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28화 (128/343)

12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양면 전쟁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몰랐다.

애초에 힘이 빠져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겠는 것이, 전신에서 느껴지는 탈력감은 보통 것이 아니었다. 한 발짝도, 정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어서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손견의 군은 퇴각 신호가 울림과 동시에 일사천리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여포가 왔다는데,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여포가 들이닥친다면.

당연히 죽겠구만.

“으아, 존나 힘드네.”

여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손견의 군이 물러갔다는 것. 나머지는 모르겠다. 여포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만약 그 여자가 아군 진영으로 달려오고 있다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 아닌가.

일단은 좀 쉬자.

답이 안 나온다.

“오라버니!! 어디세요? 오라버니이이!!”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조운인가. 하기야 손견군이 전부 퇴각하고 있으면 조운과 싸우던 이들도 다 퇴각했겠구나.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네.

“여기, 여기. 여깄다 야. 들리냐?”

겨우 힘을 짜내어 목소리를 조금 높이니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에서 조바심이 묻어나는 느낌이라 저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오라버니, 괜찮…!!”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조금 올려보니 운이의 속옷이. 아니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저 어깻죽지에 박힌 화살이 눈에 띄었다.

“뭐냐. 어깨에 장신구 하나 장만했어? 그러기에 조심 좀 하지. 다치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이 못난 여동생.”

“오라버니만큼은 아니거든요?”

그도 그런가.

아직 왼쪽 장딴지에 박힌 비도를 빼지도 못했다. 애당초 이거 아무 조치도 없이 뽑아내면 피만 더 나온다. 괜히 다리를 움직이면 진짜로 근육이 갈기갈기 찢길 확률도 있었기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적, 강하디?”

“제가 더 강했어요. 활 잘 쏘는 사람이 있긴 하던데, 적어도 한 명은 반죽음 상대로 만들었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제가 이겼어요.”

퉁명스레 말하는 운이의 모습이 우스웠다.

“그러네. 나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손견 목 쳤다. 아까웠지. 조금만 더 있었으면 내가 이겼는데.”

“그렇게 다쳐놓고요?”

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허세를 떨까. 실제로 손견을 강동의 호랑이에서 복날에 개로 만들어 정말 개 패듯이 패놓았으니 어떤 의미로는 무승부가 아닌가.

좋게 생각하자고, 좋게.

“그나저나 여포가 온다는데, 뭐 아는 거 있냐?”

“저도 들었는데, 저 멀리에서 군이 하나 몰려오고 있긴 해요. 붉은색 깃발을 달고 있는 군대. 아마 여포가 맞겠죠.”

미치겠네, 그 여자가 여긴 또 왜 왔다냐.

지금 당장 여포와 연전을 벌이라고 하면 답이 없었다. 정상이어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든 상대였는데, 지금 나를 포함한 아군은 손견과의 일전으로 많이 상해버렸다.

“도망갈까?”

“일단 업히세요.”

거참, 농담이다. 뭘 진지한 얼굴로 업히라는 거냐. 어차피 지금 당장 도망간다 하더라도 여포의 기동력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음인데.

“이대로 있으면 진짜 죽어요. 빨리 일어나요.”

“여기서 도망가면 조조 그 여자가 가만히 두겠냐? 게다가 도망갈 곳이 어디에 있다고, 이 평야에서.”

“일단 살아야죠! 뭔 소리를 듣던 일단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잔말 말고 일어나요. 못 일어나겠으면 말해요. 억지로라도 업게.”

하여간, 고집하고는.

그렇지만. 음. 그렇긴 하네. 일단 살긴 살아야겠지.

실제로 손견군이 퇴각하고 제법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여포군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진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군의 돌파력을 생각하면 조금 위험한 시간대긴 했다.

업혀서 가라는 건 조금 낯부끄럽긴 한데.

“그러면 실례 좀 할….”

거기까지 말을 이었을 때였다.

기마의 소리가 들렸다. 그 말발굽 소리가, 그 투레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저 멀리에서부터 말발굽이 대지를 두들기는 감각이 등을 타고 울리고 있었다.

“야, 소용없겠다.”

청강이 어디로 갔더라. 고개를 한참 돌려보니 저 멀리에 떨어진 청강이 보였다. 그래도 누가 냅다 주워가진 않았네. 그건 좀 다행이었다.

“저거 좀 가져와 줘.”

“…알겠어요.”

옳지.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운이가 순순히 청강을 가져왔다. 그걸 다시 쥐고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청강을 바닥에 찔러 지팡이처럼 삼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푹 박혀서 되려 일어나기 힘들었다.

