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57화 (157/343)

15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다른 생각 복양 관청의 깊숙한 지역.

“이렇게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사마의는 대놓고 진궁을 비웃으며 입을 가렸다. 가린다고 전부 가려진 것도 아닐뿐더러, 정적 웃는 소리는 방 전체에 울렸다. 그런 비웃음에도 진궁은 미간 한 번 꿈쩍하지 않으며 소녀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렇게 대놓고 배신해놓고 저는 또 왜 가두어 두신 거예요? 기왕이면 지금 아저씨한테 가고 싶은데.”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녀의 대답에 사마의가 픽 웃었다.

변명? 변명의 여지가 있던가. 애당초 복양성이 이렇게 쉬이 함락당한 건 전부 진궁의 이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사마의는 이런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존 조조의 집권, 그리고 진소연의 그늘에서 벗어난 전호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이래서는 새 구름이, 그것도 짙은 먹구름이 태양을 가릴 뿐. 사마의가 바라는 건 구름 한 점 끼지 않는 태양이었다.

여포의 휘하?

소녀에게 있어 그것은 논외였다.

“당분간은 여기 있어요. 생활은 챙겨드릴게요.”

“저랑 아저씨를 떨어뜨려 놓고 뭘 하시려고요?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아줌마가 자꾸 그렇게 뭐 꾸미는 거 정말 마음에 안 들거든요?”

진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직 전부 말하기엔 어려웠다. 그녀에게도 생각은 있었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이해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단지.

“푹 쉬어요.”

소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머리가 잘 돌아갔다. 그런 여아를 아직 불안정한 정세인 복양에서 설치게 두었다가는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사마의는 따로 감금한다.

진궁은 그 말만을 남기고 고개를 돌렸다.

“비열한 배신자.”

사마의의 말에 진궁은 오랜만에, 장막과 손을 잡은 뒤부터 다시는 지을 일 없으리라 생각하던 미소를 지었다.

“먼저 배신한 사람이 있어서요.”

자신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소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우선 복양 내 전호의 수족을 추출하는 것부터, 길게는 연주 내 아직 여포에게 굴복하지 않은 세력의 정리까지.

그렇게 진궁은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사마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혀를 차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기존 사마의가 복양 관청과 성내에 흩뿌려둔 조직 체제는 기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런 곳에 갇혀버리면 그것도 전부 무력해지는 것.

물론 무리를 한다면 바깥으로 연락할 수단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복양성 전체가 여포군의 손아귀에 넘어간 이상 내부공작을 하더라도 한계가 분명했다.

게다가 또 하나.

“아저씨도 챙겨야 하는데.”

아직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인데.

이렇게 심리적으로 몰리면 몸에 안 좋다는 걸 생각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어린 소녀인 사마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복양 내부의 보고체계를 조금 어지럽히는 정도일까.

“지금 빠져나가면 아저씨한테도 폐를 끼쳐.”

사마의는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어둠이 내리깔린 실내. 먼지의 퀴퀴한 냄새와 고요한 정적 속에서 사마의는 계속 고민했다. 조조와 진소연과 갈라서는 것은 환영이지만, 이런 방식은 싫었다.

조금 더 최선의 방식은 무엇일까.

지금 이 상황을 역전할 방법. 묘수.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면, 그러면 아직 기존 복양 방위군의 조종간을 되찾아와 복양성 내부를 뒤흔들 수가 있었다.

바깥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침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엄지손톱을 씹으며 계속 고민했다. 이런 골방에 갇히더라도 상황을 움직일 방법은 분명 있다고 믿으면서.

* * *

빌어먹을 목발.

이걸 짚고 움직이려니 영 답답했다. 물론 이 가슴의 답답함은 그것 때문만이지는 않겠지만, 사실 거의 모든 일에 근질거리는 짜증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관청 내부로 행동 범위를 제한당한 이후로 연주 내 전황이 어떻게 흐르는지, 하다못해 복양성 내의 분위기가 어떤지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 좀 움직이고! 빨리 나아야지.”

여포.

