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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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이 처음으로 느낀 감상은 그것이었다.
말을 달리며 긴 철봉을 휘두르는 여인. 그 모습만 놓고 보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자태처럼 보였지만, 그와 별개로 그 아래에서 곤죽이 되어 피를 흩뿌리는 이들을 보면 어떠한가.
가장 선두에 서겠다는 진소연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투박한 철봉을 쥐고 휘두르는데 서주군 중 누구도 그녀 하나를 막지 못한다.
서주에서 연주로 향하는 적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돌격명령을 내린 그녀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겠다는 듯이 가장 선두에서 말을 몰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처음에는 허세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도 조조를 따르나.”
우금은 그저 포신의 뒤를 따르다가 그의 전사 이후 자연적으로 조조를 따랐을 뿐이었다. 그저 연주군이라는 소속감이 있었기에 조조를 따라가던 것이었는데, 저런 사람도 자신과 함께 조조를 따른다니.
그건 또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것.
처음엔 전장에서 세운 공은 있더라도 기본은 문관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였다. 그런데 정작 전장에 나서니 저 모습은 무엇인가.
우금 문칙이라는 남자가 한평생 단련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를 선보이며 적병을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모습에선 전율밖에 흐르지 않았다.
입에서는 감탄사만이 절로 흘렀다.
반면 소연은 철봉을 계속 휘두르며 뒤를 살폈다. 생각보다 너무 앞섰는지 아군이 그녀 자신의 기동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서주군은 이미 혼비백산.
적어도 그녀 주변에 있는 군은 무기마저 내던지며 꽁무니를 빼고 있는 상황. 적장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이미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밀어내면 서주군을 퇴각한다.
“슬슬 끝나겠네.”
말의 투레질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한 번 자리에 멈췄다. 저 멀리서부터 계속하여 몰고 달렸으니 지칠 법도 하지.
정작 웃긴 건 그녀에겐 아직 여력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무거운 철봉을 들고 사람의 머리를 셀 수도 없이 박살을 냈는데도 여전히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갔다.
“무력 백이 대단하긴 하네.”
우스웠다.
고작 스테이터스라는 시스템 하나로 어지간한 무장도 넘보지 못할 힘을 가졌다. 매력도 그렇고, 아마 지력도 그럴 터. 이걸 소설에서나 나오는 기연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조금은 다른 기분이었다.
왠지 잘 구성된 모형 정원에서 노는 느낌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뛰노는, 여전히 영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느낌. 그러나 손을 타고 전해지던 감각은 전부 진짜였다.
한 번 실수로 상처를 입었던 곳에서 느껴지는 이 화끈거리는 통증도. 그 모든 것은 지금 소연이 달리고 있는 곳이 현실이라는 자각을 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도 모두 현실이었다.
그녀가 사람의 머리를 깨부순 것도 전부 현실.
“장군!! 적이 물러납니다!!”
“그러겠지.”
최대한 빠르게 그녀를 따라붙은 우금의 외침에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적이 슬슬 군을 물리고 있는 건 그녀도 확인하고 있었다.
초전부터 전초전을 건너뛰고 바로 회전을 걸었다. 거기에서 자신을 막지 못했으니 서주군이 더 버티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하루 정도는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적어도 저들이 다시 덤벼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승입니다, 대승!! 경하드리옵나이다!!”
“사람 머리 깨고 다닌 걸 축하해도 의미는 없어.”
서주 국경에서의 충돌은 어차피 잘 짜인 연극에 불과했다. 당장 도겸 자체가 의욕적이지 않은데 군대라고 의욕적일 리가 있을까.
진짜는 예주 일대와 진류에서 벌어질 원술과 조조의 맞대결이었다. 진심으로 연주를 차지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원술 뿐이었으니까.
“일단 군을 물리자. 아마 내일까지 기다려보면 결론이 나올 거야. 물러날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바로 진류로 향하기엔 뒤가 찝찝하잖니?”
“네, 장군!!”
시끄럽기는.
우금은 의욕이 바짝 들어가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리 기합이 들어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전투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금은 그녀가 치르는 전투의 향방을 보고 진심으로 감복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인으로서의 감탄이었다.
