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33화 (133/343)

13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청주병 192년 11월.

슬슬 겨울 칼바람이 불어오는 시점.

연주에서 떠나 다시 복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인데, 아직 전후처리도 한창이던 와중 복양 인근으로 청주의 황건적이 다시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분명 작년 겨울 끝자락에 연주로 침공했던 황건적이 물러나고 얼마나 지났다고 또 황건적이 무리를 짓고 달려드는 건지.

덕분에 조조와 연주 일대에 있던 그 아래 제장들까지 전부 모여 현재 복양성에 주둔하며 언제든 황건적을 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생, 요즘 좀 피곤해 보이네.”

“아무렴요.”

조홍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나 지났다고. 애초에 불과 작년 이맘때에 완벽하게 박살이 났던 것이 황건적 아니던가. 그런 이들이 뭐 좋을 것이 있다고 다시 연주로 달려든다는 말인가.

덕분에 상황이 꼬여버렸다.

“귀찮게 됐어요. 불과 한 달 전에 소집 해제했던 병사를 다시 모으는 것도 힘든 일인 데다가 복양성이 사실 이 많은 군을 먹여 살릴 정도로 생산력이 좋은 지역은 아니잖아요?”

사실상 복양은 교통적인 이유와 전략적인 이유를 복합적으로 생각해서 지어진 성체였지 결코 자원이 풍부해서 지어진 성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물자를 운송 받아 버텨야 하는데, 그게 뭐 어디 말처럼 뚝딱 옮겨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겨울에 들어섰는데 세금을 걷을 수도 없으니 이것도 결국 사들여야 하는데, 이것도 돈.

옮기는 것부터 사들이는 것까지.

“요즘 조공 표정 봤잖아요. 미친다니까. 세상에 어떻게 나까지 불러 놓고 서류 작업을 시키는지. 지금 문관 선생들 표정 다들 날이 서서는, 어휴.”

“바쁘기는 하지.”

참고로 조홍 선생은 서류 업무를 돈으로 해결했다는 뒷말이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일거리가 확 늘어난 건 예산의 조정이라던가 감축 등으로 바쁜 것. 요컨대 전부 돈이 없어서 이렇게 바쁜 일이었다.

이 부잣집 아가씨는 그걸 깔끔하게 조조에게 기부하는 형식으로 돈을 내고 빠져서는 지금도 이렇게 치안 업무라는 핑계로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상황.

솔직히 좀 부럽다.

“그런 동생도 지금은 한가해 보이는데?”

“도망쳤으니까.”

아마 관청에선 지금쯤 사마의가 아저씨이이이이이이이!! 하고 외치는 비명이나 절규 비슷한 무언가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지 않을까.

그치만. 벌써 열흘 내내 앉아서 일만 했다고.

난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누님한테 놀러 찾아온 거고?”

“아니 그냥 집 가려다가 마주쳤을 뿐이요.”

놀러 올 시간이 어디 있나. 그냥 우연히 집 가는 방향으로 후다닥 달려가고 있자니 저 멀리에서 조홍 장군이 흐느적거리면서 걷고 있는 게 보였을 뿐이었다.

애초에 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어. 그걸 붙잡아서 이렇게 수다를 떠는 건 이 여자였지, 결코 본의로 이 자리에 붙들려 있는 게 아니었다.

“쌀쌀맞기는. 조금 더 붙임성이 있는 동생이었으면 누님이 참 좋겠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싫소.”

짤그랑.

동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뭐, 붙임성이라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옳지, 옳지. 이 누님은 말 잘 듣는 동생이 아주 좋아. 명심해. 누님 기분을 좋게 해주면 돈주머니가 풀릴 수도 있다는 거, 이거 중요하니까 잘 기억해둬?”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론 조조는 이 이상 개인의 손을 빌릴 수 없다고 했다. 하여 조홍에게 구태여 돈을 지원해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 있지만, 그게 나랑 알 바인가.

최소한 나만이라도.

적어도 복양성에만이라도 기부를 좀 해주시면 어떻게든 성 내 업무는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면 조조가 뭐라고 해도 응 우리는 일 끝났어, 라고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처신 잘하라고, 알겠니?”

“예입.”

이래서 돈이 최고라는 거다.

