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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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의 맞상대였던가. 이제는 연주 내에서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자주 부딪쳤던 두 군이 이번에는 전력을 다한 총력전에 임하고 있었다.
여포나 조조 모두 생각했다.
이 전투가 아마 마지막. 여기서 승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연주와 예주를 차지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승자는 반드시 본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여포군의 선봉은 당연히 여포였다.
조조군은 오히려 서둘러 도착한 것이 비해 수비적으로 진을 물리고 있었다. 오로지 우익 방면으로 기병 전력을 배치한 상태로 모든 전력을 중앙밀집으로 두껍게 자리시켰다.
그렇게 복양에서 세기의 대치가 벌어질 때.
복양에서도 한창 물밑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당신을 믿어도 될까?”
“믿기 싫으면 믿지 말든가. 나도 사실 너 같은 건방진 꼬맹이는 별로 안 좋아해. 알아? 난 그냥 술 한 잔 마시면서 느긋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 많은 사람은 사기꾼이라던데.”
현위의 관사에서 벗어난 사마의가 곽가와 만났다. 어차피 모든 게 결정될 최종국면. 이미 움직이기로 정한 이상 구태여 갇혀있을 필요도 없었다.
사마의는 고까운 눈으로 곽가를 쳐다봤다.
여전히 의심은 들었다.
조조를 돕는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설령 저것이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조조나 진소연이 아닌 전호를 따르는 사마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곽가라는 인물은 변수 중 하나였다.
변수는 적을수록 좋았다.
여차하면 이 자리에서 다른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두 세력이 양패구상으로 흘러간다 싶으면 아예 전호를 제3세력으로, 이윽고 연주 전체를 차지하게 만들 계획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 두 세력이 양패구상으로 접어든다면.
그때는 곽가를 죽여서라도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야 할까 하고. 사마의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곽가라는 여자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복양 호족의 반절 가까이는 포섭 끝났어. 이제 남은 건 그 오빠야가 어떻게 움직이냐인데.”
“우리 아저씨 자꾸 그렇게 부르지 마.”
“싫은데?”
얄밉다.
살면서 사마의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짜증은 나지만, 지금 당장은 이만한 조력자도 드물기에 이를 꽉 깨물었다.
“후우…. 우선 복양에 남은 대부분은 기존 연주군과 몇 안 되는 진류의 군사. 이 정도면 기존 방위군만 제대로 가담시킨다면 탈취는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그 숫자가 적었다.
만약 여포가 승리한다면 재차 복양을 탈환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여포가 떠났기에 비로소 한때의 우위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외부 전쟁이 판가름나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우선은 여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과감히 복양 물밑작업을. 그리고 복양 바깥의 전세를 보고 나서 움직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었다.
“그러네. 만약 조조가 지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난 아저씨랑 그냥 복양을 떠나던가, 아니면 차라리 여포 밑에서 조금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이 꼬맹이는 진짜 절조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네?”
절조라.
애당초 충성을 맹세한 대상은 없었다. 사마의는 그냥 가문을 빠져나오기 위한 구실로 진소연과 전호를 이용했을 뿐.
그 과정에서 전호라는 남자에게 나름 매력을 느꼈기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조조군 따위는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도 뭐 그렇기는 하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줬는데 정작 조조가 마무리를 못 짓는다면 나도 여기 머물 이유는 없겠지.”
곽가가 생각하기에도 이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복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났다. 나머지는 조조의 손에 달린 일이었고, 만약 여포에게 패한다면 더는 조조군을 위해 움직여줄 필요도 없었다.
이건 어쩌면 영천 순가에 받은 은혜를 갚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리고 이 이상 조조군과 순가를 도울 이유도 없는 것.
“오빠야는 안 만나도 되겠어?”
“지금 만나면 좀 부끄러우니까.”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지금 만나면 기분이 풀어질 것만 같았다. 그 남자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따스한 모닥불과도 같았으니까. 내면의 독기와 냉기를 천천히. 조금씩이지만 느긋하게 녹여버리는 작은 모닥불.
“흐응, 뭐 그래?”
그는 이미 호족과 회담을 열었다.
