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68화 (168/343)

16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복양 공방전 진궁은 내 답변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다. 표정은 그저 안타까움과 슬픔뿐. 조금 심장이 옥죄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신가요.”

“예.”

저 멀리서 고함과 함성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뒤늦게 관청으로 밀려든 병력일까. 그렇지만 방삼이가 버티고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움직일 적 병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자.

“그건 조금, 네. 안타깝네요.”

안타까운 거로 끝날 표정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렇지만 그걸 전부 터놓기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모자랐다. 부족한 시간과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허리춤에 맸던 물건을 탁자에 올렸다.

둥그스름하게 포장된 천. 밑으로는 이미 핏물이 배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아까 죽였던 장막의 목을 그녀에게 보였다.

“이거, 누구 목인지 알겠습니까?”

“장막이겠지요.”

반란의 주동자는 여기에 있었다.

진궁 선생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몇 없었다. 그보다 더한 말을 꺼낸다고 해도 의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딸을 살려달라고요? 그걸 왜 남한테 부탁합니까. 정말 소중하다면, 살리고 싶다면 본인이 직접 나서세요.”

“…전호 당신, 설마.”

구태여 말로 꺼내는 것도 우스웠다.

진궁 선생을 여기서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내게 있어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다.

현 연주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야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 물론 이번 반란의 영향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조조군 내에서도 입지를 차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장막은 당신이 죽인 거야.”

“이러지 마세요.”

“시끄럽고.”

그 목에 손을 뻗어 그녀에게 굴렸다.

천천히 굴러가는 수급이 진궁에게 도착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피가 줄줄 흐르는 장막의 목. 눈도 채 감지 못하고 죽었기에 다소 혐오스러운 몰골이었다.

그렇지만 필요했다.

진궁을 살리려면 장막은 진궁이 직접 벤 것으로 위장해야 했다. 나머지는 나와 말을 맞춘 복양 호족들이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준다면.

그러면 목숨만은 살릴 수 있었다.

“도망치려 하지 마. 어차피 버린 목숨이라면 내게 써. 당신은 바깥에서 조조군을 바꾸려 들었다면, 나는 안에서부터 바꿔나갈 생각이니까.”

“대체 뭘 원하시는 거예요.”

이미 말한 것 같은데.

나는 조조군 내부에서 조조 본인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일굴 생각이었다. 새로운 파벌이라고 해도 좋을까. 현 조조군에서 조조의 의향을 무시하고 반대되는 의견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소연 아씨와 진궁.

그렇지만 진궁 혼자로는 역부족이었다. 소연 아씨는 조조의 방식에 찬동했다. 그러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 조조가 정말로 폭주한다면 그걸 제지할 사람은 대체 누가 남는가.

아무도 없었다.

“졌으면 책임을 져. 어차피 버린 목숨이라면 날 위해 써. 당신의 목숨은 내가 살릴 터이니, 당신은 여생 전부를 내게 바치라고.”

“진심이세요?”

“거짓말은 안 했어.”

찻잔을 쥐고 반절 정도 남은 차를 전부 들이켰다. 이제는 싸늘하게 식었지만, 그래도 목을 축이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쉽지 않을 건데요.”

“이미 복양 내 호족의 의견 대다수를 모았어. 게다가 당신, 외부로 활동한 적이 없잖아. 그거라면 어떻게든 말만 잘 맞추면 돼. 물론 관직을 잃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진궁의 진면목은 관직에 있는 게 아니었다. 연주 내에서의 영향력과 정치적인 위치. 그리고 그녀 자신의 두뇌가 그녀의 가치였다.

물론 이번 반란으로 그것도 어느 정도 깎여나가겠지만, 그래도 사람 손 하나가 부족한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 사태에 당신 영향이 없을 거 같아?”

“여기서 더 살아가라고요. 구차하게 목숨을 구해져, 무슨 낯짝으로 조공에게 얼굴을 비치면 될까요. 무슨 낯짝으로 당신의 옆에 서면 되나요?”

무슨 낯짝이라.

그런 체면을 신경 쓸 여유가 진궁 선생에게 남았던가? 우습지. 그러면 죽는 거로 모든 책임을 다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걸까.

전혀 아니지.

“그냥 웃고 있어. 당당하게. 당신은 장막에게 구금당해 억지로 그를 도왔지만, 결국 반역자 장막을 베어낸 사람이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죽는다고 해결될 일은 없었다. 그녀는 패배자로서, 그리고 반란을 도모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었다. 죽음은 그저 책임에서 회피할 뿐인 도피에 불과했다.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남겨질 사람이 있어.”

죽음은 도피처다.

그저 죽을 뿐이라면 얼마나 편할까.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저 깔끔하게 죄를 씻는다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가. 정작 그 뒤에 남은 여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는 마지막.

그런 마지막을 허락할 것 같은가.

