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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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내려오는 낭야국과 청주 일대에서 혹시 모를 지원군에 대비하기 위함인데, 개인적으로는 서주 일대에 아직 제갈 가문이 있다면 그들에 대한 포섭도 진행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동해군 일대의 진을 뚫기에는 오천의 병사는 모자란 감이 있었다. 적으로 침공한 것이 아니라면 노려볼 법은 했으나 당장 제갈 가문만을 생각하고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아깝네.”
“뭐가요?”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소연의 말에 조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제갈 가문에 희대의 기재가 있으니 그것이 아쉽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소연은 손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아군 분위기는 어때?”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연이은 전투라 지친 감은 있지만, 명분도 아군에게 있는지라 과한 불만은 없는 편이에요.”
“다행이네.”
이래서 명분이 중요했다.
타인에게 정당성을 증명할 합리적인 이유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아군에게도 명확한 전쟁의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무의미한 전투가 아님을 확인시켜줄 수 있었다.
“동해나 낭야 인근에 모인 군은?”
“아직 제대로 모이지 않아서 확인되지는 않았어요. 곳곳에서 군사가 움직이고는 있다는데 명확한 구심점이 파악되질 않아서, 그 부분이 곤란하네요.”
“잘됐네.”
오히려 뭉치지 않은 군이라면 상대하기 쉬웠다.
한 번에 싸우기보다는 아직 뭉치지 않은 군을 부수는 것이 나았다. 한곳으로 뭉친다면 아군에게도 제법 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
아군은 병력을 온존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5천. 게다가 서주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병력을 수급하기 시작하면 원정을 나왔기에 서주군에 비해 물자와 군사력의 조달에서 차이를 보일 것은 명백.
“우선 군이 모일만한 곳은?”
“현 아군의 진군 방향에는 부양현과 난릉현. 둘 모두가 군사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어요. 하비까지는 저희가 신경 쓸 수 없는 위치라 하더라도, 우선 이 두 현은 반드시 잡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은데요?”
“어차피 동해군으로 넘어가는 길이네.”
나쁘지 않았다.
그리 정해졌으면 바로 실행하기로 했다. 군의 운용은 신속에 기반을 두고, 이번 서주 공략전은 더더욱이 그 신속에 끝을 보아야만 하는 전투였다.
“전군에 명령 하달해. 어차피 오늘 중으로 부양현에 도착할 거니까, 도착하는 즉시 바로 공격할 거야.”
“그건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요? 도착하면 해가 떨어질 무렵인데, 한 번 야영하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기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소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병사 수적 차이는 명백했다.
문제는 이 수적 우위는 어디까지나 겨울을 틈타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왔기에 가능한 우위였다. 서주에 시간을 주면 줄수록 그 차이는 점점 좁혀질 것이고, 그것이 일정 이상이 된 순간 오히려 역전될 찰나의 우위.
조숭의 사건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바로 공세에 들어갔기에 가능했던 우위. 상대가 태세를 갖추기 전에 반드시 무너뜨려야만 했다.
“지금은 공격해야만 해.”
“알겠습니다.”
조운은 별도로 토를 달지 않았다.
사실 그 시간에 싸움을 건다는 건, 오히려 싸우는 도중 해가 떨어지면 전장에 혼선을 주는 경우가 생기고는 했다.
“대신 주의하셔야 해요. 부양현이야 조그마한 성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난릉현은 제법 높은 성벽을 쌓아 올린 곳이에요.”
아군은 마땅한 공성 병기가 없었다.
그걸 지적하는 조운의 말에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찰나의 순간을 이용한 기동전. 그것이 막히면 바로 군을 나누어 동해군 인근에 압박을 넣는 방식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남은 기간은 약 석 달.
소패성을 떨어뜨리고 그 인근 현을 전부 제압한 것은 좋았지만, 아직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산재해있었다.
