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용납할 수 없었다 한참을 달렸다.
전호는 한동안 계속 통일성 없는 주제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소리에 힘이 빠지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숨을 쉬는 느낌은 들었다.
등 언저리에서 따듯한 입김이 느껴져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목소리가 점점 옅어지고,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점점 그의 몸이 기울어 우선 말을 멈추었다.
뒤에 추격자는 붙지 않았다. 그것은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말을 멈추고 본 그의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배 뒤편에 꽂힌 창.
짧은 단창 하나가 그의 뒤에 꽂혀있었다.
전호의 몸이 앞으로 기울 때, 그때 꽂힌 것일까. 그 창을 제외하고서라도 화살 몇 대가 꽂혀있는 게 보였다. 분명 괜찮다고 웃었으면서.
“거짓말쟁이.”
분명 화살에 안 맞았으니 괜찮다고 했으면서.
다행이도 끄트머리에 박혔기에 주요 장기는 피했을 것 같았지만, 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했기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에도 곤란했다.
무엇보다 이대로 말에 싣고 달릴 수는 없는 것.
마차의 문을 열고 보니 조숭은 아직 혼절한 상태였다. 배를 세게 때렸으니 정신을 차리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터. 하여 그의 몸을 최대한 엎드린 자세로 태우고는 다시 움직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창을 뽑지도 않았는데 흐르는 피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비록 의학을 익힌 바가 없었지만, 그런데도 그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아마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지금은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우선은 연주로.
거기까지 도착한다면 응급처치라도 가능했다.
* * *
조조는 소연의 보고를 들으며 저 멀리 들것에 실려 가는 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군을 움직이며 군의를 대동했기에 어느 정도의 응급처치는 가능하겠으나, 그건 말 그대로 응급처치에 불과했다.
당장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상. 여기서 응급처치가 끝나면 가까운 복양성으로 호송해야만 했다.
거기서부터는 군의의 영역.
조조는 우선 그가 실려 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 후, 자신의 앞에 선 소연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말을 꺼냈다.
“고생하였다.”
소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조조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하면서도 시선 한편으로 전호의 모습을 계속 쫓았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그가 앞으로 고꾸라져 제 등에 몸을 기대던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런 곳에서, 이런 일로 죽어선 안 된다.
전호가 죽는다면 천하를 평화로이 하겠다던 약속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정작 약속을 맺은 당사자가 없어진다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속이란 일방통행일 수 없었다.
맺은 상대가 있어야지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약속이었다. 그녀가 한때 대충 내뱉었던 말에 책임감을 느낀 이유가 무엇인가.
“아버님은?”
“깨어나시긴 했습니다만.”
소연은 조조의 질문에 답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사실 조숭만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시간을 지체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 수레를 호송하기 위해 몇백의 사람이, 그리고 전호까지 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는가.
그런 악감정이 그녀의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조의 앞에서 그걸 티 낼 수는 없었다.
조조는 그런 소연에게서 시선을 돌려 마차를 바라보았다. 깨어났음에도 마차에서 내릴 생각조차 않는 조숭의 행동에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쯧.”
그녀는 혀를 차고는 마차로 향해, 굳게 닫혀있던 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그 안에는 무릎을 감싸 안고는 고개를 떨군 조숭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그것이 어떤 재산인데….”
그는 오로지 그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 하염없이 같은 말만을 중얼거린다. 조조가 그 모습에 또다시 혀를 차고는 마차에 올랐다.
“아버님, 딸이 왔습니다.”
“…맹덕이냐?”
조숭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는 조조를 바라보았다. 그 몇 시간 만에 초췌해진 얼굴로 겨우 고개를 들어 딸을 바라본 그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조조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이 멍청한 것!!”
그는 그리 말하며 이내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떻게 부하를 관리한 게냐! 거기에 남겨진 재산이 얼마인데, 그것이 다 어떤 것인데! 심지어 그중 하나는 내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그러십니까.”
그녀는 단지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럴 때가 아니다. 뭐하느냐? 당장 군사를 보내어라. 지금이라면 아직 가능할 거다. 거기에 남은 돈이 얼마인데. 그게 우리 가문의 전 재산인데!!”
“두고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누굴 믿고 그 많은 돈을 두고 오겠느냐!!”
되려 역정을 내는 모습에 조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는 있었다. 그간 보아왔던 제 아비는 언제나 가문과 돈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도전할 줄 모른다. 행동할 줄 모른다.
그는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그 모습에, 설령 십상시에게 싹싹 빌면서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에도 꾹 억눌러 참아왔었다.
“그 알량한 돈을 지키겠다고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 부하들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것인데요.”
“아직도 그런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느냐! 이 멍청한 것. 그 알량한 돈이 없어 굶어 죽는 이들을 못 보았느냐? 그 알량한 돈을 바치지 못해 십상시 손에 죽어 나가던 이를 못 보았어?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그러면 당신은.
