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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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그냥 꽃밭이네, 꽃밭이야.”
“시끄럽다.”
매일같이 꽃을 보내오는데, 우선 여포가 보낸 것이라 함부로 버리기도 뭣하여 적당히 병에 꽂아두었던 것이 벌써 방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가득 차버렸다. 지금도 숨만 쉬어도 꽃향기가 나는데.
솔직히 좀 머리 아프다.
“일은 어떻게 됐어.”
“말 돌리기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병에 담겨있던 꽃 한 송이를 꺼내 코로 가져갔다. 킁킁거리면서 향기를 맡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어깨를 으쓱인다.
“우선 호족 하나, 그리고 기존 방위군의 백인 대장. 아무래도 움직임을 최소화하려니 빠르게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었어.”
“그거면 됐다.”
지금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대규모 반란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 중요한 순간에 여포의 목덜미를 노릴 비수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좀 신경 쓰이는 움직임이 있었어. 아무래도 복양 내에서 움직이는 세력이 또 있는 거 같은데, 그 꼬리를 못 잡겠단 말이지.”
“다른 세력?”
지금 당장 여포군과 조조군을 제외하고 이 땅에서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고? 그럴 리가. 다른 제후로부터 세작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구태여 나설 이유도 없었다.
“목적은 복양 내에서 저들끼리 세력을 모으는 것 같은데, 정작 그 방향성을 모르겠어. 모으는 이들도 전부 소속 불명의 중구난방이라.”
“우리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
곽가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아직 까보지도 않았으니까. 그들이나 우리나 아직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으니, 여차하면 우리의 화살 받기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실수하지 마라.”
“오빠야야 말로. 지금 상황 자체가 나쁘지 않으니까. 최근에 여포가 가끔 오빠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간다며? 잘 이용하라고. 알겠어?”
이용하라, 라.
어감이 좋지 않았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근래 여포는 매일같이 꽃을 보내는가 싶더니, 가끔은 내게 뭘 원하냐고 묻는 등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거 보고 지금 연주 내 관료들이나 호족들도 인식을 바꾸고 있어. 이대로 오빠야가 복양 내에서 주요 인물로 다시 군림한다면, 그때 자신들은 어떡할까. 무슨 느낌인지 알지?”
“무서울 만도 하겠네.”
어떻게 되었건 간에 우선 여포에게 붙었던 이들은 기존 성주였던 날 배신한 것과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비록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지만, 그들마저 그렇게 생각할 리는 없겠지.
그것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기왕이면 그것도 이용할 수 있을까?”
“오빠야는 내가 빙다리로 보여? 진즉에 살살 자극하고 있었지. 지금 동문 대장이나 복양 승도 조만간 협력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욕심은 내지 말고.”
여기서 일이 틀어지면 전부 끝이었다.
곽가가 내게 접근한 일부터 시작해서 여포가 내게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베풀기까지. 그런 요소요소가 맞물려서 겨우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궁 선생도 여포에게 대놓고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여포의 비호 아래 들어가, 거기서부터 움직일 수만 있다면 복양 내로 영향력을 넓히기 용이하다. 곽가와 나 둘 모두의 공통적인 이해였지만, 반대로 그 일에 이용당하는 여포는.
생각하지 말자.
“아무튼, 기왕이면 기존 복양 방위군 위주로 건드려봐. 기존 관청의 관리라면 모를까, 방위군은 견제를 받으면서 아예 갈기갈기 찢겼으니까, 그들의 불만을 잘 건드릴 수만 있다면 지지세력을 모으기는 더 쉬울 거야.”
“여차하면 그 군사력을 기반으로 움직일 수도 있겠네. 오빠야는 그럼 생각나는 사람 있나? 남문 대장은 아예 여포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바칠 사람이라 글렀어.”
생각나는 사람이라.
가장 먼저 방삼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만큼 견제도 많을 터. 미안하지만 방삼이는 이번 일에 끌어들일 수 없었다.
아니 잠깐만.
“복순이, 걔가 있었잖아.”
방삼이가 좋아 죽으려는 아이. 머리도 나름 우리 중에서는 잘 돌아가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직급이 낮아 진궁 선생의 감시망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기존 방위군 부사령관이었던 여자가 있다. 복순이라고, 진궁 선생이 따로 관리하는 게 아니라면 걔를 포섭하면 방삼이까지 자연적으로 연락이 닿을 수 있어.”
