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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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양성 내부의 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확실히 아가씨까지 같이 붙어서 업무를 처리해주니 어지간한 일은 빠르게 끝냈다.
우선 연주 내에서 조조 다음가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아가씨가 적당히 호족과 교섭하며 현금을 확보해온 덕분이기도 한 것.
그렇게 어지간히 안정을 되찾았을 무렵이었다.
“어? 아가씨, 어디 가게?”
최근 복양성 내부에서 군사적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가 들렸다. 움직이는 군은 예전 아가씨 휘하에서 함께하던 이들.
복양 관청에서는 그런 명령을 하달한 적이 없어 확인차 움직였더니 아가씨가 군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할 일이 있어서.”
“황건적 쪽? 우리 쪽으로 공문이 들어온 적이 없는데. 아니면 뭐 다른 거라도 하게? 무슨 군을 오백씩이나 대동하고 움직여.”
당장 인근에 도적이 출몰했다는 소식도 없었다. 보급도 안정되었고 조조가 지원군을 요청한 적도 없는데 혹여 다른 용무라도 있는 걸까.
“미리 언질을 줄 걸 그랬네.”
아가씨는 진즉에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아가씨도 군을 이끌고 전선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그것을 자주 본 것은 아니어서 그런지 볼 때마다 조금 어색함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직접 무기를 쥐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아가씨가 그냥 문관 쪽으로 승진해주기를 바랐으나, 세상이 혼란하고 사람 손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는 걸까.
“이번에 조공의 아버님을 모시러 가려고.”
“어? 저번에 모셔온다더니?”
그러니 아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서주에서 가지고 있던 땅이나 재화 등을 처분한다고 식솔을 먼저 보내셨더라고. 서주와도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조공의 부친을 적지에 계시게 할 수는 없잖니?”
“그도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오백은 조금 호위병력이라고 해도 과한 숫자가 아닌가? 물론 아가씨가 움직이는 것이니 다 생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가씨가 직접 움직인다는 것이 좀 그랬다. 지금 아가씨는 연주 내에서 조조 다음으로 권한을 가진 인물. 조조군 내에서도 서열로만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요인경호는 다른 이를 보내도 될 것을.
“아니 그렇다고 뭘 직접 나서시나.”
“그만큼 중요한 일이야.”
아가씨는 살짝 낯빛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물론 소연 아씨가 직접 하는 일에 뭐라고 말참견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말할 정도로 중요한 일일까.
“당장 조공의 부친이 서주에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바로 전면전인데, 아군은 아직 그렇게까지 움직일 여유가 없어.”
“아니,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도겸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까.
당장 천하에서 도겸을 지탄할 것이다. 게다가 조조의 부친이라면 조숭인데, 과거 태위까지 지낸 사람이 말년에 조용히 지내려는 것을 구태여 죽인다고? 게다가 조조는 아직 도겸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저번 서주와의 전쟁도 그쪽이 일방적으로 원술과 말을 맞추고 들어온 것이지, 조조가 서주 땅을 먼저 침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과거 태위까지 지내고 이제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면 명분도 없을뿐더러 효를 중시하는 현 천하에서 그를 손가락질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당장 조조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병력 오백을 차출하여 직접 움직이겠다는 건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아가씨가 그렇다면야.”
소연 아씨가 이렇게 말한다면야 내가 거기에 더 말을 이을 부분은 없었다. 단지 구성원을 보니 정작 이 부대를 이끄는 것이 아가씨 한 명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말이요.”
“응?”
아가씨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 손 하나 더 필요하지는 않은감?”
마침 복양성의 지옥 업무에서 막 해방되어 한가한 사람이 한 명. 원한다면 언제든 따라나설 수 있는 괜찮은 인력 하나가 더 있는데 말이야.
“어때. 나 정도면 쓸만하지 않나?”
“너는 성주잖니.”
“얼추 내가 있어야 할 일은 거의 끝났으니까. 게다가 사람 하나라도 더 있으면 아가씨도 편하지 않겠어?”
게다가 아가씨와 이렇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상황도 다소 적어졌으니까. 가끔은 이런 일에라도 어울려 나쁠 것은 없었다.
“서주로 갈 거면 도겸 쪽에 미리 연락은?”
“이미 해두었고 확답까지 받았어. 그쪽에서도 그럴 목적으로 움직인다면 참견하지 않겠다는 모양이야. 저번에 한 번 패전하고도 우리가 그냥 넘어가 줬으니까. 이 정도 양보는 받아냈지.”
안 그래도 도겸에게 어떠한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 의아하다 싶었는데, 이런 부분을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주라.
