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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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서 마지막까지 조조한테 살려준 거 잘 말하라면서 손을 흔들더라. 솔직히 너무 제멋대로 할 말만 떠들고는 떠나버린 꼴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내 목은 진즉에 떨어졌고,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이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렇지만 내 옆에는 운이가 있었고 사마의도 있었다.
아직 숨은 붙어있었다.
이번에도 겨우 살아남았다.
겨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그러나 여포라는 상정하지 못한 존재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과 짜증. 여러 복잡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는 손견의 목이 보였다.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셨는가. 이렇게 쉬이 죽을 양반은 아니었는데. 물론 전쟁이라는 것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하는 것이었고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죽어선 안 될 사람은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손견도 마찬가지.
그저 전쟁이라는 큰 흐름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전까지 검을 맞대던 이 강자가 목만 남아 바닥을 구르는 광경이 영 익숙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살았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운이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전신이 욱신거리는 것이, 억지로 선 것은 좋았으나 더는 버티고 있을 힘도 없었다.
“여기서 미안한데, 나 좀 저기에 실어주라.”
그리 말하며 그녀에게 기대 몸에 힘을 뺐다.
점점 눈이 감긴다. 피도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았고, 솔직한 말로 지금까지 의지로 어떻게 버티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지쳐버렸다.
조금만 자자.
어차피 전쟁도 일단락되었겠다.
조금만 잘게. 그건 괜찮잖아?
* * *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황을 전부 끝까지 보고받던 조조에게는 아직도 전차에 실려 오던 전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기어이 손견에게서도, 여포에게서도 살아남았는가. 그것이 못내 기특하면서도 다친 모습을 생각하자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여포 봉선.
그 말괄량이 천치가 이 전장에 끼어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여포라는 변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단지 그녀가 아군을 적대할 생각은 없다는 보고가 유일한 위안일까.
“우선 손견의 목은 받았다. 반면 여포는 아군에게 적대적으로 나올 생각은 아니라고 했으나, 그걸 온전히 믿을 수만도 없는 노릇.”
조조는 그리 말하며 진궁을 바라보았다.
“그대의 생각은 어떻지?”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자칫 잘못하여 이리를 내쫓겠다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아닐까 우려되네요.”
적의 숫자는 아직 많았다.
손견의 전사는 예상외의 전과였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원술의 군은 아직 건재했다.
여포의 군이 두 갈래로 나뉘어 한 무리가 원술의 군을 크게 내쫓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정도의 피해라면 원술군에게 치명타는 아닐 터.
조조의 군이 숫자가 적은 상황에서 여포가 참전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바보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여포가 무얼 노리리라 생각하는가?”
“그녀는 동탁군의 깃발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변수인지라, 만약 여포 개인으로 참전한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조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정보가 너무 적었다. 여포가 왜 이곳에 도착했는지, 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여포는 초전에 진군하며 아군도 공격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전호를 살려둔 것을 호의라고 하기에는 영 마뜩잖은 부분도 있는바.
여포가 참전하면서 전세가 혼란스러워졌다.
원술은 이것을 어찌 받아들일런가. 조조의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우선 명확한 것은 여포를 적대할 수는 없다는 것.
두 세력 간의 교전에 등장한 제삼세력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만한 힘이 있었다. 어떤 경유이고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군에게 호의를 보였다면 그 호의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 정도로 조조군의 상황은 썩 좋지 못했다.
적어도 원술과 여포를 동시에 적대한다면 끝장이었다.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렇다면 그녀가 당장 취해야 할 자세도 단 하나.
“여포에게 사자를 보내지. 정식으로 교섭해야겠다. 그 짐승이 무얼 원하고, 어떤 목적이 있어 장안을 뛰쳐나왔는지, 우선 그것부터 명확하게 해야지.”
머리가 아파 왔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것이 많았는데, 그런 와중에 여포라는 전혀 판이한 이해관계를 맺은 적의 등장은 전혀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만약 여포의 손을 빌려 원술을 격퇴한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는 여포라는 짐승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를 판국.
