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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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복양에서도 움직여야만 할 때. 알고는 있었다. 단지 조금 망설이는 이유는 아마 여포 개인에게 든 조금의 죄책감이나 회한.
그리고 조조 개인에게 대한 의문이겠지.
물론 여기까지 발을 들인 이상에 조조군을 버린다는 선택은 불가능했다. 애당초 조조 하나를 보고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적어도 소연 아가씨는 여전히 조조를 밀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조숭은 결코 그렇게 죽을 리가 없다는 걸.
구태여 말을 흐리며 아무에게도 확언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아가씨에게 기절 당해 마차에 옮겨졌을 조숭이 검에 베여 사망? 그건 마차 자체를 잡혔다는 소리일 건데, 그랬으면 소연 아가씨나 내가 살아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모두가 의아하게 여길 때, 나 홀로 확신에 가까운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건, 아마 이 일이 소연 아씨도 깊게 관여되어 있을 거라는 부분.
과연 조조를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제 아비를 죽인 거야 뭐, 솔직히 현 사상으로는 용납할 수 없겠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명문이나 높으신 고관의 자식들.
특히 학문을 제대로 배운 이들이나 효를 중시한다 어쩐다 하는 것이지, 실제로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부모고 자식이고 제 목숨이 먼저였으니까.
단지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하기 힘든 부분은, 결국 조숭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기점으로 또 전쟁을 벌였다는 것.
물론 조조를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런 그녀를 막기 위한 억제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적어도 무언가, 조조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난 그것이 소연 아씨가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무엇인가.
아가씨는 아마 이 일에 동조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조숭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도 없었고, 소연 아씨도 그리 순순히 조조를 따라 서주로 떠날 리가 없었다.
“오빠야, 뭐하나?”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복양은 현재 대규모 전쟁을 대비해 한창 북적거리는 상황이었다. 항상 관사에 들르던 여포도 발길을 끊을 정도로 복양 전체가 전시체제를 갖추고 있는 상황.
여기서 여포의 주력부대가 출병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기회였다.
어차피 조조와는 같은 배를 탔다. 여기서 내가 여포나 장막을 지지한다고 해도 연주에 또 하나 불씨를 세게 지피는 일.
결국에 전쟁은 끊이지 않을 터였다.
지배자가 바뀐다는 건, 단순히 직함이 바뀌는 일로는 끝나지 않았다. 아마 조조가 패한다고 하더라도 그 전후처리나 잔당 세력의 토벌, 그리고 주변에서의 도발 등으로 재차 전쟁의 화마가 번진다.
그러니 지금은 조조를 지지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생각해야만 했다.
조조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작은 것은 버릴 수 있는 여자였다. 그 작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더라도, 그것보다 큰 이득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내칠 수 있는 군웅.
소연 아씨는 그런 조조에게 동조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그림인가.
생각해라. 계속 생각하고 고뇌해야만 했다. 시간은 부족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된 생각과 방향을 정해두어야 했다.
“왜 그리 표정이 진지해?”
“그냥. 아직 시간도 좀 있을 테니까.”
눈을 감았다.
아가씨와 처음 만났던 것이 언제였던가.
분명 아직 병주에 눈발이 흩날리던 계절이었다. 그 척박하고 거친 인간밖에 존재하지 않는 땅에 유일하게 내려온 선녀라도 보는 인상이었다.
첫인상은 분명 그랬었다.
물론 그 환상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지만, 그래도 나는 분명 아가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간 부정해왔던 것을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아마, 아니 분명 아가씨를 사랑했다.
분명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마찬가지로 같은 목표를 위해 그 뒤를 따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만약, 정말 만약이지마는.
그게 사실은 같은 곳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면? 그저 한자리에 모여 같은 것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일 뿐이지,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오빠야, 생각하는 건 좋은데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 하거든? 그 사마의? 그 꼬맹이도 슬슬 움직이겠다고 했으니까.”
“그러냐.”