이번에 한 번 출발하면 길면 열흘 이상도 걸릴 수 있는 상황. 도겸까지 허가했다면 딱히 곤란한 상황은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딱히 없겠지?”
“도적에는 주의해야 해. 조공의 부친께서 가지신 재화가 많으니 도적이 꼬일 수도 있어. 그래서 병사의 숫자를 오백이나 차출했지.”
물론 그 정도만 데리고 움직인다면 도적 따위에게 당할 일은 없겠지. 나쁘지는 않은 숫자였다. 그걸 도겸도 허가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는 거요.”
“허락은 받았니?”
“내가 여기 성주인데 허락은 무슨.”
말은 이렇게 해도 미리 언질은 주어야 하겠지만 아마 문제는 없겠지. 사마의 정도가 좀 시끄럽게 굴겠지만, 여차하면 그 부분은 잘 설득하며 그만이었다.
……설득할 수 있겠지?
“괜히 무리해서 따라오려 들 필요는 없어.”
그래도 그냥 이번에는 따라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가씨와 가장 먼저 함께한 것이 나인데, 최근에는 뭐? 우금이라던가 악진? 걔넨 또 뭔데. 내가 먼저였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나 안 가면 혼자 가려고 했어?”
“어, 아마 우금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럼 걔 놔둬. 내가 갈 거니까.”
어차피 당장 복양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만약의 상황이 있더라도 진궁 선생이 이쪽에 있으니 대응이 가능할 터.
그렇다면 우선 아가씨가 조숭 어르신을 모셔오는 걸 돕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소연 아씨는 진지하게 조숭 어르신에게 변고가 있을 걸 우려하고 있는 모양이기도 하고.
“그러면 이번에는 잘 부탁할게.”
“오랜만이지 않수? 이런 거.”
그 말에 아가씨가 픽 웃었지만, 사실 생각을 해보면 그랬다. 솔직한 말로 아가씨와 그간 같이 다닌 것은 나인데, 최근엔 제대로 함께 움직였던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조금 억지를 부린 것도 있었다.
사실 내가 복양에 남는 것이 모양새가 좋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번 조숭 어르신의 건은 아가씨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분이라 손을 놓기엔 찜찜했다.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엔 아가씨랑 같이 행동하고 싶었다.
“우선 내가 진궁 선생님이랑 사마의에게 말을 전하고 올게. 출정은 언제부터 감행하시려고? 아직은 아니지?”
“일단은 병을 모으고 내일 움직일 거야.”
“그럼 빨리 움직여야겠네.”
얘기는 정해졌으니 우선 진궁 선생에게 성주 대리로 잠시 있어 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사마의는…, 뭐 잘 말하면 알아듣겠지.
조금 불안한데.
* * *
저 너른 들판에 무릎 꿇은 수많은 사람을 뒤로하며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일은 꽤 지체되었으나 성공적으로 승리하였다.
아무리 이번 겨울이 춥지 않다고 하여도 저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방한 대책도 없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계절은 아니었다.
아군이 며칠간 포위하며 승전을 거듭하니 항복하게 된 것인데, 저들을 이제 어떻게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유일한 과제로 남았다.
“맹덕. 이제 저들은 어찌할 생각인가?”
“군율에 따르면 어떻게 되지?”
거기까지 말하니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군법으로는 사형입니다.”
“순욱 선생. 그대도 그리 생각하는가?”
그 말에 먼저 손을 들고 나섰던 순욱이 살짝 말을 머뭇거렸다. 숫자만 하여도 물경 수십만이 넘으리라 추산되는 이들이었다. 지금 보이는 이들 말고 아직 사방에 퍼진 황건적의 숫자가 태산처럼 많은 것.
그들을 전부 죽일 순 없었다.
죽여서도 안 됐다.
“여기서는 관용을 보여주심이 어떨는지.”
“군법과는 다른 의견이군. 하후돈, 그대의 생각은 어떻지? 그대도 군법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보는가?”
그 질문에 하후돈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형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숫자가 너무 많았다. 수십만에 다다르는 이들을 전부 처형하고 돌아다니기에는 아군의 숫자도 모자랐을뿐더러, 자칫 잘못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는 상황.
그렇지만 군의 장군이 되어 군법으로 처리하여서는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서 생긴 갈등이 있었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 생각에도 다 죽일 수는 없겠어.”
“그러한가.”
조조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 역시도 저들을 전부 죽일 수도 없었고, 죽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들은 아직 그녀가 보기에 충분한 활용가치가 있었다.
저들은 한때 반란군이었던 자들.