명검이란 것도 조금 생각해볼 문제네.

“오라버니, 일어나지 마세요!”

“됐다, 됐어.”

그녀가 몸을 부축해주어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장딴지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 이대로 움직이면 과다출혈 이전에 장딴지 근육이 다 망가지겠지.

손을 내밀어 장딴지에 박힌 비도를 빼버렸다.

“아으, 아파라. 이제 됐으니까 넌 도망가라.”

어차피 나는 여기서 더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운이는 다른 것이, 화살 몇 대 맞았지만 움직이기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그러면 살 사람은 살아야지.

“오라버니.”

“됐고. 가라고.”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손만 휘휘 내저었다.

여포가 오건 여포군이 오건, 지금의 아군에게 그것에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어이가 없게도, 호랑이를 막아 세울 생각이었는데 이젠 용을 상대하게 생겼다.

현실미가 없다고 할까. 어이가 없었다.

“싫어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뭐, 당연히 그럴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조금은 듣는 척이라도 하면 어디 덧나나? 이래서는 다 같이 죽는 꼴인데.

“게다가, 저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어? 뭔 소리냐.”

운이는 말 대신 행동으로 저편을 가리켰다.

아군 전열의 본진이 있던 곳. 아군이 전부 여포군이 온다는 말에 퇴각하려 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아군을 향해 달려오는 전차 한 대가 보였다.

“아저씨이이이!!”

“하이고. 내가 미치겠다.”

그나마 전차를 끌고 왔으니, 여차하면 다 같이 타고 도망갈 생각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휘부에서 여기까지 거리도 제법 있을 것인데.

전차가 우리 지척에 도착함과 동시에 사마의는 바로 거기서 뛰어내리고는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인사라도 해줄까 했는데, 정작 이렇게 대면하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진짜 내가 못살아요! 뭐 이렇게 많이 다쳤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사람 몸으로 호랑이를 이기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하여 웃으니, 사마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전차를 몰던 병사에게 손짓했다.

“이 인간, 빨리 실어요.”

하이고, 참. 내가 못 산다. 어이가 없어서. 이 꼬맹이가 전쟁을 우습게 아는 건지, 이런 자리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오나.

어차피 늦은 것을.

“운아, 저거 타고 도망가라. 저 꼬맹이나 지켜줘.”

“오라버니?”

이미 다 늦었다.

그녀들이 도착한 전차와 내 몸이 신경이 팔려있는 사이에 나는 계속 시선을 저 멀리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전부 늦었다는 걸.

“얼른 가라. 맘 바뀌기 전에.”

붉은 말이 보였다.

저 멀리서 손견군과 아군을 구분 없이 박살 내면서 이리로 곧장 달려오고 있는 무장. 저 손에 쥔 방천화극을 내가 어떻게 잊을까.

“얼른 가라, 여포 온다.”

“제가 남을게요. 오라버니나 타세요.”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다투고 있을 틈이 없다니까는. 아니, 이미 늦었나. 여포의 뒤로 달려오고 있을 기마대를 생각하면, 어차피 전차의 기동력만으로 저걸 뿌리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게다가 퇴각할 진로에는 이미 흩어진 아군이 산재해있었다. 아군 채로 짓밟을 생각이 아니라면 어차피 도망가기에는 너무 복잡한 길.

살려달라고 빌면 들어는 주려나.

저 멀리 보였던 붉은 말이 벌써 지척까지 다가온 것이 보였다. 그 얼굴까지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죽음은 이쪽을 보더니 행동을 멈추었다.

맹렬하게 달리던 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여포.

“뭐야, 너도 여기에 있었냐?”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에서 내렸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을 것인데, 정작 여포는 마치 옛 친구를 만났다는 것처럼 미소 지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포…!!”

“야야, 창 내려라. 너 그거지? 저번에 내 아비가 몇이고 했던. 너 시발, 운 좋은 줄 알아라. 맘 같아서는 진즉에 찢어 죽여도 몇 갈래는 찢었어.”

그녀는 운이를 바라보며 방천화극을 휘휘 내저었다.

무슨 생각일까. 아무래도 우리를 적대하지 않을 생각 같은데, 그러기에는 그간 피아 구분 없이 전부 짓밟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이야. 분명 이름이 전호였지? 넌 어떻게 볼 때마다 어디 성한 구석이 없냐? 그러게 약한 새끼가 전장에 서지 말라고 안 배웠냐?”

