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62화 (162/343)

16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다른 생각 조조군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포군은 그 특유의 돌파력과 기동력으로 상대적 우위를 가져갔다.

사실상 전면전에서는 판정승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게 조조군 전체를 물리칠 정도는 아닌 것.

결국에 견성에서의 재차 전투도 양군 무승부로 끝났고, 여포군은 한 번 복양으로 물러났다. 조조군도 회군하여 견성으로 돌아가니 연주성만 죽을 노릇.

견성의 방비는 어지간한 수적 우위 없이는 뚫기 힘들 건데, 문제는 조조의 본대 역시 만만치 않은 숫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복양의 전력을 전부, 거기에 연주에서도 원군을 받아 양면으로 들이쳐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진궁은 그리 판단하면서도 섣불리 복양의 방비까지 빼지 못했다. 아직 내부적인 반발도 우려되었고, 무엇보다 전호라는 남자가 아직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실권을 빼앗았다 하더라도 그의 복양 성주로서의 입지는 여전했다. 그렇다고 그를 죽이자니 기존 복양의 관리층부터 시작해서 대대적인 반발이 예상되었고, 그녀 자신도 전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같은 이해를 공유할 수도 있었으니까.

“진궁 선생님.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장막이 다가오니 진궁은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이 같이 행동하고는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장막을 좋아하지 않았다.

타 세력까지 끌어들여 조조를 끌어내리려는 것에 대체 어떤 꿍꿍이가 있을지. 그런 건 구태여 보지 않아도 뻔했다.

만약 그가 조조가 조숭을 죽였다는 증좌만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에 가담할 생각은 추호도 없던 것.

조조는 선을 넘었다.

제 아비를 죽여가면서까지 전쟁을 원했다. 제 세력을 넓히고, 그리하여 야욕을 쟁취하기 위해서.

권력을 위해 전쟁을 거듭한다.

야욕을 위해 피를 흩뿌린다.

그런 사람이 연주를, 더 나아가 천하를 주름잡는 권신이 된다면 천하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조는 언제나 무언가를 버려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여자였다.

그런 사람이 장차 더 큰 일을 맡았을 때 버리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지금도 수만의 목숨은 우습게 흩뿌리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장차 나중에는.

진궁은 그것이 참을 수 없었다.

“아직은 기다려야죠. 연주 북부를 중심으로 조조는 잘 뭉쳐있어요. 복양까지야 어떻게든 점거했다지만, 그렇다고 조조군이 아예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진 않았어요.”

“아만은 원래 그런 부분에서 명석했지요.”

장막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예전부터 원소나 조조와 유소년기를 함께했다고 들었다. 그녀는 그런 장막이 왜 조조를 배반할 생각을 했는지, 그것이 유일한 의문이자 거슬리는 점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

“우선 견성을 함락하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군을 돌려 견성 일대를 포위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연주성과 복양 중앙에 자리했기 때문에, 그 퇴로만 차단할 수 있다면 압박은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그만한 병력이 없어요.”

아무래도 여포군을 끌어들인 것이기에 내부적인 반발과도 직면할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연주 내 조조의 평가가 좋지 않다고는 해도 아직 연주목은 조조였다.

장막과 주변 호족들이 그 권위를 부정한다 하더라도 아예 그 사실 자체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실제로 지방관이나 관료 중에서는 여전히 조조가 연주목이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고, 그렇기에 제북과 동평은 여전히 조조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견성을 각 방면으로 포위하려 들었다가는 오히려 각개격파로 군사력만 소진할 우려가 있었다.

조조군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도 여포군과 연주의 상황이 좋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저쪽이 반란으로 고전하고 있는 만큼, 장막 역시도 반란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아군은 구태여 서둘러 공세에 나설 이유가 없어요. 연주성도 견고한 성이니 쉬이 함락당하지 않을 것이고, 당장 아군은 복양을 중심으로 각 지방으로 군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조도 함부로 연주에 모든 걸 걸지 않았다. 오히려 복양을 탈환하려 움직일 뿐. 결국에 격전지는 복양이 될 터였다.

“전호, 그 남자는 언제까지 놔둘 겁니까?”