그렇다면 다소 거칠게 다루어도 따를 수밖에 없는 훌륭한 명분이 생긴 셈이 아닌가. 저런 노동력을 함부로 죽인다는 건 조조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면 좋다. 저들을 전부 받아들이지.”
“응? 언니, 저걸 받아들인다고?”
조홍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옆에 있던 순욱까지 재차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놓아주시면 모를까, 전부 수용하기에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들은 한때 황건적. 조정의 반역자인 것인데, 그리 쉬이 받아들이시면 뒷말이 나올 우려가….”
“저들에게는 군역을 부여할 셈이다. 거기에 남은 식솔에게는 땅을 내주어 농사를 짓게 하는 식으로 정착시키겠다. 관의 땅으로 남는 곳이 더러 있지 않은가?”
“하오나.”
순욱은 조금 더 말을 잇고자 했으나, 그것보다 먼저 조홍이 씩 웃으면서 앞으로 치고 나왔다.
“부족한 돈은 내가 대줄게. 언니는 하고 싶은 일을 해. 순욱 선생도 그러면 문제없는 거 아닌가? 게다가 땅이라면 나도 연주 일대에 제법 가진 게 많거든.”
어차피 그녀에게 남는 것이 돈이었다. 물론 허투루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그녀의 언니인 조조가 바란다면야 돈쯤이야 쓰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 말에 조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은 곧 다스림에 있어 핵심이다. 연주는 땅이 너른 편이 아니기에 다른 주와 비교해도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지도 않다.”
그러면서 손을 뻗어 저 아래에 무릎 꿇은 이들을 가리켰다. 다 해진 옷에 누런 두건을 두르고 싸우던 이들. 저들은 무장도 별로고 상황도 좋지 않아 패했지만, 그 이전에 수차례 전투를 경험한 이들이었다.
“저들은 가진 것이 없어 저리 엎드렸으나, 기본적으로는 한의 백성이었다. 배를 불려준다면 우리를 배신할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전투에 능숙한 이들이 많지.”
“그러하옵시다면.”
순욱도 고개를 숙였다.
청주에서 넘어온 황건적을 전부 복속시켰다.
앞으로 저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그 전후처리와 행정적인 업무 등, 처리해야 할 일은 아직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러나 성공만 한다면 수십만에 달하는 백성을, 그리고 수만에서 십만이 넘는 병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모든 게 나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연주를 장악했고 원술을 물리쳤다. 청주에서 넘어온 황건적까지도 전부 처리할 수 있었으며, 그 수십만의 인구를 새로이 연주 땅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기존 연주 토박이들과 호족들은 다소 반발할 터이니 그 부분에서 조율하는 등 아직 머리가 아플 일은 산재했지만, 지금까지는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
“그러면 저들 중에서 따로 병력을 차출할 생각인가? 그러면 기존 병력과는 조금 군을 나누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인데.”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병력. 기본이 도적질하던 이들이니 같은 군으로 묶기에도 다소 곤란함이 있었다.
“말 잘했다. 하후돈, 그것은 그대에게 일임하지. 앞으로 저들에게 진짜 전투가 무엇인지 조련하는 역할을 맡기겠다.”
“엥? 나? 이런.”
말 잘못 꺼냈다며 인상을 쓰는 그 모습에 조조가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연주에 도전하는 세력 전부를 쳐냈다.
비록 예주에 둥지를 튼 여포의 존재는 다소 불안요소였지만, 아직 그들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터.
그러고 보니.
불안요소에 대해 생각하니 서주에 아직도 남아있는 부친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이것은 소연이 직접 전통을 보내어 본인 스스로 나서겠다고 했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인간은 변하지 않는군.”
재산을 정리하겠다고 홀로 남은 조숭.
그는 언제나 재산에 목숨을 건 남자였다. 솔직히 조조는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였기에 그 안위에 다소 신경은 쓰였던 부분.
이번에 정병 오백을 이끌고 나섰다고 하니 부친에 대한 걱정도 접어둘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연주 외부의 일도 해결이 된 셈.
“주변에 퍼진 잔당에게도 전부 항복하라 서신을 돌리도록. 이 일이 전부 처리되면 이제 연주성으로 복귀해야겠다.”
그러는 와중에도 겨울바람은 불어왔다.
조조는 바람에 맞춰 거칠게 펄럭이는 검은색 군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앞으로 내정에 집중해야겠지만, 그것이 끝난다면 이젠 외정만이 남았다.
“그래도 당분간은 평화롭겠군.”
바람은 아직도 세차게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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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동시적으로 진행되려던 것을 묶어 한 번에 정리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서주에서 있을 일 뿐이네요. :)
이번에는 소연 아씨와 동행하는 전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