도적으로 살 때는 몰랐는데, 정작 관리가 되어 지역을 맡아보니 세상 모든 일은 전부 돈과 연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우선 발전을 시키려면 세금으로도 모자라서 사비를 털어야 할 정도로.

물론 지역 유지들의 협조도 어느 정도는 받아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세금이 부족한 현상도 어떻게든 해소되기는 할 것인데, 그러기도 전에 차례차례 적이 몰려오고 있다.

“어때? 이번 황건적, 다시 이길 수 있겠니?”

“모르겠네. 우선 난 그 전쟁에는 안 나서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잘해줘야겠지만, 어지간해서는 이기지 않겠나?”

“어? 안 나서?”

조홍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말하길 최근 우리가 너무 눈에 띄었다던가. 어느 정도는 공적을 보여 지위를 확고히 다질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틈도 없이 모든 전장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조조도 딱히 나나 아가씨를 데리고 갈 생각은 없어 보였고. 그러니 전장 시작 전까지만 고생하면 그 뒤에는 잠시나마 손 놓을 수 있었다.

“그래? 동생이라면 잘해낼 것 같았는데.”

“뭐, 정치적인 부분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고. 그냥 명령하는 거만 맞춰서 따라야지.”

안타깝게도 정치적인 관점이나 이해관계에 대해선 영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당장 사마의가 끌고 갔던 복양 인근 호족 연합 모임에서도 사실상 병풍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언니도 구태여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생각이 있는 걸 테고. 그래도 저번 복양성 수성도 잘했으니까 조금 기대했는데.”

“조홍 장군도 대기요?”

“응? 아, 난 따라가.”

그러면 조금 안심이었다.

그녀는 평소 살짝 푼수인 데다가 돈만 많은 부잣집 아가씨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지간한 무관 정도는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강자였다.

당시 황건적과의 수성전에서도 그걸 느꼈다.

강하게 휘두르는 패검은 내 검의 결과는 또 다른 궤를 가진 것. 내가 단지 효율적으로 빠르게 휘두르는 행위에 중심을 둔다면, 그녀의 검은 힘에 맡기면서 상대를 확실하게 찍어누르기 위한 검이었다.

평소 행실 탓에 이래저래 무시를 당하긴 하지만, 실상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자여서 제법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일을 농땡이 치는 모습만 보여서 그렇지, 사실 전장에 나서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지금도 여전히 농땡이 치고 있기는 하지만.

돈도 많은데 실력도 좋아?

세상 참 불공평하다.

“아, 그때 얘기를 하니까 다시 생각난 건데. 걔들은 여길 왜 다시 왔을까? 나였다면 아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을 건데.”

“그러게나 말이요.”

조금 논점이 틀어지긴 했지만, 확실히 그녀의 의문에도 일리는 있었다. 청주에서는 사실상 그 황건적을 물리칠 세력이 없을 것인데, 구태여 다시 연주로 넘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숫자가 몇이던가.

복양성을 공격하면서 죽은 숫자보다 다른 요인으로 죽은 황건적의 시체가 훨씬 많았다는 걸 생각했을 때 이번에 다시 황건적이 밀려들어 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공손찬이 움직였다고는 하던데.”

“고작 오천 보냈다고 그 많은 황건적을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공손찬은 지금 원소랑 대치 중인 상황인데, 정예로 꾸렸을 리도 없고.”

이상한 일이었다.

무언가 다른 요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우선 그쪽은 그쪽이고 우리는 당장 연주로 넘어온 황건적의 배제부터 생각해야만 했다.

“고생 좀 하쇼.”

“동생, 말하는 게 조금 그러네?”

뭐 어쩌겠나. 실제로 황건적 토벌에 나서는 건 내가 아닌데. 이쪽을 살짝 째려보는 시선을 애써 웃어넘기며 길을 걸었다.

전쟁이 끝나니 또 다른 전쟁.

아직 세상은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벌써 이번 해에만 몇 번의 전쟁을 치르는 건지. 이래서야 언제 다시 천하에 평화라는 것이 찾아올는지.

“아저씨이이이이!!”

“아.”

저 뒤에서 소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하핫, 동생도 수고하고.”

“시발.”