그 모든 것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조공, 괜찮으십니까?”
“아. 별거 아니다. 그냥 두통이 조금 올라왔을 뿐. 그대는 괘념치 말라. 그것보다는 사자의 건인데, 그대가 나서줄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요.”
진궁의 대답에 조조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연주 내 지지를 안겨준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능도 범상한 이들 못지않은, 사실상 현 참모진 중 그녀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진궁이니 이런 일에도 능히 믿을 수 있는 사람.
“여포가 무얼 원하던 일단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도록. 홀로 정하지 못할 문제라면 본인의 이름을 팔아도 좋다.”
“물론이지요.”
앞으로 정세는 더욱 복잡하게 돌아가리라는 예상이 들었다. 그러니 여포의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면 반드시 얻되, 만약 터무니없는 것을 원하고 들어온다면.
그때는.
“당장 여포까지 처리할 힘은 없다.”
“아군에게도 한계는 있으니까요. 당장 여포의 군도 현 아군보다는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뭐가 됐건 여포와는 척을 질 수 없긴 하네요.”
“답답하군.”
힘이 부족했다.
그렇게 시간을 재촉하며 몸집을 키웠음에도 아직 천하에는 조조보다 강한 강자들이 너무 많았다. 원소나 공손찬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장안의 동탁도 그녀보다 훨씬 강했고 형주의 유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원술 또한 그녀보다 많은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장 원술과 합을 맞춘 서주의 도겸 역시도 무시할만한 군사력은 결코 아니었으니, 정말 사방으로 조조가 만만히 볼 수 있는 세력이 단 하나도 없는 것.
쉽지 않았다.
그렇게 조조의 고심이 깊어졌을 때.
“조공, 바깥에 소연 별가께서 도착해 계십니다.”
“벌써?”
서주에서 도겸의 군을 무찔렀다는 전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소연이 군을 이끌고 도착했다는 소리에 조조가 살짝 의문을 표했다.
물론 빨라 나쁠 것은 없지만.
“우선 들라 하도록.”
이제부터는 더 바빠질 터. 이럴 때 지휘관의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원술과 여포.
앞으로도 문제는 산재해있었다.
* * *
여포가 도착한 이래로 전쟁은 쉬이 해결되었다.
조조가 여포와 손을 잡고 원술을 공격하니 기존 병력 우위를 잃은 원술군은 쉽사리 무너졌고, 조조는 무려 연주 너머 예주 중심부까지 원술을 계속 추격하여 아예 군 자체를 궤멸시켰다고 들었다.
물론 그냥 듣기만 한 것은 부상으로 참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던 것인데, 그래서 지금도 사마의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상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하여간, 뭐 매번 그렇게 다쳐서 와요?”
사마의가 따라주는 차를 벽에 등을 기댄 상태로 받았다. 따듯하게 손을 덥히는 찻잔. 여름이라 좀 시원한 것을 원했지만, 이 꼬맹이는 다친 몸으로 무슨 찬 것을 찾냐면서 약재 잔뜩 넣은 차를 우려댔다.
이거 좀 써서 싫은데.
“좀! 애처럼 자꾸 편식할 거에요?”
아니 편식이고 자시고, 이거 애초에 음식도 아니잖아. 무엇보다 뭘 넣었는지 냄새가 너무 역했다. 물론 마시고 나면 몸 안쪽에서 따스해지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달갑게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차라리 술을 덥히고 거기에 섞어주지.”
“다친 몸으로 술은 무슨.”
사마의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들이켜는데, 입에 머금자마자 코에서부터 느껴지는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걸 억지로 참으면서 삼키는데, 정말 숨을 쉴 때마다 그 약이 남은 느낌이다.
단적으로 정말 선호하지 않는 맛이었다.
앞으로도 선호할 일이 없겠고.
“이거 마시기 싫어서라도 안 다친다.”
“제발 그래 주시고요.”
사마의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찻주전자를 옆으로 치웠다. 어으, 아직 입안에 역한 향이 남은 느낌인 게 며칠째 마시는 건데도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래서? 아가씨는 어떻게 됐어.”