기존에 지지를 보낸 호족부터 미묘한 중립 위치에 머물던 이들까지. 지금 당장 화합을 이끌 수는 없어도, 만약 조조가 이긴다면 그때는 호응을 부탁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모든 게 끝날 터였다.
이 과정에서 진궁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곽가는 진궁을 알고 있었다. 머리가 명석하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지 못한다. 내정에는 적합하지만, 반대로 군을 움직이는 일에서는 그 미묘한 자비심이 항상 발목을 잡을 여자.
그런 사람이 이런 내부적인 갈등에 적합할까?
진궁은 분명 뛰어난 여자였다. 그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 재능을 특유의 여린 심성이 조금 깎아 먹는 느낌이었다.
한때는 나름 존경도 했던 인물.
“여기서 전부 끝이려나.”
누가 이기던 어차피 진궁은 오래 살기는 글렀다. 만약 여포가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여포와 장막은 마지막에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장막은 여포에 대해 안일한 생각을 품은 듯싶었지만, 곽가가 보기에 저것은 그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떠돌이 맹수였다.
조조가 승리하면 당연히 죽는다.
하지만 여포가 승리한다 하더라도 진궁은 오래 살기 힘들 터. 그건 분명 진궁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왜 이런 멍청한 짓을 꾸몄을까.
“얘, 꼬마야. 진궁이 뭐라고 한 적 없니?”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을 거 같아요?”
덕분에 이런 개고생을 치렀다.
물론 사마의는 진궁에게 감사하는 바도 있었다. 여기서 만약 여포가 이기든 조조가 이기든 전호가 높은 자리로 올라갈 토대가 마련되었다.
만약 조조가 이긴다면 복양에서 내전을 벌인다.
그러면 차후에도 연주 내의 지지권을 지킨 공신으로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반대로 여포가 이긴다면 우선 지지기반이 약한 여포를 지지하며 그 밑에서 몸을 키운다.
설령 양패구상이라고 하면?
더 좋았다.
그러면 사실상 남은 적수라고는 장막 정도였는데, 그 남자가 전호를 이길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려지지 않는 것.
“너,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요즘 들은 게 있거든? 헛수작 부리면 그 오빠야한테 다 이른다.”
“쯧.”
사마의는 혀를 찼지만, 그와 반대로 멋대로 하라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정세는 흐르고 있었다. 설령 그 본인이 싫어도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다.
복양의 사람들은 뭐가 좋다고 조조를 지지하겠나.
그들이 믿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전호 본인이었다. 사마의도 계속 복양에서 일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고, 조조 본인도 연주에서 좋은 평판은 아니었기에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본인도 복양 수성을 성공리에 수행했으니까.
모든 건 이미 흘러가고 있었다. 이 흐름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 설령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강물을 막을 수 있던가?
“아무튼, 당신도 당신 일에나 충실해.”
“이 천재께서 이딴 일에 실패할 거 같아?”
“당신이 천재인 건 중요하지 않아.”
아무리 내부적으로 몰린 진궁이라 하더라도 진궁은 진궁. 이 모든 계획과 과정은 내부에서 덜미를 잡히면 끝장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절정에 달한다면 그때는 어떤 상황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전호가 도달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우습기도 했다.
단지 조조군의 밑에만 있었으면 평범한 무장으로 남았을 그에게 내부의 반란은 오히려 기회로 다가왔다.
세상일은 이래서 재미있었다.
* * *
복양의 호족들은 전부 내응에 수긍했다.
물론 전제를 붙이기는 했다. 외부에서 조조가 승리한다면, 그때는 내게 호응해주겠다는 결론인데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지도자가 누가 되었건 그들은 자신의 가문과 재산을 지키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만약 외부에서 조조가 여포에게 승리한다면, 그때는 내게 편승해 조조에게 눈도장을 찍는 게 더 나았다.
만약 조조가 패한다면?
그때는 가만히만 있어도 문제없었다.
결국에 모든 게 정해지는 건 조조와 여포의 전투였다. 아마 아가씨나 운이도 그 전장에서 무기를 잡고 전장에 서겠지.
“대장, 몸은 좀 괜찮나?”
내부 감시의 눈이 허술해진 틈에 방삼이도 오랜만에 내게 얼굴을 비쳤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얼굴이지만, 지금 기분이 기분인지라 마냥 반갑지만도 않았다.