“그는 복양 내에서도 황건적을 물리친 것이나 내부적인 정책으로 평가가 좋았어요. 여포 장군도 그를 지지하고 있는 데다가 아직 복양 내 반발세력도 완전히 축출하지 못한 상황이잖아요.”

여기서 억지로 제거하려 들었다가는 기껏 안정시킨 복양의 판세가 이상하게 꼬일 우려가 있었다.

물론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런 사적인 감정을 전부 덜어내더라도 지금 당장 복양 성주를 죽이는 건 득이 될 것이 없었다.

“자칫 그를 중심으로 여론이 몰리면.”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장막은 얼핏 고개를 끄덕이기야 했지만, 그와 반대로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진궁이 전호와 나름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는 건 알고 있기에, 혹여나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그러면, 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할 일도 많을뿐더러, 무엇보다 장막과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진궁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쯧, 비싼 척하기는.”

한 번의 틈도 보이지를 않는가.

장막은 과거부터 진궁에게 호의를 표했다. 특히 남편이 죽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미망인인 데다가 한 미모 하면서 명석하기까지 한 여인.

탐이 났지만, 당최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에 겨우 설득하고 꼬드겨, 이렇게 같은 배를 타게 되면 틈을 줄 줄 알았는데. 장막은 그것이 유독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혀를 차자니 그의 부관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조조가 제 아비를 죽인 게 맞을까요?”

그 말에 장막이 픽 웃었다.

“나야 모르지.”

원래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그는 그것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정황상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던 데다가 살짝 운을 떠보니 진궁 역시도 그것을 의심하기에 그냥 좋은 방향으로 포장했을 뿐.

저런 머리 좋은 사람은 반대로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것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 그건 한때 원소나 조조도 마찬가지로 그러했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암귀는 끝도 없이 자신을 잡아먹는다. 거기에 그럴듯한 증거만 나온다면,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진 않지.”

그는 그런 부분을 잘 이용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연주 내에서도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주변의 인물평에서도 언제나 인자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지킬 수 있었다.

장막이라는 사람은 개인의 능력을 차치하더라도 그런 심리를 이용하여 타인의 환심을 사거나 부려 먹는 것을 특기로 하는 남자였다.

여포에게 서신을 보냄과 동시에 진궁을 만나, 그녀 역시 조조를 의심하고 있다고 확신하자마자 그는 바로 조숭의 죽음을 위증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었다.

나머지는 정황의 문제와 기세에 맡긴다.

다소 부실한 증거는 그 자리의 기세와 정황, 그리고 감성을 팔며 동조시킨다. 상대가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몰아치면서 신뢰 자체를 뒤흔들고 의심의 싹에 물을 뿌린다.

“이런 건 오히려 명석한 사람에게 잘 먹히는 법이다. 걱정할 것 없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의심하는 법을 몰랐고, 하물며 그런 의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사람은 조금만 부추겨줘도 금방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는 했다.

하물며 진궁처럼 자신만의 신념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면모가 강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진궁은 장막을 돕고 있기는 하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저 내부의 일을 처리하며 뒤에서 조용히 움직일 뿐.

그것은 죄책감일까.

어쩌면 그 불확실한 증거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불안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가 장막과 같은 배에 탔다는 것도 명백. 이제 진궁 역시 반란자의 멍에를 벗을 수 없었다.

이미 내릴 수 없는 배에 오른 셈.

“어차피 조조는 이제 끝이다.”

나머지는 여포를 어떻게 어르고 달래냐 뿐이었지만, 그것 역시도 생각한 바가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조조를 쳐내면 나머지는 장막과 틀어진 원소뿐.

동쪽의 도겸을 끌어들이고 여포를 전면에 내세워 원소를 견제한다. 그리하여 원소까지 쳐낸다면 장막이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죽여달라 부탁했다.

처음 장막이 그걸 알았을 때 얼마나 떨었던가. 조조가 몇 번인가 그 요청을 거절했다고 하지만, 그 여자는 필요하다면 장막을 쳐내서라도 원소의 시선을 돌릴 여자였다.

오랜 사귐이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시야를 반대로 놓고 보자면, 아직 원소는 공손찬을 잡지 못하여 백중지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조는 바깥으로 원정을 떠났고, 연주에서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조조에게 반감이 생긴 상황.