이 여자는 복양을 포함해 예주와 연주 절반의 주인이 되었는데도 하루가 멀다고 관사에 들락거렸다. 그만한 영토의 주인인 데다가 당장 조조와 아가씨가 회군하면 그 처리도 맡아야 할 사람이 뭐 이리 자유분방인가.

“할 일이 없으십니까?”

며칠이 지나면서 얼추 여포의 취급도 익숙해졌다.

그녀는 내가 예의를 차리고 딱딱하게 대하는 걸 싫어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접하라면서 으름장을 놓았고, 실제로 이렇게 말하면 여포는 오히려 픽 웃었다.

“그런 건 샌님들이 알아서 하면 돼.”

“그러다가 연주 내에서 힘을 빼앗기실 건데?”

마지막으로 들었던 정보가 진류태수 장막과 여포가 손을 잡았다는 것. 그러니 연주 내에서는 장막이 주도하여 움직이고 있을 건데, 그를 제어하지 못하면 여포는 연주를 눈뜨고 장막에게 내주는 꼴이 아닐까.

그 말에 여포가 코웃음을 쳤다.

“대체 누가 이 여포에게서? 너 농담도 잘하네.”

“장막이라는 사람, 머리는 제법 잘 돌아간다고 들었는데.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연주에서 힘만 빼고 아무것도 못 가져갈 수도 있는데.”

장막은 여포 입장에서 견제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렇게 서로 견제하면서 내분이라도 일으켜준다면 바깥에서 움직일 아가씨나 조조도 조금은 편해지겠지.

하지만 여포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샌님이 나를, 이 여포를 꺾을 수 있겠냐? 그래도 이 비실이, 누님 걱정도 해주네? 아이고 기특해라.”

그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걱정하는 말로 들렸을까. 난 그냥 서로 견제하면서 내분이라도 일어나 둘 모두가 서로 배때기에 칼 쑤셔 박고 콱 죽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하여간 넌 걱정하지 말고 몸이나 회복해. 그러면 내가 진짜 무가 뭔지 가르쳐줄 테니까. 그러면 좀 얻어맞고 다니진 않겠지?”

“저야 모르죠.”

장막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내분은 없겠네.

여포는 제 실력과 강함을 신뢰했기에 장막을 의심하지 않는다. 설령 배신하더라도 단번에 쳐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둘 사이에 있을 당연한 갈등을 막고 있었다.

어이가 없지.

이건 서로를 신뢰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의미로 동맹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당장 장막이 여포를 견제하겠다고 이상한 수를 쓰지 않는 한, 이 둘의 공고한 동맹은 깨질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 그건 어디 갔냐?”

“그거요?”

그러니 여포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 그 뭐냐. 그 있잖아. 그 군청색 머리, 네 동생 아니었나? 은색 창 들고, 막 시발 나한테 애비 셋이라고 까불던 거.”

조운을 말하는 건가.

“그건 왜 묻습니까.”

“아니 그냥. 혹시라도 싸우다가 죽이면 좀 그러잖아? 그래서 그냥 아래 애들한테 말해서 만약 전쟁에서 만나면 살려두라고 언질이라도 둘까 싶어서.”

여포치고는 조금 작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만큼 여포는 내게 환심을 사려 들었다.

이용할 수 있을까.

순간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타인의 진심을 이용해서 어떻게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까. 이 여자를 잘 꼬드기면 아가씨가 조금 더 움직이기 쉽지 않을까 하는 그런 역겨운 발상.

“아마 아가씨를 따르고 있을 건데.”

“아가씨?”

소연 아씨,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시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지금쯤 무슨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따라 유독 아가씨나 운이가 보고 싶었다.

운이도 분명 연주로 돌아와 전쟁에 나설 건데, 그러면 어디 다치지는 말아야 할 건데. 그 계집애는 가끔 제 몸을 돌보지 않는 버릇이 있으니까.

아가씨도 운이도.

전부 그냥 보고 싶었다.

“흐응…, 뭐 됐어.”

잠시 침묵이 흐르니 여포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 싶었지만, 정작 여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나 없는 동안 밥 잘 챙겨 먹어. 알겠냐?”

“…전쟁입니까?”

그 말에 여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가 복양성을 비울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을 구태여 성에 방치할 이유도 없는 것이니, 그런 그녀가 성을 나선다면 당연히 전쟁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상대는.

