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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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여포를 패퇴시키고 포박한 이상 전쟁은 모두 끝난 것. 장막은 죽었고 진궁은 우선 내가 보호하고 있었으며, 여포 역시 내가 포로로 만들었다.
남은 것은 연주성과 산양군, 그리고 진류 인근인데 이곳들도 저마다 구심점을 잃었으니 다시금 복속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그 전후처리.
“아저씨, 준비는 됐어요?”
“마음의 준비는 끝났지.”
이제 상대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조조였다. 복양 내 반란의 주축세력을 정리하고 여포를 포로로 붙잡은 전공이 있었지만, 반대로 그 공적만큼. 어쩌며 그 공적보다 큰 것을 그녀에게 요구해야만 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진궁도 여포도 전부 힘들어요. 아저씨가 마음먹은 것이니 더 말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원하는 걸 얻어낸다고 해도 내부 반발은 이보다 더 극심할 거고요.”
“알고 있다.”
“여기서 노력한 것 전부를, 그 공적을 다 써도 모자랄 거에요. 조공에게 밉보일 수도 있어요. 소연 아가씨조차 찬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전부 알고 있었다.
물론 말을 잘 해보겠지만, 말만으로 부족한 것은 분명 존재하니까. 여포는 당연지사겠거니와, 진궁마저도 솔직한 말로 큰 가망이 없었다.
억지에 가까운 밀어붙임이 필요했다.
“아무리 아저씨가 진궁 선생을 포장한다고 해도, 그녀가 아무리 외부에서 직접 조조와 대적한 적이 없다고는 해도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실제로 복양 성내에선 진궁이 장막과 여포의 대리인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찬동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는 조공을 위해 힘썼다. 장막을 죽인 것도 진궁 본인이었고, 겉으로 그들을 돕는 척하며 뒤로는 내 작업에 같이 힘을 보태었다.
이렇게 말해도 의혹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진궁 선생이 그간 조조군에서 했던 일을 고려하고, 전후 사정을 잘 꿰어맞춘다면 살릴 수는 있으리라. 관직을 박탈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복직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쌓은 공적의 반절 이상은 진궁의 공적으로 위장하여야 했다. 그런다고 해도 의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여포는 그냥 죽이세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그리고 그 위험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도 적어요. 만약 정말로 살릴 수 있다 쳐도 결국 그녀가 가진 건 그 알량한 무력이 전부잖아요?”
알량하다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강한데.
물론 그만한 무력도 받쳐주는 병력이 있어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것. 데리고 있으면야 조조에게 강한 압박을 줄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득보다 실이 컸다.
“아저씨가 조조에게 밉보일 것도 각오하여 여포를 살린다 하더라도 그녀가 아저씨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도 맞았다.
물론 나도 내 입장이 있었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그저 배신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절한 것도 아닌, 미묘한 자세만으로 일관하여 그녀를 혹하게 만든 뒤에 치러진 배신.
사람의 감정을 기만한 행동.
설령 그녀를 살려둔다 하더라도 원망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원망하여 탓하는 게 순리겠지.
“그냥 죽이죠. 그러면 아저씨도 그 공적에 합당한 위치에 오를 것이고, 그러면 조조군 내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워져요.”
“그러기엔 내 사람이 모자라.”
“만들면 그만이잖아요.”
무슨 수로 그걸 뚝딱 만들까.
사마의는 여포를 죽임으로써 책 잡힐 일 없이 완고한 지위에 오르는 걸 추천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제일 위험부담 없으면서 깔끔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된다.
“아니, 살려야겠다. 나만을 지지할 사람? 그걸 조조라는 사람을 피해 쉬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그건 변명이에요.”
사마의는 살짝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단지 아저씨가 여포를 살리고자 하여 붙인 변명에 불과해요. 살려야만 하는 이유를 억지로 붙였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살려야만 하는 이유라.
어쩌면 마음이 동했을 수도 있었다. 사랑이라던가 애정 같은 풋풋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짓밟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진지하게 바라봐준 사람을 꺾어버렸다는 죄악감.
그런 이유에서일까.
아직도 축 늘어져 병사의 손에 끌려가는 여포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붙잡히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반항조차 하지 않고 그저 끌려가던 그녀의 뒷모습.
“그래, 네 말이 맞아.”
살려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기에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살릴 생각이 아니었다. 기존 방침대로면 진궁 선생을 살리고 최대한 죄를 덜어내면서, 장차 선생과 손을 잡고 조조와 반대되는 의견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키우고자 했다.
그러니까 이런 행동은 그 목적에서 다소 빙 돌아가는 행위였다. 솔직히 여포를 내 사람으로 만든다고 해도 큰 이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여포의 개인 무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녀의 평판은 좋지 않았으니까.
아비를 죽이고 동탁에게 가담한 여자.