“여포에게 전령을 보내라.”

“다시 한 번 견성을 공략하시렵니까?”

장막이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만 쳐낼 수 있다면 그 뒤에는 여포를 어르고 달래며, 실질적인 연주의 통치권을 장악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우선 여포의 시선을 조조에게 돌리는 작업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조조는 되도록 빨리 쳐내는 게 맞았다.

그가 아는 조조는 만만찮은 여자였다.

이대로 시간을 준다면 무슨 기상천외한 수를 써 허점을 찔릴지도 모를 일.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잡기 위해서라도 여포를 조조에게 붙여야만 했다.

조조와 원소.

장막은 결국 원소의 뜻을 거슬렀을 때부터 필연적으로 그 두 사람과는 척을 질 수밖에 없었다.

“덧없구나, 덧없어.”

막역지우가 다 무슨 소용이랴.

인간의 인연은 덧없고, 언젠가는 헤어질 뿐. 그러하면 자신이 먼저 그 고리를 끊어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

이제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 * *

사마의는 내부에서 복양의 여론을 조작하고 있었다. 조금씩 정보를 흘리면서도 전호의 이름을 조금씩 퍼뜨리고, 이번 사태에 대해 장막을 비판하는 말을 천천히 퍼뜨렸다.

당장은 도움되지 않을 일.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한 수를 둘 때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이런 작은 골방에 유폐된 신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직 이런 것밖에 없기도 하니까.

“답답하네.”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작은 세계가 불편한 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골방은 어차피 가문에서부터 자주 겪은 일. 고작 이 정도로 불평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할 수 있는 게 적다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소녀를 옥죄는 사슬이었다.

지금이라도 움직일 수는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 골방에서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그렇지만 나간다고 딱히 달라질 것이 없었다.

구태여 진궁의 경각심을 끌어올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이야 그녀가 복양 내부의 조율이나 외정에서의 방향성 선정 등,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사마의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없었을 뿐.

만약 여기서 이상한 소동이라도 벌인다면 아마 복양은 지금 이상으로 경계가 삼엄해질 우려가 있었다.

정적으로 내리깔린 골방.

지금은 참는다.

이런 조그마한 방이라도 능히 복양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골방이라도 타인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다.

사마의가 그렇게 인내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였네.”

그간 들리지 않던 목소리.

곽가는 씩 웃으며 방문을 열고는 사마의를 바라보았다. 보라색 머리카락의 조그마한 소녀. 이런 소녀를 뭐 이리 삼엄하게 가둬두었을까.

“네가 사마의니?”

“누구야, 당신.”

“꼬마가 예의도 발라라.”

얼마나 예의가 바른지 한 대 쥐어박고 싶다며 곽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마의는 살짝 실눈을 뜨고 그녀의 모습을 관찰했다.

“당신이야?”

“뭐가?”

“지금 아저씨랑 같이 있는 사람.”

아저씨라.

누구를 말하는지 빤히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전호도 종종 사마의의 얘기를 꺼냈는데, 확실히 인상착의도 일치하면서 머리도 나름 잘 돌아가는 모습이 들은 대로의 꼬마였다.

“그럼 복양 좌 현위를 움직이면서 내부에서 수작질 부리던 건 꼬맹아, 네가 하던 일이니? 안 그래도 슬슬 만나야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날 찾았어.”

“그 꼬마 참, 말 진짜 짧네.”

어처구니가 없어서 픽 웃는 곽가. 그렇지만 사마의는 그런 그녀에게 지그시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다물었다.

한숨을 내쉰 곽가는 어깨를 으쓱였다.

“반쯤은 우연일까.”

전호의 부탁으로 병영과 그 인근 병력 이동을 계속 관찰하던 도중, 몇 병사가 기묘한 움직임을 취하기에 그걸 따라갔을 뿐이었다.

기존에는 현위의 관처였지만, 현 복양의 상황상 성내 치안은 전부 여포군이 맡고 있기에 쓸 일도 없는 관처. 그래서 기본적으로 비어있어야 정상일 곳에 자꾸만 드나드는 병사나 시종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몰래 잠입했다.

이게 당첨일 줄은 곽가 본인도 몰랐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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