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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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또 한 번. 검을 맞댈 때마다 기력이 쭉쭉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청강이 명검이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목이 떨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사선으로, 다시 한 발짝 나서면서 가로로.
손견은 빠르고 강했다.
“입만 요란하구나, 애송이.”
한 발짝 크게 물러서고 난 뒤에야 겨우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한 번 맞붙어 싸우기 시작한 이후로는 계속 손견의 주도하에 막기에 급급했던 상황이어서 호흡이 흐트러졌었다.
“좀 세네.”
도저히 여포 정도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운이보다는 강하다. 싫어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힘과 속도, 그리고 경험에서 나오는 변칙은 전부 막아내기엔 무리였다.
갈라진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공격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린 걸 전부 받아치기란 요원했다. 손견은 빨간 두건만을 머리에 두른 채 전장에 나선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여기에서 알 수 있었다.
그야 이런 힘이 있으면 자신감이 넘칠 법도 하지.
그간 말로만 들었던 손견의 무용은 확실히 말로 전해질 법한 것이었다. 수세에 몰려 그 검을 막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더욱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도망가라.”
“살려는 주시게?”
그러니 손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등판에 검을 던져주지.”
그것 봐라. 어차피 안 살려줄 거면서. 청강의 손잡이를 꽉 말아쥐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뒤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나와 손견 주위로 누구 하나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투기장 비슷한 것이 형성된 것만 같은 분위기.
그렇지.
사실 누구라도 이런 전투에 말려들기는 싫겠지. 나도 아마 일개 병사의 신분이었다면 절대 장수들끼리의 전투에 고개를 들이밀지 않았을 거다.
봉급을 받고 사는 병사의 신분으로 장수끼리의 전투에 고개 들이밀면 죽을 확률만 올라가는데 구태여 죽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으니까.
“후우우.”
숨을 내뱉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 긴장감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을까. 나는 아직 이 감각의 정확한 명칭을 모르고 있었다.
하나, 둘.
호흡을 가다듬는다.
전신의 털이 솟아오를 정도로 오싹한 느낌을 갈무리한다. 여전히 칼을 축 늘어뜨린 채 턱을 치켜들며 비웃고 있는 자 남자의 목, 노릴 건 그것뿐이었다.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거의 튕기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
그렇게 내지른 것이 손견의 검에 막혔고, 한 번 퉁겨나간 검을 다시 이어붙이듯 사선으로 긋는다.
겹겹이 이어지는 교전.
호흡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힘을 줄 때마다 호흡을 멈추는데, 연달아서 강공을 퍼부으려니 숨마저 잊은 상태로 그저 검을 휘둘렀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검을 몇 번에 걸쳐 연달아 퍼붓는다. 일단 한 번이라도 저 방어를 뚫는다면 그때부터는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분명 그럴 것인데.
뚫리지를 않는다. 무엇보다 뚫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손견은 정말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내가 노리는 곳에 정확히 검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검끼리 충돌할 때마다 손아귀가 떨려왔다.
몇 번인가 계속 연달아 공격하는데도 손견은 예측한 것처럼 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표정까지는 살필 기회가 없었다. 그의 손과 검, 몸통만을 바라보기에도 벅찼으니까.
그렇지만 만약 표정을 본다면.
손견은 분명.
“허읍!!”
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숨을 삼킴과 동시에 조금 밀려나는 몸. 이윽고 땅을 구르면서도 손견을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그는 다리 한 짝을 들면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걷어차인 건가.
상황을 채 이해하기 전에 몸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내가 굴렀던 자리에 꽂히는 검. 몇 번을 굴러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니 손견은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쉽군.”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는데.”
그렇게 공격 일변도로 검을 휘둘렀는데도 손견에게 닿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힘을 실었으니 손견도 살짝 손목을 젓고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닿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
“편하게 휘두르려고 하니 읽기가 쉽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니 다음 공격이 어디일지 예상하기도 쉬워지는 것인데, 속도와 기량은 나쁘지 않으나 체계적인 검술은 아니군.”
예전에 운이도 그랬었다.
기량과는 별개로 내 공격은 읽기가 쉽다. 어디로 올지 얼추 가늠이 간다고 했는데, 그것을 적인 손견도 지적하고 있었다.