“조조 그 땅꼬마 년이 넘어왔으니까.”

그러면 분명 아가씨나 운이도 같이 넘어왔겠지.

필연적인 일이었지만 조바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나도 원래라면 아가씨의 곁에 있어야 할 것을, 이런 목발 따위나 짚고 여포에게 붙잡혀 있는 신세라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넌 누구 응원할 거냐?”

당연한 걸 묻지 마라.

그렇지만 그걸 있는 그대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그냥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연한 걸 물었나.”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픽 웃었다.

“몸조리, 잘해라.”

“…예.”

여포는 그리 말하고는 관사 정원에서 떠났다. 앞으로 저 괴물이 아가씨와 운이를 상대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다치거나, 혹여 죽기라도 하면 어떡할까.

그런 걱정이 계속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도 운이도 전부 강하다. 괜찮을 거야.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 조바심이, 묘한 분노와 짜증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뭐 하고 있냐…, 나는.”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많았다. 진궁 선생은 왜 배신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당장 바깥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마의는 어디로 끌려갔는지.

그러나 이 전부 지금의 내게는 해결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몸도 성치 않은 데다가 여포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현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살면서 이만큼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관사에 감금되어 여포나 장료, 몇몇 시종을 제외하고는 아예 외부와의 연결이 단절된 공간.

어떤 의미로는 또 다른 세계였다.

분명 같은 세계에 있음에도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 모든 것과 단절되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 새장 속 까마귀.

어이가 없지.

어디서부터 망가졌을까.

“거기 오빠야?”

다시 생각해도 뭘 잘못했는지, 어디서부터 실수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진궁 선생도 그렇고, 모든 게 꼬여버린 느낌이었다.

“아니 오빠야, 내 말 듣고 있나?”

그 단절된 공간.

아무도 없어 분명 정적뿐이었을 건데, 뒤편에서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관사 시종이 입는 복장을 한 소녀가 한 명.

“누구냐?”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머무는 관사의 시종은 전부 여포의 손에 의해 본 적 없는 사람으로 갈렸지만, 그 뒤로 보름이나 지났는데 이런 아이는 본 적도 없었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이네?”

“누구냐고 물었다.”

시종들은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침묵만을 유지하며 그저 시중을 들 뿐. 그렇기에 여포나 장료를 제외한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질 않았다.

“나? 음, 뭐라고 할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인 소개로 취업하려고 왔더니 직장 자체가 망해버려서 곤란한 소녀? 그래서 지금 백수가 된 상태거든.”

그리 말하며 한 발짝 다가온다.

“그런데 잘 보니까 여기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참 우스워서 말이야, 차라리 원래 다니려던 직장이 더 낫겠다 싶더라니까?”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씩 웃으며 내 가슴팍을 검지로 쿡 찔렀다. 고개를 들면서 올려다보는 시선.

“그러니까 오빠야, 나 좀 취직하게 도와줄래?”

“취직? 미안한데 말이 복양 성주지 사실상 뒷방 늙은이 신세거든. 누군지는 몰라도 취직할 장소를 잘못 고른 거 같은데.”

누가 봐도 여포군에 속한 시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지는 몰라도, 임관하고 싶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다. 지금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 그저 여포가 살려두었기에 연명할 뿐인 목숨이었다.

“내가 도와줄게. 오빠야가 다시 성주가 되고, 조조가 다시 연주를 차지하면 내 직장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 아닌가?”

“그 전에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직이다.”

“질문? 아아, 내가 누구냐고?”

적어도 관청 내에 이렇게 잠입한 사람이라면 그만한 실력은 있다는 거겠지. 그렇지만 당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속내를 보일 수는 없었다.

그게 조조군에 관련된 거라면 더더욱.

“순욱 선생님이랑 소연 별가가 조조한테 추천했다고 들었는데…. 하기야, 오빠야는 아직 모를 수 있겠네.”

그녀는 그리 말하며 키득거렸다.

“성은 곽 씨요 이름은 가, 자는 봉효. 그리하여 술을 조금 많이 좋아하는 천재에 미인 참모, 곽가 봉효. 오빠야도 잘 기억하라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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