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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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정비할 시간도 주지 않는 공격. 손견은 기병 전략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열을 부수려 들었고, 그 전략은 완벽하게 먹혀들어 선봉끼리의 전투는 혼전으로 이어졌다.
양 군의 중앙에서는 전호와 손견이 서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사실상 각 군의 지휘관이 직접 전선에 나서 검을 휘두르며 상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황.
손견 측 장수인 정보와 한당, 황개도 마찬가지였고 전호 측 장수인 조운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서로 맞물리기 시작했다면 지휘체계를 잡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저 한 명이라도 더 적을 죽일 뿐.
“궁수부대에 명령을. 최대한 적 후방을 겨냥하여 시위를 당기라고 하세요. 아군이 말려든 곳은 불가능하더라도 저 뒤에 빽빽하게 밀려오는 군을 최대한 줄여야 해요.”
사마의는 전호의 부관 역을 맡은 이에게 그리 말하고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뒤엉켜 적 아군 할 것 없이 난전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래서는 전략도 전술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장에 남은 것은 오롯이 힘의 논리.
이제부터는 정말 각 군의 선봉끼리 전면전뿐이었다. 이미 전호는 검을 빼 들고 손견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운도 그와 함께 움직이는 상황에서 사마의는 오직 자기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건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답답하네, 정말.”
간간이 싸우는 법을 배우고 있다지만 이 육체는 너무 어렸다.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아직 전선에서 군을 지휘하기도 아직 멀었다.
이번 전쟁에도 하마터면 끼지 못할뻔했다.
아마 진소연이 소녀의 의향에 맞춰주도록 하라는 전언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전호는 죽어도 소녀를 전장에 데려오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전장에서 지휘도 본인이 직접 할 수가 없어 부관 등을 통해 대리로 전달하며 전장을 관망해야만 했다.
사마의는 그것이 분했다.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더라도. 적어도 약관 정도의 나이만 되었더라도 이런 굴욕이나 조바심은 느끼지 않아도 됐을 건데.
그렇게 소녀가 엄지손톱을 깨물며 전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전호는 청강검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잖아!!”
손견의 위치는 특정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려면 베어내야 하는 적이 너무 많았다. 이미 사방에서는 적 아군이 모두 뒤섞여서 창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였다.
전호와 손견은 사실상 바로 지척까지 도착했다. 서로가 그 목을 노리고 나아가는 상황인데도 가까워지지 않는 건 그 사이로 빽빽하게 머릿수가 찼기 때문.
아무리 베어도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검을 계속 휘둘렀으나, 가끔 반격을 당한다거나 인파의 파도에 밀려 발걸음을 뒤로 물려야 할 때마저 생겼다.
그나마 조운이 옆에서 그를 계속 보좌하면서 창을 휘둘러주기에 망정이었지, 아무리 그가 무력에 자신 있더라도 단신으로 이런 흐름에 휩쓸렸다가는 손견을 보기도 전에 죽을 수 있었다.
“오라버니! 손견도 이쪽을 향하고 있어요!”
조운은 그리 말하며 창을 휘둘렀다.
보통 지휘관이나 장군쯤 되는 이들이 압도적인 무용을 선보이면 조금은 길이 열릴 법도 한데, 이번 전장은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는다.
그만큼 손견이 이끄는 군의 기세가 대단했다.
그만큼 조조가 이끌던 병사의 의지가 지독했다.
그것이 서로 맞물려 충돌하고, 이윽고 서로의 목만을 노리고 달려든다. 물러섬도 없이 그저 적의 수급만을 노리고 달려드는 살인 병기.
대체 어떻게 군을 키워야 이렇게 되는가.
조운은 그런 아군의 모습에 살짝 질색하고 있었다. 조조가 직접 정예병이라고 칭한 이들은 분명 강한 병사였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 좋은 병사는 아니었다.
이들은 전부 제 목숨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운아, 슬슬 준비해라.”
그녀는 계속 창을 휘두르며 주위를 살피다가 전호의 말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육안으로 바로 보일 정도로 지척에 붉은 두건을 두른 남자가 있었다.
서로 마주한 두 사령관.
고개를 돌린 손견은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조조군의 검은색 옷을 걸친 이들이 또렷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손 문대를 죽이러 왔는가.