경험이 훨씬 많은 손견은 더욱 읽기 쉽겠지.
“어디 도장 사부요? 친절하기도 하셔라.”
“딸을 가르칠 때부터의 습관인지라.”
손견은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조금 비아냥거린 건데, 저렇게 어른스럽게 반응하니 맥이 좀 빠진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검을 그에게 읽히고 있었다. 방금 한 번의 교전으로 명확하게 밝혀진바, 검격 하나하나에 자연스럽게 그의 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이기기 힘들었다.
편하게 휘두른다. 손견은 분명 내게 그리 말했다.
나 자체가 검을 휘두르면서 무언가 생각하기보다는 본능과 반사신경 같은 것에 전부 맡기는 편이니,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다음 선택을 보다 편하고 빠르게 휘두를 수 있는 것을 골랐을 수도 있겠네.
이건 당장 무리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떡하지.
그리 생각하던 차였다.
손견이 몸을 숙였다. 마치 인사를 하듯이 고개부터 천천히 수그러드는 몸. 그러나 세상 그 어느 누가 전장에서 갑자기 인사를 할까.
이번엔 그가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윽!!”
일검.
단 한 번의 공격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팔이 떨리고 어깨의 근육을 포함한 팔 근육 전체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고작 한 번이다.
다음 공격이 온다. 위에서 아래로 쪼개듯이 휘둘러지는 검이 막히자마자 그는 검을 아래로 깔고 우측 하단에서 좌 상단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그걸 몸을 젖히면서 검을 가져다 대어 겨우 튕겨내면 다시 이어지는 찌르기.
몸을 비틀었는데도 옆구리를 살짝 베였다.
그렇게 연달아 퍼붓는 검격.
손견은 내 검이 자연스러움만 추구한다고 했던가. 그런 관점에서 그의 검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이 튕겨 나간 방향에서 정반대로 다시 검을 놓고 휘두른다. 필요 동작이 큰 공격들이 연달아 오는데, 그것은 도무지 본능적으로는 예측하기 힘든 것이었다.
동작이 필요하면 시간이라도 좀 걸리던가.
분명 억지로 검을 비트는 것일 텐데도 빠르다. 검을 던져 반대편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등, 그는 공격에 필요한 동작을 정말 최소한으로 전환하면서 예측하기 힘든 공격을 연달아 퍼붓고 있었다.
체계적인 검술이라는 게 이런 거냐.
이런 거였냐.
“큿, 카하악!!”
어깨를 베였다. 또 왼쪽 어깨인 것이 싫어도 여포와의 일전을 떠올렸다. 그 여자가 순수한 무의 폭력이라면 손견은 잘 갈무리된 한 자루의 검과도 같았다.
요컨대 둘 다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아직 잘 버티는군. 막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나.”
“안 그러면 죽으니까.”
어떤가, 아직 움직이나?
아. 이건 틀렸네.
움찔거리는 왼쪽 어깨. 움직이려고 억지로 한다면 그야 아직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통증과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아 동작을 가져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어깨를 베이는 순간에 맞춰 거리를 두었기에 자세만은 바로잡을 시간이 생겼지만, 그와 반대로 왼쪽 팔은 맛이 가버렸다.
“유언은 없나.”
“댁이야말로 유언장 하나 써두고 오셨나?”
그 말에 손견이 픽 웃었다.
“유언장이라면 매번 품 안에 넣어두고 있다. 네놈도 전장에 나선다면 이 정도의 기개는 보이도록.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게.”
나도 다음부터는 유언장 같은 거 써볼까. 그간은 솔직히 말을 전할 상대도, 물려줄 재산 같은 것도 없어서 무슨 필요가 있냐 싶어 안 썼었으니까.
지금이야 아가씨나 운이, 사마의 같은 사람이 있다. 거기에 방삼이랑도 슬슬 같이 안 다니는 데다가 원래 있던 우리 애들도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그런 애들에게 남길 말이라면 있기도 하고, 마침 조조한테서 식읍인지 뭔지를 받아 남길 재산도 있겠다. 유언 하나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유서라도 써보자.
응, 다음부터는 말이야.
손견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도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려는 모습일까. 조금은 감탄스럽기도 했다.
