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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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유비가 언제나 신경 쓰던 것이었다.
어릴 적에는 이 귀로 얼마나 놀림을 받았던가. 그건 아직 그녀에게 있어 채 씻기지 않은 상처로 남은 것.
갈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도.
유소년기에는 그것 모두가 싫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황족으로서의 자부심을 품고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다그쳤다. 황족이라고 해도 너무 거리가 먼, 사실상 피라고 해도 그 흔적이나 남았을지 모를 정도로 의미가 없는데도.
어차피 돈 없는 백성의 삶은 약자의 삶이었다.
하여 그녀는 언제나 약자였다.
그런 약자의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관우와 장비. 자랑스러운 두 의형제를 데리고 온갖 전장을 전전하면서 겨우 이렇게 강해졌다.
“언니, 도적들이 물러가네요.”
“가게 놔둬.”
긴 생머리를 흩날리는 관우를 바라보며 그녀가 생긋 웃었다. 어차피 아군의 목적은 청주, 그중에서도 북해의 구출이었지 황건적의 절멸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여기서 물러나도 태산 방면이나 동아현, 그 일대로 해서 복양일까. 어차피 연주로밖에 갈 곳이 없을 거야.”
수차례의 연전에서 패배를 거듭한 이들은 이제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며 퇴각할 정도로 몰려있었다.
“연주라면 조조, 그 사람이 있는 곳이요?”
“응.”
조조.
예전부터 작은 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큰 인연은 아니겠지만, 예전 황건적 토벌 때부터 안면 정도는 텄던 상대. 그 여자라면 황건적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뜨릴 수 있을 터였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그들 역시도 약자로 몰려, 억지로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들고 일어선 이들이라는 것.
태생이 약자여서 그럴까.
유비는 언제나 강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약자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들었다. 그렇기에 저 황건적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또 어떤 이유로 들고 일어났는지도 얼추 예상이 가는 부분.
청주는 애초에 척박한 땅이었다.
그것이 과거부터 이어진 수탈과 흉년, 황건적의 난까지 겹치면서 결국 일대 전체가 무법지대에 가까울 정도로 피폐해져 버린 것.
일반 백성들이.
약자들이 그런 땅에서 버틸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자, 이제 가자. 공융 선생님께서 승전 축하로 연회를 여신다고 하니, 거기에는 참가해야지 도리가 서지 않겠니?”
“그게 어디 연회요? 사람의 고혈을 짜서 내놓는 고기가 고기인가? 그런 인간들이 내놓는 건 고기건 술이건 영 맛대가리가 없어서 싫은데.”
장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자리가 싫었다. 백성의 피륙으로 차린 식사가 어디 식사던가? 차라리 적당한 돼지죽에 가장 싸구려 술 한 잔이 더 낫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자리를 싫어하게 된 가장 큰 이유.
“그 인간, 누님 엄청 깔보고 있어.”
“그러겠지.”
유비가 쓰게 웃었다.
장비는 그것이 싫었다.
언제나 고관들이 차린 연회에 가면 유비는 항상 약자였다. 항상 헤실헤실 웃으면서 그들의 모욕을 웃어넘기는 그런 모습이 장비는 정말 싫었다.
“장비. 말을 조심하도록.”
“쯧.”
그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유비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기야 대장이라는 자가 남들 앞에서 항상 싱글거리면서 모욕당하고 있는데 마음에 들 리가 없겠지.
게다가 이 아이들은 과분하게도 이런 자신의 동생역을 자처하며 곁에 있어 주었다. 그러니 더더욱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항상 웃고 다니냐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해명 대신 웃음으로 그것을 흘려넘겼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애써 늘어놓기보다는 웃는 것이 더 편했으니까.
아무도 모르겠지.
누구도 이해하지 않겠지.
사실 이렇게 웃고 있는 자기 자신조차도 이걸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데,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며 해명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그들을 우롱하는 행위였다.
단지, 그러네.
“가자. 식사도 식으면 맛없잖니?”
“켁, 안 그래도 맛없는 게 더 없어지면 먹을 게 못 되지. 운장 누님도 어서 오쇼. 적어도 술 배만이라도 가득 채워야겠으니까.”
“하여간 너란 아이는.”