전호는 손견을 바라보며 시선을 돌렸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그 소속으로 보이는 장수들이 아군과 교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숫자는 둘. 손견까지 포함하여 셋.
손견 하나로도 힘들 것인데 바로 지척에 그를 보좌할 이들이 버티고 있었다. 조금 고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호가 손을 흔들었다.
“손견 장군님! 오랜만입니다!!”
“그대는 누구지?”
설마 기억하지 못하나.
전호는 그게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 당시 손견은 대패를 당한 직후였다. 얼굴을 직접 마주한 것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이런 거로 화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았다.
“예전에 딱 한 번 장군의 얼굴을 뵌 적이 있습니다. 무성장군의 휘하에 있었으니까요.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검을 치켜들었다.
그런 전호의 모습에 손견은 픽 웃음을 흘렸다.
“안타깝게도 아군이 아닌 병사는 기억하지 못해서.”
“그것참, 유감입니다.”
대놓고 자신을 병사 취급하는 손견의 모습에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실 저 정도로 경력이 많은 장군이라면 자신은 병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운마저 그리 생각하지는 않는 것.
그녀는 이미 이를 갈며 창에 힘을 주었다. 진로에 방해되는 이가 몇 있었지만, 기회를 노린다면 아예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바로 달려들 생각을 하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손견이 얼마나 대단한 장군인지는 익히 들었지만, 그것이 제 오라버니를 무시해도 될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운아.”
전호는 그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견은 내가 맡는다.”
“네? 무슨 말이에요. 그거라면 제가….”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뒷말을 잇지 않았다고 하여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조운이 살짝 고개를 떨구는 모습에 그는 미소로 화답했다.
“맞아. 네가 나보다 더 강하지. 그러니까 너한테는 저기. 저 두 사람의 상태를 부탁하고 싶다. 가능하겠냐?”
손견의 장수로 보이는 이들은 저마다 아군 병력과 전투를 거듭하면서도 손견과 일정 범위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듣기로 그들은 손견 휘하에서 근 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이들. 그런 이들까지 이곳에 가담한다면 전투는 더욱 혼선을 거듭하게 될 터였다.
아무리 그들이 의남매의 연을 맺었다 하더라도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로에게 등을 맡기며 싸운 이들보다 합이 맞을 수는 없었다.
“네가 강하니까 둘. 내가 약하니까 하나. 둘 중 먼저 이긴 쪽이 반대편을 돕는다. 그걸로 하자, 응?”
“…하여간 자존심은.”
아무리 그들이 세더라도 그것이 손견의 무용이 비할 바일까. 이게 남자의 자존심이며 오라버니라는 입장에서 나온 배려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운은 더 말을 잇는 대신 시선을 돌렸다.
“죽지 마요. 용서 안 할 거니까.”
“아무렴.”
그런 상황에서 손견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강해 보이는 것은 저 여인인데, 정작 남는 것은 저 남자라는 사실이 미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시당하는 기분에 손견이 미간을 찌푸렸다.
“더 강한 이를 남기는 것도, 아예 둘이 같이 덤비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인데. 이 손견, 누군지도 모를 무명 소졸에게 패할 정도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무명에 소졸이라.”
그간 꽤 많은 전장을 전전했음에도 진짜 앞에서는 여전히 무명 소졸인가. 전호는 그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야 모를 수도 있지.
이런 변방에서 놀던 애송이, 중앙에서 놀던 장군의 시선으로 보면 무명 소졸로 보일 수도 있었다. 손견의 무명이 한창 천하에 퍼질 당시에 그는 일개 도적에 불과했으니까.
분하지는 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전설에 도전하는 행위. 적어도 자신보다 십수 년은 먼저 활동해온 사람에게 무시당한다고 기분 나쁠 건 없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강대하고 명성 높은 손견에게도 분명 어릴 적은 있었을 터.
손견도 어릴 적이 있었을 것이고, 기존에 강자를 차례차례 꺾어오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으리라. 자리는 한정적이고 사람은 많으니 기존에 명성을 날리던 이들이 지고 새로운 신성이 나타나는 게 당연했다.
그것이 바로 세대교체였다.
