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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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담담한 어투로 그리 말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서주에서 연주로 오기까지 입은 부상이라고는 내가 배 한 대 때린 것. 그게 전부였다.
적어도 칼에 베일 일은 결코 없었다.
“조공.”
사람을 전부 물린 연주성 관청에서 조조와 단둘이 마주했다. 그녀는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무표정을 고수하며 이쪽을 내려다볼 뿐.
“무언가 석연찮다는 표정이군.”
“석연찮아요? 고작 그런 말로 전부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런 싸구려 단어로 전부 표현 가능할 정도로 제가 단순하지는 않아요.”
그런 가벼운 말로 전부 대변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기는 고작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기묘했다.
가슴의 뜨거움과는 반대로 머리가 차게 식었다.
“왜 그러셨어요.”
“무얼 묻느냐고 하면 화를 낼 텐가.”
당연했다.
적어도 설명은 해주는 게 맞았다.
조숭 하나를 살리겠다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데. 그 빌어먹을 재산에 목숨을 걸라던 꼬장꼬장한 노인네라도 역사의 한 갈래에 있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정말 필사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호도 크게 다쳤다.
“대답해주시지요.”
“그대는 원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조는 오히려 동문서답에 가까운 질문을 건넸다. 말을 돌리려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 표정이 워낙 진지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원소 말입니까.”
“그렇다. 지금 북방에서 한창 고전하고 있을 내 옛 친우. 한나라의 역적이기도 한 그 남자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이다.”
그녀는 대놓고 원소를 역적이라 칭했다.
미래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 유협을 핍박하던 조조가 그리 말하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당장 원소가 역적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원소뿐일까.
사실 천하 대다수 군벌이 역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미 한 황실의 제어에서 벗어나 스스로 군을 키우고 있는 그들이 역적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렇다면 원소 개인은?
“그는 결국에는 하북을 차지할 거라고 봐요. 공손찬에게 다소 고전은 하더라도 패하지 않을 테니까. 공손찬이 아무리 잘 싸우는 군이라 하더라도, 이미 원소는 하북 대다수의 지지를 끌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역사에서도 결국 승자는 원소였다.
공손찬은 분명 강하다.
그렇지만 그는 정치적인 행보를 경시했다. 가까이로는 기존의 기득권을 배척했으며, 멀리 보면 주변과의 우호를 경시했다. 그간 하북의 절대 강호로 군림했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인 감각이 죽어버린 것.
원소와는 정반대인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정치계에서 괴물로 성장한 원소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근차근 기반을 닦으며 주변을 포섭해, 자신의 본래 힘 이상의 권력을 쥔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대도 그리 생각하는가. 본인도 그렇다. 공손찬은 분명 강한 장군이지만, 안타깝게도 지배자가 될 그릇은 아니지. 그는 분명 원소에게 패할 것이다.”
“그것이 이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 말에 조조가 픽 웃었다.
“정말 모르겠는가?”
그녀는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겠냐면서 이쪽을 골리는 듯한 미소. 개인적으로 저런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정말 싫었다.
예상이 가는 것은 있었다.
서주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
당장 아군이 선제공격을 당했다고 해서, 정말 말 그대로 서주 자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군을 몰고 갈 명분은 부족했다. 당장 연주도 반발을 누그러뜨린 것이지 완전히 조조의 휘하에 들였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
그런 상황에서 명분도 없이 서주를 공격하겠다고 하면 내부에서도 반발이 생길 것이니, 아마 조숭의 죽음을 명분으로 삼아 진격하려 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희생했어요.”
솔직히 조숭을 죽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살린 목숨인데.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 때문에 불필요한 피해를 보았지만, 그래도 서주에서 있을 대학살을 막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기까지 갔던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을 희생하면서.
전호도 그리 다쳐가면서.
군의의 말에 의하면 전호는 죽다 살아났다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그랬다. 자칫 조금이라도 창이 잘못 꽂혔더라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지체했더라면 정말 죽었을 거라고.
“그렇게 전쟁을 바라십니까?”
이가 빠드득 갈렸다.
그렇게 땅을 원했는가. 어차피 원래 역사에서도 실패할 원정이었다. 오히려 이 전쟁을 빌미로 조조는 한 차례 내전을 겪어야만 했다.
그 내전의 당사자가 바로 예주에 기거하고 있는 상황. 아직 연주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데도 서주를 집어삼킬 욕심을 부리는 건가.
“이대로 서주 전토를 불태우실 생각인가요? 친족을 제 손으로 죽이고, 그것을 명분 삼아 진격하여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그렇게 전부 죽이고 죽여, 마지막에는 그 위에 왕좌라도 세우실 생각인가요?”
용납할 수 없었다.
적어도 학살만은 인정할 수 없었다.
조조의 주홍글씨? 차후에도 계속 조조에게 따라갈 악명? 그런 하찮은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그와 약속했다. 적어도 이 천하에 올바름을 따르겠다고, 이 세상에 평화라는 것을 가져다주겠다고.
그런 약속을 했었다.
“반대하는가?”
조조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붉은 눈동자. 무기질적으로 빛나는 그 눈동자는 오롯이 내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 여자도 정말 인간이 맞을까.
“반대로 묻지. 현 아군이 원소와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갑작스러운 주제의 전환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는 빠르게 현재 원소와 싸우는 아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원소는 아군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공손찬과 대치하고 있으니까요. 저희가 공손찬에게 협력하기만 해도 원소는 단숨에 무너질 세력입니다.”
“그렇겠지. 그러면 반대로 또 묻지. 아군이 원소를 고꾸라뜨리면 천하는 우리의 손에 들어오겠는가?”
그건 불가능했다.