곽가는 유폐되었던 사마의를 찾아 개별적으로 연락망을 구축했다고 들었다. 그 꼬맹이가 그런 일을 해뒀으리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물론 그 상세는 별개로 지금 상황에서는 굉장히 도움되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곽가 혼자서 구축한 연결고리로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으니까.
순간 여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살포시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던 그 표정. 살짝 들뜬 얼굴과 상기된 뺨. 붉은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리했던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눈에 밟히고 있었다.
나아가야 했다.
동정심으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어차피 길은 단 하나뿐.
“가자.”
이제 우리도 움직일 시간이었다.
* * *
군을 정렬시킨다.
간단한 행위지만 그 단순한 행동을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하던가. 지금 조조를 따르는 군은 전부 각고의 노력 끝에 키워낸 정예 중에서도 정예였다.
순간에 불과했지만, 여포와 장막. 그리고 그들이 주둔한 복양성을 고립무원의 형세로 몰아넣었다.
진소연.
그녀는 분명 예전부터 내부의 반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조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었고, 실제로 그 대비를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물론 너무 눈치가 빠르거나 머리가 좋은 부하는 언젠가 거슬려질 날이 오겠지만, 그건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원양, 준비는?”
“복양까지 남은 거리는 하루도 안 걸려.”
만전이었다.
이미 아군은 연주성의 포위를 풀고, 혹시 모를 추격에 대비해 연주성에서 복양성으로 넘어올 길목에 자리한 견성에 소수의 병력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이끌고 온 상태였다.
그런 대군이 움직이면서 하루도 안 걸린다는 것은 사실상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이 전쟁이 연주의 패권을 다툴 터.”
패배하지 않겠다.
고작 이런 곳에서 무너지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비록 서주를 공략하려던 시도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반대로 장막과 여포를 쳐낼 수 있다면 예주를 차지할 수 있었다.
“미리 병사들은 배불리 먹여두었어. 사기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예주의 군이 연주를 침략한 형태라서 전쟁에 대한 반발도 심하지 않아.”
“그러하겠지.”
이건 장막이 너무 급하게 나선 것이었다.
물론 서주로 떠나면서 연주 내 정예군은 전부 이끌고 나섰으니, 반란을 일으키고자 해도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주의 군사를 끌어들이는 것이 내부적인 반발에 봉착하지 않으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을까.
조조는 장막에 대해 회의를 금치 못했다.
그래도 옛정이 있어 원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살려두었더니, 무엇이 아쉽다고 제 그릇에 넘치는 짓을 선택했던가.
그리고 진궁.
그대는 왜 본인을 배신했는가.
조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막도 그렇지만, 특히 진궁은 그녀가 후하게 대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없을 때 연주 전역을 관할해주길 바랐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맡기었다.
어떤 의미로는 누구보다 신임하는 모사였다.
“본인도 참, 인망이 없군.”
“갑자기 무슨 소리냐?”
하후돈의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장막과 진궁. 모두가 본인과 함께 제법 오랜 기간을 보낸 이들이다. 특히 장막은 원양 그대도 알고 있을 터. 그런 이들이 손을 잡고 본인을 배신했는데, 회의감이 들어도 이상하지는 않겠지.”
내부 반발은 예상했지만, 설마 중신 둘이 손을 잡고 배신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장막도 장막이지만 특히 진궁의 반란은 무엇보다 큰 충격이었던 것.
지금에야 허탈하게나마 웃을 수 있었지, 정작 그 일을 접했을 당시에는 천하의 조조도 꿈이 아닐까 의심했었을 정도였다.
“어쩔 수 있나. 전쟁을 그리 많이 했는데. 진궁 선생, 딱 봐도 그런 거 좋아할 성격은 아니잖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사람 마음을 누가 그리 쉬이 이해하나.”
하후돈은 귀를 후비며 적당히 답했다.
그 말에 조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진궁이 배신까지 할 정도로 몰려있었다는 걸 몰랐는데, 진궁이라고 그런 본인의 마음을 이해할 턱이 없었다.
결국에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전호는 어떨까.