그렇다면 아마 이 자리도 그 세대교체의 자리 중 하나였다. 적어도 전호는 이 자리를 손견이라는 맹장, 강동의 호랑이의 전별식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전호, 자는 호세요. 기억해두쇼.”
“기억할 가치가 있는가?”
그야 물론.
전호는 이를 드러냈다. 뾰족한 송곳니 부근을 혀로 한 번 훑었다. 살짝 따가울 정도로 혓바닥을 자극하는 송곳니의 날카로움을 느끼며 검을 겨눴다.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기억하지 않겠나?”
“우습군.”
이제는 존댓말도 버린 모습에 손견도 이를 드러내며 거칠게 웃었다. 말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적이 있고 내가 있다. 올곧게 자신의 목만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적어도 전장에서는 그걸로 충분했다.
“좋지. 네놈이 내 목을 치겠다면 나도 네놈의 목을 친다. 서로 같은 것을 원하니, 이뤄지는 것은 단 한 명의 원망일 터.”
“당연한 거 아니요?”
전호는 아예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긴장되거나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웃으려 드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지라도 않으면 이 힘든 세상에서 웃을 일이 없었으니까.
손견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장은 언제나 자신을 갈고닦아 가장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었다. 나약한 정신과 무른 판단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
필요한 것은 강철의 정신과 날카롭게 가다듬은 감각.
그런 그에게 있어 지금 전호의 모습은 정말 한량 그 자체로만 보였다. 실력이 있다고 해도 오래 살아남기는 힘든 부류의 인간.
자격도 없는 이는 전장에 서선 안 된다.
“장담하지. 그 웃음기, 금방 지워질 거다.”
“지울 수 있으면 지워보시던가. 내가 자랑은 아닌데, 뒈지기 직전에도 헛소리 늘어놓으면서 웃고 있을 자신이 있거든?”
여포와의 일전에서도 그는 그랬었다.
“목이 떨어지면 웃진 못하겠지.”
손견의 검이 그를 겨누었다.
전호의 청강도 그를 겨누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조운이 미리 이 주변에 몰려드는 적을 전부 물리쳐주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전호와 손견의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그들의 주변으로는 적 아군 할 것 없이 거리를 두며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단둘만이 남아 서로를 바라보면서 검을 겨누고 있는 상황.
이미 말은 필요가 없었다.
손견은 그를 겨누었던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전호는 그런 그를 향해 상체를 숙이며 달려든다.
내리치는 검과 휘두르는 검이 부딪치면서 사령관끼리의 결투에 시작을 알렸다. 숱한 전투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와 과거 도적, 지금은 복양 성주인 남자의 사투.
검은 몇 번을 부딪치며 그 소리를 더욱 키웠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주변의 함성을 지울 정도로.
주위 병사들도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크게 울린다.
서로의 목을 향해 검이 충돌했다. 가로로 크게 휘두른 공격을 손견이 쳐내고, 손견이 내지른 공격을 전호가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애송이에게 내줄 정도로 내 목이 싸 보이느냐!!”
손견이 휘두르는 검을 몸을 젖혀 겨우 피해낸 전호가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기 직전에 재차 공격을 이어간다.
사선을 그으며 재차 이어붙이는 검을 겨우 피한 전호는 몸을 뒤로 굴려 손견에게 거리를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수 한 그릇 값은 되겠네.”
“너무 싸지 않은가?”
손견의 말에 전호는 몸을 굴리면서 묻은 흙먼지와 핏물을 털어내었다. 싼값이라. 확실히 손견이라는 무장의 명성을 생각하면 싼값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목숨값이라면.
“뭘. 사람 목숨이 국수 한 그릇 값도 못할 때가 있는 것을. 적어도 난 싸구려 동전 지키겠다고 사람도 죽였어.”
“천박하다.”
“그게 인생인데 어쩔까.”
그가 아는 생명의 값은 다양했다.
그러나 이런 전장에서 사람 한 명 목숨에 붙는 가격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이런 곳에서만큼은 황제도 천민도 똑같은 가격이었다.
“댁 모가지의 값이라고 그리 다르진 않겠지.”
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평등한 것이 목숨이니까. 그리고 그 목숨이 초개처럼 지는 곳이 바로 전장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만인에게 평등한 곳이 아닌가.=============================※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