“내가 당신에게 내리는 벌이야. 살아, 끝까지 살아. 마지막까지 살아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

“제게 짊어지라고요.”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조조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일. 알잖아? 그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닌 건. 분명 힘들고 괴롭겠지. 잘못하면 조조에게 숙청당할 수도 있어. 아슬아슬한 밧줄 타기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

이제 연주 내에서 다시 조조를 몰아내는 건 또 다른 피를 부른다. 게다가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지만 내부에서 조조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입지를 차지한다면?

나는 그걸 진궁이 도와줬으면 했다.

“진궁 선생님. 저는 정했습니다. 이 조조군을 한 번 안에서 바꿔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도 부탁드리건데, 제게 힘을 더해주십시오.”

“죽음은 도피라고, 그리 말씀하시나요?”

“예.”

죽는 거로 해결되는 건 조그마한 자기만족뿐이다. 진정한 의미로 책임을 진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죽음 이후에 있을 일들은 남겨진 이들에게 맡길 뿐.

그런 건 책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책임질 수 없으니까 선택하는 게 죽음이었다. 살길이 없으면 모를까, 살 방법이 있는데도 죽음을 택한다면 그거야말로 도피가 아닌가.

“살아주십시오. 살아서 저를 한 번 도와주세요.”

“그건 조공만이 아니에요. 진소연과도 척을 질 수 있다는 걸 알고 하는 일인가요? 이번 일이 정말 조공 혼자서 추진했다고 생각해요?”

아니겠지.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소연 아씨도 함께하지 않았으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진궁과 소연 아씨가 둘이서 반대했더라면 분명 조조도 이렇게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을 일.

“알고 있습니다.”

소연 아씨와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걷는 게 아니었다. 분명 나도 조조군의 승리를 위해 힘을 쓰겠지만, 그 방향성이 다를 뿐.

지금까지와 다를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지금도 서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건 똑같았다. 단지 그것이 표면 위로 올라오는 것.

“아시겠습니까. 장막은 당신이 죽인 겁니다. 이 남자를 죽이고 복양 수복을 도운 건 당신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직 여포가 살아있어요.”

여포가 한 번 패했다고 해도 전 병력을 잃은 건 아닐 터였다. 분명 퇴각하여 복양으로 돌아와 수성 준비에 들어가겠지.

“여포는 제가 잡겠습니다.”

“정말로 그 길을 택하시렵니까.”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사마의는 마지막까지 왜 그런 길을 구태여 고르냐고 반발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정한 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이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조조는 분명 유능한 인물이었다. 결단력도 있었고 과감함도 있었다. 병사를 잘 다룰 줄도 알았고, 내정에서의 역할 또한 궤를 달리한 인물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밑을 살필 줄 몰랐다.

그녀는 앞밖에 볼 줄 모르는 여자였다. 그저 한결같이 앞만을 보고 달리고, 그걸 위해서는 밑에서 누가 밟히던 신경 쓰지 않고 나아갈 여자.

그러니까 내가 그 억제력이 되겠다.

“가능하리라 생각하세요?”

“해보려고요. 진궁 선생님도 그걸 도와주시죠.”

가능할지 의심만 해서는 끝도 없었다.

전쟁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너무 잦아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동반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이 점차 빈번하게 벌어진다면 또 어떠할까.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전개여야 했다.

“그러니까 선생도 책임을 다하세요.”

이제 물러설 길도 없었다.

적어도 조조에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그 조조가 함부로 묵살할 수 없는 권위를 손에 넣어야 했다.

“…만약 싫다고 하면요?”

“그래도 살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적당히 놓친 것으로 할 테니, 어디로든 떠나시죠. 그때는 잡지 않겠습니다.”

그간 신세도 많이 졌다.

고마운 것도 많았고 미안한 것도 많았다. 비록 갈라지게 되더라도, 그녀 하나 눈감아 주는 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 있을 일, 그리고 그녀의 미래에 대해. 솔직히 많은 것을 정리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직 모자란 것도 많았고,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소연 아씨는 이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차후 그녀를 만나면 이 모든 걸 그녀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랬을 때, 그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 구박을 당할까, 아니면 좋은 생각이라고 인정받을까.

어떤 반응이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상관없진 않겠지. 아마 부정당한다면 조금 슬플 거고, 그녀에게 실망도 할 거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는 건 알았다.

권력에는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꼭 필요하다고 믿었으니까. 조조가 살피지 못한 것은 내가 살피면서, 그녀가 만약 과하다 싶으면 제지하고 서로 조율하면서.

그런 관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더는 누군가에게 선택을 미루지 않겠다. 책임에서 도망쳐, 그저 타인이 정한 대로만 움직이는 방관자의 자세는 취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여포, 그 사람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회군했을 때, 관청에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사로잡아야죠. 안 그래도 패배한 군대이니, 우두머리가 잡힌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남은 것은 여포 단 하나.

지금까지는 전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현 복양은 아군이 점거한 상태로, 관청까지 전부 제압한 것에 이어 진궁까지 밑으로 들였다.

단지 여포가.

그 애절하던 눈빛만이 계속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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