다친 왼쪽 어깨를 구태여 한 번 크게 돌렸다.
“아저씨. 이거 좀 보라고. 내 어깨, 피가 철철 나오잖아. 이거 어떻게 해줄 거야, 응?”
“전장에서 대체 뭘 원하나?”
아니 뭐, 다른 건 없다. 어차피 다치는 건 일상다반사니까. 솔직히 근래 너무 왼쪽 어깨만 다치는 것 같아서 화딱지는 나지만, 뭐 이 정도라면 비싼 값은 받지 않겠다.
“국수 한 그릇. 그 값만 주면 넘어갈게.”
오른손을 활짝 펴 목을 툭툭 두드렸다.
“비싼 값을 치르겠군.”
그는 그리 말하며 검을 다시 내게 겨누었다. 자세가 잘 갈무리된 자세. 정확하게 날을 세워 이쪽을 향해 겨누고는 픽 웃는다.
“목만큼은 조조에게 보내주마. 누구의 목이건 국수 한 그릇의 값이라면, 그걸로도 충분한 것이 아닌가.”
“이보쇼. 받을 사람이 저승 갔는데?”
“입안에 동전 몇 개 넣어주지.”
생각보다 잘 받아주네. 이 양반, 딱딱한 척은 다 하면서 의외로 유쾌하지 않은가. 좋다. 이런 건 내 취향이었다. 아마 다른 식으로 만났더라면 제법 친하게 지냈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합의도 없었다. 신호도 없었다.
그저 동시에 상대를 향해 달려나갔다. 손에 쥔 청강을 크게 잡고 휘둘렀다. 손견은 그걸 막아내면서도 다시 공세를, 나는 그 자리에서 크게 뛰어오르며 다리를 들어 피하면서 공중에 뜬 상태에서 양다리를 뻗어 손견을 걷어찼다.
그도 바닥에 뒹굴었지만, 그건 디딤발을 잃은 나도 마찬가지. 서로 다시 몸을 일으키고는 상대를 향해 달렸다.
내 검이 자연스러워 읽기 쉽다고.
그러면 읽지 못할 정도로 더 빠르게, 힘을 실을 필요도 없었다. 날을 세우고 빠르게만 휘두른다. 쾌검. 그저 빠르게, 더 빠르게, 상대보다 무조건 한 박자 빠르게 휘두른다.
읽지도 못할 정도로, 더, 더 빠르게.
무아지경, 이 경우에는 몰아지경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른가. 나 자신을 잊은 것이 아니다. 그저 한 가지, 검을 휘두른다는 사실에 몰두하여 나 자신을 오히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전부 선명하게 보였다.
상대의 움직임도, 나의 움직임도 전부.
분명 아까보다 공세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올렸는데도 손견은 그것을 물 흐르듯 가볍게 막아내고 있었다.
정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검을 빗대어 맞추는 정도만으로 검을 튕겨내며 수세에 몰렸음에도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경험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저런 상대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 조금 더.
그렇게 생각했을 순간, 손에 쥐었던 청강을 놓쳤다. 대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손견의 검. 그의 검은 정확하게 내 오른쪽 팔뚝을 긋고는 제 위치로 돌아갔다.
팔뚝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기야. 양손으로 휘두르는 것도 쉬이 막아냈는데, 오른손으로만 휘두르는 검이라면 더 쉽게 막아낼 수 있겠지. 그는 검을 놓친 내 바로 위에서 제 검을 크게 치켜들었다.
이걸로 끝내겠다는 느낌.
그렇지만 말이야.
“잘 가라. 애송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크게 검을 내리찍었다. 목은 남겨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래서는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버린다.
물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조금 전까지 비어있던 왼손에 쥔 것을 꺼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오른손은 그것의 반대쪽을 받치면서 손견의 검을 한 번 막아낸다.
“으아아아아!!”
뭐에 막혔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손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손에 쥔 청강의 검집을 잡고 그대로 한 대, 얼굴을 제대로 후려갈겼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비명에 가까운 함성을 질렀다.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물. 오른쪽 팔뚝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아직 양팔은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됐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못 이길 상대라면, 이런 변칙 정도는 있어야 겨우 호각.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순간 공백이 된 손견의 몸을 검집을 들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얼굴, 배, 어깨, 팔뚝. 가리지 않고 그냥 인정사정없이 계속 두들겼다.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심장의 고동이 시끄러워 방해였다.