원소를 쓰러뜨린다면 그 뒤는 공손찬이었다.
당장 주변으로 유표, 원술, 도겸 등이 공손찬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걸 원소와의 싸움으로 피폐해진 아군이 이길 수 있을까. 당장 공손찬 하나만 해도 지금의 아군은 이길 수 없을 것인데.
“원소와 저희는 다릅니다. 하북의 인사들도 원소에게는 따랐지만, 그를 배신한 저희에게 지지를 보낼 리도 없어요. 원소를 이기더라도 그 뒤에 다가올 공손찬과의 전투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본인도 그리 생각한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현재 아군은 절대적으로 원소를 지지해야만 한다. 역시 그대는 영특하군.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에게 말라 죽으라는 소리를 하는가?”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는 주먹을 쥐고 팔걸이를 세게 내리치며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화에서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
이 순간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황제를 옹립하기 전까지 조조는 계속 원소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대도 우리가 연주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모르지는 않겠지. 그 모든 것이 빌어먹을 원소가 허락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현재 아군은 원소의 부하에 불과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온 천하가, 그리고 원소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원소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했고, 멈추라고 하면 멈춰야만 했다.
“우리는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하는 동안 몸집을 불려야 한다. 그를 방패막이 삼아 이 중원을 차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원소를 상대할 수 있는 것. 애당초 이걸 본인에게 말한 것은 바로 그대였다.”
물론 그랬었다.
시간에 촉박하여 조조를 다그쳤었다.
지금 원소가 공손찬에게 발이 묶인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누구보다 빠르게 연주를 차지하며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닦달한 건 바로 나였다.
그렇지만 서주는 안 됐다.
원래 역사에서도 실패했다. 게다가 조조가 서주 공략에 실패하면서 그 지방을 아예 초토화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던가.
“그러나 지금 서주는.”
“뭐, 잠시 듣도록.”
조조는 내 말을 끊고는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아군은 원소의 부하라는 자세를 취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족쇄에도 묶이지 않을 훌륭한 명분이 생겼다.”
분명 평소였다면 원소가 제지했을 터였다.
그는 비록 조조를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섣부르게 움직이며 세력을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명분이 생겼다. 이런 명분을 가지고도 멈추라고? 그러면 다음에는 대체 얼마나 큰 명분이 생겨야 움직일 수 있는가?”
조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에 서주군의 공격으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명분이 생겼다. 그런데도 아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음에 움직일 때는 분명 그런 말이 돌 터였다.
아비가 죽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더니 왜?
그렇게 되면 끝이었다.
억지로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그 단계까지 간다면 분명 원소가 참견하고 나설 수 있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이 조조의 논리였다.
“그대는 내게 물었지. 전쟁을 바라느냐고.”
“예.”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는 어느새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인정하지. 본인은 전쟁을 바란다. 더욱 전쟁을, 더 많은 전쟁을. 아예 이 천하 전체를 말려들게 할 정도로 큰 대전을 바라고 있다.”
웃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점점 더 그 목소리를 키워가더니 이윽고 아예 깔깔거리면서 평소 모습과 어울리지도 않게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녀는 계속 미친 것처럼 웃어댔다.
“끄흐, 크흐흐. 그대가 생각하기에 이 천하는 어떤가? 서로 제가 강하다면서 힘을 모으고 있는 이 꼬락서니가 제대로 된 모습이라 생각하는가?”
조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현 천하에는 강자가 너무나도 많다. 이래서는 안 되지. 안 되는 것이야. 천하에 강자가 많으면 피를 보는 것은 언제나 약자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전쟁을 선택하겠다는 것인가.
그 강자들을 전부 고꾸라뜨리고 자신이 강자가 되겠다고. 유일한 강자가 생긴다면 천하에 다시 안정이 찾아오리라 믿는다고?
우스웠다.
그러나 반박하기도 힘든 일.
“강자를 이기기 위한 전쟁을. 그들을 전부 발아래 깔아 이 혼잡한 천하에 종지부를 찍겠다. 그것에 불만이 있는가?”
애초부터 그럴 목적으로 조조에게 가담했다.
단지 이번에 서주 공격을 막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 하나는 결국 서주 원정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인데, 내부에서 반란을 억제할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
“대신 한 가지. 서주에서 무의미한 민간인의 학살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만약 그것을 지키지 못하시겠다고 하신다면, 저는 죽어도 반대할 거예요.”
“그런 것을 걱정했는가?”
조조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약조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연주 내 반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주 공격에 부정적으로 반응할 이유는 없었다.
원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영토를 넓힐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황제가 낙양에서 탈출하기까지 아직 몇 년이 걸리는 시점.
여포가 예주에 있는 것은 불안요소였지만, 그쪽은 그쪽대로 예주의 지배권을 굳히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듣자 하니 힘으로 찍어누르는 공포정치를 실현하고 있다던가.
“그러면 그대도 서주 공격에 동의하는가?”
“반드시 약속해주세요. 무의미한 인명 피해는 보지 않겠다고. 그것만 확언해주신다면 저는 찬성이에요.”
“약조하지.”
그러면 됐다.
서주 대학살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연주에서 반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주를 공략하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하면 이번 일은 오히려 조조에게 있어서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게 얘기는 정리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묻는 게 아직이었던가.
“그러면 어르신은 이것을 위해 죽이신 겁니까.”
명분만을 위해서라면 조금 약하겠지만, 구태여 조숭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물론 뒷말은 나오겠지만, 제아무리 원소라도 가족을 호송하는 도중에 일방적으로 공격당했다고 하는데 그걸 말리지는 않을 것인데.
“아, 그것 말인가?”
조조는 앞서가며 돌아보지 않았다.
“그건 그냥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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