그녀는 그런 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언제나 웃었다.
적어도 웃는 동안만큼은 괜찮았으니까.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만큼은 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동안만큼은 열등감에 사로잡힐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조조가 그걸 전부 막을 수 있을까요?”
관우가 그녀에게 살짝 붙어 작게 속삭였다.
기존에 연주에서 전부 몰아내지 못한 황건적의 숫자도 숫자지만, 이번 청주에서 연주로 다시 넘어간 이들의 숫자도 상당했다. 그들의 식솔까지 전부 합친다면 못해도 수십 만에 달할 머릿수.
한 번 막았다고 해서 두 번 막아낼 수 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관우도 조조와는 일면식이 있었기에 다소 걱정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
거기에 유비는 작게 속삭였다.
“너는 그 사람이 지는 광경이 상상이 가?”
안타깝게도 유비 자신은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조조라는 여인이 참패하여 목숨을 잃는 광경을 그릴 수 없었다.
“그도 그렇네요.”
관우는 전부 납득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자신보다 언니인 유비가 훨씬 나았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청주의 황건적 대다수를 몰아냈다.
연주에서는 고생 좀 하겠지만, 적어도 공손찬이 유비에게 내렸던 명령만은 성공적으로 이행하게 된 셈. 이제 공손찬이 청주로 영향력을 뻗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성되었다.
원소와의 전쟁이 다소 멎었다고 해서 행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대한 쓸 수 있는 수단은 전부 활용하지 않으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조조는 원소계의 사람.
유비는 공손찬계의 사람.
한때는 같은 군문에서 싸웠던 두 사람이 결국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적이 되었다. 유비는 그것이 못내 우습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려나.”
“전해 장군은 아마 청주에 대기. 그러면 언니도 자연스레 이곳에 잠시 머물게 되겠지요. 공손 군수는 결코 청주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러겠지. 사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앞으로는 청주 일대에서 공손찬의 영역을 넓혀야만 했다. 한때 가진 것 없던 유비를 보살피며 군을 쥐여주고 관직을 쥐여준 것에 대한 보답.
그러나 언제까지 그를 따라가야만 할까.
답은 보이지 않았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녀는 그리 다짐하며 의형제 둘의 등을 떠밀었다. 갑작스럽게 떠밀려 당황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유비는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가자!”
“아, 좀! 깜짝 놀랐네.”
“언니, 갑자기 무슨.”
투덜거리는 의형제의 모습마저 귀엽게 보였다.
* * *
조조가 이끄는 군이 황건적 토벌을 위해 출정식을 치렀다. 총 병력 이만오천. 많지 않은 병력이지만 황건적의 전력이 정예가 아니니 충분하다던가.
“조공도 참.”
군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진궁 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병력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그녀였던 만큼 이번 원정을 다소 불안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진궁 선생님도 불안하십니까?”
“정말이지. 조공께서는 제 말은 항상 귓등으로 듣는다니까요? 전호 장군도 보셨잖아요. 알겠다, 알겠다 하면서 시선만 돌리는 거!”
“그건 특별취급이잖아요.”
회의장에서 진궁 선생을 제외하고 조조에게 그리 강하게 발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아가씨도 마찬가지였고, 친인척인 조가의 인물과 하후가의 인물들도 그러했다.
오로지 진궁 선생만이 유일했다.
그 조조에게 잔소리한다니, 솔직히 나 같으면 그런 특권은 줘도 사양하고 싶은데. 물론 진궁도 전부 조조 잘되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그 깐깐한 조조도 그녀를 특별히 아끼면서 그런 권한을 은연중에 쥐여준 거겠지. 조조의 친인척을 제외하면 그런 대우를 받는 건 아가씨나 진궁이 전부였다.
“특별히 대해줄 거라면 하는 말부터 잘 들어줬으면 좋겠네요. 하여간 말 안 듣는 건 딸내미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뭐 외견만 보면 조금 장성한 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기는 하지. 진궁 선생의 따님 나이가 이제 열다섯이라고 하던가.
아직도 공부 중이라고 들었는데, 만날 기회는 없었기에 정확히 어떤 아이인지 알 길이 없었다. 말만 듣자면 말은 죽으라고 안 듣는 말괄량이가 떠오르는데.