무인이 아닌 그녀에게는 그저 무식하게 달려들어 사람의 머리를 깨부숴 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 행위. 살인을 칭송하고 자랑할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다.
“전호는 무사하려나.”
손견이 선봉에 선다면 조조도 고생깨나 할 것인데.
물론 그녀에게 전호가 죽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이번 전투를 통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인간이란 생물은 죽는 것도 간단하다는 것.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진류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 단신으로 달려간다고 해서 전선의 향방이 바뀔 것도 아니었다.
답답했다.
승전도 이런 승전이 없다고 우금이 설레발 떨 정도로 대승을 거두었는데도 영 찝찝하고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았다.
“오늘은 일단 쉬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등을 돌렸다.
왠지 모를 짜증과 조바심이 그녀를 자극하고 있었다.
* * *
홍농을 거쳐 지금은 빈 폐허가 된 낙양을 지나가면 나오는 예주군 영천 일대. 거기서 군을 조금 더 움직인 시점에서 여포는 드디어 전장에 도착했다.
분명 첩보로는 원술이 북상할 준비만 하고 있다고 들었고, 그렇기에 명령 자체도 원술의 군을 박살 내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여포도 당연히 원술을 박살 내는 것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뭐, 이런저런 핑계라도 대면서 예주를 점거할까.
여포나 장료 모두 그렇게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인가.
“저거 그 년이지? 조조.”
“검은색 군기는 조조 군기긴 하죠.”
“그 원가 놈이 조조 년을 노리고 있다더니 진짜였네. 이거 시발 헛걸음 한 거 아냐? 지들끼리 알아서 죽어라 싸우고 있잖냐.”
그녀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으로 조조군을 가리켰다.
이미 전열에서는 피아 구분도 없이 서로 엉켜서 싸우고 있는 상황. 그것을 조조군의 본대가 포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원술군은 조조군의 기병 무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뭐, 우리야 장안만 빠져나가면 되는 거니까.”
장료는 시큰둥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이 조금 번거롭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명분도 없이 아예 동탁과 손을 끊을 수는 없었다.
이유도 바보가 아닌지라 도움의 손길이랍시고 양주 출신의 군관을 하나 붙여주었는데, 그는 어떤 의미에서 여포를 감시하는 눈이기도 했다.
그러니 모종의 전과는 거둬야만 했다.
쓱 훑어본 전장은 백중지세였다.
원술 군이 머릿수가 많아 보이지만, 정작 선발로 내보낸 군은 조조군에게 포위당하려 하고 있었다. 정작 구원을 보내야 할 원술의 군이 기병 수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야, 장료야. 어떡할까.”
“엉? 뭘 어떡해?”
그 말에 여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도 말귀를 잘 알아먹던 놈이었는데, 장안에 들어가고서부터는 영 상태가 이상했다.
그녀는 짜증을 애써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멍청한 새끼야. 지금 저 연놈들이 서로 죽어라 싸우고 있잖아. 그치? 아주 그냥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싸우는 거 아니냐고.”
“그야 그렇지.”
지금 상황은 누가 보아도 총력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애당초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사람을 수만이나 모아서 전쟁을 벌일 이유도 없었으니까.
“저렇게 놈들이 싸우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 내가 묻는 건 그거잖아. 응? 너 자꾸 그렇게 머저리처럼 굴래? 한 대 맞는다.”
“아 좀! 자꾸 때리면 머리 나빠지오!!”
그는 빽 소리를 지르면서도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어차피 싸우기는 해야 했다. 아예 동탁군과 손을 끊으면 마음은 편할지언정 그 뒤가 문제인 것. 무언가 구실을 얻기 전까지는 황제를 낀 동탁과는 최대한 얼굴 붉히지 않는 것이 편했다.
조조와 원술.
두 군이 전쟁을 벌이고 있으면 아군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을까. 기존 전략대로 원술을 치자니 조조가 영 마음에 걸렸다.
아군은 이후 예주를 점거할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 조조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니꼬울 수도 있었다. 아예 사태를 관망하자니 동탁의 감시가 마음에 걸리는 상황.
“그래서?”
여포는 오히려 씩 웃으며 장료를 바라보았다.
“누구부터 쳐 죽이면 되냐?”
“어?”
