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37화 (137/343)

13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용납할 수 없었다 서주로 가는 길은 행각보다 평이했다. 물론 사마의가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어떻게든 억누를 수 있었다.

자기도 데려가라는데, 솔직히 복양에 문관 인력이 부족한 관계로 그런 꼬마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터여서 데려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이게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 아가씨. 저거 봤소? 지금 새 두 마리 퍼드덕거리는 거. 이야, 아무리 따듯하다고 해도 벌써 새가 날아다니나?”

“긴장감을 가져. 소풍 왔니?”

그치만, 좋은 걸 어떡해.

언제 이렇게 평화로운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특히 최근 들어서는 매번 전쟁이니 서류작업이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소연 아씨와 이렇게 단둘이 다니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부하들도 보고 있잖니, 좀.”

정말 단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솔직히 내가 들뜬 기분인 것도 조금은 이해해주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근래 들어서 너무 고생했잖아.

아가씨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좋은 기분을 구태여 억누를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 일이 중하다고는 하지만, 도겸과 얘기가 끝난 시점에서 가끔 있을 도적만 주의하면 문제될 일도 아니었다.

제아무리 도적이어도 이제는 정규군이 된 오백의 머릿수를 상대할 턱이 없지. 솔직히 병주나 청주가 이상한 것이지, 어지간한 도적들은 무리를 지어도 오백 언저리도 모이지 않는다.

솔직히 그 두 지역이 이상한 거라고.

무슨 십만? 백만?

사람 머릿수가 장난도 아니고 무슨 도적이 그렇게 모이냐. 게다가 청주 자체는 황건적이라는 특수한 이념이 곁들어져 그만한 머릿수라도 모인 것이지, 병주는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구성원이 백만이 넘는다는 흑산적은 진짜 말도 안 되는 무리. 솔직히 그 피폐한 주에서 어떻게 그 많은 머릿수가 모였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그 정도로 머릿수가 모이면 조정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십상시도 그렇고 동탁도 그런 것이, 죄다 흑산적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자 했을 정도로.

그게 도적이냐? 그냥 지방 군벌이지.

서주는 그런 동네와는 다르게 제법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유일하게 걱정할 도겸도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지간한 도적은 우리 선에서 정리 가능했다.

오히려 그런 긴장감보다는 날씨에 관심이 쏠렸다.

저번에 한 번 눈이 내린 이래 계속 이렇게 따듯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벌써 봄이 오는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요즘 날이 따듯하긴 하네. 작년 겨울이랑은 전혀 딴판인 것이, 올해는 이렇게 따듯하게 넘어갈 모양인가 봐.”

“병주에서부터 추웠던 탓인지, 나는 그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했어. 생각보다 조금 더 따듯한 거였네.”

“응? 무슨 소리래. 작년이나 병주가 유독 추운 거지. 아가씨, 혹시 병주 사람이요? 일반적으로 그건 춥다가 아니라 혹한기라고 하는 거요.”

당장 작년이 어마어마하게 추운 혹한기였는데. 병주는 북쪽 지방이라 매번 추웠고. 그걸 일반적인 계절로 착각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추운 지방에서 살았던 걸까.

“몰라서 그래.”

아가씨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바깥에 아예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해선 그게 맹렬한 추위였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하여간, 평소에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던 사람이 이런 일반상식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런 점은 참 신기한 부분이 있었다.

“뭐,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

“정말이야. 그냥 좀, 착각한 거야.”

아니 그걸 또 뭐 그렇게 변명까지 하고 그러시나.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될 것을. 생각해보면 나도 가끔 어제 점심 뭐 먹었는지 까먹고 그러는데, 그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

“됐고. 어쨌건 제법 푹한 것이 나쁘지 않네. 이번 겨울은 그래도 얼어 죽는 사람도 적을 것 같고, 이대로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요.”

“너무 따듯한 것도 곤란해. 기후적인 문제라고 해서, 생태계에 어떤 혼란이 올지 아무도 몰라.”

“생태계?”

아니 날 따듯한 거랑 생태계는 또 무슨 연관이 있다고. 아, 저 저 봐라. 또 이상한 소리 하더니 고개만 홱 돌렸다.