아버님은 대체 그들이 죽어 나갈 동안 그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하셨는지요.
조조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예전 십상시에게 저항하던 자신을 책망하던 아비의 모습에서 환멸을 느꼈었다. 잘못에 순응할 뿐이라면,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면서 단지 목숨만을 부지할 따름이라면 그 삶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잘못을 알면서 바꾸지 못한다면 그것이 십상시의 행동에 동조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단지 말로만 옳지 못하다고 떠들 뿐이라면 대체 그 입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환멸도 했었다.
그래도 아비니까.
설령 그런 시시한 사람이더라도 일단은 제 아비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대체 무엇인가.
“돈이 그리도 중하십니까.”
“당연히 중하지! 사람 몇이 죽었다고? 네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들의 목숨이 몇억, 그 이상의 재화보다 값어치가 있을 것 같으냐?”
조숭은 그리 말하며 무언가에 홀린 듯 조조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녀는 그 손길에 앞뒤로 흔들리면서도 그저 묵묵히 제 아비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직 전부 다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이야. 뭐하느냐, 뭐하느냐!! 뭐하느냐는 말이다!! 당장 병사를 보내지 않고오오오!!”
추하다.
어느 순간 제 아비는 이렇게 추하게 변하고 말았는가. 그래도 자신의 핏줄은 이 남자에게서 온 것인데, 어째서 같은 핏줄임에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는 말이다.
사람 몇백의 목숨?
인정할 수 있었다.
이 천하에서 사람의 값어치는 저렴했다.
그러나 가끔은 몇억이 아니라 황금을 산더미만큼 준다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금 조숭의 모습만큼은 돈의 망자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손 놓으시지요.”
그녀는 제 어깨에 얹어진 조숭의 손을 쳐냈다.
더는 그 손에 만져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한때는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설령 그렇더라도 자신의 아버지였기에 존중하고자 했던 마음도 있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났다.
“너, 너어!!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러느냐?”
조숭은 거의 피를 토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게다가 네가 호의호식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가문에 모인 재산이 있었으니 가능했다. 그걸 모르겠느냐, 이 천치가!!”
“더 할 말이 있는가?”
이제는 경어조차 생략한 말.
조조의 말에 조숭은 아예 얼굴까지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마구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너 같은 것은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느니, 머저리 같은 년이라느니. 사실상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
그녀는 그 말을 꿋꿋이 들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가.
이 인간은 어디까지 몰락하는가.
애당초 유소년기부터 아비의 얼굴을 자주 보지도 못했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한때는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시기도 있었다.
그 과거를 회상하며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남자에게.
이렇게 시시한 인간에게 인정을 받겠다고 몸부림쳤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지금도 돈이 어쨌느니 떠드는 조숭의 모습은 한때 조조가 가장 혐오하던 인간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웃어!? 네가 지금 웃음이 나오느냐? 부하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그런 무능한 것들을 보내니 이 사달이 난 것이 아니냐!!”
“무능하다니.”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에는 그 무능한 이들이 조숭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이런 시시한 남자보다야 훨씬 멋있는 사람들이거늘.
적어도 이런 일에 희생되어선 안 될 이들이었다.
“소연 장군도 참.”
그녀는 그리 말하며 씩 웃었다.
“멀쩡하다고 하더니, 심한 부상이지 않은가.”
“무어라?”
갑작스럽게 주제에서 이탈한 말에 조숭의 의아함을 표현했지만, 그것보다 조조가 칼을 뽑아드는 것이 더 빨랐다.
“연주목의 아비 조숭은 서주군의 습격으로 부상하여 호송되었으나, 결국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슬픈 일이로다.”
“무, 무슨 말이더냐.”
“무슨 말이기는.”
당황한 조숭을 바라보며 조조는 씩 웃었다.
“본인이 그대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이다.”
* * *
아아, 본인의 아비여. 한때 자랑스러웠던 아버지여. 그대는 언제나 그 덧없는 황금에 목숨을 걸었지. 그것을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도 모르고, 올바름을 잊고 대의를 저버리고는 오로지 가문의 영광과 황금만을 위해 살았다.
본인은 그래도 참았다.
아버지니까, 혈육이니까 참았다.
그런데 그대는 기어이 그 덧없는 욕심에 눈이 멀어 본인의 부하를 사지에 몰아넣고도 황금만을 찾는구나.
그것이 본인에게는 너무나도 우습구나.
부질없는 짓이지.
전부 다, 모든 것이 전부.
어차피 이리 죽어 버리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을. 그런 것에 집착하여 대체 몇이나 희생했는가. 또 몇을 희생할 생각인가.
아비는 이미 정도를 지나쳐버렸다.
하면.
더 추해지기 전에 끝을 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가. 적어도 아비가 인간만도 못한 금수가 되기 전에 마지막만큼은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딸 된 도리다.
적어도 죽어서는 인간으로 포장해드리지.
그것이 본인의 마지막 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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