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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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매복하고 있었지만, 아가씨의 닦달 하에 미리 준비했기에 그리 막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숫자도 아군과 비슷하다면 정규군인 아군이 그것을 물리치지 못할 일도 없는 것.
무엇보다 우리 태생이 무엇인가.
“어딜 도적한테 도적 수법으로 싸움을 걸어.”
팍 씨.
이놈들도 병주에서는 날고 기던 도적이었다. 전부 내 아래 복속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존 업종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 것.
이번에 끌고 온 부대는 전부 기존 병주에서 내가 복속시킨 도적 출신의 병력이었다. 이들은 전부 도적의 경험이 있었기에 매복에 반응하는 속도는 다른 병종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도적이었던 게 자랑이다.”
“아니 뭐 그런 걸 가지고.”
칭찬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민망하게.
소연 아씨는 그리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런 관계로 도적을 한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비교적 잘 지나가며 조숭 어르신이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 재산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저택에 조금 놀랐다.
솔직히 저거 연주성 관청보다는 조금 작다 싶을 수준이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의 크기가 아닌데?
“그대가 딸이 보낸 사람이라고?”
“예, 어르신.”
아가씨가 살짝 고개를 숙이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손짓으로 저 멀리에 있는 무리를 가리켰다.
“그러면 저것의 호송도 같이 부탁하지.”
호송?
아가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에 살짝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쭉 내밀어 확인했는데, 뭔가 줄줄이 이어진 군중의 무리. 그리고 수레가 끝도 없이 줄을 서 있었다.
수레?
아니 그런데 저게 대체 몇 대야?
“총 128대네. 그간 조가에서 모은 재화, 몇억 전 이상의 값어치를 가진 짐들이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손상케 하지 않도록 주의 바라지.”
그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등을 돌렸다. 사실상 거의 아랫사람을 부리는 투로 대하는 것이, 아무리 우리가 조조의 부하라고는 하지만 조금 어리둥절한 부분.
태위까지 지낸 사람이라서 그런가.
듣자 하니 그 작위도 십상시에게 돈으로 샀다고 들었는데, 그깟 벼슬이 뭐라고. 물론 이렇게 말로 꺼낼 수는 없었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숭이 먼저 저택 내로 들어갔다.
“아가씨, 이거 너무 많지 않소?”
한 수레에 두 명의 병사만 붙여도 벌써 병력 반절 이상이 길게 늘어져 버린다. 전부 고가의 물건이라 함부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것이, 자칫 절도라도 벌어진다면 군 내부적으로도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군이라고 해도 저만한 예물과 금을 앞에 두면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그 대비까지 하려면 병력을 균등하게 배치하고 감독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그래서는 병력이 너무 늘어선다.
“너무 많아. 이 부분은 조숭 어르신과 조금 조율을 해볼게.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것을 전부 다 관리하면서 이동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시간도 시간이고, 무엇보다 저 짐꾼들은 믿을 수 있는 거 맞나? 나라도 저기서 한 줌만이라도 들고 도망가면 대박이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
아예 금괴만 잔뜩 실은 수레도 있었다. 비단이라던가, 골동품. 혹은 항아리 같은 호화품목도 실려 길게 나열된 것.
무엇보다 조숭은 저것을 전부 상처 없이 옮길 것을 당부했다. 명령조에 가까운 것이어서 기분은 나쁘지만, 우선 부탁을 받았으니 어쩔까.
그렇지만 그 숫자가 문제였다.
“조가가 부자기는 한가 봐. 저거면 연주에서 일 년 이상 운영비도 나올 것 같은데? 조홍 그 아가씨도 부자더니, 조숭 어르신은 뭐 말이 안 되네.”
“이 정도 수레를 이끌고 천천히 진군하면 싫어도 도적이 꼬일 수밖에 없겠네. 거기에 병력까지 늘어진다면….”
소연 아씨가 살짝 뒷말을 흐렸다.
“여차하면 뒤로 미뤄야겠지.”
아마 아가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애당초 저 정도로 긴 수레 대열을 이끌고 천천히 나아간다는 건 대놓고 습격해달라고 시위하는 꼬락서니나 마찬가지.