“조금은 나아졌다.”
“다행이구만.”
놈과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도 얼마 만인가.
그러나 그 반가움이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남정네 둘이서 오랜만에 같은 길을 걸을 뿐. 놈은 보지 않은 사이에 조금 수척해진 느낌도 들었다.
“힘들었냐.”
“고생은 조금. 그래도 대장만큼 힘들었을까.”
나도 힘들 건 없었는데.
그리 답하고 싶었지만, 가슴 내면에서 먹먹하게 막힌 느낌이 들어 도무지 말로 꺼낼 수 없었다. 겉으로나마 괜찮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웠으니까.
내부의 사정, 앞으로 있을 일.
그 모든 게 내게는 정신적인 부담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 앞으로 내가 선택하게 될 일은 더더욱 큰 짐으로 다가오겠지.
“방삼아.”
“듣고 있수다.”
놈은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구태여 나도 시선을 마주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 내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단지 말만 주고받았다.
“너한테 소연 아씨는 뭐냐?”
“대장이 따르는 사람. 능력은 좋은 사람.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사람.”
그렇겠지.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그 매력과는 별개로 자꾸 겉도는 느낌이 있었다. 생각하는 것이나 방향성도 일반적인 사람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기도 했다.
아마 나는 그녀와 계속 같이 있을 거다.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품었고, 그 이전에 그녀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인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에게 받은 무모한 가치관도 나름 마음에 들었으니까.
하지만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이나 사고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근래 그녀의 행보는 과정보다는 목표만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결과에 자기 자신을 잡아먹힌 느낌.
어쩌면 원래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결과만을 중시한다면 결국 그 과정에서 있을 모든 고통은 거절할 힘도 없는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게 된다.
그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던가.
“방삼아.”
“왜 부르쇼.”
“너는 내가 뭘 하던 따를 거냐?”
놈은 그 질문에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끙끙거리더니, 이내 픽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애당초 난 대장만 보고 따라왔어.”
“…그러면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건 무서웠다.
한때 내가 소연 아씨에게 바쳤던 것이었다. 그저 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녀의 말이니까 무의식적으로 믿고 의존했다.
그녀의 선택이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겁한 짓이었다.
소연 아씨에게 모든 선택과 그 책임감을 짊어지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일이 그르치면 그 사람을 탓할 수만도 없게 되었다.
아가씨는 아마 조조의 서주 공략에 찬동했으리라.
그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녀를 지지하고 믿으면서 모든 걸 수긍했는데, 이제야 그 행동을 비난한다고? 그건 비겁한 짓이었다.
“너는 앞으로도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힐난해.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정말 옳은 행동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라. 순종하지 말고 순응하지 마라.”
맹목적인 믿음은 믿는 본인과 그 대상 모두를 망친다. 지금까지 나는 줄곧 소연 아씨에게 모든 선택지를 떠넘겼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지금까지의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설령 조숭의 죽음에 소연 아씨가 눈 감은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걸 힐난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나도 선택하겠다.
조조도 소연 아씨도 결과와 큰 그림을 위해 과격한 판단을 내릴 사람들이라는 건 깨달았다. 그녀는 조조의 조정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조조의 결정에 찬동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 조조를 억제할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소연 아씨가 그리해주기를 바랐지만, 그걸 그냥 그녀에게 전부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장,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연주는 조조의 것이 아니었다.
설령 주인이 조조라고 할지라도, 그 내부에는 수많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었다. 구성원이 있는 이상 온전히 조조 개인의 뜻만으로 움직여서는 안 됐다.
소연 아씨 또한 조조와 비슷한 부류라면, 정작 조조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면 억제할 수 있는 건 대체 누구인가.
누가 타인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녀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제지할 수 있을까. 소연 아씨로는 안 된다는 건 이번 사건으로 깨달았다.
생각하자.
더 나은 방법을, 더 좋은 수단을.
이제 믿고 지켜보기만 하는 방관자의 역할은 포기했다. 지금처럼 단지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이 가슴에서 응어리져 꿈틀거리는 감정이 분명 썩어 문드러질 테니까.
“대장?”
“……가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조조가 이긴다면 분명 그 사람도 곤궁에 처할 터. 그게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앞으로 내게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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