여전히 복양에 구금돼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궁과 전호. 둘 다 자신과는 다른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기에 그녀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랐던 이들이었다.
진궁은 결국 길을 달리 골랐다.
그렇다면 전호는 어떠할까.
“좋다. 이곳에 주둔하지.”
“너무 평야 아닌가?”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대군끼리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아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자잘한 전략으로 시간을 잡아먹을 수만은 없었다.
적도 다급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아군도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복양 포위도 점차 느슨해지고 진류도 수복될 터.
그 전에 승부를 내야 했다.
본인이 죽던, 여포가 죽던 한 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기병 전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여포군을 상대로 전장을 평야로 선택했다. 일대 평야를 놓고 대회전. 이제는 정말 뒤도 돌아볼 수 없는 한 번의 승부였다.
병력으로는 조조군이 유리했다.
그러나 여포가 이끄는 기병은 언제나 돌발적인 요소였고, 그것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병력의 우위를 점하고도 호각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진소연을 불러오도록.”
이 자리에서 여포를 끝장낸다.
구태여 여포가 선호할 전장을 고른 이상, 적어도 자리를 선점한 이점을 챙겨야만 했다.
그동안은 진소연과 조인에게 각각 삼천의 기병을 주고 좌익과 우익으로 편재. 그리고 중앙을 두껍게 구성하고 양 날개를 통해 적의 이음쇠를 끊는 포진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건 저번에 여포에게 한 번 파훼 된 바가 있는 전술. 여기서는 조금 더 다른 전략을 구상해야만 했다.
“소연 별가라면 지금쯤 기병을 준비하고 있을 건데, 왜? 뭐 다른 거라도 시킬 게 남았던가?”
“이번에 그녀는 보병을 이끌게 한다.”
그녀는 한 번이지만 보병 편재로 여포의 기병을 묶어둔 전적이 있었다. 물론 그것만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현 아군 지휘관 중에서 보병을 누구보다 잘 다루는 게 진소연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간의 전투는 그녀의 용병을 더욱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이제는 사실상 조조군 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지휘관이 된 그녀라면 능히 버텨는 줄 수 있을 터.
“진소연을 방패로 삼아 여포의 발을 묶고, 그때 아군 모든 장수를 총동원하여 여포를 공략하겠다.”
“그러면 나머지 지휘는?”
“여포의 기병만 막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병사를 움직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건 본인이 맡겠다.”
그러기엔 병력의 숫자가 너무 많지 않은가.
아무리 부관을 두고 지휘체계가 있다지만, 혼자서 수만에 달하는 병력을 홀로 지휘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던가.
그러나 하후돈은 구태여 딴지를 걸지 않았다.
“알겠다. 소연 별가를 불러오지.”
그는 조조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녀는 관직에 오르고 군을 이끌면서 언제나 모험적인 수단을 강구했다.
임기응변이라고 해도 좋을까.
어쩌면 단순한 생각이기도 했다.
여포가 가장 위협적인 군에서, 여포를 막을 수만 있다면 아군의 승리. 그렇다면 잠시 여포가 발이 묶인 사이에 아군 전 제장을 총동원하여 여포를 친다.
무식하다면 무식하지만, 정작 실전을 앞에 두고 지휘 편제를 맡아야 할 장수들을 그렇게 동원하는 지휘관이 어디에 있을까.
조조는 그런 황당무계한 판단을 내리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저 멀리, 곧 여포군이 몰려올 평야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연이었다.
낙양에서부터 지금까지.
“동탁의 밑에서부터 참으로 많이도 만났다. 참으로 고난한 길이었지. 여포 하나를 뚫지 못하여 동탁의 무도함을 관망할 수밖에 없던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난다.
적어도 조조는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전장은 그런 전장이었다. 과거부터 질질 끌어온 양 군주의 악연. 그리고 예주와 연주, 두 주의 패권을 겨룰 한 번의 회전.
“이번에야말로.”
천하무쌍을 잡는다.
그리하여 이 촌극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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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계속 쓰고 있으니까 3시 중으로 또 올라올 것 같아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자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