“아, 그 사람.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닌데.”
곽가는 그리 말하며 잠시 침음을 흘렸다.
“한 번 시도는 해볼게. 그런데 그 사람 지금 관청 경비하는 사령관으로 여포군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어서 조금 힘들 수도 있어.”
“시도만 해봐.”
복순이에게 연락만 닿는다면 방삼이에게도 자연적으로 우리 움직임을 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이상으로 영향력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셈.
물론 방삼이 자체도 대놓고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여차할 때 같이 호응해주는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그때 병사 하나가 정원으로 다가왔다.
여포군의 제식. 누가 보아도 여포군 소속이었을 그는 곽가에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여포 장군이 오고 있습니다.”
“응, 고생했어.”
그 말과 함께 다시 관사 경비로 돌아가는 병사.
“여포군도 포섭했냐?”
“기껏해야 주기적으로 오빠야 있는 관사 경비서는 사람 하나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정도면 어렵지 않지. 적당한 말솜씨와 이거.”
그녀는 그리 말하며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동그랗게 말았다. 돈이라, 물론 병사 한 명 정도라면 돈으로 후려쳐 포섭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무튼, 난 이제 가볼게.”
“고생하고.”
그 말에 곽가가 픽 웃었다.
“오빠야도 여포 잘 구워삶고.”
솔직히 마음에 드는 어투는 아니었다.
아니지, 어투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지금 상황, 그리고 거기에 놀아나 사람 하나를 가지고 놀아야 하는 내 처지가 아닐까.
* * *
복양 내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 관사 내로 자주 들락거리는 시종이 있다고 하기에 사람을 붙여놨는데, 어찌나 잘 따돌리는지 제대로 파악할 시간조차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마의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했어요.”
“예.”
시종으로 관청에 심어둔 사람이 물러나고 나서야 사마의는 침상에 드러누웠다. 회색으로 칠해진 천장. 기본적으로 그녀나 그녀의 사람, 그리고 가끔 진궁이 보내는 사람만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방문하지 않는 골방.
고요한 분위기.
사마의는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정적에 휩싸인 세계. 비록 바깥과는 단절된 세계였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얻을 수 있는 고요한 정적이 있었다.
“아저씨도 움직이고 있겠네.”
비록 그 상세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관사 내부를 자주 들락거리는 시종이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분명 전호도 움직이고 있다는 뜻.
자신이 없어도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점점 한 남자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해서 기쁘기도 한, 그런 애매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사마의가 포섭한 사람을 전부 동원하면 약 오백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작은 군사였지만, 무언가 해보려고 시도는 할 수 있는 숫자.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이 상황은 타개해야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 수 있을까.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세계. 본인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골방 안에서도 복양에 손길을 뻗을 수 있었다.
갇혀있다는 건 아무런 변명도 되지 않는다.
“일단 그 시종.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어디까지 손길을 뻗쳤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연결고리를 이어 협력체제로 만들고 싶은데.”
그 여자는 조심성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사람을 붙여도 꼬리조차 잡힐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마 사마의가 기존에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던 병사가 여포군으로 편입되어 관사 인근을 경비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어떻게든 이용할 방법은 없을까.
비록 이 골방이 답답하지 않더라도, 이 고요한 정적이 다소 마음에는 들더라도 그 이상으로 아저씨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그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돼.
그런 생각을 하며 사마의는 계속 머리를 굴렸다. 앞으로 여포는 몇 번인가 조조와 격돌할 터. 그 빈틈을 어떻게든 찌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먼지의 퀴퀴한 냄새.
천장 근처에 뚫린 조그마한 창에서 비추는 햇빛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는 회색의 세계에서 소녀는 홀로 고민했다.
* * *
조조군과의 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번지고 있었다.
복양성과 연주성 사이에 자리한 견성을 함락시키지 못했기에 복양과 연주의 연결고리가 끊겼다.
조조는 그곳을 기반으로 병력을 둘로 나누어 연주성의 뒤까지 잡아 포위하는 형태를 취하면서도 본대는 계속 복양성을 노리는 상황.