진작에 집으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 * *

“설마 황건적이 연주로 갈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턱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 서주 바로 북쪽에 있는 청주 일대에 공손찬의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들었지만, 설마 기존 청주에 자리를 잡았던 황건적이 연주 일대로 근거지를 옮길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서주로 넘어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연주. 그중에서도 당장 작년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배출했던 복양 일대에 자리를 잡을 건 또 뭐람.

“조조도 곤란하겠네.”

이제야 막 비상하기 시작한 연주에 잇달아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황건적에 원술, 아래로는 여포가 자리를 잡았고 위로는 다시 황건적이 몰려온다.

“곤란 없음.”

그걸 지켜보던 아직 어린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전까지 책을 붙잡고 열심히 읽고 있던 아이가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었던 그녀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즘.

“조조군, 현 중원 가장 빠른 발전. 여력 있음.”

“량아. 너 말 좀 똑바로 하랬지.”

“싫음.”

무표정하게 단답형으로만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교육을 잘못했을까. 예전에는 그래도 제대로 된 아이였는데.

“조조는 패하지 않음.”

“그야 그렇겠지만, 숫자가 숫자라 고전할 수도 있잖니. 게다가 당장 겨울 한복판에 다시 군을 움직여야 하는 조조도 골치가 아플 걸?”

당장 가을에는 원술과의 격돌했던 조조의 연주군이었다. 연이은 전투는 결코 그녀에게나 연주에게나 달가울 것이 없는 상황.

“위기는 기회로 바꿀 수 있음.”

“얘가 그런데 진짜.”

제갈 가문의 신동.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명석한 두뇌로 두각을 드러낸 아이였지만, 왜 꼭 천재형인 사람들은 이렇게 머리 어딘가가 아픈 걸까.

게다가 이 아이의 가장 큰 문제.

“너 진짜, 말 똑바로 하랬지!”

“머리 곤란! 나빠짐!!”

그 비명을 무시하고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그러니 금새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녀를 노려보는 소녀.

“눈 똑바로 안 떠!?”

“잘못했음! 자, 잘못했어요! 아, 때리지 마!!”

하여간.

그녀는 소리를 빽 지르며 도망가는 소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저런 말투에 재미를 들려서는 꼬박꼬박 단답형으로 저러는데, 정작 구박 좀 하려고 하면 평범한 어투도 사용한다.

“에휴, 진짜.”

이상한 동생을 둔 자기가 잘못이라며 또 한숨을 내쉰다. 동생은 분명 어린 나이임에도 평범하지 않은 통찰력과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탓인지 그냥 성품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저런 괴짜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와 별개로 조조의 승을 단언하는 소녀의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곤란할 것도 없다는 말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조조가 다스리는 연주는 현재 어느 주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천하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제 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벌써 중원 일대에서만 몇 번인가 전쟁이 연달아 치러지는 상황이었다.

“언니 나쁨! 숙부한테 이름!!”

“아니 근데 얘가 진짜!”

어린 동생이라고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일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회초리 하나를 들고는 동생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건 반칙, 아니 진짜 반칙이잖아아!!”

아직은 어린 소녀.

제갈량은 언니를 피해 달리면서도 중원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조조는 분명 수월하게 황건적을 격퇴하리라. 이건 이미 그간의 전적과 전력을 비교해 보았을 때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청주.

왜 황건적들은 청주를 피해 연주로 다시 넘어가게 되었을까. 당장 청주 일대의 황건적이 가장 큰 피해를 본 곳도 연주였는데.

청주에서는 황건적에게 저항할 세력이 없었다.

이건 관군도 마찬가지라, 그랬기에 그들이 그리 큰 세력을 유지하면서도 아직 토벌당하지 않았던 이유.

공손찬이 지원군을 보냈다는 소식은 언니에게서 들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현재 원소와 계속 대치하면서 산발적인 국지전을 일으키고 있을 터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공손찬이 그리 많은 군을 돌릴 형편이 아니라는 것쯤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원소에게 한 번 대패했기 때문에 더욱 칼을 갈고 있을 사람이 백만의 황건적을 연주로 내몰 대군을 보냈을 리 없었다.

대체 누가.

누가 청주의 황건적을 연주로 몰아냈는가.

“잡았다.”

“어, 언니? 회초리 무엇? 진심?”

그 뒤, 어린 소녀의 비명만이 처량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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