히 내어줄까요? 그것을 재차 침공의 구실로 삼으면 충분한 일이에요.”

연주와 예주, 그리고 서주.

당장 하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공손찬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는 완수해야만 했다. 황제가 역사처럼 도망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지금, 적어도 하북을 통일할 원소와 대등 그 이상을 노린다.

“당장은 불가능하다.”

“알고 있어요.”

병사는 굶으면 싸울 수 없다.

그렇지만 배만 불려준다고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듭되는 연전으로 지치고 피로해진 병사는 전쟁 그 자체에 회의를 품는 법.

다스리는 백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푹 쉬게 한다. 숨 고를 시간조차 주지 않고 몰아치면 적뿐이 아니라 아군 역시도 피폐해지는 법.

“본인이 할 말도 아니지만, 그대도 참 열성이군.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권력? 재산? 영광?”

그 질문에 소연은 입꼬리를 올렸다.

“천하 전체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요.”

“그대도 가끔 지독하게 앞만 바라보는군.”

조조의 말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무너졌으리라.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한 마디에 죽어 나간 수많은 목숨이 아른거렸다.

여긴 그녀가 있던 현대가 아니었다.

사람의 말 한마디, 명령 하나로 수백, 수천, 수만이 넘는 목숨이 사그라진다. 알고 있었다. 전부 소연 본인이 선택한 길이었다.

더는 망설이지 않기로 정했다.

그 목숨 하나하나에 신경 썼다가는 버틸 수 없는 것. 뒤를 돌아보았다가는 그녀 본인이 그 죄악감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우선 현 정세는 아군에게 있어 나쁘지 않다.”

특히 예주는 여러 명가의 본적이기도 한데다가 기본적으로 통치에 잘 따르지 않는 이들이라 완전히 지배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조조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소도 손이 묶여있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내실을 다져야 해요. 이런 반란에 두 번 당하면 당한 사람이 바보라는 거, 알죠?”

“그대는 가끔 아픈 구석을 찌르는군.”

이런 내부의 대규모 반란에는 한 번 덜미를 잡혔으면 족했다. 적어도 소연은 이 이상 뒤를 잡혀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던 것.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과정으로 지체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내실을 다지고 쳐내야 할 것들을 쳐내야 했다.

“우선 내부 정리부터 시작하세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아직 전부 처벌하지 못했던 관료와 호족. 적어도 조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연주와 예주의 인사를 정리해 빼곡하게 적어둔 종이였다.

“숙청하라는 뜻인가?”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름이라도 기억해주세요. 그런 내부의 적을 덜어내지 않고서는 항상 같은 불안감에 시달려야 할걸요?”

당장은 내부를 규합하는 게 먼저였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정세에 대규모 숙청까지 가했다가는 다시금 지방 호족들은 불안에 떨 터. 지금은 장막과 관련된 주요 인사를 전부 처리한 정도로 멈춰야만 했다.

“그대도 독해졌군.”

“익숙해진 거죠.”

사람을 죽인다는 것.

난세에 살아간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점점 이 세계에 익숙해질수록 그녀의 능력은 점점 개화하기 시작했다. 소연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그녀를 유심하게 관찰하던 조조가 보기에는 마치 꽃봉오리가 트이는 것처럼 보였다.

전호는 필요 이상의 희생을 꺼렸다.

진소연은 필요하다면 다소의 희생은 감수했다.

비슷하지만 그것은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분명 같은 것을 바라보는 둘이었지만, 그 방식에는 이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간극이 꽤 넓군.”

“예?”

“아무것도 아니다.”

조조에게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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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천하는 역사보다 더 가속하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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