* * *
소패 일대를 정리한 조조군은 팽성국으로 진군, 일주일에 걸쳐 팽성 경계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진군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팽성국의 본성. 현 서주성의 방비가 생각보다 두터웠다. 그것을 포위하는 한편 하비성과의 연계를 끊기 위해 군을 배치한 것은 좋으나, 정작 팽성국 서주성의 방비가 예상외로 너무 두터웠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보급이 또 습격당했다.”
“허어, 이쯤 되니 어이가 없군.”
서주 내부의 반발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하다못해 민간인들이 무리를 짓고 민병이 되는가 하면, 아예 명가나 지방관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군사적으로 움직이며 계속 조조군의 후방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번만 벌써 다섯 번째다.”
“아군도 최대한 경계를 서며 방비는 하고 있다만 문제가 있어. 맹덕, 너도 황건적이랑 싸웠던 건 기억하고 있지?”
어떻게 잊을까.
그 당시의 전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의 문제점 또한 너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
민병의 문제점이 그것이었다.
무장만 풀면 백성이고 무장하면 민간인이었다.
구분할 수 없는 이상 아무리 방비를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그저 병력을 많이 배치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비인데, 정작 이렇게 군을 길게 늘어뜨리자니 당장 서주성의 공략에도 애를 먹고 있는 상황.
여기서 서주성 방면의 군사를 더 차출하여 후방으로 돌리자니 하비성에서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문제가 생겼다.
“주요 습격지는?”
“특정하기도 어려워. 당장 아군이 점령했던 소패 인근에서부터 시작해서 전 지역에서 군사적인 행동이 이뤄지고 있으니까.”
애초에 소패 지역 자체는 예주의 지역이었다.
원래라면 여포 측에서도 도겸과 서주가 무단으로 점거한 소패 인근 지역에 대한 항의를, 혹은 이번 원정에서도 그와 관련된 발언을 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포도 예주를 점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장 내부를 다스리기에도 벅차하는 상황.
물론 그녀는 여포군이 당장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주로 떠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런 예주 국경과도 연관된 부분에서는 골치 아플 따름이었다.
“서주성 포위에서 군을 차출할 수는 없다. 진소연도 현재 동해군 일대를 압박하면서 적이 뭉치려는 움직임을 억제하는 상황. 조홍은 뭐라고 하던가?”
“열 받아 죽으려고 하지.”
당장 연주에서 서주로 이어지는 보급선과 창고를 관리하던 것이 조홍이었다. 그런데 이리 빈번히 민간의 습격에 당해 피해를 본다면 당연히 그녀에게도 책임이 생길 터.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조조도 알고 있기에 책임을 물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조홍 그녀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최대한 병사끼리 단합하여 행동하도록 지시할 수밖에는 없겠지. 당장 본대 쪽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팽성국 일대의 장악에도 애를 먹고 있는 상황.
알고는 있었지만 서주는 만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전란을 피해왔기에 다른 지역보다 더더욱 이런 군사적인 행동에 반감을 품었으며, 무엇보다 서주민이라는 자부심 또한 남다른 지역.
온전히 차지할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조홍에게 이르도록. 여차하면 인근 지역의 주민 전부를 내쫓아버려도 좋으니, 어떻게든 보급선만은 사수해야 한다.”
“맹덕, 그렇지만 그건.”
이제 새해가 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한겨울이었다. 게다가 그간 겨울치고 따듯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천하는 겨울 한복판에 있는 것.
이런 와중에 거주지를 잃고 떠돌게 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노릇. 물론 조조라고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군에게는 시간이 없다. 게다가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여도 예주에는 여포가, 형주에는 유표가 버티고 있으며 현재 장안의 정세도 혼란스럽다.”
사실상 아군은 본진을 버려두고 서주를 향해 전부 내건 셈이었다. 적인지 민간인인지 구분 가지 않는 이들을 위해 낭비할 시간은 추호도 없다.
그것이 조조의 판단이었다.
“민간인에 섞여 아군 보급선을 괴롭힌다? 그러면 민간인 자체를 전부 이주시켜버리면 되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면 그 일대에 존재하는 이들은 전부 적이겠지. 그 뒤에는 그들을 전부 주살하면 그만이다.”