자신의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에 그녀는 혀를 찼다.
그래도 그녀 본인보다는 조금 머리를 굴릴 줄 알아서 잘 대해줬더니, 정작 이런 상황에서 얼 타면 어쩌자는 소리인지.
“저 두 연놈이 싸우고 있으면, 당연히 둘 다 쳐부수는 게 맞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시발 누구부터 죽이면 되냐고.”
“하, 하하!! 그러게! 누님은 그런 사람이었지.”
그래, 차라리 그러자.
어차피 가만히 지켜본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장료가 생각하기에 최종적으로는 조조의 손을 들어줘야겠지만, 지금의 여포군은 아직 동탁의 소속. 그렇다면 한 번 짓눌러 기를 죽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상황 여하에 따라 앞으로 얼굴을 맞대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세로 나갈 필요도 없는 것. 차라리 이번 기회에 조조의 콧대를 짓눌러주는 편이 앞으로가 편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포가 끌고 온 병력의 숫자는 삼만.
기존 병주군 이만에 따로 장안에서 차출한 병력이 일만. 숫자는 저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저들 역시도 서로 다투고 있는 상황.
게다가 아군은 기병 전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라리 다 쳐죽일까?”
태평하게 귀를 후비며 전선을 바라보는 여인.
천하무쌍 여포가 있었다.
“그럽시다.”
“어?”
대충 던진 말에 장료가 수긍하니 오히려 여포가 더 당황스러웠다. 평소처럼 대충 씨불이면 그가 안 된다고 빽빽거릴 것을 생각했던 그녀에게는 조금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군을 두 갈래로 나눕시다. 하나는 누님이, 하나는 내가 맡고. 음. 그렇네. 일단 가볍게 견제 목적이니까 누님이 조조쪽으로 가.”
“어? 진짜로?”
그 질문에 장료가 픽 웃었다.
“그럼 거짓말일까?”
어차피 싸워야만 한다면 이게 나았다.
전초전으로 가볍게, 그냥 저들에게 격의 차이를 알려주기만 해도 좋았다. 천하무쌍이 이끄는 군의 위용, 그 힘을 깨닫게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조조군으로 향하되 너무 다 죽일 생각은 말고. 조조랑은 어쩌면 손을 잡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패는 것만으로 족하오. 아, 대신 그쪽에 묶인 원술군을 다 죽여도 돼.”
“너 시발 갑자기 왜 그러냐? 뭐 잘못 먹었어?”
“어차피 아군은 강해. 게다가 우리가 나온다고 저들이 손을 잡을 것도 아닌데, 그러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는 것이 좋지.”
언제나 안 된다고 소리만 빽빽 지르던 놈.
여포가 생각하던 장료는 항상 그런 느낌이었다. 실력도 제법 있는 놈이 맨날 신중해야 한다느니 안 된다느니 어깃장만 놓더니.
“너, 오늘은 제법 마음에 든다?”
“내가 좀 치지.”
장료는 웃었다.
어차피 역적 동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정상적으로 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렸다.
그러면 차라리 화끈하게 가야지.
“누님 취향도 이런 거 아닌가?”
“당연하지.”
그녀는 답하며 방천화극을 쥐었다.
반동탁 연합군 이래도 다시 전장에 서는 것이 얼마 만이던가. 그간 황실이니 뭐니 하면서 몸이 쑤셨던 차에 좋은 기회였다.
그 배불뚝이랑도 얼굴 안 볼 수 있겠다.
“그럼 네가 원술한테 가냐? 그 새끼 예전에 한 번 봤는데 진짜 더럽게 재수 없으니까, 만약 보이거든 내 몫까지 처죽여도 된다.”
“누님은 설령 조조 봐도 죽이지 마쇼. 복잡해져.”
그들은 그리 말하며 말에 올랐다.
조조와 원술.
두 군웅이 맞붙어 자웅을, 각 세력의 미래를 정하는 자리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세 번째 세력의 등장.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람.
그것은 천하무쌍이라는 이름의 태풍이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쬬 아가의 포상을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쬬는 아가인데...
여포도 슬슬 다시 얼굴을 내비칩니다 :)
능력치는 소연 시점이나, 정 안 되면 작품 후기로 한 번 정리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