역한 냄새를 꾹꾹 참으며 말을 꺼냈다.
이번에 조조가 여포와 연합하여 예주까지 진격하는 길에 아가씨도 동반했다고 들었다. 서주 지역 방어에 성공했다면 거기서 좀 쉬어도 됐을 것을.
“성공적으로 원술군은 궤멸. 여포는 예주에 남았고 조공과 주군은 곧 돌아오시겠네요. 참, 죽 쒀서 개 주는 꼴도 이런 꼴이 없다니까요.”
“여포가 예주에?”
예주라면 연주와 바로 국경을 마주한 남쪽 지역이었다. 그런데 거기를 동탁군인 여포가 왜 차지하는가. 동탁이 갑자기 예주를 점거할 이유가 있던가.
“아마 이번 원술의 공세에 동탁 쪽도 조금 당황했겠죠. 여포가 말하기를 동탁도 병에 걸렸다고 하던데, 원술을 빌미로 여포도 빠져나왔다. 우선 조공은 그리 전하셨어요.”
진궁과는 그래도 나름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마의가 말한 것이라면 확실하겠지. 진궁 선생에게 조조가 거짓말을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여포가 예주자사, 혹은 목인가?”
“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포가 바로 옆집에 자리를 잡는다.
이게 과연 길일지 흉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이번에 조조가 여포에게 받은 도움은 생각보다 컸다.
물론 여포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원술을 잡을 생각이었겠지만, 여포는 아예 동떨어진 제삼세력.
자칫 여포가 원술과 손을 잡았더라면 벌어졌을 일은 끔찍했기에 차라리 손을 잡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멀리할 수 없다면 손을 잡는 것이 옳은데, 그 뒤처리가 조금 문제였다.
“여포는 이번 전공을 빌미로 조조에게 예주의 지배권에 대한 상소를 올려달라고 요구했어요. 동탁 입장에서도 여포가 제어가 안 된다면 차라리 중원을 견제하게 놔두는 게 나을 수도 있고요.”
“하이고, 연주를 안정케 하고 얼마나 지났다고 옆집에 무서운 사람이 이사를 왔네. 이거 골치 좀 썩겠지?”
“아무렴요. 조공은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아마 속으로는 여포를 수백, 수천 번 죽였을걸요? 아마 밤마다 가구 하나 부숴도 이상하지 않겠죠.”
사마의는 그리 말하며 태연하게 자기 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저거 역하던데 쟤는 잘도 마시네. 난 돈 받고도 먹기 싫던데.
찻잔을 끝까지 들이켜고 한숨을 내쉰다.
“다 된 밥에 재도 이런 재가 없어요. 예주는 원술만 몰아낸다면 사실상 무주공산. 천천히 시간을 들여 지배권을 얻어냈어도 문제가 없던 땅인데, 그걸 대뜸 등장한 여포한테 홀라당 먹힌 셈이잖아요?”
내가 아는 조조는 결코 이런 손해를 용서할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시기가 절묘하여 여포에게 예주를 홀라당 뺏겼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으려 들겠지.
불편한 동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서로 옆집에 자리 잡았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게다가 조조는 언젠가 반드시 여포를 쳐내려 들 터였다.
적어도 본거지 바로 아래에 그런 통제 불가능한 짐승을 키울 정도로 조조라는 여자가 성격이 좋지도 않았고, 바보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골치가 아파 왔다.
여포가 저번 만남에서 친하게 지내자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묘하게 이쪽의 눈치를 보는 듯하면서도 다소 천진난만하게 웃던 얼굴.
그 괴물에게도 그런 얼굴이 있구나 싶었던 순간.
그녀는 우리에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며 손을 흔들었다. 예전부터 조조와는 악연이었을 건데, 안타깝게도 여포는 그런 부분까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관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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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마의의 일러스트는 개미인간님에게 부탁드렸습니다. :) 너무 기쁘기 그지없네요.
손견은 안타깝지만, 이번 기회에 퇴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