하여간 소연 아씨는 다 좋은데, 가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는 금방 저렇게 모르는 척할 때가 있었다. 따듯한 것이 뭐가 나쁘다고 저러나.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가?

“어쨌건, 오래되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야.”

“알겠수다, 거참.”

하여간 뭔 말을 못 해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날이 춥더라도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 세상을 만들어야지. 아무리 춥더라도, 아무리 덥더라도. 설령 흉년이 오더라도 불합리하게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아가씨.”

순간 말을 살짝 머뭇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능한 얘기요? 요즘 동네 얼라들도 그런 얘기는 안 하는데. 신도 아니고 인간이 그럴 능력이 어디에 있나.”

“이익!! 네가 나보고 해달라고 한 거잖아!”

“엥? 아씨가 나보고 만들자고 한 거지. 난 그런 얘기한 적 없거든? 물론 그런 허풍을 당당하게 늘어놓는 사람이라서 따라온 거긴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그런 세계가 가능할지 반신반의였다.

솔직히 누가 들어도 꿈에나 나올법한 얘기잖아. 믿고 따라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저런 얘기 남 앞에서 함부로 못 꺼냈다.

그치만 부끄럽잖아.

“정말 짓궂기는. 예전엔 안 그러더니, 너 요즘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짓궂어지는 거 알긴 아니?”

“그런가?”

그리 물으면서도 픽 웃었다.

만약 아가씨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아마 내가 좋아서 장난을 치는 호감 표현이었다. 가끔 어린아이들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장난을 걸고 그러지 않는가? 그것과 흡사한 무언가였다.

“나는 솔직히 그런 세상 아직 몰라. 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가. 흉년이 들었는데 사람이 안 굶어 죽어? 그 칼바람 몰아치는 혹한기에 사람이 안 얼어 죽어? 솔직히 그런 그림이 상상이 안 가.”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이 세상을 사는 누구나가 전부 그럴 터다.

그야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세상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 추우면 당연히 얼어 죽는 사람도 있고, 식량이 부족하면 누군가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정말로 소연 아씨가 이걸 바꿀 수 있다면, 그녀는 아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비슷한 무언가가 아닐까.

불확실한 믿음을 현실로 만든다면 정말 선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싶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말했던 것을 정말로 실현한다면, 이 세계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존재방식을 증명하여 실현해준다면 나는 그녀를 선녀라 부르겠다.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그 이상으로 고난한 일이었다. 이걸 가능케 한다면 적어도 일반인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한 번 해보시구랴.”

“전부는 무리지만, 그래도 지금보다야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는 있어. 그때까지 네가 잘 따라와만 준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으로 만들 거야.”

“솔직히 허풍 같은데.”

그러니 아가씨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네가 믿고 따라와 놓고서는 그렇게 말하기야?”

거참, 농담도 못 하나. 물론 아직도 반신반의인 것은 부정치 못하겠으나, 적어도 믿고 따라왔으니 그 부분에서는 끝까지 그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말로 아가씨가 성공한다면, 그래서 이 천하에 나름의 평화를 안겨줄 수 있다면 나도 그 가장 옆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새기는 것이다.

선녀의 첫 번째 협력자.

멋지잖아?

* * *

조조가 복양 인근에서 황건적 수십만을 복속시켰다는 얘기는 기주에도 흘러들어왔다. 기주 내에서도 특히 지방의 관리나 정보를 담당하던 전풍에게 그 소식이 가장 먼저 들어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복양.

전호가 성주로 있는 땅이었다.

그는 최근 조조의 휘하에서 수많은 공적을 올리고 있어, 그 소식은 기주 일대에서도 들릴 정도가 되었다.

흑산적 토벌전에 황건적 격퇴, 원술과 그 천하의 손견마저 패퇴시켰다고 전해졌으니 단시간에 올린 공적으로는 훌륭하다 못해 대단한 것.

그러나.

“쯧, 멍청한 놈.”

손견을 격퇴하면서 부상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양의 성주가 되었다기에 그쪽에서는 나름의 인정을 받고 있구나 싶었더니, 그새 전장에서 다쳤다는 소식이 영 달갑지 않았다.