어깨 근육 하나하나게 삐걱대는 느낌. 이미 잔뜩 흘린 피는 내 옷과 수갑 등을 적시며 손바닥에까지 흘러내렸다. 검집을 잡고 휘두르는 손이 미끄럽다는 느낌이 들어, 그 이상으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끝낸다.
전설이던 손견을 여기서 매장하겠다.
이미 정타를 수도 없이 먹였다. 얼굴과 목은 물론이요, 배나 갈빗대도 사정없이 두들겨 팼으니 더는 설 수 없겠지. 만약 선다고 해도, 여기서 멈출 생각도 없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변칙은 변칙. 한 번 써먹은 변칙은 두 번 다시 쓸 수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 손견이라는 남자를 죽인다.
“조금 더….”
그리 외치려던 순간, 왼쪽 다리가 무너졌다.
자연스럽게 왼쪽 다리가 수그러들었다. 벌써 힘이 빠졌나. 그렇지만 아직,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선을 살짝 내리까니 왼쪽 장딴지에 무언가가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비수? 그렇지만, 아니 대체 언제 저걸 던졌지.
“크흐, 후. 제법 매섭게 때리는군.”
그는 어느새 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입을 우물거리더니 무언가를 퉤 뱉는다. 빗물에 섞여 왕창 딸려 나오는 이.
“이래서야 고기도 제대로 씹지 못하겠군. 이건 어떻게 보상해줄 거냐 애송아. 이건 국수 한 그릇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게 많이 때렸는데도.
손견은 군데군데 비어있는 이를 보이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피해야 한다. 그리 생각했는데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 발만을 어떻게 디딤대로 써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왼쪽 다리는 당분간 움직일 수도 없겠구만. 유감이다.
그는 검을 쥐고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후려쳤는데도 그 와중에 검은 놓지 않았나.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비도와 검을 들고 반격의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몇 번, 몇십 번이나 정타를 먹였는데도.
“괴물이구만.”
여기서 손견이 더 움직일 수 있다면 이제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왼쪽 장딴지에 박힌 비도가 제대로 꽂혔는지 왼쪽 다리 전체가 마비된 느낌이었다.
“유언은?”
“그러네.”
어이가 없어서. 구태여 오른쪽 팔을 희생해서 청강을 놓치는 연기도, 검집을 써 그대로 후려 패는 과정까지 전부 결정짓겠다는 일념 하나였는데.
이건 못 이기겠네.
졌다, 졌어.
그러네, 유언이라. 생각보다 내 안에 남은 말은 많았다. 아가씨에게도, 운이에게도, 방삼이에게도. 아, 사마 꼬맹이한테도 뭐 하나 말을 남길까. 조조에게는… 뭐, 그런 사람에게까지 말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
“꽤 긴데, 다 들을 수 있겠나?”
“길면 그냥 죽인다.”
매정하기는.
왼손을 바라보니 이미 한 번의 강공을 막아낸 것, 그 뒤로 손견을 잔뜩 두들긴 탓에 다 굽어진 청강의 검집이 보였다.
소중히 다루라던 조조의 말이 떠올랐다.
거, 미안하게 됐구만.
정말 죽을 때가 다가왔기 때문일까. 운이는 아직 저쪽에서 교전 중이리라. 아무도 내게 구원의 손을 뻗을 수 없을 터이니, 아마 여기가 진짜 내 묘지가 되리라.
“장군, 장구우우운!!”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내 사람은 아니니 아마 손견의 사람이리라. 분명 저번에 한 번, 얼핏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느낌이 들었다. 이거 어차피 시간을 더 끌었으면 내가 졌겠네.
한 명도 힘든데 두 명을 어떻게 이기나.
“지금 당장 후퇴하셔야 합니다! 적군이 이쪽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포위됩니다!!”
“적군? 조조가 움직이는 건 예상했지 않은가.”
손견의 말에 그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조가 아닙니다. 여포, 여포의 깃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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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를 살린 건 그 누구도 아닌 여포,
이번 역은 여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