가능하다면 전부 싣고 호송하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조숭 어르신과 아가씨만이라도 모시고 퇴각할 수밖에.
“일단 방안을 찾기 해야 하니, 그건 조숭 어르신에게 한 번 상의해볼게. 이 지역에 병력 몇을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저것 전부를 호송하는 건 말도 안 돼.”
“우선 조숭 어르신 먼저, 저 재산은 나중에?”
“그래야지.”
아군의 숫자가 무슨 수천도 아니고, 고작 오백으로 조숭 어르신의 호위와 병행하기엔 수레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아가씨의 말도 분명 일리는 있는 것.
그렇다고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올 수도 없었다.
서주는 기본적으로 타 영지. 지금 오백 병력을 이끌고 올 수 있던 것도 저번 전후처리에서 책임을 묻지 않았기에 불문으로 부쳐진 것이었다.
만약 이보다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서주 국경을 넘었다면 도겸은 싫어도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겠나? 초면이라 잘 모르겠지만, 조숭 어르신인가? 생각보다 좀 많이 까다로운 성격 같던데.”
솔직히 이것도 조금 순화해서 표현했다.
아무리 우리가 제 딸의 부하라고는 하지만, 우선 군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군에는 군법이 있고, 그는 어디까지나 중요시할 요인이었지 결코 상급자가 아닌 것.
하급자로 대하는 것까지야 당연하다고 쳐도, 아예 하인처럼 명령만을 내리고 그 외에 어떠한 언급도 없이 접촉 자체를 꺼리는 모습은 까다로운 성격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해봐야지.”
소연 아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조금 복잡한 문제였다. 만약 정말로 조숭이 저 많은 짐을 동시에 호송해달라고 한다면, 적어도 짐차 내에서 도난 사태가 일어날 것을 방지해 적어도 수레 한 대에 병사 셋 정도는 배치해야만 했다.
사람의 눈을 늘려 도난을 막는다.
그렇게 가정하면 정작 조숭 어르신을 호위할 병력이 백 명 언저리로 확 줄어든다. 게다가 병력도 늘어져 여차할 때 제대로 된 전투 수행이 가능할지도 의문스러운 것.
“잘 말해보쇼. 솔직히 우리끼리 저 많은 짐을 다 연주로 옮기는 건 힘들어 보여. 아무리 서주가 평화롭다고는 해도 아예 도적이 없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수많은 금은보화에는 마력이 있었다.
도적이 아닌 이들도 도적으로 만드는 마력. 한 번 제대로 작업할 수 있다면 평생 놀고먹어도 남을 재화가 손에 들어오는데, 그 욕심에서 이겨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선 도겸이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영역에 불과했지 서주 내 도적까지 막아준다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이 부분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듣자 하니 조숭 어르신 근래부터 열심히 재산을 처분했다고 하던데. 그러면 싫어도 일대에 소문은 싹 퍼졌을 거야. 아씨도 어떤 말인지는 알지?”
“하아, 알고는 있어.”
소문은 무서운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벌써 조숭의 행렬에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가 실렸다는 소문은 다 퍼졌으리라.
사실 오는 길에 도적들이 정규군인 아군을 습격한 것이 다소 의아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조숭의 소문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조숭에게 가는 와중에도 도적이 습격할 정도라면, 돌아가는 길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습격해올까.
그런 과정에서 저 수레를 전부 지키면서 이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부만이라도 챙기고, 나머지는 아군을 조숭 저택에 배치해 우선 그것을 지키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현명한 것.
아가씨도 알고 있으리라.
여기서 조숭과 재화, 두 가지 모두를 호송하려 들다가는 차라리 둘 다 놓칠 우려가 있었다. 적어도 확실히 하나를 지켜야 한다면, 아군은 조숭의 안전에 집중하는 것이 나았다.
“일단 내가 말하고 올 테니까, 그간 병사들 시켜서 저 수레 잘 지키고 있으렴. 대열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알고 있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숭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에 아군을 다시 소집하여 우선 대기 명령을.