특히 전호 관련된 소식을 주로 모으고 있던 전풍은 그 말에 당장 전호를 호출하려던 것을 꾹 억눌렀었다.

어차피 대답이 없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찌 마음에 들까. 제 하나뿐인 아들이 자꾸 전장을 전전하여 다치는 것이 어찌 아비 된 자로 달가울 수 있을까.

공적도 좋지만, 무엇보다 목숨이 최우선인 것을.

이래서 문관으로 관직에 오르라고 설득했던 것인데. 전풍이 기억하는 그는 어릴 적부터 제 어미를 닮아 영민한 구석이 있었다.

비록 어릴 적 전부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가르쳐도 금방 그 영민한 재능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 전풍에게는 그것이 아직도 내심 아쉽기만 했다.

게다가 조조군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있으나 확실하게 연주 일대에 급격한 발전을 준비하면서 착실하게 군비를 늘리는 추세. 이것이 정말 원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인지, 그 진위에 다시금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조가 정말 원소에게 독립하여 자기 세력을 꾸리기 위해 움직인다면. 그때는 전호도 저쪽에 있으니 필연적으로 적대할 수밖에 없었다.

원소는 조조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솔직한 말로 조조의 행보는 점점 원소와는 동떨어져 가는 추세였다. 그것을 정보를 담당하던 전풍이기에 알 수 있었지만, 원소에게 조조라는 여자가 역린이라는 것이 우려되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만약 조조와 적대한다면.

“그 아이가 내게 오기는 할까.”

아마 안 오겠지.

알면서도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의 세력으로 원소에게 덤비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는 격. 지금 당장에야 공손찬에게 묶여있다지만, 공손찬의 행보는 점점 민중과 등을 지는 느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최강자였기에 오히려 동등한 적수와 싸우는 법을 모르는 짐승. 그런 짐승이 노련한 원소에게 이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은 적은 남부.

그렇게 되면 그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조조였다.

만약 실수로라도 원소가 조조를 적대하게 한다면 전호의 목숨 역시 담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전풍은 어렴풋이 이상을 눈치챘으면서도 아니길 바라고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 식사 다 됐어요!”

“오냐, 금방 가마.”

아니겠지. 아니어야만 했다.

아직은 의심의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조조는 원소에게 적대하는 원술, 그와 함께 공손찬과 손을 잡은 도겸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그러니 조조가 원소를 배신할 낌새는 아직 없다 보아도 무방한 것.

제발 기우에 그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리 안 좋으세요?”

“아, 별것 아니다.”

그럴 리 없기를 바랐다.

원소도 그리 호언장담을 하지 않았던가. 조조와 원소의 관계는 전풍 자신도 모를 무언가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봐야 할 터.

그러니 조조는 원소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찬거리를 제가 직접 만들어봤어요! 아버님 좋아하는 무침도 있으니까, 힘드시더라도 기분 푸세요.”

“오냐. 고맙구나.”

조조, 멍청한 생각은 하덜 말거라.

그 세력으로 원공에게 도전하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

전호 그 아이가 네 품에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굽어살피겠으나, 제발 어리석은 짓만은 하지 말라. 제 욕심에 못 이겨 천둥벌거숭이처럼 나서지만 않는다면 원공과 그대가 싸울 일도 없다.

부자끼리 다툴 일도 없다.

그러니 제발.

전풍은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제 핏줄은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자식이라 받아들였던 아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는 한 번 제 아들을 내쳤으니까.

그러니 두 번만큼은.

아직은 문제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설령 진심으로 조조가 모반을, 원소를 떠나 자립하여 대적할 마음이 들더라도 그 이상으로 원소가 강해지면 그만이었다.

“아버지! 얼른 오세요. 식사 식어요!”

“알았다, 알았어.”

몸을 일으켰다.

젊은 날 고생을 해서 그런지 무릎이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은 멈출 수 없는 것. 해야만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나뿐인 아들딸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 자신의 회한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가문을 위대하게.

그것은 전부 가족을 위하여.

그는 젊은 날 이후 이 목표를 단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계속, 적어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결코 멈출 리 없는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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