“약하기는. 이것도 그 손견이라는 괴물이랑 싸워서 그런 거지, 어지간한 상대면 이렇게 다칠 일도 없수다.”

죽음이 내 앞에서 친근하게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 여자에게 좋은 기억은 정말 단 한 가지도 없었지만, 여기서 괜히 반항하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포는 당장 우리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비위를 맞출 수 있다면 맞춰줘야지.

나 혼자면 모르겠다만 사마의랑 조운이 아직 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거의 죽다 살아난 시체 상태인 나와 전투에서 소모한 운이로는 여포를 막을 수 없으니까.

“손견? 아, 그 빨간 두건? 어쩐지 손맛이 없더라니.”

그녀는 그리 말하며 씩 웃었다. 일반인과 비교해도 다소 뾰족해 보이는 이를 드러내며 거칠게 웃던 그녀가 허리춤에 매인 무언가를 휙 던졌다.

데굴데굴 구르는 동그란 무언가.

붉은색이 가장 먼저 보였다.

“이거지? 손견.”

눈을 부릅뜬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머리에 두른 붉은 두건도, 이가 듬성듬성한 모습도 전부.

어떻게 잊을까.

불과 조금 전까지 생사를 걸고 대적했던 상대인데. 저 듬성듬성한 이는 전부 내가 털어낸 것, 저 붉은 두건은 손견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이었다.

“이야, 생각보다 손맛이 없어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너 이런 놈도 두들겨 팼냐? 좀 실력을 늘렸나 봐?”

그녀는 그리 말하며 발로 손견의 머리를 굴렸다.

“내가 너 두들겨 맞은 복수 해준 거다. 잊지 마라. 알겠냐? 새끼가 약해 빠져서는 뭔 피를 그리 질질 흘리냐?”

여포는 내 옆에 서서는 목에 손을 둘렀다. 한 손에는 방천화극을 쥐고 있었지만, 그것을 축 늘어뜨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듯한 행동.

운이와 사마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각자 손에 쥔 무기를 쥐고 여차하면 그대로 공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인데, 그나마도 여포는 픽 웃어넘겼다.

“어차피 나도 조조 그년이랑은 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너 지금 조조군이잖아? 그러니까 살려두는 거야, 알겠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고개를 강제로 돌려 자신과 얼굴을 맞대게 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바로 지척에 여포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흰 뺨과 갈색 눈동자.

붉은 머리카락은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었다. 일반인보다 훨씬 뾰족해 보이는 이, 오뚝하게 솟은 코.

그런 신체적인 특징이 전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여포와 마주하는 상황. 그녀도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알겠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조조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그래서 살려두는 거니, 친하게 지내자는 소리. 내가 들은 게 확실한가?

“혹시 싫다고 하면 어찌 되오?”

“뭘 어찌 돼. 그냥 내 마음이 아프고 말겠지. 그런데 그거 아냐? 자고로 자기를 아프게 하는 건 전부 없애면 안 아파져. 신기하지?”

여포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어린아이의 미소처럼 순박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럼 친하게 지내야지.”

“암! 앞으로 괴롭히는 새끼 있으면 말해. 내가 친절하게 다 죽여줄 테니까. 좋지? 이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진짜 운 튼 거야. 알겠냐?”

사실 이런 걸 협박이라고 하는 건데.

그와는 별개로 이젠 거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에 별다른 반론도 꺼내기 힘들었다.

꺼내면 죽을 테고.

단지 오른쪽 어깨에 충격이 있을 때마다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데, 두드리는 것만 좀 그만둬줬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그나저나 저거.”

말을 좀 돌리려고 손견의 목을 가리켰다.

“그럼 저 바닥에 떨어진 건 나 주는 거요?”

“어…, 원래는 조조 그 년한테 던져주려던 건데….”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전투에서 거칠고 강하기 짝이 없던 여포의 모습과는 영 상반된 모습.

“저거, 필요해?”

“있으면 좋지.”

분명 우리의 목숨줄은 본인이 쥐고 있을 것인데도 왠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저 머리를 조조에게 던지려고 했다고?

그러고도 좋게 지낼 생각이었어?

“뭐, 좋지! 저거 주면 친하게 지내는 거다?”

“나쁘지 않지.”

뭐가 나쁘지 않아. 여포랑 친하게 지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여기서 강짜 부리다가는 정말 모가지가 몸통이랑 작별하게 될까 억지로 웃었다.

일단 이제 산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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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 00시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잭팟 축하 코멘트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다리셨던 사마의 일러스트는 개미인간님에게 부탁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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