“그건 너무 위험하다. 애초에….”
이주시킨다 하더라도 반발하여 주저앉는 백성도 분명히 나올 터. 하후돈은 그걸 조조에게 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빛을 보고는 그 말을 꾹 삼켰다.
생각해보면 그보다 명석한 조조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표정이 하후돈의 말문을 막았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그마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기질적인 표정. 감정이라고는 터럭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그 얼굴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아군은 이미 한 번 이주하라는 전언을 남겼다. 그러고도 남아있다면 적으로 인지되어도 불만은 없겠지.”
“……조홍에게 전해두지.”
할 말은 많았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인에게도 파발을 보내도록. 하비성 일대의 적을 견주고 있을 시간도 부족하다. 차라리 선제공격을 통해 하비 일대의 저항력을 마비시키도록. 방식은 맡긴다고 전하라.”
하후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조조는 이내 고개를 돌려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로 시선을 향했다.
서주 일대 북방은 진소연이 이끄는 오천의 병력이 틀어막는다. 아마 공손찬이 손길을 뻗친 청주 일대에 도겸이 지원군을 청했겠지만, 그 군이 몰려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터.
이제 보급선을 안정시키며, 차리리 하비를 경계하기보다는 아예 찍어누를 수만 있다면 서주성 공략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3개월.
아무리 길게 보아도 올해 봄까지가 한계였다.
그 전에 서주성을 반드시 함락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아군의 물자 부족도 부족이거니와, 기본적으로 연주보다 인구수나 생산력이 우월한 서주의 반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때는.
“아니지, 이건 진소연과 약속했던가.”
차라리 서주 전토를 한 번 휩쓸어 그 생산력을 마비시킨다. 온전히 차지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모든 통치수단을 부수고 생산력을 마비시켜 서주라는 거인의 기상을 막는다.
그 발상은 아직 생각할 시기가 아니었지만, 만약에 이번 서주 공방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주는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차라리 짓밟는 것이 나았다.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연주의 조조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 작정하고 준비하기 시작한다면 서주의 생산력을 연주만으로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
“지금은 아직.”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실패한다면 그때는 선택해야만 했다. 과연 무엇이 더 올바른 선택이고, 그것을 과연 진소연에게, 또 그 남자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본인도 약해졌는가.”
벌써 패배를 고민하는 것은 과거 조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목표만을 보고 정한 것은 대뜸 실현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이었다.
가진 것이 많아지면 고민도 늘어나는가.
과거 가진 것이라고는 알량한 관직, 그것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쥐어졌으며 언제 빼앗겨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많은 것을 가졌다.
그렇게 하나씩, 무언가를 가지면 망설임이 늘어나고 겁을 먹게 되는가. 그것은 그녀에게 썩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생각해야만 했다.
더욱 올바른 방법, 설령 외도라 불릴지언정 모든 걸 차지할 방법을. 성공한다면 최선이지만, 만약 차선을 골라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어찌 될런가.
그리고 과연 이 생각대로 실행한다면 진소연과 전호는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럴 일은 없어야 했지만,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주 전역의 지배권을 말살하려면 우선 백성의 근간을 파괴한다. 그러면서 각 현이나 군의 치소를 부수어 통치할 수단을 잃게 하면 그만이지.”
문제는 그럴 경우, 당연히 생산력을 마비시키기 위해 백성의 근간인 농토를 전부 파괴해야만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거주공간도 완전히 부수어 서주 일대를 떠도는 부랑민으로 만든다.
그러면 한동안 서주 내적인 통치는 그들의 수용이나 부서진 통솔기구의 재건 등으로 재기 같은 것은 꿈도 못 꿀 터.
분명 그들은 반대할 터였다.
진소연은 물론이고 부상으로 이 자리에 없는 전호 또한 이 전략에 반대할 것은 마찬가지. 그렇기에 그녀는 계속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해가 떨어졌다.
아직 서주의 전쟁을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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