정원과 여포가 무슨 관계였는지는 모르겠다. 동탁이 죽은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아비가 셋이었다는 대외적인 평가뿐.
“그래도 살리시려고요?”
“최대한 노력까지는 해보려고.”
그러니 사마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꼬마에게는 다소 미안한 감도 있었다. 곽가와 함께 복양에서 암약해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버린 것도 미안했다.
“어쩔 수 없죠.”
사마의는 그리 말하고 픽 웃었다.
“아저씨가 그렇게 원한다면 팔 걷어 도울게요. 하지만 전부 고려해도 정말 힘들 거에요.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다는 건 이해하고 계셔야 하고요.”
“조공을 설득하는 건 내가 맡는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대외적인 반란의 불씨, 그 악명을 전부 장막에게 넘긴다고 해도 연주로 침입해온 여포를 연주 사람들이 곱게 볼 리가 없잖아요?”
그건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여포의 살길은 스스로 예주목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 그렇게 제 영향력을 전부 잃은 여포는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동안 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일단 조조를 설득하세요.”
“알고 있어.”
그녀조차 설득하지 못하면 얘기가 진행되질 않는다. 진궁도 여포도 모두 조조를 설득해낸 뒤에나 꺼낼 수 있는 일이었다.
진궁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포는?
아마 내 전공의 전부를 써도 모자라리라. 그 부족한 부분은 내가 잡은 포로라는 점과 이곳이 복양성이라는 것으로, 포로의 처우권을 내가 이양받겠다는 억지로 밀어붙인다.
“어차피 조공이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꾼다는 게 하루이틀로 끝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어. 조금 돌아가도 문제는 없다.”
“어휴, 진짜.”
조조는 막 복양에 접어들었다.
“가자.”
뭘 하건 결국 그 열쇠는 조조였다.
만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었다. 마주하여 그녀를 꺾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바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
듣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해야만 하는 말도 있었다.
* * *
복양으로 입성한 조조를 나와 주변 관료들이 모여 마중했다. 조조는 그 인파를 보며 썩 흡족하게 웃다가, 이내 내 뒤에 서 있던 진궁을 보고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조조의 옆에는 소연 아씨가, 그리고 조운도 그 곁을 함께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반가움을 표할 시간은 없었다.
“조공, 승전을 진심으로 감축하옵니다!!”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말과 동시에 주변 복양의 관료 전부가 그녀에게 무릎을 꿇는다. 다시금 복양이 조조 휘하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고생했다. 고개를 들라.”
조조의 명이 떨어지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거의 넉 달 만에 마주하는 조조의 얼굴. 붉은 눈동자가 정확히 내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 밑으로는 살짝 거뭇해져 피곤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그러나 표정만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부상은 좀 어떠한가.”
“많이 나았습니다.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심려라니. 그대는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잘해주었다. 복양성을 재차 탈환하고 여포의 생포. 이번 연주 반란을 진압하는데 그대 이상의 공적을 가진 이도 드물겠지.”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표정은 좋지 못했다.
조조의 시선은 자꾸만 내 뒤편에 있는 진궁 선생을 향하고 있었다. 진궁 선생이 장막에게 가담했다는 건 이미 연주 내에서는 기정사실로 퍼진 소문이었으니까.
“본래라면 그대의 공적을 치하할 부분이나, 그 전에 할 말이 조금 있겠군. 우선 병사를 물리지. 그대는 잠시 본인을 따르라.”
“명, 받들겠습니다.”
조조는 그리 말하고는 관청으로 향했다. 진궁 선생은 끝까지 머리를 숙이고 있어 그 표정을 엿볼 수 없었다.
소연 아가씨와 운이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눌 말은 많았다. 그녀들과도 차분히 대화할 필요는 있었지만, 우선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는 조조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주변 호위도 전부 물리고 오로지 나와 단둘이서 길을 걸었다. 주변으로는 내전도 벌어졌던 차라 돌아다니는 백성도 몇 없었다.
“그대는 본인에게 할 말이 있겠지?”
“예, 있습니다.”
진궁과 여포의 건.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일이었다.
“듣지. 그대는 이번 복양 수복, 더 나아가 연주 수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다. 힘든 상황에서도 본인을 따라준 것이다.”
진궁에 대한 것부터 말할까.
그렇지만 이런 길가에서 할 말도 아니었다. 여포도 마찬가지로, 이런 길가에서 할 말들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조공이 하셨습니까?”
우리는 계속 길을 걷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흘렀다. 지독하게 내리깔린 침묵이 입안에 찝찝하게 남은 느낌. 분위기가 무거워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아니면 전부 내 착각일런가.
그녀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관청으로 향하는 발걸음만 재촉할 뿐. 어떠한 표정이나 자세의 변화도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그렇습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관청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았는데, 함께 걷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앞으로 있을 일,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주장해야 할 것들.
그런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이 정리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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