“조공도 다 생각이 있겠죠.”
“그 사람은 항상 무리만 해요. 조공은 가끔 타인, 어쩔 땐 자기 자신마저 반상 위 돌 하나로 취급할 사람이잖아요? 전호 장군도 앞으로 조공을 모실 때는 그걸 유념하세요.”
그런가?
좀 성격이 독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물론 진궁 선생은 예전에 조조와 행동을 함께한 적이 있다고 하니 내가 모르는 조조의 다른 일면을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조조는 자비가 없는 듯 보여도 일단은 합리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진궁 선생이 아는 조조는 이것과는 조금 다른가.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녀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장군은 특히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저요? 아니 뭐, 그야 조심은 하겠는데.”
대체 무엇으로부터? 진궁 선생은 조금 전까지 미소를 짓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표정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한 발짝 다가오며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다.
“조공이 어떤 명령을 내려도 전호 장군은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요. 저렇게 보여도 급할 때는 정말 대책 없이, 조금 너무 과감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과감하게 움직인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그녀의 말투 어딘가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었다.
진궁 선생은 조조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게다가 가끔은 정말 비정해지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잠깐 떠드는 사이 벌써 조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제는 병사들의 후열 정도만이 겨우 시야에 잡혔다. 이러고 더 있어 봐야 시간의 낭비겠거니 싶어 진궁 선생의 뒤를 따랐다.
“어떤 면이 비정한 겁니까?”
물론 과거 영천 전투에서도 나는 그녀에게 비정, 냉정하다는 인상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군법과 명령 하에 벌어진 일. 적어도 내가 아는 조조는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말한 거라면 문제는 없겠지만.
아마 어투로 보아 진궁 선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녀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직은 말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그날 이후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런 일도 없다면 전호 장군에게 조공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거잖아요?”
“좋은 사람이요? 괴팍한 사람이면 모를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궁 선생이 소리까지 내며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입을 황급하게 가리고 고개를 숙이며 몇 번인가 쿡쿡거렸을까.
“아, 그런 면이 있으시긴 하죠.”
“솔직히 그 사람이 괴짜 아니면 뭡니까.”
“그렇긴 해요! 그러고 보면 저번에도 말이죠?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고 하기에 갔더니 식사는 어디 가고 온갖 술상만 차려놓고….”
그녀는 조금 전까지 침울했던 기색을 털어내고는 다시 밝게 웃었다. 역시 진궁 선생은 저런 환한 표정을 지을 때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잡담을 하며 관청으로 향했다. 이제는 군이 떠난 이후의 행정업무가 남아있었다.
단지 궁금한 점이 하나.
진궁 선생은 조조의 어떤 면을 보았을까.
적어도 그녀를 비정하다고 말하던 표정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적어도 진궁 선생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면모를 보았다는 것.
그렇다면 그건 대체 무엇일까.
“전호 장군?”
“아, 갑니다.”
진궁 선생은 배시시 웃으며 내 어깨를 찔렀다.
“이번에도 도망가면 사마의 그 아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저번에 도망치셨을 때 이래로 다음에도 그러면 목줄을 채워버리겠다고 이를 갈면서 벼르던데요.”
“이런….”
목줄 찬 성주라.
그건 그것대로 명물이 될 느낌이었다.
대상이 나만 아니라면 웃으면서 구경하러 가고 싶은 것을. 안타깝게도 정말 목줄까지 채워진다면 서류작업용 가축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꼬마는 하겠다고 하면 진짜로 할 녀석이었다. 자기보다 어린 소녀에게 목줄이 채워져 밤새 서류작업을 하는 성주라.
웃음거리로 삼기에도 불쌍하다.
“이번엔 조심해야겠네요.”
“안 해야겠다가 아니고요?”
그럴 수야 있나. 어떻게 사람이 좀 쑤시게 하루 죈 종일 앉아서 붓이랑 인장만 들고 있을까. 당연히 바깥바람도 좀 쐬고 그래야지만 머리도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기엔 제 자유를 향한 갈망이.”
“그건 그냥 농땡이가 아닐까요?”
이 선생님이?
가끔 진실로 사람 후려치는 게 예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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