이에 장막까지 진류에서 본대를 이끌고 복양으로 합류했다. 연주나 복양, 어느 한쪽이라도 뚫리면 연주 전체의 판도가 재차 갈린다. 진궁과 장막의 공통된 의견이었지만, 정작 여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쯧, 빌어먹을 연주 놈들.”
연주 소속의 병사가 복양으로 들어오고 나서 예주에서 온 여포의 군과 연주의 병력끼리 갈등이 빚어졌다.
“누님이 참아야지.”
“장막 그 샌님이 요즘 대놓고 사람 무시하는 거 안 보이냐? 그 새끼, 뭔가 냄새가 난다고. 존나 역한 냄새.”
연주로 여포를 끌어들였던 것이 바로 장막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지지부진한가 싶으니 바로 자신도 군을 이끌고 와서는 기존에 굽실거리던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어, 마치 대등한 관계가 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전호도 이걸 말했던가.
물론 정면으로 붙으면 여포는 저런 비실거리는 놈들과 연주의 몇 안 되는 방위군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주 내 정예군은 전부 조조가 데리고 있었다. 연주에 남은 병사라고는 그저 구실만 할 수 있는 일반병에 불과한 것. 그런 이들이라면 여포가 기존부터 이끌던 병주의 강군과 비견될 리 없었다.
그렇지만 장막은 대놓고 싸우자는 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대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정치적인 부분으로 자기 사람을 늘려 가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그렇기에 여포도 움직이기 귀찮아졌다.
“이대로 있으면 우리 자리가 없지 않냐?”
“일단은 조조지. 그 뒤에도 저들이 저렇게 나온다면, 그땐 누님이 다시 한번 칼을 뽑아야겠지?”
“답답하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애초에 조조도 계속 견성 일대에서 복양성으로 국지적인 도발을 걸어오는 데다가 포위된 연주성에도 구원을 보내긴 해야 했다.
그러려면 견성을 함락시켜야 하는데, 그곳에 자리한 조조의 본대는 결코 단시간에 물리칠 수 있을 세력은 아니었다.
“아오, 머리 아파.”
여포가 머리를 벅벅 긁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병사 하나가 꽃다발을 들고 여포를 찾았다. 그는 장료가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여포에게 다가갔다.
“장군, 오늘치 꽃다발입니다만.”
그 말에 여포는 꽃다발을 쥐고는 손을 뒤적거리더니 이윽고 병사에게 다시 던지면서 혀를 찼다.
“여기 시든 거 있잖아. 그거 빼고 다시 구해와.”
“예, 장군!!”
그렇게 병사가 떠난 뒤.
“하여간 지극정성이야, 진짜.”
장료는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인 입으로는 그냥 뭐 진심이라느니 알 수 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만 지껄이는데, 정작 옆에서 보기엔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여인과도 같았다.
“그럴 거면 그냥? 어? 평소 성격대로 가서 너 내 거 해라, 뭐 이런 말이라도 하던가. 뭐 매일 꽃만 보내면 해결되나?”
“닥쳐, 그런 거 아니니까. 게다가 이건 진심을 보이는 거라고. 하기야, 네가 뭘 알겠냐. 불쌍한 놈.”
적어도 누님 머리보단 안 불쌍한데.
장료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천하의 말괄량이가 어쩌다가 이상하게 꽂혀서는. 게다가 하필 적에게 저리 푹 빠질 건 또 뭔가.
그가 보기에 전호는 아직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여포와 대면하여 검을 맞댄 적도 있는 데다가, 당장 본인의 거점인 복양성을 날름 빼앗기지 않았던가.
물론 아직 직함 자체는 복양 성주지만, 정작 그 실권은 전부 빼앗은 상태인데 이제야 저리 노력을 쏟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의 십 년 가까이 같이 지내면서 제 누이가 저렇게 충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적이 있었던가.
장료의 기억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거, 보낼 거면 꽃 말고 다른 것도 보내보던가.”
“응? 어떤 거? 좋은 거 있냐?”
바로 반색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어차피 지금 이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여포는 한 번 하겠다고 했으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런 누이의 표정을 보면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그저 빌 뿐이었다.
“보쇼. 내가 남자 좋아하는 거 좀 아니까.”
부디 이 관계가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기를. 적어도 제 누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죽여 그 피를 묻히는 미래만은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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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정에 있습니다. 이번에 이런 고퀄리티로 지도 제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00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