그 와중에도 저 멀리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다들 군이 모였고 이만큼 많은 금은보화를 실은 수레에 흥미를 품고 모여든 구경꾼들이었다.
저 인파 중에도 도적의 끄나풀도 있지 않을까.
미리 아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그 뒤에 매복을 준비하거나 연합을 하는 등 다양한 수작을 부릴 우려도 있었다.
머리가 아파 왔다.
조숭이 포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 * *
소연은 따로 조숭과 면담을 했고, 아무래도 현 상황상 이 많은 재화를 전부 운반하기는 힘드니 일부는 저택에 남기고 병사를 배치하자고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에 남는 재화를 놓고 가라는 말이었기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조숭.
안 그래도 갑작스럽게 이주를 준비하라 하여 다소 손해를 보아가며 재산을 처리했는데, 그마저도 두고 움직이라는 말은 그에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것이 어떤 돈인데.
“불가능하네.”
“하지만 조숭 어르신. 저 많은 수레를 호송하면서 움직이기에는 병력의 숫자가 부족합니다.”
“그거라면 더 군을 데려왔으면 그만이 아닌가? 아니면 도겸에게 조금 돈을 쥐여주더라도 호위를 받는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 도겸과 전쟁을 했는데.
소연은 한숨이 나올 뻔한 것을 이 꽉 깨물어가며 겨우 참아냈다. 본래 역사에서도 도겸은 조숭의 죽음에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도겸의 손을 빌린다? 차라리 아군끼리 이동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주변에도 조숭 어르신이 가진 재화에 대해 소문이 퍼졌을 거예요. 어느 정도라면 가능은 하니, 일정 부분은 가지고 나머지는 잠시 이곳에 보관하는 것은 어떠할지요. 아군이 이 저택을 지키겠습니다.”
“거기 남을 병사들은 믿을 수 있겠나? 내 눈에 닿지 않는 것에 신뢰와 확신이라는 걸 장군은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저만한 재화라면 확실히 그 어떤 이라도 냉정함을 잃으리라. 수십이 나누어 가진다고 하여도 평생을 호화롭게 살 수 있는 금액. 그런 금액 앞에서도 충정을 지킨다면 그것이 이상한 경우였다.
그렇기에 소연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내 한평생을, 그걸 넘어 조가의 사람들이 그간 필사적으로 쌓아온 것이네. 이 재산은 곧 조가의 역사와도 마찬가지인 것. 그것을 포기하라는 말은 조가의 역사를 포기하라는 말과도 같은 걸세.”
조숭은 그리 말하며 등을 돌렸다. 사실상 이 뒤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표현인데, 소연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저것을 전부 호송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한 사람만 지키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저만한 수레는 예상하지 못한 것. 그가 재산에 이렇게 집착할 줄도 몰랐고, 무엇보다 저만큼 긴 수레의 행렬을 직접 이끌고 가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대로면 어르신의 안위에 위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미 소문은 파다하여 도적들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도겸이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걸 지키기 위해 있는 병사가 아닌가?”
조숭은 재산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아예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남겨두고 우선 본인의 몸부터 지키자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조숭에게 있어 마찬가지인 소리였다.
한 번 손아귀에서 놓친 돈은 제 돈이 아니었다.
하물며 병사라고는 해도 남. 그런 이들의 무엇을 믿고 가문의 재산을 맡길까. 그에게 있어 재산을 놓고 움직이라는 건 애초부터 논외인 일이었다.
“구태여 이리 서둘러 연주로 갈 이유는 무엇인가? 딸내미가 서두르라고 하여 손해를 봤는데, 이제는 그 재산까지도 놓고 움직이라고? 헛소리 말고 행렬부터 준비하도록.”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만한 행렬을 이끌고, 그것도 군을 분산하면서 조숭을 지킬 수 있을까. 물론 어지간한 도적 무리라면 충분히 물리칠 저력이 있었지만 만약의 사태가 생긴다면 안위에 확신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조숭의 말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일.
소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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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주에서 연주로 넘어가던 당시에 이끌던 수레 숫자만 백이 넘고, 태위의 작위를 살 당시 조정에 바친 돈이 1억 전이 넘었다고 하네요.
갑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